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가 작동하지 않으면 사이트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체

  • 홈
  • slash
  • 소장자료검색
  • slash
  • 전체
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73
서명 / 저자 : 院堂印譜/ [編者未詳]
개인저자 : 김정희
판사항 : 影印版
발행사항 : [ ]: [ ], [刊年末詳]
형태사항 : 1冊(10折): 旋風葉; 25.6 × 15.9cm
해제사항 : 金正喜使用印章百種의 印譜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3-573
 

태그

입력된 태그 정보가 없습니다. 태그추가

소장자료

서가에없는도서신청서가에없는도서신청 예약예약 희망도서신청희망도서신청 소장위치출력출력

부가정보

완당인보 (3-573)

編者·年代未詳.
1帖(10절). 25.6 ×15.9cm. 旋風葉. 印: 李王家圖書之章

이 인보첩은 秋史 金正喜(1786∼1856)의 印影을 모아 만든 것이다. 작성년대는 미상이다. 대부분 추사의 用印으로 보이나 일부 타인의 인장을 모각한 예도 보인다. 인문을 내용별로 분류하면 아래와 같다.

姓名印: 金正喜印(8종), 正喜(4종), 正喜私印, 正喜印
字印: 元春
號印: 秋史(8종), 金氏秋史, 秋史墨緣, 禮堂(2종), 阮堂(4종), 阮堂印(2종), 金正喜阮堂印, 小蓬萊學人, 小蓬萊,髥, 丙午老人, 梅花舊主, 東夷之人(2종), 詩%, 佛奴, 天寶齋, 覃齋, 鼎金齋, 願豊齋印, 雪獵秋月之室, 長壽神淸之居, 雪花居
審定印: 秋史審正(2종), 禮堂寫定(3종), 審定金石文字, 東卿秋史同審定印(2번), 始濟審定金石文字, 阮堂考正金石文字, 秋史嘗觀, 正喜校讀
收藏印: 正喜讀本, 秋史珍藏, 秋史金石, 阮堂讀本, 阮堂隷古, 楗史手拓
詞句印:大閒天上, 方外逍遙, 遺閒, 遊於藝, 芳草年年, 停雪, 幾甘多得到, 一片心, 柳汀蓮浦, 靜禪, 楊闇, 北關夜市, 放情丘壑, 寶事求是, 腸帥土欲(2번), 楊柳當年, 甲天下, 宜子孫, 和吉祥
기타: 今文之家, 朝鮮國書畵家, 釋巨然畵氣槪雄遠墨暈神寄, 舊史氏, 海內存知己, 金石交,誤, 軍假司馬, 台同
圖印: (龍), (見喉, 馬驚)
淸人印: 翁方綱, 封丘令印

1면에 5∼6점씩 모두 18면에 101점이 실려 있는네 그중 「剌卽秋史同審定印」·「腸斷壯欲」이 두번씩 찍혀 있다. 앞서 『보소당인존』에서 언급했듯이 이 인보에는 『보소당인존』에 실린 것과 각법이 똑같거나 인문이 같은 예가 다수 있어 양자간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覃齋」·「7每內存知己」·「釋巨然畵氣槪雄遠墨暈神寄」·「甲天下」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剌卽秋史同審定印」·「阮堂考正金石文字」는 추사제자로 전각에 뒤어났던 小山 吳圭一(海州人)의 「小山貞山司審定印」·「小山蕃定金石文字」과 장법, 각법이 흡사하다(吳世昌 編,『槿域印藪』, 國會圖書館, 1968, 97-99쪽 참조). 이밖에 「翁方綱」·「封丘令印」은 淸人의 인장을 모각한 것으로 보인다. 翁方綱(1733∼1818)은 淸朝學界의 주요인물로 추사의 아버지 金魯敬이 燕行에 子弟軍官으로 동행하여 그를 만나 師弟之間의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號 覃溪, 晩號 蘇齋). 封丘令에 대해서는 미상이나 흑 嘉定(今 上海) 출신으로 康熙年間에 刻竹으로 유명했던 封錫爵·封錫祿·封錫璋 삼형제의 후손이 아닌가 추측된다.
추사인장에 관한 자료로 葦滄 吳世昌의 『槿域印藪』에 실린 64점(국회도서관소장, 영인본 1968년 간행), 澗松 全鎣弼이 수집한 秋史書畵의 落款印影 84점(『澗松文華』 3 참조), 국립중앙도서관소장의 『阮堂先生印譜』에 실린 16점(古433-11,16×8.5cm 12장) 및 충남 예산의 추사후손 金石煥씨가 소장한 實印 31顆(보물547호) 등이 있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에서 본 『완당인보』를 근간으로 그간 알려진 추사인영 222점을 모아 『阮堂印譜』(아카네미書店)를 간행했다. 그 뒤 1988년에는 제주도 유배시절의 추사제자 朴蕙百이 추사실인 183점을 찍은 『阮堂印譜』(25.7×16.2cm 88면, 吳世昌序, 孔昌鎬소장)가 알려졌는데, 그 중 53점이 새로운 것으로 밝혀져 추사인장의 면모가 확인되고 추사작품의 진위관명에 귀한 자료가 되었다.(예술의전당 編,『秋史金正喜名作展』, 1992, 144∼178쪽에 1943년의 吳世昌 序文과 206점의 인영 참조). 근대의 인보처럼 인장 측면에 새긴 傍刻(惻款)을 탁본하여 인영과 같이 싣는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때문에 刻者를 알 수 없으며 自刻의 경우에도 대부분 방각하지 않았으며, 또 명인들의 인장을 모각하여 사용하는 예도 적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위 자료들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거처야 추사 用印에 대한 기초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서평

등록된 서평이 없습니다. 첫 서평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