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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54
서명 / 저자 : 各家雜記/ [編者未詳]
개인저자 : 조문명, 1680 - 1732
장옥산
고재봉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寫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1冊(57張): 無郭, 無絲欄, 半葉 12行字數不定, 無版心; 31.6 × 19.5cm
일반주기 : 序 : 崇禎紀元後一百六十年壬子(1732)仲夏豊壤後學趙文命(1680 - 1732)謹識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成侍中孝行錄· 高齋峰遺事· 張玉山斐然外抄其他雜記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藏書閣印
청구기호 : K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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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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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各家雜記(3 -607 )

[編者未詳]. 寫本. [寫年未詳].
1冊(57張). 無郭. 無絲欄.
半葉, 12行 字數不定. 無版心.
31.6 × 19.5cm. 線裝.
序: 崇禎紀元後一百六十年壬子(1732)
仲夏豊壤後學趙文命(1680∼1732) 謹識.
印: 藏書閣印
紙質:楮紙

遺事와 刑犬 등을 抄錄한 책. 수록내용은 趙文命이 지은 成侍中孝行錄序를 비롯하여 成侍中孝行錄事實·七先生行狀·霽峯遺事· 重峯狀啓· 斐然外抄· 六枝大師傳· 崔陟傳· 祭田橫文·斐然箱解·朞三百解·題李氏六世稿尾·記雜三事·脚訴 등이다.
<成侍中孝行錄>은 成煥이 그의 조상 松國의 효행사실을 적은 것이며, 이 효행사실 중에서 기이한 사실을 적출하여 千里負屍· 靑山遇雪· 停屍院廊· 虎跡繞屍· 尋跡麥山· 雪消容壙·占穴安悟 등으로 成句한 다음 이에 대한 讚과 詩를 붙이고 있다.
<七先生行狀>은 梅竹堂 成三問·文斗 成聃壽·聽松 成守琛·大谷成運·東洲 成悌元·板谷 成允諧·牛溪 成渾 등 成松國의 자손 중에서 문명이 뛰어난 사람들의 行狀을 초록한 것이다.
이어 <侍中先生先系子孫錄七先生代數次序>라는 題下에 다시 成松國의 先系 및 子孫錄과 成三問 등 7人의 代數次序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大提學 李德壽가 지은 八先生陞享祝文과 八先生春秋享祝文을 싣고 있는데, 여기에서 八先生'이란 이상에서 보인 七先生에 成松國을 포함한 것이다. 끝으로 이들 7人의 享祀書院인 勿溪書院上樑文이그 후손인 成換의 손에서 지어졌다.
<霽峯遺事>는 年譜를 抄한 것이며, 重峯 趙憲의 狀啓와 『月汀集』·『白沙集』·『牛山集』·『朝鮮錄』 중에서 뽑은 趙憲의 行蹟 등을 기록하고 있다.
<斐然外抄>는 玉山 張之琬이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張之琬은 조선말기의 학자로서 李鶴棲의 문인이며, 洪直弼에게 성리학을 배운 다음, 良書를 찾아 만주와 요동지방을 두루 다니고 명승지를 만날 때마다 시를 지어 문장력을 과시한 사람이다. <斐然外抄>는 <浿江雜詩>와 <寄人擬潘安仁離體> 등 문장이 화려한 것들과 元氏의 딸이 지었다는 <繡香閣詩>를 차례에 적고 張之琬이 손수 지은 <寶盆記>를 그 뒤에 싣고 있다.
<奎章閣全韻刊誤>는 內閣大板의 잘못된 것을 밝힌 것인데, 40여 군데의 많은 부분이 지적되고 있다.
<與金紫厓書>는 天主敎를 邪敎로 단정하고 그 학설의 모순점을 조목조목 卞斥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데 특히 그 중에서 주목을 끈 것은 東國에는 원래 邪敎가 없었는데 許筠이 중국에 가서 仇羅波國의 伎利但偈 12章을 가지고 왔다...許筠이 연경에 가서 洋書目錄을 가져왔으나 무슨 책인지 몰랐었는데...乾隆末에 書狀官으로 연경에 간 자가 許筠이 가지고 온 目錄으로써 邪書 몇 種을 구해 온 뒤로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무리들이 서로 어울려서 어리석은 백성을 선동하기 시작하고 洋人 周文謨가 우리나라에 잠입하였다...士大夫 자제들이 그속에 많이 끼어들고 官籍을 가진 자들도 邪敎에 沈溺하여 淫穢를 恣行하였으므로 조정에서 강력하게 금하지 못하였다. 嘉慶初에 처음으로그 黨與를 譏捕하게 하자 黃嗣永이란 자가 옥중에서 비단 쭉에 글을 써서 洋夷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布敎할 수 있도록 위협해달라고 했다가 그 일이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졌다...'는 등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동기와 천주교의 교리 등을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다.
<上約山金尙書論三政書>는 조선조 말기의 田·軍·還 三政에 대한폐단을 바로잡을 것을 건의한 내용이다. 金尙書는 金炳德(1825∼1892)으로 본관은 安東이며 영의정 興根의 아들이다.
<六枝大師傳>은 安東金氏 성을 가진 僧侶에 대한 傳紀이고,<崔陟傳> 역시 崔陟 일대기를 문학적으로 구성한 것이다.<祭田橫文>은 중국 齊의 義士였던 田橫에 대한 제문이고,<斐然箱解>는 張之琬이 문장력을 과시한 작품이며,<朞三百解>는 張之琬이 『尙書』에 있는 朞三百圖數를 해석한 것이다.
<題李氏六世稿尾>는 平昌李氏의 3世에 걸친 文稿의 跋文이고, <記雜三事>는 무당의 신풀이 등 세가지의 잡스런 일을 적은 것이다. 끝으로<脚訴>는 東床禮라는 명목으로 신랑을 다룰 때에 의례 신랑의 다리를 때리게 되는데, 이때에 맞은 다리가 神明府에 달려가서 心君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을 해학적으로 적은 것이다.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고 金紫厓에게 준 편지에서는 天主敎의 東來經緯 등을 파악할 수 있으며, 金尙書에게 보낸 편지는 조선조 말기의 三政策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斐然箱解>와 <脚訴> 같은 작품은 해학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 하겠다.

부가정보

各家雜記(3 -607 )

[編者未詳]. 寫本. [寫年未詳].
1冊(57張). 無郭. 無絲欄.
半葉, 12行 字數不定. 無版心.
31.6 × 19.5cm. 線裝.
序: 崇禎紀元後一百六十年壬子(1732)
仲夏豊壤後學趙文命(1680∼1732) 謹識.
印: 藏書閣印
紙質:楮紙

遺事와 刑犬 등을 抄錄한 책. 수록내용은 趙文命이 지은 成侍中孝行錄序를 비롯하여 成侍中孝行錄事實·七先生行狀·霽峯遺事· 重峯狀啓· 斐然外抄· 六枝大師傳· 崔陟傳· 祭田橫文·斐然箱解·朞三百解·題李氏六世稿尾·記雜三事·脚訴 등이다.
<成侍中孝行錄>은 成煥이 그의 조상 松國의 효행사실을 적은 것이며, 이 효행사실 중에서 기이한 사실을 적출하여 千里負屍· 靑山遇雪· 停屍院廊· 虎跡繞屍· 尋跡麥山· 雪消容壙·占穴安悟 등으로 成句한 다음 이에 대한 讚과 詩를 붙이고 있다.
<七先生行狀>은 梅竹堂 成三問·文斗 成聃壽·聽松 成守琛·大谷成運·東洲 成悌元·板谷 成允諧·牛溪 成渾 등 成松國의 자손 중에서 문명이 뛰어난 사람들의 行狀을 초록한 것이다.
이어 <侍中先生先系子孫錄七先生代數次序>라는 題下에 다시 成松國의 先系 및 子孫錄과 成三問 등 7人의 代數次序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大提學 李德壽가 지은 八先生陞享祝文과 八先生春秋享祝文을 싣고 있는데, 여기에서 八先生'이란 이상에서 보인 七先生에 成松國을 포함한 것이다. 끝으로 이들 7人의 享祀書院인 勿溪書院上樑文이그 후손인 成換의 손에서 지어졌다.
<霽峯遺事>는 年譜를 抄한 것이며, 重峯 趙憲의 狀啓와 『月汀集』·『白沙集』·『牛山集』·『朝鮮錄』 중에서 뽑은 趙憲의 行蹟 등을 기록하고 있다.
<斐然外抄>는 玉山 張之琬이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張之琬은 조선말기의 학자로서 李鶴棲의 문인이며, 洪直弼에게 성리학을 배운 다음, 良書를 찾아 만주와 요동지방을 두루 다니고 명승지를 만날 때마다 시를 지어 문장력을 과시한 사람이다. <斐然外抄>는 <浿江雜詩>와 <寄人擬潘安仁離體> 등 문장이 화려한 것들과 元氏의 딸이 지었다는 <繡香閣詩>를 차례에 적고 張之琬이 손수 지은 <寶盆記>를 그 뒤에 싣고 있다.
<奎章閣全韻刊誤>는 內閣大板의 잘못된 것을 밝힌 것인데, 40여 군데의 많은 부분이 지적되고 있다.
<與金紫厓書>는 天主敎를 邪敎로 단정하고 그 학설의 모순점을 조목조목 卞斥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데 특히 그 중에서 주목을 끈 것은 東國에는 원래 邪敎가 없었는데 許筠이 중국에 가서 仇羅波國의 伎利但偈 12章을 가지고 왔다...許筠이 연경에 가서 洋書目錄을 가져왔으나 무슨 책인지 몰랐었는데...乾隆末에 書狀官으로 연경에 간 자가 許筠이 가지고 온 目錄으로써 邪書 몇 種을 구해 온 뒤로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무리들이 서로 어울려서 어리석은 백성을 선동하기 시작하고 洋人 周文謨가 우리나라에 잠입하였다...士大夫 자제들이 그속에 많이 끼어들고 官籍을 가진 자들도 邪敎에 沈溺하여 淫穢를 恣行하였으므로 조정에서 강력하게 금하지 못하였다. 嘉慶初에 처음으로그 黨與를 譏捕하게 하자 黃嗣永이란 자가 옥중에서 비단 쭉에 글을 써서 洋夷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布敎할 수 있도록 위협해달라고 했다가 그 일이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졌다...'는 등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동기와 천주교의 교리 등을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다.
<上約山金尙書論三政書>는 조선조 말기의 田·軍·還 三政에 대한폐단을 바로잡을 것을 건의한 내용이다. 金尙書는 金炳德(1825∼1892)으로 본관은 安東이며 영의정 興根의 아들이다.
<六枝大師傳>은 安東金氏 성을 가진 僧侶에 대한 傳紀이고,<崔陟傳> 역시 崔陟 일대기를 문학적으로 구성한 것이다.<祭田橫文>은 중국 齊의 義士였던 田橫에 대한 제문이고,<斐然箱解>는 張之琬이 문장력을 과시한 작품이며,<朞三百解>는 張之琬이 『尙書』에 있는 朞三百圖數를 해석한 것이다.
<題李氏六世稿尾>는 平昌李氏의 3世에 걸친 文稿의 跋文이고, <記雜三事>는 무당의 신풀이 등 세가지의 잡스런 일을 적은 것이다. 끝으로<脚訴>는 東床禮라는 명목으로 신랑을 다룰 때에 의례 신랑의 다리를 때리게 되는데, 이때에 맞은 다리가 神明府에 달려가서 心君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을 해학적으로 적은 것이다.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고 金紫厓에게 준 편지에서는 天主敎의 東來經緯 등을 파악할 수 있으며, 金尙書에게 보낸 편지는 조선조 말기의 三政策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斐然箱解>와 <脚訴> 같은 작품은 해학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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