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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954
서명 / 저자 : 德壽宮印存/ [編者未詳]
판사항 : 影印版
발행사항 : [ ]: [ ], 刊年未詳
형태사항 : 帖裝(旋風葉), 1冊(21折); 26.8 × 15.9cm
일반주기 : 서제: 書名 : 表題에 依함
紙質 : 壯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同書5部
청구기호 : K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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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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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德壽宮印存』 (3-558)

3-558 A: 編者·年代未詳.
1帖(21절). 26.8×15.9㎝. 旋風葉. 壯紙. 印: 李王家圖書之章
3-558 B·C·D·E: 副本

조선 제26대왕 高宗(1852∼1919, 재위 1863∼1907)의 私用印을 찍은 인보이다. 모두 5본으로 A는 帖裝의 정본이고 B∼E는 線裝의 부본이다. B·D·E는 A의 마지막 면이 없고 C는 A의 제16면부터 탈락되었다. 고종의 초명은 載晃, 아명은 命福으로 뒤에 凞로 고쳤고, 자는
聖臨였다가 明天으로 고쳤으며, 호는 誠軒·珠淵이다.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慶運宮으로 거처를 옮겨 이후 십년간 머물렀고 1907년 황태자에게 양위한 뒤 大上皇이 되어서도 계속 머물렀다. 그때 宮號가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바뀌었는네 그런 연유로 본 인보의 題簽을 '덕수궁인존'이라 쓴 듯하다. 세첨한 사람을 알 수 없으나 장서각 3-573『阮堂印譜』의 제첨과 필치가 같다. 아래에 인문을 정리한다.

<표 8> 『德壽宮印存』의 印文
面 印文(刻法 印形)
1면: 致中和(양각다원인)
2면: 珠淵(양각방인)·剛健純粹(음각방인)
3면: 護封(음각방인) 觀文閣書畵記(양각장방인) 松雪詩境(음각방인) 沈浸膿郁含英咀華(양각葉形印)·宣詔體元(양각방인) 護封(양각방인)
4면: 珠淵之寶(양각방인)·日乾ク揚(음각방인) 護封(양각방인) 陶冶性靈(음각장방인) 欽文閣書畵記(양각장방인) 燕處超然(음각타원인) 爲華忙(음각방인)
5면: 至人之心如珠在淵(양각장방인) 勿牽事長,思(음각방인) 早起(양각원인) 珠淵之寶(양각방인) 誠軒(양각방인) 致中和(음각장방인)
7면: 萬物靜觀皆自得(양각타원인) 爲善最樂(음각장방인) 煮茶文杏館(음각방인) 書被催成墨未濃(음각방인) 日乾夕楊(음각방인) 自强不息(음각장방인)
8면: 茶煙輕<양0x69CE>(양각방인) 思無邪(양각장방인) 山不在高有仙則名…(음각방인) 爲善最樂(음각장방인) 護封(음각방인) 除事作詩人(음각방인)
9면: 秦篆漢畵樓(양각장방인) 筆精墨良(음각방인)·珠淵(양각방인) 貴相知心(양각방인) 江天一色(양각타원인) 萬幾갸段(음각방인)
10면: 誠軒(양각방인) 王堂天一(음각장방인) 人醉杏花(양각방인) 吉祥如意(양각방인) 吉祥如意(음각방인) 別庫(양각장방인)
11면: 紅豆昑館(양각방인) 馬嘶芳草(음각방인) 珠淵(양각방인) 海棠花下戱兒孫(양각타원인) 禮之在人如松柏之有心(양각방인) 怡園書畵(음각타원 인)
12면: 趾靜(양각장방인) 因寄所託(음각방인) 監撫餘暇(양각장방인) 萬幾之暇(음각방인) 松風吹解帶窓月照彈琴(양각방인) 臣凞印信(음각방인)
13면: 書字方能知姓名(음각방인) 在心爲志(음각부정형인) 貳極之章(음각방인) 海隣書屋(음각장방인) 護封(음각방인) 靜觀萬物(양각방인)
14면: 致中和(양각장방인) 人淡如菊(양각타원인) 一容聽琴(음각방인) 宸章(양각방인) 愼言語節飮食(음각장방인) 別庫(양각장방인)
15면: 如月之恒如日之升(음각방인) 淡泊明志寧靜致遠(음각타원인) 十州三島是吾鄕(양각방인)光風霽月(양각장방인) 其萬年子子孫孫永寶(양각방인) 吉祥如意(양각장방인)
16면: 炊經酌史(양각방인) 王樹臨風(음각방인) 萬物皆春(음각방인) 萬幾(양각방인) 長樂未央(양각장방인) 楊柳當年(양각방인)
17면: 珠淵(음각방인) 小神仙(음각다원인) 誠軒(음각방인) 越帝聰明赳央活(양각부정헝인) 楗戶箸書(음각방인) 紅豆山莊(음각방인)
18면: 萬機之暇(양각방인) 致中和(음각장방인) 梅花書屋(음각방인) 一編文字一鑛香(음각장방인) 珠淵之寶(양각방인) 克己復禮(양각방인)
19면: 震宮(양각방인) 一世癡狂(음각방인) 半潭秋水一房山(음각장방인) 所其無逸(양각장방인) 山不在高有仙則名(음각부정형인) 長毋相忘(양각원인)
20면: 萬機之暇(양각방인) 燕處超然(양각부정형인) 護封(음각방인) 一氣孔神於中夜存(주문부정형인) 梧桐庭院(양각방인) 觀物軒(음각방인)
21면: 臣凞印信(음각방인)·聖臨(양각방인) 護封(양각방인) 無逸(양각방인)

모두 116점의 인영이 있으며(「萬機之暇」 1종은 2번 찍힘) 종류는 名印·字印·號印·收藏鑑賞印·詞句印등으로 대별된다. 名印으로는「臣凞印信」(2종), 자인으로 「聖臨」, 호인으로 「誠軒」(3종)·「珠淵」(4종)·「珠淵之寶」(3종)가 있는데,「至人之心如珠在淵」이란 詞句印이 있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別號印으로는 「觀物軒」·「煮茶文香館」·「秦篆漢畵樓」·「紅豆吟館」·「海隣書屋」·「紅豆山莊」·「梅花書屋」·「梧桐庭院」 등이 있는네 이 중 「煮茶文香館」·「紅豆吟館」·「紅豆山莊」·「梅花書屋」 등은 憲宗의 사인을 모은 『寶蘇堂印存』에도 같은 인문이 있고 각법도 유사하여 양자간의 영향관계를 짐작케 한다. 또 「餘事作詩人」·「小神仙」·「ニ世癡狂」 등 일반에서도 널리 쓰인 인문도 있다.
별호인 가운데에는 덕수궁의 건물과 관계있는 예가 있다. 「致中和」는 『中庸』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에서 나온 것으로 中和殿과 관계있는 듯하다.「萬物靜觀皆自得」·「萬物靜觀」은 1897∼1900년의 경운궁 중건 때 세워진 靜觀軒과 관계있는 듯한데, 정관헌은 咸寧殿 북서쪽에 위치한 宴遊處로서 漱王軒(重明殿)·九成軒 및 1900∼1910년에 세워진 右造殿과 함께 서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또 收藏鑑賞印으로 「觀文閣書畵記」·「欽文閣書畵記」·「怡園書畵」 등이 있는데, 그 중 관문각은 1888년(고종 25)1월 짓기 시작하여 4월 상량문이 제술된 곳이고(『고종실록』 권25, 25년 1월 13일: 同 4월 24일) 흠문각은 경운궁 서문인 干成門 밖 漱王軒 북쪽에 위치했던 건물로 1904년의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 해 중건되었다. 怡園은 고종의 별호로 보인다. 이밖에 「別庫」가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詞句印으로는 經史句·鑑戒句를 새기거나 詩意나 翰墨趣向을 보이는 예가 많다. 경사구를 새긴 예로는 「致中干山(『中庸』)·「爲善最樂」(『後漢書』 「東干憲王傳」)·「日乾夕揚」(『周易』 卷1,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揚若層無咎")·「自强不息」(『周易』 卷1, "象曰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剛健純粹」(『周易』 卷1, 大哉 乾于 剛健正中純粹 精也)·「思無邪」(『詩經』)·「克己複禮」(『論語』) 등이 있다.
감계구를 새긴 예로는 「陶冶性靈」·「燕處超然」·「勿牽事長,思」·「早起」·「萬物靜觀皆自得」·「貴相知心」·「在心爲志」·「萬物靜觀」·「人淡如菊」·「愼言語節飮食」·「一氣孔神於中夜存」·「淡泊明志寧靜致遠」·「炊經酌史」등이 있다. 詩意나 文風을 보이는 예로는 唐 劉禹錫의 陋室銘을 새긴「山不在高有仙則名··孔子云何陋之有」·「山不在高有仙則名」을 비롯하여「松雪詩境」·「餘事作詩人」·「江天一色」·「人醉杏花」·「馬嘶芳草」· 「海棠花下截兒孫」·「松風吹解帶窓月照彈岑」·「一容聽琴」·「光風霽月 」· 「王樹臨風」 「半潭秋水一房山」 등이 있고, 翰墨趣向을 나타낸 예로는 「書被催成墨未濃」·「茶煙輕鶴」·「筆精墨良」·「書字方能知姓名」·「楗戶著書」·「一編文字一香」 등이 있다. 이밖에 「吉祥如意」·「萬物皆春」·「長樂未央」·「楊柳當年」·「長毋相忘」·「其萬年子子孫孫永寶」 등의 吉祥印과 封緘印으로 「頀封」 7종이 있다.
王位를 나다내는 예로는 「萬機之暇」을 비롯하여 「宣詔體元」·「監撫餘暇」·「宸章」·「十州三島是吾綿L·「如月之거恒之升」·「萬幾」·「越帝聰明赳央活」·「所其無逸」·「無逸」 등이 있다. 이와 아울러 「貳極之章」·「震宮」 등이 있는데 이들은 고종의 用印이 아닌 것으로 본다. 고종은 세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즉위했는네 貳極은 極(왕·황제)를 보좌하는 세자·황태자를 나타내며 震宮은 황태자의 柬宮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혹 고종의 아들로 1875년 세자로 책봉되고 1897년 황태자로 책봉된 純宗(1874∼1926 재위 1907∼1910)의 용인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이런 점에서 본 인보에 순종의 용인이 섞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이 인보에는 전대나 후대의 인보와 관계있는 예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海內存知己」·「海棠花下戱兒孫」은 『보소당인존』에 이미 같은 인문이 있고 「炊經酌史」는 『보소당인존』에 각풍이 똑같은 예가 있어 전대로부터 영향을 받았거나 모각한 것으로 보인다. 또 「海內存知己」·「小蓬萊主人」은 『완당인보』에도 같은 인문이 있고 「小蓬萊學人」·「小蓬萊」로 변화되어 나타나며 각풍도 유사하다. 서체는 篆書가 대부분이며 隷書도 소수 있다. 전서로는 小篆·王箸篆·古文異體·鐘鼎古文 등으로 다양한데 그 중 옥저전과 소전이 주종을 이룬다. 刻風 역시 다양하여 당시의 전각풍을 두루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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