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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061
서명 / 저자 : 南華經/ [編者未詳]
개인저자 : 이용상
판사항 : 木板
발행사항 : [ ]: [ ], [刊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 3卷 3冊: 四周單邊, 半郭 23.2 × 16.4cm, 有界, 半葉 10行 20字, 註雙行, 內向三葉花紋魚尾; 34.9 × 22.2cm
일반주기 : 紙質 : 楮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用庠章. 侍講院,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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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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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남화경(南華經) 중국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도가사상가인 장주(莊周)가 지었다고 전하는 책. <<남화진경 南華眞經>> 또는 <<장자남화경 莊子南華經>>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름은 <<장자>>였으나 당나라 현종(玄宗)이 천보(天寶) 원년(742)에 존숭하는 뜻으로 호칭을 바꾸었는데, 이때 장주에게도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존호(尊號)가 붙여졌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경사편(經史篇) 도장류(道藏類)에 따르면 ‘남화’라는 명칭은 장자가 살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여러가지 판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곽상주(郭象注) 33권이 정통본으로 인정되고 있다. 최근에 둔황(敦惶)에서 발견된 당나라 필사본과 북송 여혜경(呂惠卿)의 여관문진장자의본(呂觀文進莊子義本), 일본 경도(京都)의 다카야마사(高山寺)에서 발견된 필사본이 있으나 모두 완전하지 못하다. 그 내용은 내편(內篇) 7권, 외편(外篇) 15권, 잡편(雜篇) 11권으로 나누어졌는데, 내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장자사상의 정수가 포함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장자의 사상은 세속적인 관습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이 강조되고 있으며, 노자의 입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노장사상(老莊思想)으로 통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읽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문헌에는 고려시대의 〈한림별곡〉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림별곡〉에는 지식인들이 읽어야 할 책을 열거하고 있는데, 노자의 <<도덕경>>과 더불어 <<남화경>>이 들어 있다. 또한, 충렬왕 때의 문신인 추적(秋適)이 편간한 <<명심보감 明心寶鑑>>에는 부분적으로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성리학 자체가 도가적인 논법을
포함하고 있었고, 이황(李滉)이나 이이(李珥) 같은 거유들도 도가서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거의 다 도가서를 읽었는데, 특히 <<남화경>>은 그 유려한 문체 때문에 널리 애독되었다. 더욱이 일부의 유학자들은 유교와 도가의 이론이 서로 배치되지 않을 뿐더러 핵심적 내용은 공통점이 많이 있다는 방향으로 도가서의 가치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임희일(林希逸)의 <<구해남화경 句解南華經>>은 장자의 입장이 유가경전의 뜻과 매우 부합됨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주해서이다. 박세당(朴世堂)은 현재 전해지는 임희일 구해본에 현토(懸吐)와 훈석(訓釋)을 해놓은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유가사상의 입장에서 도가사상을 받아들이는 기본관점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주해서를 펴냈다. 한원진(韓元震)도 유교제일주의를 내세우고 도가사상을 비판하기도 하였지만 <<장자변해 莊子辨解>>라는 제목으로 내편 6편의 해설을 쓰는 등 도가서를 깊이 연구하였다. 한편,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결선생(百結先生)의 “죽고 사는 데에는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 그것들이 닥쳐오면 막아서는 안 되고, 그것들이 떠나가면 쫓아가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은 바로 외편 삼목편(三木篇)에 나오는 구절인 “내자물금 왕자물지(來者勿禁 往者勿止)”의 생활철학과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능화(李能和)는 외편 재유편(在宥篇)에 나오는, 황제(黃帝)가 공동산(空同山)으로 광성자(廣成子)를 찾아가서 장생(長生)의 도를 묻고 교시를 받았다는 부분에 착안하여 광성자의 거처인 공동산이 우리나라인 청구(靑丘)임을 밝히기 위하여 여러가지 고증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朝鮮道敎史(李能和著, 李鍾殷譯, 普成文化社, 1977), 韓國의 道敎思想(車柱環, 同和出版公社, 1984).〈崔一凡〉

부가정보

남화경(南華經) 중국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도가사상가인 장주(莊周)가 지었다고 전하는 책. <<남화진경 南華眞經>> 또는 <<장자남화경 莊子南華經>>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름은 <<장자>>였으나 당나라 현종(玄宗)이 천보(天寶) 원년(742)에 존숭하는 뜻으로 호칭을 바꾸었는데, 이때 장주에게도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존호(尊號)가 붙여졌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경사편(經史篇) 도장류(道藏類)에 따르면 ‘남화’라는 명칭은 장자가 살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여러가지 판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곽상주(郭象注) 33권이 정통본으로 인정되고 있다. 최근에 둔황(敦惶)에서 발견된 당나라 필사본과 북송 여혜경(呂惠卿)의 여관문진장자의본(呂觀文進莊子義本), 일본 경도(京都)의 다카야마사(高山寺)에서 발견된 필사본이 있으나 모두 완전하지 못하다. 그 내용은 내편(內篇) 7권, 외편(外篇) 15권, 잡편(雜篇) 11권으로 나누어졌는데, 내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장자사상의 정수가 포함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장자의 사상은 세속적인 관습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이 강조되고 있으며, 노자의 입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노장사상(老莊思想)으로 통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읽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문헌에는 고려시대의 〈한림별곡〉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림별곡〉에는 지식인들이 읽어야 할 책을 열거하고 있는데, 노자의 <<도덕경>>과 더불어 <<남화경>>이 들어 있다. 또한, 충렬왕 때의 문신인 추적(秋適)이 편간한 <<명심보감 明心寶鑑>>에는 부분적으로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성리학 자체가 도가적인 논법을
포함하고 있었고, 이황(李滉)이나 이이(李珥) 같은 거유들도 도가서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거의 다 도가서를 읽었는데, 특히 <<남화경>>은 그 유려한 문체 때문에 널리 애독되었다. 더욱이 일부의 유학자들은 유교와 도가의 이론이 서로 배치되지 않을 뿐더러 핵심적 내용은 공통점이 많이 있다는 방향으로 도가서의 가치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임희일(林希逸)의 <<구해남화경 句解南華經>>은 장자의 입장이 유가경전의 뜻과 매우 부합됨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주해서이다. 박세당(朴世堂)은 현재 전해지는 임희일 구해본에 현토(懸吐)와 훈석(訓釋)을 해놓은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유가사상의 입장에서 도가사상을 받아들이는 기본관점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주해서를 펴냈다. 한원진(韓元震)도 유교제일주의를 내세우고 도가사상을 비판하기도 하였지만 <<장자변해 莊子辨解>>라는 제목으로 내편 6편의 해설을 쓰는 등 도가서를 깊이 연구하였다. 한편,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결선생(百結先生)의 “죽고 사는 데에는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 그것들이 닥쳐오면 막아서는 안 되고, 그것들이 떠나가면 쫓아가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은 바로 외편 삼목편(三木篇)에 나오는 구절인 “내자물금 왕자물지(來者勿禁 往者勿止)”의 생활철학과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능화(李能和)는 외편 재유편(在宥篇)에 나오는, 황제(黃帝)가 공동산(空同山)으로 광성자(廣成子)를 찾아가서 장생(長生)의 도를 묻고 교시를 받았다는 부분에 착안하여 광성자의 거처인 공동산이 우리나라인 청구(靑丘)임을 밝히기 위하여 여러가지 고증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朝鮮道敎史(李能和著, 李鍾殷譯, 普成文化社, 1977), 韓國의 道敎思想(車柱環, 同和出版公社, 1984).〈崔一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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