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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900
서명 / 저자 : 寶印符信總數/ [編者未詳]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寫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 1冊(95張, 餘紙 4張): 圖, 四周雙邊, 半郭 28.2 × 21.1cm, 烏絲欄, 半葉 10行字數不定, 無魚尾; 36.2 × 25.6cm
일반주기 :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大韓帝國의 國璽 및 當時皇室의 寶印符信集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奉謨堂印
청구기호 : K3-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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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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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寶印符信總數』 (3-566·567)

3-566
編者未詳. 寫年未詳(1901년경). 1冊(95장, 餘紙4장).
四周雙邊. 半郭 28.2×21.1cm. 烏絲欄. 半葉 10행. 字數不定.
無魚尾·36.2 × 25.6㎝. 楮紙.
印: 奉謨堂印

3-567
編者未詳. 寫年未詳(1876년 이후). 1책(82장, 餘紙2장).
四周雙邊. 半郭 28.2×21.1cm. 烏絲欄. 半葉 10행. 字數不定.
無魚尾. 36.2 × 25.6㎝. 楮紙.
印: 奉謨堂印
장서각에는 『寶印符信總數』 2본이 전한다. 그중 3-567은 大韓帝國 반포 이전의 國璽를 비롯한 모든 보인과 부신을 정리한 것으로, 3-566은 大韓帝國 반포에 따라 국새를 비롯하여 개조된 보인을 더해 총정리한 것이다.
3-567은 암에 보인·부신의 總數를 적은 목록이 있고 그 뒤에 각각의 圖說이 있다. 순서는 國王에 이어 大王大妃殿·王大妃殿·中宮殿·世子宮·世子嬪宮·世孫宮·世孫嬪宮·順和宮의 아홉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설은 윗쪽에 보인·부신의 힝상을 線描하고 아래에 印影을 모사한 다음 인영 왼쪽에 印文과 재질을, 오른쪽에 각 부분의 치수와 봉안처를 기록했다. 국왕의 璽寶 뒤에 御押을 비롯하여 국왕의 부속기관에 서 쓰는 각종 부신의 도설이 있다.
大王大妃殿·王大妃殿에는 각각 王寶와 慈敎印·慈旨標信·問安牌·馬牌가 있다. 당시 대왕대비는 순조의 맏아들 孝明世子(1809∼1830, 翼宗)의 妃인 神貞王后 趙氏(1808∼1890)를 말한다. 1834년 헌종이 즉위하면서 효명세자를 翼宗으로 추존되면서 왕대비가 되었고 1857년(철종9) 순조비 純元王后가 사망하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왕대비는 憲宗繼妃 洪氏이며 중궁전은 高宗妃 閔妃이다. 각 殿·宮에 해당된 보인·부신의 종류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 3> 『寶印符信總數』에 실린 各殿·宮의 寶印 符信
전, 궁: 大王大妃殿
보인: 王寶 慈敎印
부신: 慈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王大妃殿
보인: 王寶 慈敎印
부신: 慈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中宮殿
보인: 金寶 王寶 內敎印
부신: 內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世子宮
보인: 옥인 睿押印 達字印 省字印
부신: 微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世子嬪宮
보인: 옥인 內令印
부신: 內令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世孫宮
보인: 옥인 睿押印 白字印 察字印
부신: 懿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世孫嬪宮
보인: 옥인 內音印
부신: 內音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順和宮
보인:
부신: 問安牌 馬牌

한편, 왕실여성과 달리 세자에게는 「王世子印」이란 王印과 睿押印이 있고 왕에게 사뢰거나 건의할 때 사용하는 達字印·省字印과 白字印·蔡字印이 있으며 세손에게도 해당부분은 있으나 공란으로 되어 있다.
3-567에 실린 대왕대비전 翼宗妃 趙氏의 王寶는 1876년의 12번째 尊號加上 매의 것이고(『고종실록』 권13, 13년 11월 11일) 왕대비전 洪氏와 중궁전 閔氏의 王寶는 1872년 각각 貞徽와 孝慈란 존호가상때의 것이다(『고종실록』 권9,9년 11월 24일). 또 뒤쪽에는 順和宮의 문안패·마패에 이어 말미 한 장에 淳妃宮의 문안패·마패가 있는데 그중 문안패가 1901년의 조성으로 되어 있다("光武五年辛丑九月 日奉 旨造人). 그런네 순비궁 부분은 앞쪽의 목록에도 없고 필치 또한 달라서 뒤에 첨가한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3-567은 1876년 이후 1901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3-566에는 순화궁에 이어 慶善宮의 「淳妃之丘山·「皇貴妃丘山이란 鍍金銀印과 문안패·마패("辛丑九月造人)와 英親王의 「英王之印」이란 銀製鍍金印이 실러 있다. 순화궁은 高宗后妃 嚴氏(?∼1911)로 1900년 8월 귀인에서 淳嬪으로 1901년 계비로 책립되자 순비궁이 경선궁으로 改號되었으며,1903년 10월 皇貴妃로 進封되었다. 영친왕의 책봉은 1900년 8월에 있었다. 따라서 3-566은 1901년경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兩本은 작성방식이 거의 같아 서로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는네, 作成處는 밝혀 있지 않으나 보인와 각종 부신을 관장하던 尙瑞院으로 추정된다. 아래에 『보인부신총수』 양본에서 寶印의 상이점을 정리한다.

<표 4> 『寶印符信總數』 3-567과 3-566의 비교
3-567
印文(재질 杻 서체 용도 봉안처) 비고
國王
朝鮮國王之印(銅鍍金 龜杻 上方篆 事大文書 奉謨堂)皇明欽賜大寶
朝鮮國王之印(天銀鍍金 龜杻 芝英篆 事大文書 大內 大寶(淸出)
朝鮮國王之印(天銀鍍金 龜鉗 滿洲字 奏 請 用 奉謨堂) 王妃寶(淸出)
朝鮮王寶(天銀鍍金 龜杻 上方篆 敎命·親上箋文 宙合樓)
大朝鮮國寶(天銀鍍金 龜杻 上方篆 倭國國書 大內)
大朝鮮國大君主寶(天銀鍍金 龜鉗 秦璽篆 용도·봉안처 未記)
大朝鮮大君主寶(天銀鍍金 龜鉗 秦璽篆 용도·봉안처 未記)
大君主寶(天銀鍍金 龜鉗 秦璽篆 용도·봉안처 未記)
大朝鮮國主上之寶(天銀鍍金 龜紐 上方篆 倭國通信文書 大內)
昭信之寶(天銀鍍金 龜紐 倭國通信文書 宙合樓)"以德之寶用之後勿用"
大朝鮮國寶(天銀鍍金 龜鉥 奏璽篆 용도·봉안처 未記)
濬明之寶(玉 龜紐王箸篆春坊敎旨 大內)
廣運之寶(天銀鍍金龜杻王箸篆용도·봉안처未記)
欽文之寶(天 銀鍍金龜紐秦箸篆 용도·봉안처未記)
命德之寶(天 銀鍍金龜紐秦箸篆 용도·봉안처未記)
垂訓之寶(天 銀鍍金龜紐秦箸篆 용도·봉안처未記 )
爲政以德(天銀鍍金直紐上方篆倭國通信文書宙合樓)"丙子爲始用大朝鮮國主上之寶後勿用"
奎章之寶(銅鍍金龜杻王箸篆御製鈐識·書籍頒賜大內)
施命之寶 (純金鍍金龜鉛-[方篆敎命·敎旨·敎書大內)
濬哲之寶 (王 龜紐王箸篆閣臣敎旨 大內)
諭書之寶 (銅鍍金 龜紐上方篆 諭書 大內)
枓擧之寶 (銅鍍金 龜紐上方篆 試券·紅白牌大內)
同文之寶 (天銀鍍金龜紐王箸篆용도·봉안처未記)
宣賜之記 (天銀 直鉗王箸篆書籍頒賜봉안처未記)
宣肌端輔 (天銀 直鉗王箸篆書籍頒賜봉안처未記)
武衛所 (天銀鍍金龜鉗上方篆武衛所御覽文書大內)
親軍營 (天銀鍍金龜鉗上方篆 용도·봉안처未記)
親軍營 (天銀 直紐 上方篆 용도·봉안처未記)
扈衛廳 (天銀 直紐 上方篆 용도·봉안처未記)
惠商公局(天銀 直紐 上方篆 용도·봉안처未記)

3-566
印文(재질 杻 서체 용도 봉안처) 비고
皇帝
朝鮮國王之印: 존속
朝鮮國王之印: 존속
朝鮮國王之印: 존속
朝鮮王寶: 존속
大朝鮮國寶: 존속
大朝鮮國大君主寶: 3-567과 同
大朝鮮大君主寶: 3-567과 同
大君主寶: 3-567과 同
大朝鮮國主上之寶: 3-567과 同
昭信之寶: 3-567과 同
大朝鮮國寶: 3-567과 同
濬明之寶: 3-567과 同
廣運之寶: 3-567과 同
欽文之寶: 3-567과 同
命德之寶: 3-567과 同
垂訓之寶: 3-567과 同
爲政以德: 3-567과 同
奎章之寶: 3-567과 同
施命之寶: 下繼
濬哲之寶: 존속
諭書之寶: 존속
枓擧之寶: 존속
同文之寶: 존속
宣賜之記: 존속
宣肌端輔: 존속
武衛所: 존속
親軍營: 존속
親軍營: 존속
扈衛廳: 존속
惠商公局: 존속

윗표에서 朝鮮王國과 大韓帝國의 寶印制度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국왕이 황제가 됨에 따라 王大妃는 皇太后로, 中宮은 皇后로, 王世子는 皇大子로, 王世子嬪은 皇大子妃로, 王世孫은 皇世孫으로, 王世孫嬪은 皇世孫妃로, 大君은 王으로 격상되어 각각의 보인을 新造하게 되었다. 그 중 과거 국왕들이 敎命·敎旨·敎書에 쓰던 「施命之寶」는 황태자에게 인계되었고 대신에 황제는 「勅命之寶」를 사용하게 되었다거나, 황제는 「大元帥寶」를 황태자는 「元帥之寶」를 신조하여 사용한 점 등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明·淸으로부터 받은 3顆의 國璽는 모두 龜鉗로서 조식이 화려한네 그 중 淸代의 것이 明代의 것보다 세밀하나 생동감은 좀 덜하다. 조선시대 보인의 뉴식은 국초부터 명대뉴식을 따르면서 대체로 말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고종 광무년간에 이르면 조선식 보인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한 듯 나름대로의 양식을 이루었다.
符信도 일부 변경되었는데 과거 各 營使의 傳令牌로서 패 앞면에 扈衛大將 扈衛副將 親軍統衛使. 親軍壯衛使·親軍摠禦使·親軍經理使의 직명을 새겨 4部를 만들었던 것을 대한제국시대에는 패 앞면에 武衛都統使를 새긴 1部만을 만들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璽寶에 이어 御押을 비롯하여 승정원에서 쓰는 啓字印·制勝印과, 武衛所·親軍營·扈衛廳 등의 條(현판), 烙印, 宜傳·標信·令票 등 국왕부속기관에서 쓰는 각종 부신의 도설이 있다. 그 중 御諱押과 御押大本·御押中本·御押小本의 형태·押影·재질·치수·용도·봉안처에 관한 도설은 어압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어압의 재질은 모두 방형의 象牙이다. 아래 어압의 치수·용도·봉안처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어압명: 御諱押
<표 5> 『寶印符信總쫬』의 御押 관계기록
어압명: 御押名
치수 (단위:寸): 高3.15 刻高0.15 方1.7
용도: 香祝封頭
봉안처:香室

어압명: 御押大本
치수 (단위:寸): 高4.8 刻高0.2 方2.8
용도: 事大文書
봉안처:大寶櫃內

어압명: 御押中本
치수 (단위:寸):高3.15 刻高0.25 方1.7
용도: 國書及勅諭文書
봉안처:大君主寶櫃內

어압명: 御押小本
치수 (단위:寸):高3.1刻高0.25 方1.25
용도: 條規交鈐等文書
봉안처:大朝鮮國大君主寶櫃內

다음의 烙印諸圖에는 낙인의 인영·인문·용도에 대한 도설이 있다. 이들 낙인은 국왕의 標信과 왕실여성의 令票를 비롯하여 問安牌·御弓·才剌쓩傳令牌·,馬牌·通符와 武衛所·親軍營·扈衛廳에서 쓰는 각종 牌와 匹馬·木物·銃刀·長帿弓 등에 찍히는 것들이다. 이어 烙印全圖에는 두가지 낙인의 예가 線描로 그려져 있고 보인·부신의 척도에 관한 도설이 있다. 부신에는 周尺을 쓰고 새보를 위시한 啓字印·制勝印·慈敎印·內敎印·達字印·省字印·內令印·白字印·蔡字印·內音印에는 禮器尺을 썼다. 주척 1寸은 약 2.0cm 예기척 1촌은 약 2.7㎝에 해당된다. 여기서 국왕을 위시한 왕실의 보인에는 예기척을 쓰고 왕실이 내린 부신에는 주척을 쓰고 있어 유교국가로서의 계급질서를 엿볼 수 있다. 이어 각종의 符信의 도설이 실려 있는네 바로 이들 부신의 앞면 우측에 낙인이 찍히게 된다. 부신과 낙인은 새보와 부신의 제조와 관리를 관장하는 尙瑞院에서 제작되었는데, 무위소 관원이 軍務事에 쓰던 令票는 무위소에서 직접 만들기도 했다. 각종 부신의 종류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標信(宣傳標信, 開門標信·閉門標信·紙標信), 令票, 問安牌, 四門符驗(與仁門符驗·惠化門符驗·崇禮門符驗·敦義門守驗), 摘奸牌, 牙牌(奎章閣牙牌·恃講院牙牌), 命召, 虎符, 各營使傳令牌, 捕將大將牌, 捕將傳令牌, 密符, 兵符(監司兵符·守令兵符), 木馬牌, 通符, 衛將巡更牌, 部將巡更牌, 監軍牌, 尙瑞院馬牌, 符信, 漢符(圓符·方符·曲符·直符)

이상에서와 같이 『寶印符信總數』 2본을 통해 朝鮮王國과 大韓帝國의 보인·부신제도의 변학를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보인과 부신은 그것이 찍힌 典籍과 古文書의 落印 연대와 작성연대 등을 살피는데 참고가 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제도를 통해 당시의 국가기밀과 치안유지를 위한 세부적인 제도와 장치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동일본으로 규장각에 1본(奎10291, 1책 91장 36.4×25.8㎝)이 전한다.

부가정보

寶印符信總數』 (3-566·567)

3-566
編者未詳. 寫年未詳(1901년경). 1冊(95장, 餘紙4장).
四周雙邊. 半郭 28.2×21.1cm. 烏絲欄. 半葉 10행. 字數不定.
無魚尾·36.2 × 25.6㎝. 楮紙.
印: 奉謨堂印

3-567
編者未詳. 寫年未詳(1876년 이후). 1책(82장, 餘紙2장).
四周雙邊. 半郭 28.2×21.1cm. 烏絲欄. 半葉 10행. 字數不定.
無魚尾. 36.2 × 25.6㎝. 楮紙.
印: 奉謨堂印
장서각에는 『寶印符信總數』 2본이 전한다. 그중 3-567은 大韓帝國 반포 이전의 國璽를 비롯한 모든 보인과 부신을 정리한 것으로, 3-566은 大韓帝國 반포에 따라 국새를 비롯하여 개조된 보인을 더해 총정리한 것이다.
3-567은 암에 보인·부신의 總數를 적은 목록이 있고 그 뒤에 각각의 圖說이 있다. 순서는 國王에 이어 大王大妃殿·王大妃殿·中宮殿·世子宮·世子嬪宮·世孫宮·世孫嬪宮·順和宮의 아홉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설은 윗쪽에 보인·부신의 힝상을 線描하고 아래에 印影을 모사한 다음 인영 왼쪽에 印文과 재질을, 오른쪽에 각 부분의 치수와 봉안처를 기록했다. 국왕의 璽寶 뒤에 御押을 비롯하여 국왕의 부속기관에 서 쓰는 각종 부신의 도설이 있다.
大王大妃殿·王大妃殿에는 각각 王寶와 慈敎印·慈旨標信·問安牌·馬牌가 있다. 당시 대왕대비는 순조의 맏아들 孝明世子(1809∼1830, 翼宗)의 妃인 神貞王后 趙氏(1808∼1890)를 말한다. 1834년 헌종이 즉위하면서 효명세자를 翼宗으로 추존되면서 왕대비가 되었고 1857년(철종9) 순조비 純元王后가 사망하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왕대비는 憲宗繼妃 洪氏이며 중궁전은 高宗妃 閔妃이다. 각 殿·宮에 해당된 보인·부신의 종류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 3> 『寶印符信總數』에 실린 各殿·宮의 寶印 符信
전, 궁: 大王大妃殿
보인: 王寶 慈敎印
부신: 慈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王大妃殿
보인: 王寶 慈敎印
부신: 慈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中宮殿
보인: 金寶 王寶 內敎印
부신: 內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世子宮
보인: 옥인 睿押印 達字印 省字印
부신: 微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世子嬪宮
보인: 옥인 內令印
부신: 內令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世孫宮
보인: 옥인 睿押印 白字印 察字印
부신: 懿旨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世孫嬪宮
보인: 옥인 內音印
부신: 內音標信 問安牌 馬牌

전, 궁: 順和宮
보인:
부신: 問安牌 馬牌

한편, 왕실여성과 달리 세자에게는 「王世子印」이란 王印과 睿押印이 있고 왕에게 사뢰거나 건의할 때 사용하는 達字印·省字印과 白字印·蔡字印이 있으며 세손에게도 해당부분은 있으나 공란으로 되어 있다.
3-567에 실린 대왕대비전 翼宗妃 趙氏의 王寶는 1876년의 12번째 尊號加上 매의 것이고(『고종실록』 권13, 13년 11월 11일) 왕대비전 洪氏와 중궁전 閔氏의 王寶는 1872년 각각 貞徽와 孝慈란 존호가상때의 것이다(『고종실록』 권9,9년 11월 24일). 또 뒤쪽에는 順和宮의 문안패·마패에 이어 말미 한 장에 淳妃宮의 문안패·마패가 있는데 그중 문안패가 1901년의 조성으로 되어 있다("光武五年辛丑九月 日奉 旨造人). 그런네 순비궁 부분은 앞쪽의 목록에도 없고 필치 또한 달라서 뒤에 첨가한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3-567은 1876년 이후 1901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3-566에는 순화궁에 이어 慶善宮의 「淳妃之丘山·「皇貴妃丘山이란 鍍金銀印과 문안패·마패("辛丑九月造人)와 英親王의 「英王之印」이란 銀製鍍金印이 실러 있다. 순화궁은 高宗后妃 嚴氏(?∼1911)로 1900년 8월 귀인에서 淳嬪으로 1901년 계비로 책립되자 순비궁이 경선궁으로 改號되었으며,1903년 10월 皇貴妃로 進封되었다. 영친왕의 책봉은 1900년 8월에 있었다. 따라서 3-566은 1901년경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兩本은 작성방식이 거의 같아 서로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는네, 作成處는 밝혀 있지 않으나 보인와 각종 부신을 관장하던 尙瑞院으로 추정된다. 아래에 『보인부신총수』 양본에서 寶印의 상이점을 정리한다.

<표 4> 『寶印符信總數』 3-567과 3-566의 비교
3-567
印文(재질 杻 서체 용도 봉안처) 비고
國王
朝鮮國王之印(銅鍍金 龜杻 上方篆 事大文書 奉謨堂)皇明欽賜大寶
朝鮮國王之印(天銀鍍金 龜杻 芝英篆 事大文書 大內 大寶(淸出)
朝鮮國王之印(天銀鍍金 龜鉗 滿洲字 奏 請 用 奉謨堂) 王妃寶(淸出)
朝鮮王寶(天銀鍍金 龜杻 上方篆 敎命·親上箋文 宙合樓)
大朝鮮國寶(天銀鍍金 龜杻 上方篆 倭國國書 大內)
大朝鮮國大君主寶(天銀鍍金 龜鉗 秦璽篆 용도·봉안처 未記)
大朝鮮大君主寶(天銀鍍金 龜鉗 秦璽篆 용도·봉안처 未記)
大君主寶(天銀鍍金 龜鉗 秦璽篆 용도·봉안처 未記)
大朝鮮國主上之寶(天銀鍍金 龜紐 上方篆 倭國通信文書 大內)
昭信之寶(天銀鍍金 龜紐 倭國通信文書 宙合樓)"以德之寶用之後勿用"
大朝鮮國寶(天銀鍍金 龜鉥 奏璽篆 용도·봉안처 未記)
濬明之寶(玉 龜紐王箸篆春坊敎旨 大內)
廣運之寶(天銀鍍金龜杻王箸篆용도·봉안처未記)
欽文之寶(天 銀鍍金龜紐秦箸篆 용도·봉안처未記)
命德之寶(天 銀鍍金龜紐秦箸篆 용도·봉안처未記)
垂訓之寶(天 銀鍍金龜紐秦箸篆 용도·봉안처未記 )
爲政以德(天銀鍍金直紐上方篆倭國通信文書宙合樓)"丙子爲始用大朝鮮國主上之寶後勿用"
奎章之寶(銅鍍金龜杻王箸篆御製鈐識·書籍頒賜大內)
施命之寶 (純金鍍金龜鉛-[方篆敎命·敎旨·敎書大內)
濬哲之寶 (王 龜紐王箸篆閣臣敎旨 大內)
諭書之寶 (銅鍍金 龜紐上方篆 諭書 大內)
枓擧之寶 (銅鍍金 龜紐上方篆 試券·紅白牌大內)
同文之寶 (天銀鍍金龜紐王箸篆용도·봉안처未記)
宣賜之記 (天銀 直鉗王箸篆書籍頒賜봉안처未記)
宣肌端輔 (天銀 直鉗王箸篆書籍頒賜봉안처未記)
武衛所 (天銀鍍金龜鉗上方篆武衛所御覽文書大內)
親軍營 (天銀鍍金龜鉗上方篆 용도·봉안처未記)
親軍營 (天銀 直紐 上方篆 용도·봉안처未記)
扈衛廳 (天銀 直紐 上方篆 용도·봉안처未記)
惠商公局(天銀 直紐 上方篆 용도·봉안처未記)

3-566
印文(재질 杻 서체 용도 봉안처) 비고
皇帝
朝鮮國王之印: 존속
朝鮮國王之印: 존속
朝鮮國王之印: 존속
朝鮮王寶: 존속
大朝鮮國寶: 존속
大朝鮮國大君主寶: 3-567과 同
大朝鮮大君主寶: 3-567과 同
大君主寶: 3-567과 同
大朝鮮國主上之寶: 3-567과 同
昭信之寶: 3-567과 同
大朝鮮國寶: 3-567과 同
濬明之寶: 3-567과 同
廣運之寶: 3-567과 同
欽文之寶: 3-567과 同
命德之寶: 3-567과 同
垂訓之寶: 3-567과 同
爲政以德: 3-567과 同
奎章之寶: 3-567과 同
施命之寶: 下繼
濬哲之寶: 존속
諭書之寶: 존속
枓擧之寶: 존속
同文之寶: 존속
宣賜之記: 존속
宣肌端輔: 존속
武衛所: 존속
親軍營: 존속
親軍營: 존속
扈衛廳: 존속
惠商公局: 존속

윗표에서 朝鮮王國과 大韓帝國의 寶印制度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국왕이 황제가 됨에 따라 王大妃는 皇太后로, 中宮은 皇后로, 王世子는 皇大子로, 王世子嬪은 皇大子妃로, 王世孫은 皇世孫으로, 王世孫嬪은 皇世孫妃로, 大君은 王으로 격상되어 각각의 보인을 新造하게 되었다. 그 중 과거 국왕들이 敎命·敎旨·敎書에 쓰던 「施命之寶」는 황태자에게 인계되었고 대신에 황제는 「勅命之寶」를 사용하게 되었다거나, 황제는 「大元帥寶」를 황태자는 「元帥之寶」를 신조하여 사용한 점 등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明·淸으로부터 받은 3顆의 國璽는 모두 龜鉗로서 조식이 화려한네 그 중 淸代의 것이 明代의 것보다 세밀하나 생동감은 좀 덜하다. 조선시대 보인의 뉴식은 국초부터 명대뉴식을 따르면서 대체로 말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고종 광무년간에 이르면 조선식 보인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한 듯 나름대로의 양식을 이루었다.
符信도 일부 변경되었는데 과거 各 營使의 傳令牌로서 패 앞면에 扈衛大將 扈衛副將 親軍統衛使. 親軍壯衛使·親軍摠禦使·親軍經理使의 직명을 새겨 4部를 만들었던 것을 대한제국시대에는 패 앞면에 武衛都統使를 새긴 1部만을 만들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璽寶에 이어 御押을 비롯하여 승정원에서 쓰는 啓字印·制勝印과, 武衛所·親軍營·扈衛廳 등의 條(현판), 烙印, 宜傳·標信·令票 등 국왕부속기관에서 쓰는 각종 부신의 도설이 있다. 그 중 御諱押과 御押大本·御押中本·御押小本의 형태·押影·재질·치수·용도·봉안처에 관한 도설은 어압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어압의 재질은 모두 방형의 象牙이다. 아래 어압의 치수·용도·봉안처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어압명: 御諱押
<표 5> 『寶印符信總쫬』의 御押 관계기록
어압명: 御押名
치수 (단위:寸): 高3.15 刻高0.15 方1.7
용도: 香祝封頭
봉안처:香室

어압명: 御押大本
치수 (단위:寸): 高4.8 刻高0.2 方2.8
용도: 事大文書
봉안처:大寶櫃內

어압명: 御押中本
치수 (단위:寸):高3.15 刻高0.25 方1.7
용도: 國書及勅諭文書
봉안처:大君主寶櫃內

어압명: 御押小本
치수 (단위:寸):高3.1刻高0.25 方1.25
용도: 條規交鈐等文書
봉안처:大朝鮮國大君主寶櫃內

다음의 烙印諸圖에는 낙인의 인영·인문·용도에 대한 도설이 있다. 이들 낙인은 국왕의 標信과 왕실여성의 令票를 비롯하여 問安牌·御弓·才剌쓩傳令牌·,馬牌·通符와 武衛所·親軍營·扈衛廳에서 쓰는 각종 牌와 匹馬·木物·銃刀·長帿弓 등에 찍히는 것들이다. 이어 烙印全圖에는 두가지 낙인의 예가 線描로 그려져 있고 보인·부신의 척도에 관한 도설이 있다. 부신에는 周尺을 쓰고 새보를 위시한 啓字印·制勝印·慈敎印·內敎印·達字印·省字印·內令印·白字印·蔡字印·內音印에는 禮器尺을 썼다. 주척 1寸은 약 2.0cm 예기척 1촌은 약 2.7㎝에 해당된다. 여기서 국왕을 위시한 왕실의 보인에는 예기척을 쓰고 왕실이 내린 부신에는 주척을 쓰고 있어 유교국가로서의 계급질서를 엿볼 수 있다. 이어 각종의 符信의 도설이 실려 있는네 바로 이들 부신의 앞면 우측에 낙인이 찍히게 된다. 부신과 낙인은 새보와 부신의 제조와 관리를 관장하는 尙瑞院에서 제작되었는데, 무위소 관원이 軍務事에 쓰던 令票는 무위소에서 직접 만들기도 했다. 각종 부신의 종류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標信(宣傳標信, 開門標信·閉門標信·紙標信), 令票, 問安牌, 四門符驗(與仁門符驗·惠化門符驗·崇禮門符驗·敦義門守驗), 摘奸牌, 牙牌(奎章閣牙牌·恃講院牙牌), 命召, 虎符, 各營使傳令牌, 捕將大將牌, 捕將傳令牌, 密符, 兵符(監司兵符·守令兵符), 木馬牌, 通符, 衛將巡更牌, 部將巡更牌, 監軍牌, 尙瑞院馬牌, 符信, 漢符(圓符·方符·曲符·直符)

이상에서와 같이 『寶印符信總數』 2본을 통해 朝鮮王國과 大韓帝國의 보인·부신제도의 변학를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보인과 부신은 그것이 찍힌 典籍과 古文書의 落印 연대와 작성연대 등을 살피는데 참고가 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제도를 통해 당시의 국가기밀과 치안유지를 위한 세부적인 제도와 장치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동일본으로 규장각에 1본(奎10291, 1책 91장 36.4×25.8㎝)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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