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가 작동하지 않으면 사이트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체

  • 홈
  • slash
  • 소장자료검색
  • slash
  • 전체
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16-328
서명 / 저자 : 文祖翼皇帝上尊號寶文/ [禮曹(朝鮮) 製進原] 圖
단체저자 : 예조
발행사항 : [ ]: [ ], 憲宗朝寫
형태사항 : 帖裝(旋風葉), 1帖(2折); 27.6 × 18.5cm
일반주기 :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文祖의 寶印文圖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16 mm
소장본주기 : 印 : 藏書閣印
청구기호 : K3-560
 

태그

입력된 태그 정보가 없습니다. 태그추가

소장자료

서가에없는도서신청서가에없는도서신청 예약예약 희망도서신청희망도서신청 소장위치출력출력

부가정보

『文祖翼皇帝上尊號寶文』 (3-560)

1882년(고종19) 寫.
1帖(2절). 27.6 × 18.5㎝. 旋風葉. 箸紙.
印: 藏書閣印

이 寶文帖은 文祖翼皇帝의 金寶 印文을 필사한 것이다. 문조익황제는 조선 제23대왕 순조의 맏아들 孝明世子(1809∼1830)이다. 이름은 昊, 자는 德寅, 호는 敬軒이다. 어머니는 金祖淳의 따님 純元王后이다. 1812년 왕세자에 책봉되고 1819년 영돈녕부사 趙萬永의 따님(神貞王后)과 가례를 올렸다.1827년 부왕의 명으로 4년간 대리청정하다 22세의 나이로 창덕궁 熙政堂에서 사망했다. 시호는 孝明, 廟號는 文祜, 墓號는 延慶이다(『순조실록』 권31,30년 5월 무진). 아들 헌종(1827∼1849, 재위 1834∼1849)이 즉위한 다음날 선왕 순조의 諡號·廟號·陵號 등을 올리면서 부친 효명세자에게 敦文顯武仁懿孝明大王이란 시호와 翼宗이란 묘호 및 綏陵이란 능호를 追崇했다(『헌종실록』 권1, 즉위년 11월 경진). 이후 익종에게 여러 차례 존호가 추상되었는데 고종광무 3년(1899) 태조 이래의 열성에게 廟號와 帝號가 추상될 때 익종에게도 문조라는 묘호와 익황제라는 제호가 추상되었다(『고종실록』권39, 광무 3년 12월 7일; 同 12월 19일).
이 『文祖翼皇帝上尊號寶文』 帖은 익종에게 존호를 추상하면서 만든 것으로 인장 테두리(印郭, 印邊) 안에 寶文을 정자로 필사한 것이다. 현재 그 實印이 전하는데(龜杻 鍮製鍍金, 8행 각행 10∼11자) 보문은 익종에게 올려진 14차례의 추상존호 가운네 1883년(고종 20) 1월 5일 10번째 추상된 것이다. 대개 보문첩은 金寶제작과 봉안의식에 사용되며 종묘에 존호를 추상할 때 실제의 冊寶(王冊과 金寶)가 올려진다. 따라서 이 보문첩은 1882년 말경에 이미 작성되었을 것이다. 현재의 題簽은 문조익황제로 추존된 광무 3년 이후에 기존의 帖名이었을『翼宗大王上尊號寶文』을 改書한 것으로 본다. 아래는 익종의 10번째 추상존호와 관련된 실록기사이다.

① "引見時任大臣禮堂 敎曰 惟我翼考盛德至善 猶未盡顯揚 予小子恒切欲報꺼尤 而今天休滋至···翼宗大王追上尊號·大王大妃殿加-L尊號都監 合設擧行…以領議政供淳穆爲上號都監都提調 金有淵·李秉文·鄭基會爲提調. (『고종실록』 권19,19년 11월 13일)
② "賓廳啓 翼宗大王追上尊號望 基泰垂裕熙範昌禧 大王大妃加上尊號望 徽安" (『고종실록』 권19,19년 11월 18일)
③ "上號都監啓差 翼宗大王追上尊號王冊文製述官 金尙鉉 書寫官·鄭範朝 樂章文製述官 金炳始 金寶篆文書寫官 李裕元 大王大妃殿加上尊號王冊文製述官 閔台鎬 書寫'宮 趙寧夏 樂章文製述官 尹滋悳 王寶篆文書 寫官 金炳國" (『고종실록』 권19,19년 11월 21일)
④ "追上尊號金寶篆文書寫官 李裕元 疏遞 以尹宜善代之'' (『高宗實錄』권19, 19년 11월 27일)
⑤ "詣宗廟 上翼宗大王追上尊號冊寶 仍行省牲省器後 行春享大祭 王世子 隨詣行禮" (『고종실록』 권20, 20년 1월 5일)
⑥ "詣仁政殿 上大王大妃殿 加上尊號冊寶··掛佳翼宗 體元贊化 錫極定命…乃於本年正月六日 謹奉冊寶 追上翼宗大王尊號曰 基泰垂裕熙範昌禧··(『고종실록』 권20,20년 1월 10일)
⑦ "上號都監都提調以下 施賞有差 讀王冊官 徐璟淳 讀金寶官 鄭順朝都廳徐相祖 洪世燮 竝加資(『고종실록』 권20,20년 1월 13일)

③에서 金寶篆文書寫官으로 정해진 李裕元(1814-1888)이 ④에서 尹宜善으로 바뀐 연유는 미상이다. 혹 고종 19년(1882) 7월 17일 이유원이 조선국 전권대신으로서 전권부관 金弘集과 함께 日本國 辨理公使 하나부사(花房義質)와 제물포조약(朝日講禾山燦約)을 체결했던 것과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윤의선은 익종의 묘비명을 쓴 사람이다.
헌종이 후사없이 사망한 뒤 정조의 아우 恩彦君의 손자(철종)가 왕위를 이은 것은 대왕대비 純元王后(익종 母)의 명이었고, 또 철종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영조의 현손인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고종)이 익종의 대통을 이어 즉위한 것은 흥선군과 趙大妃(익종 妃)와의 묵계였다. 이런 연유로 철종·고종연간에 翼宗大王追上尊號都監이 여러 차례 설치되었다. 당시 제작된 어보(龜鉥 鍮製鍍金)를 통해 존호의 추상과정을 알 수 있는데 敦文顯武仁懿孝明大王"이라 최초 올려진 존호에 이후의 추상존호를 더해 갔다(『古宮印存』 109∼122쪽 참조). 익종대왕추상존호도감은 헌종·철종대의 대왕대비 純元王后(1789∼1857)의加上尊號都監과 자주 合設되었고 1857년(철종 9) 이후로는 대왕대비였던 翼宗妃 趙氏(1808∼1890)의 가상존호도감과 자주 합설되었다. 마지막 14번째 존호추상시에는 金寶와 함꼐 「文祖翼皇帝寶」란 王寶(龍紐 王製)도 제조되었다. 이때의 금보에서는 13번째 추상존호시까지 말미에 쓰던 大王之寶를 翼皇帝寶로 바꾸었다. 아래는 문조익황제의 金寶文 116자이다(숫자는 존호의 추상 순서).
體元寶化錫極定命2 聖憲英哲睿誠淵敬3 隆德純功篤休弘慶4 洪運盛烈宣光濬祥5 堯欽舜恭禹勤湯正6 啓天建統神動肅謨7 乾大坤厚廣業永祚8 莊義彰倫行健配寧9 基泰垂裕熙範昌禧10 立經亨道成馱昭章11 致中達禾山匿曆協紀12 剛粹景穆畯惠衍祉13 宏酬眞徽緩緖佑福14 敦文顯武仁懿孝明1 翼皇帝寶

부가정보

『文祖翼皇帝上尊號寶文』 (3-560)

1882년(고종19) 寫.
1帖(2절). 27.6 × 18.5㎝. 旋風葉. 箸紙.
印: 藏書閣印

이 寶文帖은 文祖翼皇帝의 金寶 印文을 필사한 것이다. 문조익황제는 조선 제23대왕 순조의 맏아들 孝明世子(1809∼1830)이다. 이름은 昊, 자는 德寅, 호는 敬軒이다. 어머니는 金祖淳의 따님 純元王后이다. 1812년 왕세자에 책봉되고 1819년 영돈녕부사 趙萬永의 따님(神貞王后)과 가례를 올렸다.1827년 부왕의 명으로 4년간 대리청정하다 22세의 나이로 창덕궁 熙政堂에서 사망했다. 시호는 孝明, 廟號는 文祜, 墓號는 延慶이다(『순조실록』 권31,30년 5월 무진). 아들 헌종(1827∼1849, 재위 1834∼1849)이 즉위한 다음날 선왕 순조의 諡號·廟號·陵號 등을 올리면서 부친 효명세자에게 敦文顯武仁懿孝明大王이란 시호와 翼宗이란 묘호 및 綏陵이란 능호를 追崇했다(『헌종실록』 권1, 즉위년 11월 경진). 이후 익종에게 여러 차례 존호가 추상되었는데 고종광무 3년(1899) 태조 이래의 열성에게 廟號와 帝號가 추상될 때 익종에게도 문조라는 묘호와 익황제라는 제호가 추상되었다(『고종실록』권39, 광무 3년 12월 7일; 同 12월 19일).
이 『文祖翼皇帝上尊號寶文』 帖은 익종에게 존호를 추상하면서 만든 것으로 인장 테두리(印郭, 印邊) 안에 寶文을 정자로 필사한 것이다. 현재 그 實印이 전하는데(龜杻 鍮製鍍金, 8행 각행 10∼11자) 보문은 익종에게 올려진 14차례의 추상존호 가운네 1883년(고종 20) 1월 5일 10번째 추상된 것이다. 대개 보문첩은 金寶제작과 봉안의식에 사용되며 종묘에 존호를 추상할 때 실제의 冊寶(王冊과 金寶)가 올려진다. 따라서 이 보문첩은 1882년 말경에 이미 작성되었을 것이다. 현재의 題簽은 문조익황제로 추존된 광무 3년 이후에 기존의 帖名이었을『翼宗大王上尊號寶文』을 改書한 것으로 본다. 아래는 익종의 10번째 추상존호와 관련된 실록기사이다.

① "引見時任大臣禮堂 敎曰 惟我翼考盛德至善 猶未盡顯揚 予小子恒切欲報꺼尤 而今天休滋至···翼宗大王追上尊號·大王大妃殿加-L尊號都監 合設擧行…以領議政供淳穆爲上號都監都提調 金有淵·李秉文·鄭基會爲提調. (『고종실록』 권19,19년 11월 13일)
② "賓廳啓 翼宗大王追上尊號望 基泰垂裕熙範昌禧 大王大妃加上尊號望 徽安" (『고종실록』 권19,19년 11월 18일)
③ "上號都監啓差 翼宗大王追上尊號王冊文製述官 金尙鉉 書寫官·鄭範朝 樂章文製述官 金炳始 金寶篆文書寫官 李裕元 大王大妃殿加上尊號王冊文製述官 閔台鎬 書寫'宮 趙寧夏 樂章文製述官 尹滋悳 王寶篆文書 寫官 金炳國" (『고종실록』 권19,19년 11월 21일)
④ "追上尊號金寶篆文書寫官 李裕元 疏遞 以尹宜善代之'' (『高宗實錄』권19, 19년 11월 27일)
⑤ "詣宗廟 上翼宗大王追上尊號冊寶 仍行省牲省器後 行春享大祭 王世子 隨詣行禮" (『고종실록』 권20, 20년 1월 5일)
⑥ "詣仁政殿 上大王大妃殿 加上尊號冊寶··掛佳翼宗 體元贊化 錫極定命…乃於本年正月六日 謹奉冊寶 追上翼宗大王尊號曰 基泰垂裕熙範昌禧··(『고종실록』 권20,20년 1월 10일)
⑦ "上號都監都提調以下 施賞有差 讀王冊官 徐璟淳 讀金寶官 鄭順朝都廳徐相祖 洪世燮 竝加資(『고종실록』 권20,20년 1월 13일)

③에서 金寶篆文書寫官으로 정해진 李裕元(1814-1888)이 ④에서 尹宜善으로 바뀐 연유는 미상이다. 혹 고종 19년(1882) 7월 17일 이유원이 조선국 전권대신으로서 전권부관 金弘集과 함께 日本國 辨理公使 하나부사(花房義質)와 제물포조약(朝日講禾山燦約)을 체결했던 것과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윤의선은 익종의 묘비명을 쓴 사람이다.
헌종이 후사없이 사망한 뒤 정조의 아우 恩彦君의 손자(철종)가 왕위를 이은 것은 대왕대비 純元王后(익종 母)의 명이었고, 또 철종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영조의 현손인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고종)이 익종의 대통을 이어 즉위한 것은 흥선군과 趙大妃(익종 妃)와의 묵계였다. 이런 연유로 철종·고종연간에 翼宗大王追上尊號都監이 여러 차례 설치되었다. 당시 제작된 어보(龜鉥 鍮製鍍金)를 통해 존호의 추상과정을 알 수 있는데 敦文顯武仁懿孝明大王"이라 최초 올려진 존호에 이후의 추상존호를 더해 갔다(『古宮印存』 109∼122쪽 참조). 익종대왕추상존호도감은 헌종·철종대의 대왕대비 純元王后(1789∼1857)의加上尊號都監과 자주 合設되었고 1857년(철종 9) 이후로는 대왕대비였던 翼宗妃 趙氏(1808∼1890)의 가상존호도감과 자주 합설되었다. 마지막 14번째 존호추상시에는 金寶와 함꼐 「文祖翼皇帝寶」란 王寶(龍紐 王製)도 제조되었다. 이때의 금보에서는 13번째 추상존호시까지 말미에 쓰던 大王之寶를 翼皇帝寶로 바꾸었다. 아래는 문조익황제의 金寶文 116자이다(숫자는 존호의 추상 순서).
體元寶化錫極定命2 聖憲英哲睿誠淵敬3 隆德純功篤休弘慶4 洪運盛烈宣光濬祥5 堯欽舜恭禹勤湯正6 啓天建統神動肅謨7 乾大坤厚廣業永祚8 莊義彰倫行健配寧9 基泰垂裕熙範昌禧10 立經亨道成馱昭章11 致中達禾山匿曆協紀12 剛粹景穆畯惠衍祉13 宏酬眞徽緩緖佑福14 敦文顯武仁懿孝明1 翼皇帝寶

서평

등록된 서평이 없습니다. 첫 서평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