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가 작동하지 않으면 사이트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체

  • 홈
  • slash
  • 소장자료검색
  • slash
  • 전체
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33
서명 / 저자 : 關西問答錄/ 李彦迪(朝鮮) 著; 李金仁(朝鮮) 編
개인저자 : 이언적 (조선).
이금인
이당
이희조
이변
판사항 : 木版
발행사항 : [ ]: [ ], . 英祖 27(1751)
형태사항 : 線裝, 1冊(41張): 四周雙邊, 半郭 20.6 × 15.2cm, 有界, 半葉 10行 21字, 內向二葉花紋魚尾; 33.1 × 21.2cm
일반주기 : 서제: 表題 : 關西問答
跋 : 崇禎紀元後九十三年庚子(1720) 正月日延城後人李喜朝(1655 - 1724)謹書, 跋 : 時崇禎後三辛未(1751)上元日三州李采(1745 - 1820)謹跋, 跋 : 乙巳(1725)孟冬延城後學李端相 紙質 : 楮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3-16
 

태그

입력된 태그 정보가 없습니다. 태그추가

소장자료

서가에없는도서신청서가에없는도서신청 예약예약 희망도서신청희망도서신청 소장위치출력출력

부가정보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 조선 중기의 유학자 이언적(李彦迪)과 아들 전인(全仁)이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책. 이언적이 서교(西<격0x54CE>)에서 귀양살이할 때에, 전인이 따라와서 학문에 관한 질문을 하였고 언적은 답하였는데, 후에 전인이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전인의 3세손인 홍기(弘<기0x5979>)에 이르러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원래 <<관서문답록>>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남명유집 南冥遺集>> 가운데 〈해관서문답 解關西問答〉 한편이 실려 있을 뿐이었다. <<관서문답록>> 초간본에 발문을 쓴 이단상(李端相)에 의하면, 그는 <<남명유집>> 속의 〈해관서문답〉에 관해서 두가지 의문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데, 하나는 이언적과 이황(李滉) 그리고 조식(曺植)의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였으며, 또 하나는 이언적의 <<대학장구보유 大學章句補遺>>와 이황이 이중구(李仲久)와 논의한 <<대학장구유서>>의 청송(聽訟) 일절(一節)이 서로 다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단상이 성동(城東)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을 때, 이언적의 현손 홍기의 방문을 받고 비로소 <<관서문답록>>을 보게 되었고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고 한다. 이단상은 <<관서문답록>>이 마치 공자와 그의 아들 백어(伯魚)를 연상케 하는 부자간의 문답록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관서문답록>>은 그 내용의 대부분이 학문에 관한 것이지만 그 안에 이언적이 조식에 관해 인물평을 한 부분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초간본이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 판본(板本)이 훼손당하게 되어, 50여년 후에 중간본이 후손 학년(鶴年)에 의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중간본이 낡아지자, 중간본이 나온 지 92년 만에 학년의 후손인 욱(昱)에 의하여 다시 중간되었다. 이 책은 이언적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임은 물론이고, 지금도 문제가 되는 이언적·이황과 조식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崔一凡〉

부가정보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 조선 중기의 유학자 이언적(李彦迪)과 아들 전인(全仁)이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책. 이언적이 서교(西<격0x54CE>)에서 귀양살이할 때에, 전인이 따라와서 학문에 관한 질문을 하였고 언적은 답하였는데, 후에 전인이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전인의 3세손인 홍기(弘<기0x5979>)에 이르러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원래 <<관서문답록>>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남명유집 南冥遺集>> 가운데 〈해관서문답 解關西問答〉 한편이 실려 있을 뿐이었다. <<관서문답록>> 초간본에 발문을 쓴 이단상(李端相)에 의하면, 그는 <<남명유집>> 속의 〈해관서문답〉에 관해서 두가지 의문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데, 하나는 이언적과 이황(李滉) 그리고 조식(曺植)의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였으며, 또 하나는 이언적의 <<대학장구보유 大學章句補遺>>와 이황이 이중구(李仲久)와 논의한 <<대학장구유서>>의 청송(聽訟) 일절(一節)이 서로 다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단상이 성동(城東)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을 때, 이언적의 현손 홍기의 방문을 받고 비로소 <<관서문답록>>을 보게 되었고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고 한다. 이단상은 <<관서문답록>>이 마치 공자와 그의 아들 백어(伯魚)를 연상케 하는 부자간의 문답록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관서문답록>>은 그 내용의 대부분이 학문에 관한 것이지만 그 안에 이언적이 조식에 관해 인물평을 한 부분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초간본이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 판본(板本)이 훼손당하게 되어, 50여년 후에 중간본이 후손 학년(鶴年)에 의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중간본이 낡아지자, 중간본이 나온 지 92년 만에 학년의 후손인 욱(昱)에 의하여 다시 중간되었다. 이 책은 이언적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임은 물론이고, 지금도 문제가 되는 이언적·이황과 조식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崔一凡〉

서평

등록된 서평이 없습니다. 첫 서평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