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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388,MF35-17632
서명 / 저자 : 孟子正音 / [編者未詳]
판사항 : 木板本(丁酉字覆刻版)
발행사항 : [ ] : [ ], [刊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 6卷 3冊 : 四周單邊 半郭 24.5 × 16.6 cm, 有界, 半葉 10行 20字, 內向二葉花紋魚尾 ; 33.6 × 21.8 cm
일반주기 : 楮紙
이용가능한 다른형태자료 주기 : 마이크로필름으로만 이용가능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1개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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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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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부가정보

孟子正音
姜信沆
[篇者未詳〕 丁酉字覆刻版 〔刊年 未詳〕.
6卷3冊 四周單邊. 半郭 245×16.6㎝ 有界 半葉 10行20字 內向二葉花紋魚尾 33.6×21.8㎝. 線裝.
印 : 李王家圖書之章
紙質 : 楮紙
우리 나라에서는 옛날부터 中國과의 外交上 中國語通譯官의 養成이 필요하였다.「通文館志」(1720)의 서문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逋文館을 설치하고 朝鮮朝에서는 司譯院을 설치하여, 통역관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원래 司譯院은 太祖2年9月에 설치된 기관으로서 중국어를 교육하는 漢學 이외에도 蒙學(몽고어) 倭學(일본어) 女眞學_(여진어, 뒤에 만주어를 교육하는 淸學으로 바뀜)등 四學이 있었다.
이들 四學中에서 가장 重視된 것은 漢學, 즉 중국어 교육이었는데, 이러한 外國語의 學習트로이 硏究 通譯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譯學者·譯官·通事·舌人·象胥 등이라고 불리었다. 물론 通事의 임무를 수행하였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申叔舟처럼 文科出身의 文臣도 있었으나 譯語之人은 대개 雜科의 하나인 譯科出身者가 많았다.
譯科의 考試에는 初試와 覆試가 있어서 漢學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과 서적으로 고시를 실시했다.
初試
講書
臨文 四書
背講 老乞大 朴通事·直解小學(中期以後에 伍倫全備로 다시 譯語類解로 代置됨)
譯語
臨文 飜經國大典
覆式 初試 때와 같고 講書에 少微通鑑·宋元節要등이 追加됨.
科擧 以外에도 技術者 任用考試에 해당되는 取才法이 * 그림 4 있어서 譯官을 敍用하였는데, 위에서 말한 考試法이 제대로 실천에 옮겨진 것은 건국 후 상당히 세월이 흘러간 뒤의 일로 여겨진다. 따라서 法典에서 규정한 四書의 講書考試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初期부터 中宗朝까지의 朝鮮王朝實錄 記事를 보면, 譯官들이 日常用語의 通譯은 그런 대로 能通하게 하고 있으나, 一旦 經書의 內容같은 水準이 높은 會話에 미치면, 中國使臣들과의 말이 막히고 만다는 이야기가 여러 군데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중국 교과서인 老乞大· 科通事 등 以外에 四書를 譯科의 考試科目으로 包含시킨 것부터가, 이러한 경우에 中國使臣과의 意思疏通을 원활하게 시키기 위한 目的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만일에 이들 四書가 조선漢子音으로 읽혔거나 諺解로 공부시켰다면, 아무 의의가 없
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譯科의 考試에서는 中國字音으로 四書의 講書(臨文)가 실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 준비를 의하여 孟子正音과 같은 서적이 편찬되었을 것이다.
孟子正音은 經書正音의 하나로서 經書의 本文을 그대로 살리고, 每字마다 한글로 中國字音을 表記해 놓온 책이다. 그 形式은 中宗朝와 飜譯老乞大·朴通事의 本文과 같으나 한글에 의한 懸吐나 諺解. 또는 번역이 없고, 오로지 各字의 字音안을 每字의 아래에 左右 두 종류씩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이들의 字音이 表記된 시기는 언제일까? 通文館志 卷八 書籍條의 續欄에서는
經書正音
論語 二本, 孟子 二本, 中庸·大學 合一本, 詩經 三本. 書經 二本. 春秋 二本. 雍正甲寅 院官 李聖彬等 捐財鑄字印納.
라고 했으나 이 때에 비로소 이들 서적이 刊行된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雍正甲寅은 淸나라 世宗의 雍正11年으로서 우리 나라 英租10年(1734)에 해당되어, 이 때부터 이들 經書를 中國字音으로 읽게 했다면, 시기적으로 너무나도 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孟子正音등의 每字아래에 表記된 左右音은 어떤 音系에 속하는 것일까?
우리 나라에서 漢字의 字音을 한글로 表記하기 시작한 것은, 訓民正音 創製직후부터의 일이나, 이들은 諺解本의 漢字에 東國正韻式 朝鮮漢字音만을 기록한 것이었다. 이에 비하여 中國字音의 正音과 俗音을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洪武正韻譯訓(1455)부터의 일이었고, 이의 傳統을 이어 받아 中宗朝의 崔世珍도 그의 箸書 四聲通解 (中宗12年, 1517) 에서 正音· 俗音·今俗音을 기록했으며 그가 편찬한 老乞大와 朴通事의 漢字에도 正音과 俗音을 표기했다.
그런데 이들 각 서적의 正音·俗音·今俗音들의 성격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홍무정운역훈의 정음은, 明나라 太祖때 중국의 학자들이 중국의 표준음이라고 생각해서 편찬한 洪武正韻의 音을 되도록 충실하게 한글로 表音하려고 했던 음이며, 홍무정운역훈의 俗音은 홍무정운역훈을 편찬했던, 申叔舟등이 실지로 北京에 가서 정취한 15세기의 中國北方音이었다. 四聲通解에서는 崔世珍이 홍무정운역훈의 정음과 속음을 대체로 그대로 옮겨 적고, 다시 자기가 청취한 16세기의 중국북방음을 기록한 것이다.
飜譯老乞大·朴通事에서는 모든 漢字의 아래의 左側에 聲母
左側音
四聲通攷俗音(곧 홍무정운역훈의 俗音)을 기록하고 이를 正音이라고 했고, 右側에 四聲通解의 今俗音과 거의 같은 音을 기록하고, 이것을 俗音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孟子正音등의 漢字밑에 기록된 左側音과 右側音의 성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첫눈으로 보아서는 곧 번역 노걸대·박봉사의 音系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나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아래에서 비교해 보고자 한다.
孟子正音과 飜譯老乞大·朴通事와의 比較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ㄱ ㄱ ㄷ ㄷ ㅂ ㅂ ㅈ ㅈ ㅈ ㅈ ㆆ ㆆ
ㅋ ㅋ ㅌ ㅌ ㅍ ㅍ ㅊ ㅊ ㅊ ㅊ ㅎ ㅎ
ㄲ ㄲ ㄸ ㄸ ㅃ ㅃ ㅹ ㅹ ㅉ ㅉ ㅉ ㅉ ㆅ ㆅ
ㄴ ㄴ ㅁ ㅁ ㅱ ㅱㅅ ㅅ ㅅ ㅅ ㅇ ㅇ
ㅇ ㄹ ㄹ ㅆ ㅆ ㅆ ㅆ
右健音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ㄱ ㄱ ㄷ ㄷ ㅂ ㅂ ㅈ ㅈ ㅈ ㅈ ㅈ ㅈ
ㅋ ㅋ ㅌ ㅌ ㅍ ㅍ ㅊ ㅊ ㅊ ㅊ ㅎ ㅎ
ㅇ ㅇ ㄴ ㄴ ㅁ ㅁ ㅱ w ㅅ ㅅ ㅅ ㅅ ㅇ ㅇ
(초성)
ㅇ ㅇ ㄹ ㄹ
(중성)
右側音 聲母의 비교에서 孟子正音의 순경음을 w로表
示한 것은, 번역 노걸대·박통사에서 쓰이던 이 맹자 정음에서는 우, 위, 와 등으로 나타나 이 w로 변화 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번역 노걸대등에서 성모가 대폭 준 것은, 各自<병0x62C4>書로 표기되던 全濁音 계열이 딴 음으로 변했기 때문인데, 孟子正音의 右側音에서도 노걸대등과 마찬가지로 全惜音이나 次淸音으로 변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韻母
편의상 右側音만 비교하고, 또 인쇄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 韻母音만 음운기호로 표기해 보겠다. 但 는 i tt로 #는 iu 로 표기함. 韻目名은 四聲通解의그것임
韻 東 庚 陽 先
例字 東 肉 經 生 國 望 遠 曰
老 -uŋ -u -iŋ -## -u# -ua -itti#n - itti#
孟 -u -u -i -## -u -ia -itti#n -itti#
韻 支 皆 尤 灰 歌 麻
例字 面 士 來 # 有 對 何 家
老 # -#i -iu -iu -ui -# -ia
孟 -## -± -#i -±u -iu -# -ia
以上의 간략한 비교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支韻 운모음의 변화다. 번역 노걸대·박통사에서-(-∧)로 표기되었던 음이 -∧ 또는 -±로 변한 것이 많다.
너무 번거러워서 전체의 비교는 생략하거니와 1959年에 慶北大學校에서 影印한 朴通事 上의 끝에는, 肅宗朝本과 中宗朝大의 對照表가 실려 있는데, 韻母音은 肅宗朝本의 朴通事와 孟子正音의 그것이 대체로 비슷하나, 肅宗朝本에서는 △ #가 完全히 消失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서 △音을 유지하고 있는 孟子正音과는 또 다르다. 그러나 모든 字音과 聲調 表示 旁點이 없어진 점은 兩者가 같다.
이런 점으로 보면, 孟子正音등이 壬乳이후에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肅宗朝보다는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世宗은 한글 창제와 더불어 正確한 中國字音의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洪武正韻譯訓이다. 그러나 이 책이 나타내고 있는 音系는 반드시 현실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崔世珍은 되도록 현실음을 살려서 이를 번역 노걸대와 박통사에서 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홍무정운역훈의 권위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훙무정운역훈음을 正音이라고 해서 每字아래의 左側에 表示하고 현실음을 右側에 表記했다. 그러나 현실음은 항상 변하는 법이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된 현실음과 文獻에기록되어 있는 음이 또 다르게 되었다. 이에 주의를 한 後世의 譯官들은, 다시 一部音을 현실음에 맞도륵 고쳐서, 孟子正音의 右側音과 같은 音系를 보여 주게 된 것이다.
以上에서 말한 바를 종합하여 孟子正音의 성격을, 밝혀 보면 다음과 같다.
孟子正音은 譯官의 敎養을 높이고 中國使臣과의 會話內容을 忠實하게 하기 위하여 本文을 그대로 살리고 每字의 아래에 左右 두 종류의 中國子音을 한글로 기록해 놓은 經書正音의 하나다. 正音이라고 하는 左側音은 번역 노걸대·박통사등의 左側音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洪武正韻譯訓에서 表示한 俗音이며 (곧 15세기 中國北方音) 俗音이라고 하는 右側音은 역시 번역노걸대·박통사등의 右則音과 비슷한 16세기 이후의 중국북방음이다.
그러나 숙종조판 朴通事諺解本등과 비교해 보면, 표기된 右側音의 한글이 좀더 古形을 유지하고 있어서, 孟子正音이 숙종 조보다는 以前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조를 표시하는 방점이 찍혀 있지 않은 점으로 볼 때에는 壬乳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비록 刊記는 없으나, 이러한 점을 고려에 넣고서, 孟子正音類의 音系를 세밀히 정리하여, 중국北方音의 近世音資料로서의 價値와 位置를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들 經書正音類가 譯科실시때 受驗牛들의 中國字音 實力을 시험하기 위하여, 또 그런 준비를 시키기 위하여 편찬된 것이라고 한다면, 시기적으로 너무나도 늦은 감이 있다. 따라서 이런 經書正音類가 出刊되기 以前에도 譯官들 및 그 志願者를 위하여, 經書의 漢子에 대한 中國字音敎育用 敎材는 있었을 것이다
〈成均館大學校敎授·文博

부가정보

孟子正音
姜信沆
[篇者未詳〕 丁酉字覆刻版 〔刊年 未詳〕.
6卷3冊 四周單邊. 半郭 245×16.6㎝ 有界 半葉 10行20字 內向二葉花紋魚尾 33.6×21.8㎝. 線裝.
印 : 李王家圖書之章
紙質 : 楮紙
우리 나라에서는 옛날부터 中國과의 外交上 中國語通譯官의 養成이 필요하였다.「通文館志」(1720)의 서문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逋文館을 설치하고 朝鮮朝에서는 司譯院을 설치하여, 통역관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원래 司譯院은 太祖2年9月에 설치된 기관으로서 중국어를 교육하는 漢學 이외에도 蒙學(몽고어) 倭學(일본어) 女眞學_(여진어, 뒤에 만주어를 교육하는 淸學으로 바뀜)등 四學이 있었다.
이들 四學中에서 가장 重視된 것은 漢學, 즉 중국어 교육이었는데, 이러한 外國語의 學習트로이 硏究 通譯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譯學者·譯官·通事·舌人·象胥 등이라고 불리었다. 물론 通事의 임무를 수행하였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申叔舟처럼 文科出身의 文臣도 있었으나 譯語之人은 대개 雜科의 하나인 譯科出身者가 많았다.
譯科의 考試에는 初試와 覆試가 있어서 漢學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과 서적으로 고시를 실시했다.
初試
講書
臨文 四書
背講 老乞大 朴通事·直解小學(中期以後에 伍倫全備로 다시 譯語類解로 代置됨)
譯語
臨文 飜經國大典
覆式 初試 때와 같고 講書에 少微通鑑·宋元節要등이 追加됨.
科擧 以外에도 技術者 任用考試에 해당되는 取才法이 * 그림 4 있어서 譯官을 敍用하였는데, 위에서 말한 考試法이 제대로 실천에 옮겨진 것은 건국 후 상당히 세월이 흘러간 뒤의 일로 여겨진다. 따라서 法典에서 규정한 四書의 講書考試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初期부터 中宗朝까지의 朝鮮王朝實錄 記事를 보면, 譯官들이 日常用語의 通譯은 그런 대로 能通하게 하고 있으나, 一旦 經書의 內容같은 水準이 높은 會話에 미치면, 中國使臣들과의 말이 막히고 만다는 이야기가 여러 군데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중국 교과서인 老乞大· 科通事 등 以外에 四書를 譯科의 考試科目으로 包含시킨 것부터가, 이러한 경우에 中國使臣과의 意思疏通을 원활하게 시키기 위한 目的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만일에 이들 四書가 조선漢子音으로 읽혔거나 諺解로 공부시켰다면, 아무 의의가 없
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譯科의 考試에서는 中國字音으로 四書의 講書(臨文)가 실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 준비를 의하여 孟子正音과 같은 서적이 편찬되었을 것이다.
孟子正音은 經書正音의 하나로서 經書의 本文을 그대로 살리고, 每字마다 한글로 中國字音을 表記해 놓온 책이다. 그 形式은 中宗朝와 飜譯老乞大·朴通事의 本文과 같으나 한글에 의한 懸吐나 諺解. 또는 번역이 없고, 오로지 各字의 字音안을 每字의 아래에 左右 두 종류씩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이들의 字音이 表記된 시기는 언제일까? 通文館志 卷八 書籍條의 續欄에서는
經書正音
論語 二本, 孟子 二本, 中庸·大學 合一本, 詩經 三本. 書經 二本. 春秋 二本. 雍正甲寅 院官 李聖彬等 捐財鑄字印納.
라고 했으나 이 때에 비로소 이들 서적이 刊行된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雍正甲寅은 淸나라 世宗의 雍正11年으로서 우리 나라 英租10年(1734)에 해당되어, 이 때부터 이들 經書를 中國字音으로 읽게 했다면, 시기적으로 너무나도 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孟子正音등의 每字아래에 表記된 左右音은 어떤 音系에 속하는 것일까?
우리 나라에서 漢字의 字音을 한글로 表記하기 시작한 것은, 訓民正音 創製직후부터의 일이나, 이들은 諺解本의 漢字에 東國正韻式 朝鮮漢字音만을 기록한 것이었다. 이에 비하여 中國字音의 正音과 俗音을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洪武正韻譯訓(1455)부터의 일이었고, 이의 傳統을 이어 받아 中宗朝의 崔世珍도 그의 箸書 四聲通解 (中宗12年, 1517) 에서 正音· 俗音·今俗音을 기록했으며 그가 편찬한 老乞大와 朴通事의 漢字에도 正音과 俗音을 표기했다.
그런데 이들 각 서적의 正音·俗音·今俗音들의 성격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홍무정운역훈의 정음은, 明나라 太祖때 중국의 학자들이 중국의 표준음이라고 생각해서 편찬한 洪武正韻의 音을 되도록 충실하게 한글로 表音하려고 했던 음이며, 홍무정운역훈의 俗音은 홍무정운역훈을 편찬했던, 申叔舟등이 실지로 北京에 가서 정취한 15세기의 中國北方音이었다. 四聲通解에서는 崔世珍이 홍무정운역훈의 정음과 속음을 대체로 그대로 옮겨 적고, 다시 자기가 청취한 16세기의 중국북방음을 기록한 것이다.
飜譯老乞大·朴通事에서는 모든 漢字의 아래의 左側에 聲母
左側音
四聲通攷俗音(곧 홍무정운역훈의 俗音)을 기록하고 이를 正音이라고 했고, 右側에 四聲通解의 今俗音과 거의 같은 音을 기록하고, 이것을 俗音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孟子正音등의 漢字밑에 기록된 左側音과 右側音의 성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첫눈으로 보아서는 곧 번역 노걸대·박봉사의 音系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나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아래에서 비교해 보고자 한다.
孟子正音과 飜譯老乞大·朴通事와의 比較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ㄱ ㄱ ㄷ ㄷ ㅂ ㅂ ㅈ ㅈ ㅈ ㅈ ㆆ ㆆ
ㅋ ㅋ ㅌ ㅌ ㅍ ㅍ ㅊ ㅊ ㅊ ㅊ ㅎ ㅎ
ㄲ ㄲ ㄸ ㄸ ㅃ ㅃ ㅹ ㅹ ㅉ ㅉ ㅉ ㅉ ㆅ ㆅ
ㄴ ㄴ ㅁ ㅁ ㅱ ㅱㅅ ㅅ ㅅ ㅅ ㅇ ㅇ
ㅇ ㄹ ㄹ ㅆ ㅆ ㅆ ㅆ
右健音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老 孟
ㄱ ㄱ ㄷ ㄷ ㅂ ㅂ ㅈ ㅈ ㅈ ㅈ ㅈ ㅈ
ㅋ ㅋ ㅌ ㅌ ㅍ ㅍ ㅊ ㅊ ㅊ ㅊ ㅎ ㅎ
ㅇ ㅇ ㄴ ㄴ ㅁ ㅁ ㅱ w ㅅ ㅅ ㅅ ㅅ ㅇ ㅇ
(초성)
ㅇ ㅇ ㄹ ㄹ
(중성)
右側音 聲母의 비교에서 孟子正音의 순경음을 w로表
示한 것은, 번역 노걸대·박통사에서 쓰이던 이 맹자 정음에서는 우, 위, 와 등으로 나타나 이 w로 변화 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번역 노걸대등에서 성모가 대폭 준 것은, 各自<병0x62C4>書로 표기되던 全濁音 계열이 딴 음으로 변했기 때문인데, 孟子正音의 右側音에서도 노걸대등과 마찬가지로 全惜音이나 次淸音으로 변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韻母
편의상 右側音만 비교하고, 또 인쇄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 韻母音만 음운기호로 표기해 보겠다. 但 는 i tt로 #는 iu 로 표기함. 韻目名은 四聲通解의그것임
韻 東 庚 陽 先
例字 東 肉 經 生 國 望 遠 曰
老 -uŋ -u -iŋ -## -u# -ua -itti#n - itti#
孟 -u -u -i -## -u -ia -itti#n -itti#
韻 支 皆 尤 灰 歌 麻
例字 面 士 來 # 有 對 何 家
老 # -#i -iu -iu -ui -# -ia
孟 -## -± -#i -±u -iu -# -ia
以上의 간략한 비교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支韻 운모음의 변화다. 번역 노걸대·박통사에서-(-∧)로 표기되었던 음이 -∧ 또는 -±로 변한 것이 많다.
너무 번거러워서 전체의 비교는 생략하거니와 1959年에 慶北大學校에서 影印한 朴通事 上의 끝에는, 肅宗朝本과 中宗朝大의 對照表가 실려 있는데, 韻母音은 肅宗朝本의 朴通事와 孟子正音의 그것이 대체로 비슷하나, 肅宗朝本에서는 △ #가 完全히 消失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서 △音을 유지하고 있는 孟子正音과는 또 다르다. 그러나 모든 字音과 聲調 表示 旁點이 없어진 점은 兩者가 같다.
이런 점으로 보면, 孟子正音등이 壬乳이후에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肅宗朝보다는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世宗은 한글 창제와 더불어 正確한 中國字音의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洪武正韻譯訓이다. 그러나 이 책이 나타내고 있는 音系는 반드시 현실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崔世珍은 되도록 현실음을 살려서 이를 번역 노걸대와 박통사에서 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홍무정운역훈의 권위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훙무정운역훈음을 正音이라고 해서 每字아래의 左側에 表示하고 현실음을 右側에 表記했다. 그러나 현실음은 항상 변하는 법이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된 현실음과 文獻에기록되어 있는 음이 또 다르게 되었다. 이에 주의를 한 後世의 譯官들은, 다시 一部音을 현실음에 맞도륵 고쳐서, 孟子正音의 右側音과 같은 音系를 보여 주게 된 것이다.
以上에서 말한 바를 종합하여 孟子正音의 성격을, 밝혀 보면 다음과 같다.
孟子正音은 譯官의 敎養을 높이고 中國使臣과의 會話內容을 忠實하게 하기 위하여 本文을 그대로 살리고 每字의 아래에 左右 두 종류의 中國子音을 한글로 기록해 놓은 經書正音의 하나다. 正音이라고 하는 左側音은 번역 노걸대·박통사등의 左側音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洪武正韻譯訓에서 表示한 俗音이며 (곧 15세기 中國北方音) 俗音이라고 하는 右側音은 역시 번역노걸대·박통사등의 右則音과 비슷한 16세기 이후의 중국북방음이다.
그러나 숙종조판 朴通事諺解本등과 비교해 보면, 표기된 右側音의 한글이 좀더 古形을 유지하고 있어서, 孟子正音이 숙종 조보다는 以前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조를 표시하는 방점이 찍혀 있지 않은 점으로 볼 때에는 壬乳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비록 刊記는 없으나, 이러한 점을 고려에 넣고서, 孟子正音類의 音系를 세밀히 정리하여, 중국北方音의 近世音資料로서의 價値와 位置를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들 經書正音類가 譯科실시때 受驗牛들의 中國字音 實力을 시험하기 위하여, 또 그런 준비를 시키기 위하여 편찬된 것이라고 한다면, 시기적으로 너무나도 늦은 감이 있다. 따라서 이런 經書正音類가 出刊되기 以前에도 譯官들 및 그 志願者를 위하여, 經書의 漢子에 대한 中國字音敎育用 敎材는 있었을 것이다
〈成均館大學校敎授·文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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