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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253
서명 / 저자 : 老耘三官通/ 尹東晳(朝鮮) 著
개인저자 : 윤동석 (조선), 1722-1789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寫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13卷 5冊: 四周雙邊, 半郭 20.3 × 13.5cm, 烏絲欄, 半葉 10行 20字, 註雙行, 上二葉花紋魚尾; 29.5 × 19.3cm
일반주기 : 서제: 表題 : 三官通
卷末 : 耘翁尹與叔名東晳又號老耘 紙質 : 楮紙
내용주기 : 冊1, 易解說, 肅言 .-- 冊2, 家傅 .-- 冊3, 輯稿 .-- 冊4, 履考生平曆 .-- 冊5, 履考生平曆本末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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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老耘三官通解題
柳正基
『三官通』 解題
目次
1. 題名의 問題
2. 周易의 解說
3. 爾言=語錄
4. 家傳―敎訓
5. 輯稿―雜文
6. 著者의 生涯
『吾憂編』 解題
目次
1. 本書의 題名
2. 本書의 內容
3. 本書의 評價
『老耘三官通』 解題
1. 題名의 문제
本書는 老耘尹東晳(석)의 文集이다. 그러나 一般的으로 文集이라면 詩 書 序 記 跋 雜著 祭文 祝文 行狀 墓誌銘 墓碑文등으로 一定한 體制가 있는데. 本書는 易說語錄 家訓 文稿 年譜등의 內容으로 되었으니 적으나마 하나의 全集이다. 그래서 表題는 『老耘三官通』이라고 부쳤으니 이것이 果然무슨 意味일가. 序文도 跋文도없으니 이 題名의 意義는 알수가없는 것이다.「老耘」은 勿論著者의 號지마는「三官通」이란 題名이 本書의 內容에서는 發見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著者인 老耘의 特徵을 表示한 것이 아닐까· 老耘은 學文과 書藝와 職位의 三者를 通했으니 그 외 記錄이라는 것을 뜻한 것이나 아닐까. 古來로 「三官」이란 用語는 十餘가지 뜻으로 쓰여왔으나 本書의 意味와 相通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 實로 難解한 題名이다. 이 題名을 보고 이 內容을 알者가 누구일가.
옛적에 漢文學者가 지은 書名은 거의 다 이러했으니 例하면 科文에 答案集은 『玉通』이라 하는 先輩의 人名錄은 『玉纂』이라하며 官廳에 前官名錄은 『先生案』이라 하고 儒生들의 上疏文綴은 『公車文』이라 하며 歷代王家의 男系子孫錄은 『宗親錄』이라 하고 女系子孫錄은 『類附錄』이라고 하였는 等이다. 이런 書名을 보고 그의 內容을 어찌 짐작할가. 그런데 또 그의 內容은 數十字에 不過한冊에 題目은 三四十字나 되는 것도 있으니 例하면 「咸豊十一年七月 日全羅道濟州牧 漂流民等 姓名年歲 居住 船中什物 及所持物件 <병0x62C4>錄成冊」이라느니 「光緖十四年五月日 江華島 丁亥秋 戊子春等 都試居首 及沒枝人役 姓名 父名 居住 技藝劃數
그림 22
成朋」이라느니 하는 等의 長題의 內容은 幾個人名이 쓰인 『漂流民報告書』 『武藝試人名錄』인 것이다. 本書의 題目도 亦是 그런 것이니 無怪한 것이다.
그런데 本書의 著者는 自號를 「老耘」이라고 했으니 그의 自傳에 依하면 「德이란 것은 農事에 耘(밭맬운)함과 같다. 그래서 初號는 「耘翁」이라 했다가 그 翁字를 老字로 고쳐서 上下를 바꾼 것이고 또 著者의 名은 東<석0x65ED> 東<절0x7124><절0x7124>등 세 가지로 쓰였으니 果然어떤 것이 眞字일가.『韓國
人名大辭典』에는 『王朝實錄』에 依據해서 東晳(절)이라고 表音하였으나 歷代의 世系와 諸序에 署名등 뿐만 아니라, 朝廷의 記錄에 있는 記名이 數百番이나 나오는데 모두다 東晳(석)이라고 쓰였으니 이것을 全部라 誤字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特히 本書末尾 「自傳」에만은 東晳이라고 쓰였으니 <석0x65ED>과 <절0x7124>은 一點의差로서 뜻은 다르나 音은 「석」이다. 本家에서쓴 本書에는 全部다「동석」이니 史官들이쓴 實錄에는 비록「동절」이라 했다고 해도 그것이 標準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本書는 모두 十三卷을 五冊으로 分綴하였는데 第一冊은 易解說인대 卷①은 그 上經이고 卷②는 그 下經이며 卷③은 그의 四傳(繫辭傳 說卦傳 序卦傳 雜卦傳)이고 卷④는 爾言이며, 第二冊에 卷⑤는 家傳이니 이內에는 七則과 四禮가 있고 第三冊은 輯稿인대 卷⑥은 心典이고 卷⑦은 書牘이며 卷⑧은 寓言 言志 編箸등이고 卷⑨는 疏狀 叔述 #수告文등이다. 그런데 第四冊의 卷⑩에서 第五冊의 卷⑬까지는 모두 다 履考一生平曆이라는 것이다. 本書도 表題가 難解할뿐 아니라, 內容에 篇目도 難解한 것이다.「易解說」은 易經의 要點만을 解說한 것이고 「爾言」은 著者가 한 格言을 輯錄한 것이며 「家傳」은 著者의 家訓과 禮節이고 「輯稿」는 文稿를 輯錄한 것이며 「履考」는 履歷한 것을 考記한 것인데 「生平曆」은 紀年한 年譜인 것이니 모두가 五部로 된 것이다.
2. 周易의 解說
本篇은 『易經』의 上下經에 64卦象, 傳繫, 辭傳의 上下24章, 說卦傳의 11章, 序卦傳에1章, 雜卦傳에 1章등에 各其다 解와 說을 부친 것이다. 그러니 易經全部를 다 解說한 것이 아니라. 가장 重要한 卦의 象傳을 首題로 해서 各爻를 모두象傳式으로 簡單하게 解를하고 說은 卦辭에 문제점을 말한 것이며 繫辭 說卦 序卦 雜卦등 4傳도 全部를 解說한 것이 아니라, 問題點만을 擧論한 것이니. 이에서 그것을 例示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로 解는 「乾卦의 象傳에서 君子가 以하여 自彊不息하라는것은 一體와 一用이 循環해서 不己한 것이다. 고하고 이어서 潛龍은 勿用하라(初爻)는 것은 그 있는 곳이 편히함이고 見龍이 在田하다(九二)는 것은 德이 나타남이며 終日乾乾하라(九二)는 것은 不及할가 겁내는 것이고 或躍해서 在淵하라 (九三)는 것은 갈곳을 얻은 것이며 飛龍이 在天하다(九四)는 것은 同德을 만난 것이고 亢龍은 有悔(九五)는 것은 長久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며 乾元은 用九라(九爻)는 것은 君子가 讓步하라는 것이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說은 「品物이 流形이라」(象傅)는대 流字는 바로 「小德은 川流니라」(中庸)는 流字인 것이고 「大人의 盛德은 『書經』에 堯典 舜典과 大禹 皐陶 益稷의 三謨에서 보는 것이 좋으리라고 그 말한 것이다.
그리고 또 繫辭에 解의 例를 말한다면「天地란 것은 象이고 乾坤이란 것은 理이니 오직象은 보여도 理는 볼 수가 없기 때문에 聖人이 卦象을 그어서 象을 만들어 그를 볼 수 있는 乾이라고 이름지었으니 이것이 無形한 理를 有形한 象으로 만든 것이다. 理는 象의 先도아니니 象은 理의 後도아니며 理는 獨行하는 것도 아니고 象은 自成하고 것도 아니라. 이것은 一이고 二가아니니 特히 가르치는 바로서 命名것만 다를 뿐이다. 이에 물이 淸濁은 볼 수가 있고 寒溫은 感할 수 있고 音聲은 들을 수 있으니 이것은 象이나 그의 所由然은 보도 듣도 感할 수도 없으니 이것이 理다.」 云云한 것이고 그 다음에 說은 「一寒一暑」의 句下에 俗解가 未恰하니 此節과 下節에 各項의 說을 分別해서 解釋해야만 할 것이고,「坤作成物」의 句下에 俗解도 잘못 成字를 連作했으니 마땅히 「乾知大始」와 對句로 解釋하고 그 앞에 「坤以簡能」의 本義를 봐야 하며, 또한 經文을 보면 「簡能」의 能은 바로 知字에 對해서 作字의 義와 相類하니 本節은本義에 「作成」의 句에 拘泥해서는 안된다」 云云한 것이다.
그리고 또 序卦傳에 解는 「序卦가 서로 다음 되는 것은 物件이 轉運해서 <번0x626A>露함이 끝이지 아니함과 같은 것이라고 한 것이고 그의 說은 「物不可以苟合己라, 三句의 俗解는 未穩하니 不字는 마땅히 已字의 앞이 解釋해야 한다」는 것이고 雜卦傳의 解는 「君子와 小人을 終으로 한대에 聖人의 뜻이 깊다고 斷定한다」고 한 것이며 또 說은 君子道長은 바로 小人의 憂가되니 그것이 容納되지 않기가 이러하다」고한 一節식뿐이다.
3.爾言=語鋒
本篇에는 「聖繼」 「古之人」 「問孝」 「全師」등 四部가 있는데 聖繼도 聖者를 繼承하는 哲言이니 모두 88條고 古之人은 善良한 古人이니 88條며 問孝는 孝道이 關한 問題이니 51條고 全師는 心神을 全一하지 함이니 59條인 것이다. 各條에 最少는 7,8字고 最多는 3百餘字나 되는 것이다.
이에 그의 例를 든다면 「聖繼」의 劈頭에는「聖으로서 聖을 繼함은 箕子가 『洪範』을 말한 것이니 위로는 前聖을 攝하엿고 알로는 後聖을 啓한 것이라, 道는 萬古에 亘하도록 떨어지지 않음이 箕子의 功이다」고 하고 또한「멀기는 天보다 더함이 없어도 至誠으로만 하면 感通하는 것이고 가깝게는 親보다. 더함이 없어도 誠心이 없으면 感通하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天地人物은 모두가 一理이기 때문이다. 그 理數는 眞實해서 無妄한 것이라, 理는 合하면
應하고 乖하면 絶하나니 이것은 1人의 命令이 四方으로 傳布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번 順하면 遠近이 同體가 되어 서로가 믿지마는 或是 거슬리면 咫尺도 異叛되어 서로가 막히는 것이다. 下者가 上者를 섬기는 대는 받은 바로 만하면 應하나 받은 바로 아니라면 應하지 안나니 오직 誡만이 能히 感應하는 所以는 받은 바에 屬한 것이기 때문이다」고 한 것이다.
다음으로 「古之人」의 劈頭에는 「古之人은 立身해서 自身이 行世함에 「本是 그 當然한 法度가 있어서 事業을 하여 그것을 後世에 相傳하였으나 今之人은 私心대로만 妄行해서 스스로를 獨得한 規模라고 하지 마는 그것은 發作하면 詐譏가 되니 진실로 眞僞의 사이에서 方便을 바래니 君子와 小人을 分辨함이 이에서 보이는데 겁내지 안아도 될가」고 한 것이다.
또 「問孝」의 劈頭에는 「孝道」세 窮極함이 있는가. 舜을 大孝라고 말하니 孝道는 이미 窮極한 것인가」고 무르니 「孝는 窮格함이 없나니라, 父母가 極度로 不慈함을 만났는데도 子息으로서의 孝道를 그렇게 했으니 그것은 大舜의 前에도 잊지 않았고 大舜의 後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大孝라고 한 것이고 孝道가이미 窮極했다는 것은 아니다. 孝道는 無窮하나 分義는 有限하니 그가 天子로 되지 안 했을 때는 匹夫의 分義였던 것이다」고 對答한 것이다.
끝으로 「全師」의 劈頭에는 「하늘이 주신 바가 完全한 것은 人間인대 그 完全한 天稟을 完소하게 한 者는 聖人이고 그것을 回復한 者는 賢人이며 그 完全한 天稟을 惇한 者는 그 다음이고 그것을 動한 者도 또 그 다음이며 또 그것을 求한 者는 士人이니 士人은 그것을 求해서 聖人이되려는 것이다. 萬若에 求하기를 能히 하여 勅하고 惇하고 復하여 참으로 完全하게만 한다면 나도 또한 聖人일 것이다. 完全하게 함은 誠心에 있으니 萬若에 自力을 限定해서 힘써 나아가지 않는 다면 그것은 誠心이 不足하기 때문이다」고한 것 等이다.
4.家傳―敎訓
本篇의 劈頭에는 「所謂 家傳이란 것은 家庭에서 常時로 實用해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니 이것은 마땅히 서로 議論해서 世世代代로 떨어지지 말게 하라」 (萬若에 家衆가운데 無識한 者가 있거든 諺解를해서 誦習하게하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七則이있는데 첫째 「豫訓」의 始初에는 「易經에는 말하되 〈童蒙을 養正함은 聖功이라〉고 하였는데 옛적에는 아이를 배면 胎中에서 敎育을 하고 아이가 나면 師母를 가려서 保育시키는데 모두 正으로만 하였다. 그래서 아이가 食事를 하고 言語를 하게 되면 그를 가르치는데는 모두가 精詳하게 하였든 것이다. 後世에와서는 남의 父母된 者가 能히 이렇게 하지 못하고 갑자기 아이가 착하지 못하다고만 꾸짖으니 그래서 될까. 아이가 見聞하는 것은 善事도 있고 不善도있으니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善惡의 分이 멀어지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니 可惜한일이 아닌가. 비록世代가 下衰해서 風習이 나빠졌다고 해도 무릇 남의 父母가된 者가 能히 이것만 實行한다면 風俗도 自然히 變化해서 善하게될 것이니 어찌 一人만 善해지고 一家만 善해질 뿐이리오」고 하였고
다음에 「蒙學」에 始初에는 「小兒가 말을 배우면 처음으로 가르치는 것은 世上에서는 반드시 千字文을 쓰나 그것이 다 切實하고 易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에 있는 一文을 지었으니 이것을 큰字로 잘쓰고 諺文으로 註를 달아서 가르쳐 誦讀하게 하면 天地萬物이 모두 나와 一體라는 根本뜻을 깨우쳐서 그의 硏究心이 넓혀질 것이다」고 하였는데 그의 敎材는 總히 八百字로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事父母」 「事兄長」의 道理를 細詳하게 말하고 또 「男子職」 「婦人職」 「家衆職」등을 極盡하게 말하였다. 그리고 「四禮」의 始初에는 「酌義」가 있으니 그의 劈頭에는 「禮를 배우는데는 모름지기 먼저 그 原理를 硏究해서 그의 情文을 알게 한 然後에 나아가서 널리 諸家가 損益한 意義와 變改한 理由를 다 알아서 近에서 遠으로 미쳐가고 淺에서 深으로 들어감이 비록 같지는 안아도 要約한 工夫로는 『家禮源流』가 가장 緊要하고 또한 『國朝典禮』도 學習하지 않으면 않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冠禮에는 戒賓冠禮圖 三加儀 單加儀 <계0x55A6>儀등이 있고 婚禮에는 納來 納幣親迎儀 見舅姑 #묘見 處行禮등이 있으며 喪禮에는 初終小斂 大斂 成服 服制圖 治葬 發靷 安葬 虞祭 卒哭 小祥 大祥 譚祭 吉祭등이 있고 祭禮에는 祠堂 時祭 陳設圖 忌祭墓祭 尺式등이 있는 것이다.
5.輯稿=雜文
本篇의 劈頭에는 心理의 圖와 說이 있고 이어서 心理를 擬人化한 小說로서 「肇命」과 「出治」와 「代成」등 三項이 있으니 첫째로 「肇命」에는 「天帝가 비로소 命令하사대 〈오라 너心君아. 나는 陰陽과 五行으로서 命하노니 너는 五常의 德을 健順하라. 그 氣란 것은 浩然이라고 말하고 그 德은 仁義禮智信이라고 말하니 이것이 五常이란 것이다. 陰陽五行은 나의 氣니 그의 本體가 내게 있는 것은 理라 하고 네게 命한 것은 性이라 하니 너를 能히 나의 德과 같이하게 肇命(비로소命하는 것) 해서 天下에 大本의 主가 되게 하노니 너는 오직 이것을 保全하라」 云云하였다.
다음으로 「出冶」의 劈頭에는 「心君은 비로소 天帝의
命令을 받아서 이에 官制를 만들고 職務를 나누어서 널리 天帝의 命令을 宣布해 말하되 〈오직 나小子는 작은 心臟속에 있어서 上帝의 命令을 받아 이生命이 되었는데 이 神明의 집에서 形氣를 가지고 五臟六腑와 四肢百骸로 通하여 天下에 大本의 主가 되었다」 云云하고 끝으로 「化成의 劈頭에는 天君=心君이 15에 志于學하고 30에 立身해서 40에 不惑하고 50에 知天命하여 60에 耳順하고 70에 從心所欲해도 不踰矩라는 孔子의 말씀을 그대로 하고 다음에는 天君과 여러 器官들의 對話가 있은 뒤에 思官이 天君에게 「어느 때나 幾를알아 天命대로 戒勅하소·그 처음을 生覺하사 永遠하게 圖謀하소」고한 노래로서 終結하였다.
다음은 書札이 數十張있는데 그 中에는 眞修三則 學道銘 金詩解 修鍊歌訣 示戒門內등이 있고 그 다음은 戒飭하는 뜻을 가진 箴12種과 銘11種이있다. 그리고 「說約贊」이 있으니 그에는 말하되 「學은 널리 하지 말고 仔細하게 講을 하고 講은 길게만 하지 말고 實行함을 重히하라, 헛된말로 實없으면 많은 知識 무엇할까 精思해서 篤行하는 이것 實로 所得이다. 孟子敎訓하신 바는 要約함을 重히했다. 小子敢히 말하노니 같이 弛援하지 말라」고 한 것이고 다음은 詩數十首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心經輯成』 『定性書翼』 『吾憂編』(다음에 解題가 있음)등을 編成한 序文三種이 있고 또한 『斯信錄』 『漢隷字源刊補』 『說約』 등의 跋文이있다. 그리고 다음은 「定性論」 「安宅說」 「書辨」등이 있고 또 順興과 丹陽두 郡의 「先生案」에 識과 辭職疏여섯가지가 있으며 끝으로는 墓文 祭文등 十餘가지가있다.
本書의 五冊中에서 다음에 三冊은 著者의 履歷한 年譜니 所著한 全集은 위에 三冊으로서 끝난 것이다. 그러니 이것으로서 本書의 內容을 評價한다면 하나의 文藝作品에 不過한 一般文集과는 特殊하니 그만큼 哲學的인 內容이 있는 것이다. 첫째로 『周易』의 解와 說은 簡單하나마 要領이 있는 것이고 다음에 「爾言」이란 것은 거의 다 哲理가 있는 語錄이며 「家傳」에는 胎中敎育에서부터 幼兒敎育을 하는데 必要한 것이고 또한 「蒙學」의 敎材로서 八百字文까지 지었으니 誠意가 篤實한 것이다. 그리고 父母와 兄長을 섬기고 男子와 女子가 할 일을 모두 다 言及했으며 現代에는 비록 必要없게 되었다고 해도 冠昏喪祭에 對한 禮節도 備한 것이다. 다음에 心理圖說의 아래 있는 天君傳에도 有理한 點이있고 書簡이나 箴銘에도 다른文集과는 다르게 哲學的인 趣旨가 있으니 本書에는 大體的으로 人生社會에 有益한 價値가 있음을 나는 認定하는 바이다.
6. 著書의 生涯
本書의 卷末에 있는 世系에 의하면 著者의 諱는 東晳이고 字는 與叔인데 坡平尹氏니 高麗太祖가 三韓을 統一할때 翊贊功臣 太匡太師였든 莘達을 始祖로하였다. 그 後五世만이 瓘은 鎭國功臣 開國伯이니 謚는 文肅이고 그의 子에 彦<신0x685F>는 銀靑光祿大夫 戶曺尙書니 謚는 文康이며 그 後 10世만에 坤은 李朝에 佐明功臣 吏曺判書니 謚는 昭靖이고 그 後五世만에 倬은 漢城左尹成均館事니 號는 그 平窩며 後五世만에 #흡은 高祖인데 漢城府左尹이고 曾祖는 海擧니 號는 不憂堂이며 祖는 扶니 贈吏曺判書고 考는 勉敎니 贈吏曺判書며 <비0x6419>는 贈貞夫人 慶州金氏니 慶恩府院君 柱臣의 女로서 景宗壬寅 正月 20日 丙午未時 서울西部貞洞第에서 公을生하였다.
그리고 年譜에 依하면 九歲때에 太極圖를 그려서 壁上에 부치고 그 大人에게號를 「愛道齋」라고 하고 싶다고 말하니 大人이 웃으면서 아이가 무슨號를 짓나 고하였다 그리고 後에 天地의 道를 論述하였으니 그것을 引譯을 하면「天은 陽이고 地는 陰이다. 왜냐하면 大極이 비로소 陰陽으로 나누어wu서 陽은 올라서 天이되고 陰은 내려서 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五行이 나오고 四時가 돌아가니 萬物이다 낫는데 人間은 그 中에서 特出하게 五性을 稟受하였으니 仁義禮智信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性을 順行하면 聖人이 되고 逆行하면 惡人이 되는 것이니 善을 하고 惡을 함은 人間에 있는 것인데 어찌 참아 惡人을 배우리오, 나는聖人을 배우려한다」고 한 것이고 또 人道릍 論述해 말하되 「무릇 人間에는 人道가 있으니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君은 仁하고 父는 慈하며 子는 孝疑고 臣은 忠하며 夫는 嚴하고 妻는 順하며 朋友에는 信이 있는 이것이 人道다. 반드시九思(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九容(手容恭 足容重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立容德 色容莊)四勿(非禮면 勿視 勿聽 勿言 勿動) 三德(正直 柔克剛克)등으로서 그 心身을 닦은 然後해야만 道가 이루어지나니 이것을 天子가 行하면 天下가 平하고 諸侯가 行하면 國家가 治하며 大夫가 行하면 一家가 興하고 士人이 行하면 自身이 吉할 것이다. 堯舜孔孟은 모두 이 人道로서 聖人이 되었는데 사람으로서 어찌 道理를 行하지 않해서될까」 고 한글을 그 大人에게 써 올렸다는 것이다.
10歲때는 染病을 避해서 外地에 갔는데 「別家한지 今幾日이냐 已過三五夜로다. 夜半에 衾獨寒하니 嚴親은 應思我리라」고 한 詩릍 지어 보내고 宣惠廳에 火災난 所聞을듣고 數百餘字의 上疏文을 짓기도 했으며, 또 「禮與食
〈p.29에 계속〉

부가정보

老耘三官通解題
柳正基
『三官通』 解題
目次
1. 題名의 問題
2. 周易의 解說
3. 爾言=語錄
4. 家傳―敎訓
5. 輯稿―雜文
6. 著者의 生涯
『吾憂編』 解題
目次
1. 本書의 題名
2. 本書의 內容
3. 本書의 評價
『老耘三官通』 解題
1. 題名의 문제
本書는 老耘尹東晳(석)의 文集이다. 그러나 一般的으로 文集이라면 詩 書 序 記 跋 雜著 祭文 祝文 行狀 墓誌銘 墓碑文등으로 一定한 體制가 있는데. 本書는 易說語錄 家訓 文稿 年譜등의 內容으로 되었으니 적으나마 하나의 全集이다. 그래서 表題는 『老耘三官通』이라고 부쳤으니 이것이 果然무슨 意味일가. 序文도 跋文도없으니 이 題名의 意義는 알수가없는 것이다.「老耘」은 勿論著者의 號지마는「三官通」이란 題名이 本書의 內容에서는 發見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著者인 老耘의 特徵을 表示한 것이 아닐까· 老耘은 學文과 書藝와 職位의 三者를 通했으니 그 외 記錄이라는 것을 뜻한 것이나 아닐까. 古來로 「三官」이란 用語는 十餘가지 뜻으로 쓰여왔으나 本書의 意味와 相通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 實로 難解한 題名이다. 이 題名을 보고 이 內容을 알者가 누구일가.
옛적에 漢文學者가 지은 書名은 거의 다 이러했으니 例하면 科文에 答案集은 『玉通』이라 하는 先輩의 人名錄은 『玉纂』이라하며 官廳에 前官名錄은 『先生案』이라 하고 儒生들의 上疏文綴은 『公車文』이라 하며 歷代王家의 男系子孫錄은 『宗親錄』이라 하고 女系子孫錄은 『類附錄』이라고 하였는 等이다. 이런 書名을 보고 그의 內容을 어찌 짐작할가. 그런데 또 그의 內容은 數十字에 不過한冊에 題目은 三四十字나 되는 것도 있으니 例하면 「咸豊十一年七月 日全羅道濟州牧 漂流民等 姓名年歲 居住 船中什物 及所持物件 <병0x62C4>錄成冊」이라느니 「光緖十四年五月日 江華島 丁亥秋 戊子春等 都試居首 及沒枝人役 姓名 父名 居住 技藝劃數
그림 22
成朋」이라느니 하는 等의 長題의 內容은 幾個人名이 쓰인 『漂流民報告書』 『武藝試人名錄』인 것이다. 本書의 題目도 亦是 그런 것이니 無怪한 것이다.
그런데 本書의 著者는 自號를 「老耘」이라고 했으니 그의 自傳에 依하면 「德이란 것은 農事에 耘(밭맬운)함과 같다. 그래서 初號는 「耘翁」이라 했다가 그 翁字를 老字로 고쳐서 上下를 바꾼 것이고 또 著者의 名은 東<석0x65ED> 東<절0x7124><절0x7124>등 세 가지로 쓰였으니 果然어떤 것이 眞字일가.『韓國
人名大辭典』에는 『王朝實錄』에 依據해서 東晳(절)이라고 表音하였으나 歷代의 世系와 諸序에 署名등 뿐만 아니라, 朝廷의 記錄에 있는 記名이 數百番이나 나오는데 모두다 東晳(석)이라고 쓰였으니 이것을 全部라 誤字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特히 本書末尾 「自傳」에만은 東晳이라고 쓰였으니 <석0x65ED>과 <절0x7124>은 一點의差로서 뜻은 다르나 音은 「석」이다. 本家에서쓴 本書에는 全部다「동석」이니 史官들이쓴 實錄에는 비록「동절」이라 했다고 해도 그것이 標準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本書는 모두 十三卷을 五冊으로 分綴하였는데 第一冊은 易解說인대 卷①은 그 上經이고 卷②는 그 下經이며 卷③은 그의 四傳(繫辭傳 說卦傳 序卦傳 雜卦傳)이고 卷④는 爾言이며, 第二冊에 卷⑤는 家傳이니 이內에는 七則과 四禮가 있고 第三冊은 輯稿인대 卷⑥은 心典이고 卷⑦은 書牘이며 卷⑧은 寓言 言志 編箸등이고 卷⑨는 疏狀 叔述 #수告文등이다. 그런데 第四冊의 卷⑩에서 第五冊의 卷⑬까지는 모두 다 履考一生平曆이라는 것이다. 本書도 表題가 難解할뿐 아니라, 內容에 篇目도 難解한 것이다.「易解說」은 易經의 要點만을 解說한 것이고 「爾言」은 著者가 한 格言을 輯錄한 것이며 「家傳」은 著者의 家訓과 禮節이고 「輯稿」는 文稿를 輯錄한 것이며 「履考」는 履歷한 것을 考記한 것인데 「生平曆」은 紀年한 年譜인 것이니 모두가 五部로 된 것이다.
2. 周易의 解說
本篇은 『易經』의 上下經에 64卦象, 傳繫, 辭傳의 上下24章, 說卦傳의 11章, 序卦傳에1章, 雜卦傳에 1章등에 各其다 解와 說을 부친 것이다. 그러니 易經全部를 다 解說한 것이 아니라. 가장 重要한 卦의 象傳을 首題로 해서 各爻를 모두象傳式으로 簡單하게 解를하고 說은 卦辭에 문제점을 말한 것이며 繫辭 說卦 序卦 雜卦등 4傳도 全部를 解說한 것이 아니라, 問題點만을 擧論한 것이니. 이에서 그것을 例示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로 解는 「乾卦의 象傳에서 君子가 以하여 自彊不息하라는것은 一體와 一用이 循環해서 不己한 것이다. 고하고 이어서 潛龍은 勿用하라(初爻)는 것은 그 있는 곳이 편히함이고 見龍이 在田하다(九二)는 것은 德이 나타남이며 終日乾乾하라(九二)는 것은 不及할가 겁내는 것이고 或躍해서 在淵하라 (九三)는 것은 갈곳을 얻은 것이며 飛龍이 在天하다(九四)는 것은 同德을 만난 것이고 亢龍은 有悔(九五)는 것은 長久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며 乾元은 用九라(九爻)는 것은 君子가 讓步하라는 것이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說은 「品物이 流形이라」(象傅)는대 流字는 바로 「小德은 川流니라」(中庸)는 流字인 것이고 「大人의 盛德은 『書經』에 堯典 舜典과 大禹 皐陶 益稷의 三謨에서 보는 것이 좋으리라고 그 말한 것이다.
그리고 또 繫辭에 解의 例를 말한다면「天地란 것은 象이고 乾坤이란 것은 理이니 오직象은 보여도 理는 볼 수가 없기 때문에 聖人이 卦象을 그어서 象을 만들어 그를 볼 수 있는 乾이라고 이름지었으니 이것이 無形한 理를 有形한 象으로 만든 것이다. 理는 象의 先도아니니 象은 理의 後도아니며 理는 獨行하는 것도 아니고 象은 自成하고 것도 아니라. 이것은 一이고 二가아니니 特히 가르치는 바로서 命名것만 다를 뿐이다. 이에 물이 淸濁은 볼 수가 있고 寒溫은 感할 수 있고 音聲은 들을 수 있으니 이것은 象이나 그의 所由然은 보도 듣도 感할 수도 없으니 이것이 理다.」 云云한 것이고 그 다음에 說은 「一寒一暑」의 句下에 俗解가 未恰하니 此節과 下節에 各項의 說을 分別해서 解釋해야만 할 것이고,「坤作成物」의 句下에 俗解도 잘못 成字를 連作했으니 마땅히 「乾知大始」와 對句로 解釋하고 그 앞에 「坤以簡能」의 本義를 봐야 하며, 또한 經文을 보면 「簡能」의 能은 바로 知字에 對해서 作字의 義와 相類하니 本節은本義에 「作成」의 句에 拘泥해서는 안된다」 云云한 것이다.
그리고 또 序卦傳에 解는 「序卦가 서로 다음 되는 것은 物件이 轉運해서 <번0x626A>露함이 끝이지 아니함과 같은 것이라고 한 것이고 그의 說은 「物不可以苟合己라, 三句의 俗解는 未穩하니 不字는 마땅히 已字의 앞이 解釋해야 한다」는 것이고 雜卦傳의 解는 「君子와 小人을 終으로 한대에 聖人의 뜻이 깊다고 斷定한다」고 한 것이며 또 說은 君子道長은 바로 小人의 憂가되니 그것이 容納되지 않기가 이러하다」고한 一節식뿐이다.
3.爾言=語鋒
本篇에는 「聖繼」 「古之人」 「問孝」 「全師」등 四部가 있는데 聖繼도 聖者를 繼承하는 哲言이니 모두 88條고 古之人은 善良한 古人이니 88條며 問孝는 孝道이 關한 問題이니 51條고 全師는 心神을 全一하지 함이니 59條인 것이다. 各條에 最少는 7,8字고 最多는 3百餘字나 되는 것이다.
이에 그의 例를 든다면 「聖繼」의 劈頭에는「聖으로서 聖을 繼함은 箕子가 『洪範』을 말한 것이니 위로는 前聖을 攝하엿고 알로는 後聖을 啓한 것이라, 道는 萬古에 亘하도록 떨어지지 않음이 箕子의 功이다」고 하고 또한「멀기는 天보다 더함이 없어도 至誠으로만 하면 感通하는 것이고 가깝게는 親보다. 더함이 없어도 誠心이 없으면 感通하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天地人物은 모두가 一理이기 때문이다. 그 理數는 眞實해서 無妄한 것이라, 理는 合하면
應하고 乖하면 絶하나니 이것은 1人의 命令이 四方으로 傳布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번 順하면 遠近이 同體가 되어 서로가 믿지마는 或是 거슬리면 咫尺도 異叛되어 서로가 막히는 것이다. 下者가 上者를 섬기는 대는 받은 바로 만하면 應하나 받은 바로 아니라면 應하지 안나니 오직 誡만이 能히 感應하는 所以는 받은 바에 屬한 것이기 때문이다」고 한 것이다.
다음으로 「古之人」의 劈頭에는 「古之人은 立身해서 自身이 行世함에 「本是 그 當然한 法度가 있어서 事業을 하여 그것을 後世에 相傳하였으나 今之人은 私心대로만 妄行해서 스스로를 獨得한 規模라고 하지 마는 그것은 發作하면 詐譏가 되니 진실로 眞僞의 사이에서 方便을 바래니 君子와 小人을 分辨함이 이에서 보이는데 겁내지 안아도 될가」고 한 것이다.
또 「問孝」의 劈頭에는 「孝道」세 窮極함이 있는가. 舜을 大孝라고 말하니 孝道는 이미 窮極한 것인가」고 무르니 「孝는 窮格함이 없나니라, 父母가 極度로 不慈함을 만났는데도 子息으로서의 孝道를 그렇게 했으니 그것은 大舜의 前에도 잊지 않았고 大舜의 後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大孝라고 한 것이고 孝道가이미 窮極했다는 것은 아니다. 孝道는 無窮하나 分義는 有限하니 그가 天子로 되지 안 했을 때는 匹夫의 分義였던 것이다」고 對答한 것이다.
끝으로 「全師」의 劈頭에는 「하늘이 주신 바가 完全한 것은 人間인대 그 完全한 天稟을 完소하게 한 者는 聖人이고 그것을 回復한 者는 賢人이며 그 完全한 天稟을 惇한 者는 그 다음이고 그것을 動한 者도 또 그 다음이며 또 그것을 求한 者는 士人이니 士人은 그것을 求해서 聖人이되려는 것이다. 萬若에 求하기를 能히 하여 勅하고 惇하고 復하여 참으로 完全하게만 한다면 나도 또한 聖人일 것이다. 完全하게 함은 誠心에 있으니 萬若에 自力을 限定해서 힘써 나아가지 않는 다면 그것은 誠心이 不足하기 때문이다」고한 것 等이다.
4.家傳―敎訓
本篇의 劈頭에는 「所謂 家傳이란 것은 家庭에서 常時로 實用해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니 이것은 마땅히 서로 議論해서 世世代代로 떨어지지 말게 하라」 (萬若에 家衆가운데 無識한 者가 있거든 諺解를해서 誦習하게하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七則이있는데 첫째 「豫訓」의 始初에는 「易經에는 말하되 〈童蒙을 養正함은 聖功이라〉고 하였는데 옛적에는 아이를 배면 胎中에서 敎育을 하고 아이가 나면 師母를 가려서 保育시키는데 모두 正으로만 하였다. 그래서 아이가 食事를 하고 言語를 하게 되면 그를 가르치는데는 모두가 精詳하게 하였든 것이다. 後世에와서는 남의 父母된 者가 能히 이렇게 하지 못하고 갑자기 아이가 착하지 못하다고만 꾸짖으니 그래서 될까. 아이가 見聞하는 것은 善事도 있고 不善도있으니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善惡의 分이 멀어지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니 可惜한일이 아닌가. 비록世代가 下衰해서 風習이 나빠졌다고 해도 무릇 남의 父母가된 者가 能히 이것만 實行한다면 風俗도 自然히 變化해서 善하게될 것이니 어찌 一人만 善해지고 一家만 善해질 뿐이리오」고 하였고
다음에 「蒙學」에 始初에는 「小兒가 말을 배우면 처음으로 가르치는 것은 世上에서는 반드시 千字文을 쓰나 그것이 다 切實하고 易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에 있는 一文을 지었으니 이것을 큰字로 잘쓰고 諺文으로 註를 달아서 가르쳐 誦讀하게 하면 天地萬物이 모두 나와 一體라는 根本뜻을 깨우쳐서 그의 硏究心이 넓혀질 것이다」고 하였는데 그의 敎材는 總히 八百字로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事父母」 「事兄長」의 道理를 細詳하게 말하고 또 「男子職」 「婦人職」 「家衆職」등을 極盡하게 말하였다. 그리고 「四禮」의 始初에는 「酌義」가 있으니 그의 劈頭에는 「禮를 배우는데는 모름지기 먼저 그 原理를 硏究해서 그의 情文을 알게 한 然後에 나아가서 널리 諸家가 損益한 意義와 變改한 理由를 다 알아서 近에서 遠으로 미쳐가고 淺에서 深으로 들어감이 비록 같지는 안아도 要約한 工夫로는 『家禮源流』가 가장 緊要하고 또한 『國朝典禮』도 學習하지 않으면 않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冠禮에는 戒賓冠禮圖 三加儀 單加儀 <계0x55A6>儀등이 있고 婚禮에는 納來 納幣親迎儀 見舅姑 #묘見 處行禮등이 있으며 喪禮에는 初終小斂 大斂 成服 服制圖 治葬 發靷 安葬 虞祭 卒哭 小祥 大祥 譚祭 吉祭등이 있고 祭禮에는 祠堂 時祭 陳設圖 忌祭墓祭 尺式등이 있는 것이다.
5.輯稿=雜文
本篇의 劈頭에는 心理의 圖와 說이 있고 이어서 心理를 擬人化한 小說로서 「肇命」과 「出治」와 「代成」등 三項이 있으니 첫째로 「肇命」에는 「天帝가 비로소 命令하사대 〈오라 너心君아. 나는 陰陽과 五行으로서 命하노니 너는 五常의 德을 健順하라. 그 氣란 것은 浩然이라고 말하고 그 德은 仁義禮智信이라고 말하니 이것이 五常이란 것이다. 陰陽五行은 나의 氣니 그의 本體가 내게 있는 것은 理라 하고 네게 命한 것은 性이라 하니 너를 能히 나의 德과 같이하게 肇命(비로소命하는 것) 해서 天下에 大本의 主가 되게 하노니 너는 오직 이것을 保全하라」 云云하였다.
다음으로 「出冶」의 劈頭에는 「心君은 비로소 天帝의
命令을 받아서 이에 官制를 만들고 職務를 나누어서 널리 天帝의 命令을 宣布해 말하되 〈오직 나小子는 작은 心臟속에 있어서 上帝의 命令을 받아 이生命이 되었는데 이 神明의 집에서 形氣를 가지고 五臟六腑와 四肢百骸로 通하여 天下에 大本의 主가 되었다」 云云하고 끝으로 「化成의 劈頭에는 天君=心君이 15에 志于學하고 30에 立身해서 40에 不惑하고 50에 知天命하여 60에 耳順하고 70에 從心所欲해도 不踰矩라는 孔子의 말씀을 그대로 하고 다음에는 天君과 여러 器官들의 對話가 있은 뒤에 思官이 天君에게 「어느 때나 幾를알아 天命대로 戒勅하소·그 처음을 生覺하사 永遠하게 圖謀하소」고한 노래로서 終結하였다.
다음은 書札이 數十張있는데 그 中에는 眞修三則 學道銘 金詩解 修鍊歌訣 示戒門內등이 있고 그 다음은 戒飭하는 뜻을 가진 箴12種과 銘11種이있다. 그리고 「說約贊」이 있으니 그에는 말하되 「學은 널리 하지 말고 仔細하게 講을 하고 講은 길게만 하지 말고 實行함을 重히하라, 헛된말로 實없으면 많은 知識 무엇할까 精思해서 篤行하는 이것 實로 所得이다. 孟子敎訓하신 바는 要約함을 重히했다. 小子敢히 말하노니 같이 弛援하지 말라」고 한 것이고 다음은 詩數十首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心經輯成』 『定性書翼』 『吾憂編』(다음에 解題가 있음)등을 編成한 序文三種이 있고 또한 『斯信錄』 『漢隷字源刊補』 『說約』 등의 跋文이있다. 그리고 다음은 「定性論」 「安宅說」 「書辨」등이 있고 또 順興과 丹陽두 郡의 「先生案」에 識과 辭職疏여섯가지가 있으며 끝으로는 墓文 祭文등 十餘가지가있다.
本書의 五冊中에서 다음에 三冊은 著者의 履歷한 年譜니 所著한 全集은 위에 三冊으로서 끝난 것이다. 그러니 이것으로서 本書의 內容을 評價한다면 하나의 文藝作品에 不過한 一般文集과는 特殊하니 그만큼 哲學的인 內容이 있는 것이다. 첫째로 『周易』의 解와 說은 簡單하나마 要領이 있는 것이고 다음에 「爾言」이란 것은 거의 다 哲理가 있는 語錄이며 「家傳」에는 胎中敎育에서부터 幼兒敎育을 하는데 必要한 것이고 또한 「蒙學」의 敎材로서 八百字文까지 지었으니 誠意가 篤實한 것이다. 그리고 父母와 兄長을 섬기고 男子와 女子가 할 일을 모두 다 言及했으며 現代에는 비록 必要없게 되었다고 해도 冠昏喪祭에 對한 禮節도 備한 것이다. 다음에 心理圖說의 아래 있는 天君傳에도 有理한 點이있고 書簡이나 箴銘에도 다른文集과는 다르게 哲學的인 趣旨가 있으니 本書에는 大體的으로 人生社會에 有益한 價値가 있음을 나는 認定하는 바이다.
6. 著書의 生涯
本書의 卷末에 있는 世系에 의하면 著者의 諱는 東晳이고 字는 與叔인데 坡平尹氏니 高麗太祖가 三韓을 統一할때 翊贊功臣 太匡太師였든 莘達을 始祖로하였다. 그 後五世만이 瓘은 鎭國功臣 開國伯이니 謚는 文肅이고 그의 子에 彦<신0x685F>는 銀靑光祿大夫 戶曺尙書니 謚는 文康이며 그 後 10世만에 坤은 李朝에 佐明功臣 吏曺判書니 謚는 昭靖이고 그 後五世만에 倬은 漢城左尹成均館事니 號는 그 平窩며 後五世만에 #흡은 高祖인데 漢城府左尹이고 曾祖는 海擧니 號는 不憂堂이며 祖는 扶니 贈吏曺判書고 考는 勉敎니 贈吏曺判書며 <비0x6419>는 贈貞夫人 慶州金氏니 慶恩府院君 柱臣의 女로서 景宗壬寅 正月 20日 丙午未時 서울西部貞洞第에서 公을生하였다.
그리고 年譜에 依하면 九歲때에 太極圖를 그려서 壁上에 부치고 그 大人에게號를 「愛道齋」라고 하고 싶다고 말하니 大人이 웃으면서 아이가 무슨號를 짓나 고하였다 그리고 後에 天地의 道를 論述하였으니 그것을 引譯을 하면「天은 陽이고 地는 陰이다. 왜냐하면 大極이 비로소 陰陽으로 나누어wu서 陽은 올라서 天이되고 陰은 내려서 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五行이 나오고 四時가 돌아가니 萬物이다 낫는데 人間은 그 中에서 特出하게 五性을 稟受하였으니 仁義禮智信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性을 順行하면 聖人이 되고 逆行하면 惡人이 되는 것이니 善을 하고 惡을 함은 人間에 있는 것인데 어찌 참아 惡人을 배우리오, 나는聖人을 배우려한다」고 한 것이고 또 人道릍 論述해 말하되 「무릇 人間에는 人道가 있으니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君은 仁하고 父는 慈하며 子는 孝疑고 臣은 忠하며 夫는 嚴하고 妻는 順하며 朋友에는 信이 있는 이것이 人道다. 반드시九思(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九容(手容恭 足容重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立容德 色容莊)四勿(非禮면 勿視 勿聽 勿言 勿動) 三德(正直 柔克剛克)등으로서 그 心身을 닦은 然後해야만 道가 이루어지나니 이것을 天子가 行하면 天下가 平하고 諸侯가 行하면 國家가 治하며 大夫가 行하면 一家가 興하고 士人이 行하면 自身이 吉할 것이다. 堯舜孔孟은 모두 이 人道로서 聖人이 되었는데 사람으로서 어찌 道理를 行하지 않해서될까」 고 한글을 그 大人에게 써 올렸다는 것이다.
10歲때는 染病을 避해서 外地에 갔는데 「別家한지 今幾日이냐 已過三五夜로다. 夜半에 衾獨寒하니 嚴親은 應思我리라」고 한 詩릍 지어 보내고 宣惠廳에 火災난 所聞을듣고 數百餘字의 上疏文을 짓기도 했으며, 또 「禮與食
〈p.29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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