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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8394, 10751
서명 / 저자 : 民堡輯說 全/ 申觀浩(朝鮮) 輯
개인저자 : 신관호 (조선)
판사항 : 木活字本
발행사항 : [ ]: [ ], 高宗 4(1867)
형태사항 : 不分卷1冊: 四周單邊 半郭 21.3 x 14.7 cm, 10行20字, 上白魚尾; 30.4 x 19.3 ㎝
일반주기 : 서제: 序 : 丁卯(1867)…東陽申觀浩序
刊記 : 丁卯(1867)活印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청구기호 : C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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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민보집설 (民堡輯說) 조선시대의 무신 신헌(申櫶)이 1867년(고종 4) 편집, 간행한 민보방위에 관한 책. 1책. 활자본. 조선은 병자호란이래 230여 년간이나 군사적인 태평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1860년대에 접어들면서 북경함락의 소문, 서양선박들의 빈번한 표착 (漂着), 신미양요·병인양요 등 서양인들의 침략으로 인하여 조정과 연해변은 심각한 위기의식과 소란에 빠지게 되었다. 군사적으로 거의 무방비상태에 있던 조선정부는 쇄국을 결의하였으나, 만성적인 재정궁핍과 군사행정의 심한 부패 때문에 관이 주도하여 농민을 징발하고 군대를 유지하는 일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연해변의 많은 유생들은 요해지마다 산성을 쌓고, 병란이 터지면 농민들이 자전자수(自戰自守)하는 민보방위론의 시행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이미 1812년(순조 12) 정약용(丁若鏞)이 그의 논문 <<민보의 民堡議>>에서 제시하였던 방안이었다. 훈련대장이었던 신헌은 민보방위체제의 시행을 여러 차례 조정에 건의한 끝에 병인양요 이듬해인 1867년 왕의 윤허를 받아냈다. 그것은 민보방위체제야말로 내우외환에 직면한 19세기 중엽의 조선이 택할 수 있는 최상의 비변책(備邊策)이요 사회보안책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헌은 자신이 지방의 무관으로 있으면서 수집한 민보관계의 책자들을 자료로 하여 <<민보집설>>을 간행하였다. <<민보집설>>은 향촌의 인보조직(隣保組織), 요해지의 선정과 보루의 축성방법, 가용한 무기와 장비, 운영내규, 그리고 식량관리 등의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내용은 명인(明人) 윤경(尹耕)이 쓴 <<보약 堡約>>, 저자 미상의 <<성수서 城守書>>, 그리고 정약용의 <<민보의>>에서 발췌되었는데, 특히 <<민보의>>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 조정은 조만간 시행할 민보방위체제에 관한 하나의 시안으로서, <<민보집설>>을 간행하여 전국의 주요 읍에 배포하였다. 그러나 민보방위에 대한 조정의 정책적 관심은 그 이상의 발전 없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정부의 정책집행능력의 전반적인 부족과 쇄국의 강력한 지도자였던 흥선대원군의 실권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민보를 기본단위로 한 농민자위체제를 가지고 유명무실한 구래의 속오군제(束伍軍制)를 대체하려던 조정의 때늦은 노력은 탁상공론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민보집설>>은 19세기 중엽부터 조선의 최대과제가 된 국방과 사회안정의 문제에 대하여 당대 식자들의 여론의 분위기와 조정의 대응태도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 <<참고문헌>> 19세기의 새로운 國土防衛 論-茶山의 民堡議를 中心으로―(鄭景鉉, 韓國史論 4, 1978). 〈鄭景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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