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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901
서명 / 저자 : 丹岩漫錄/ 閔鎭遠(朝鮮) 著
개인저자 : 민진원 (조선), 1664-1736
이민보, 1720 - 1799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寫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不分卷 2冊: 無郭, 無絲欄, 半葉 10行 22字, 註雙行, 無魚尾; 24 × 15.8cm
일반주기 :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肅宗 6年庚申(1680)의 宗室福善君枏의 謨逆事, 領議政許積妾子堅英祖 4年戊申(1728)의 圻湖領南逆亂始末及, 附錄의 李敏輔(1720 - 1799)撰黨論本末 등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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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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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丹岩漫錄 (3 -613 )

閔鎭遠(朝鮮, 1664∼1736)著. 寫本. [寫年未詳].
不分卷 2冊. 無郭. 無絲欄. 半葉, 10行22字.
註雙行. 無魚尾. 24×15.8cm. 線裝
印: 李王家圖書之章
紙質: 楮紙

肅宗 6年(1680)∼英祖 4年(1728)간에 일어났던 주요 사건을 기록한 책. 1680年 宗室 福善君 枏 등이 領議政 許積의 妾子인 堅과 통하여 모역을 기도한다고 고변, 庚辛大黜陟을 일으킨 事件, 1682年 金益勳이 金錫胄와 함께 南人의 許璽·許瑛·柳命堅 등에게 권하여 반역을 하도록 종용한 내력, 1684년 尹拯을 儒賢으로 대접하지 말도록 명한 내력, 1686年 張氏를 淑媛으로 삼는데 대한 논란, 1688年 領議政 南九萬과 右議政 呂聖齊를 極邊에 圍籬
安置한 事件, 1689年 己巳換局으로 金壽恒·宋時烈 등을 賜死케 하는 등 大殺戮이 행해진 事件, 左議政 閔鼎重의 圍籬安置事件, 1691年 武人 金廷說을 絶島로 定配한 事件, 1694年 閔點과 柳命賢 등을 絶島에 圍籬安置하고 南九萬·朴世采·尹趾完·柳命運·徐文重·申汝哲 등을다시 등용하여 王妃閔氏를 復位하고 張氏를 禧嬪으로 내치며 張希載를 下獄한 事件,1701年 宮中 巫蠱의 일이 발각되어 張氏에게 賜死한 事件, 1709年 領議政 崔錫鼎이 편찬한 『禮記類編』을 간행케 하였다가 崔錫鼎이 侍藥을 삼가지 않은 죄로 削黜되자 臺啓로 인하여 그 책을 불태우게 된 내력, 1710年 玉堂官 洪禹瑞 . 李澤 . 李喬岳 등, 大司憲鄭澔, 疏儒 洪胄亨·郭景斗 등을 유배한 事件, l716年 尹宣擧·尹拯의 官爵을 削奪한 事件, 1717年 王世子에게 代理庶務케 한 내력, 1720年∼1721年 肅宗의 昇遐, 景宗의 卽位, 干子 延祈君의 干世弟冊封 등에 관한 기사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張氏를 大嬪으로 追尊하고 별도로 祠廟를 세운 일, 金昌集·李碩命·李健命·趙泰采 등 이른바 老論四大臣을 포함하여 李晩成·洪啓迪·金雲澤·金濟謙·金民澤·趙聖復·李弘述·李宇恒·尹慤·白時考·李尙馥·沈搢·柳就章·李櫶 등 많은 사람을 죽인 大獄事件, 1724年 畿內 儒生 등이 上疏하여 四大臣書院의 건립을 청한 일, 王子 敬義君을 世子로 책봉한 일, 壬寅寃獄을 伸雪하도록 명한 일, 柳鳳輝·李光佐·趙泰億의 誅斬을 庭請한 일, 1726年 崇裕皇帝御筆을 宮中에서 掌刻하여 그 印本을 領府事 閔鎭遠과 縣令 宋文相에게 頒賜한 일, 1727年 四大臣祠院을 헐자는 논의가 제기된 문제, 1728年 金一鏡의 餘黨 李麟佐 등이 密豊君 坦을 推戴하여 일으킨 이른바 戊申亂 관계를 '戊申年 봄에 逆賊이 坼湖嶺南에서 일어나 밤에 淸州城에 들어와 兵使 李鳳祥과 營將 南延年을 죽이고 進軍하여 京城을 향하다가 竹山 安城에 이르러 官軍을 만나 潰散되니 嶺南의 賊도 풍문을 듣고 潰散되었다'는 것을 서두로 하여 亂의 발생동기와 진압과정 등을 자세히 적고 있으며, 끝에는 李敏輔(1720∼1799)가 지은 『黨論本末』을 싣고 있다.
저자인 閔鎭遠은 驪陽府院君 維重의 아들이자 肅宗妃 仁顯王后의 동생이며 宋浚吉의 외손으로 老論의 領袖였고 벼슬은 左議政에 이르렀으며, 李敏輔는 吏曹參判 喜朝의 손자로서 공조판서·형조판서 등을 거쳐 輔國崇祿大夫에 이르고, 老論에 속했으며, 東西分黨 이후 노론의처지에서 당쟁을 논한 『忠逆辨』이란 저서도 남졌다. 본서는 숙종·영조 연간의 당쟁으로 빛어진 일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 하겠다.

부가정보

丹岩漫錄 (3 -613 )

閔鎭遠(朝鮮, 1664∼1736)著. 寫本. [寫年未詳].
不分卷 2冊. 無郭. 無絲欄. 半葉, 10行22字.
註雙行. 無魚尾. 24×15.8cm. 線裝
印: 李王家圖書之章
紙質: 楮紙

肅宗 6年(1680)∼英祖 4年(1728)간에 일어났던 주요 사건을 기록한 책. 1680年 宗室 福善君 枏 등이 領議政 許積의 妾子인 堅과 통하여 모역을 기도한다고 고변, 庚辛大黜陟을 일으킨 事件, 1682年 金益勳이 金錫胄와 함께 南人의 許璽·許瑛·柳命堅 등에게 권하여 반역을 하도록 종용한 내력, 1684년 尹拯을 儒賢으로 대접하지 말도록 명한 내력, 1686年 張氏를 淑媛으로 삼는데 대한 논란, 1688年 領議政 南九萬과 右議政 呂聖齊를 極邊에 圍籬
安置한 事件, 1689年 己巳換局으로 金壽恒·宋時烈 등을 賜死케 하는 등 大殺戮이 행해진 事件, 左議政 閔鼎重의 圍籬安置事件, 1691年 武人 金廷說을 絶島로 定配한 事件, 1694年 閔點과 柳命賢 등을 絶島에 圍籬安置하고 南九萬·朴世采·尹趾完·柳命運·徐文重·申汝哲 등을다시 등용하여 王妃閔氏를 復位하고 張氏를 禧嬪으로 내치며 張希載를 下獄한 事件,1701年 宮中 巫蠱의 일이 발각되어 張氏에게 賜死한 事件, 1709年 領議政 崔錫鼎이 편찬한 『禮記類編』을 간행케 하였다가 崔錫鼎이 侍藥을 삼가지 않은 죄로 削黜되자 臺啓로 인하여 그 책을 불태우게 된 내력, 1710年 玉堂官 洪禹瑞 . 李澤 . 李喬岳 등, 大司憲鄭澔, 疏儒 洪胄亨·郭景斗 등을 유배한 事件, l716年 尹宣擧·尹拯의 官爵을 削奪한 事件, 1717年 王世子에게 代理庶務케 한 내력, 1720年∼1721年 肅宗의 昇遐, 景宗의 卽位, 干子 延祈君의 干世弟冊封 등에 관한 기사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張氏를 大嬪으로 追尊하고 별도로 祠廟를 세운 일, 金昌集·李碩命·李健命·趙泰采 등 이른바 老論四大臣을 포함하여 李晩成·洪啓迪·金雲澤·金濟謙·金民澤·趙聖復·李弘述·李宇恒·尹慤·白時考·李尙馥·沈搢·柳就章·李櫶 등 많은 사람을 죽인 大獄事件, 1724年 畿內 儒生 등이 上疏하여 四大臣書院의 건립을 청한 일, 王子 敬義君을 世子로 책봉한 일, 壬寅寃獄을 伸雪하도록 명한 일, 柳鳳輝·李光佐·趙泰億의 誅斬을 庭請한 일, 1726年 崇裕皇帝御筆을 宮中에서 掌刻하여 그 印本을 領府事 閔鎭遠과 縣令 宋文相에게 頒賜한 일, 1727年 四大臣祠院을 헐자는 논의가 제기된 문제, 1728年 金一鏡의 餘黨 李麟佐 등이 密豊君 坦을 推戴하여 일으킨 이른바 戊申亂 관계를 '戊申年 봄에 逆賊이 坼湖嶺南에서 일어나 밤에 淸州城에 들어와 兵使 李鳳祥과 營將 南延年을 죽이고 進軍하여 京城을 향하다가 竹山 安城에 이르러 官軍을 만나 潰散되니 嶺南의 賊도 풍문을 듣고 潰散되었다'는 것을 서두로 하여 亂의 발생동기와 진압과정 등을 자세히 적고 있으며, 끝에는 李敏輔(1720∼1799)가 지은 『黨論本末』을 싣고 있다.
저자인 閔鎭遠은 驪陽府院君 維重의 아들이자 肅宗妃 仁顯王后의 동생이며 宋浚吉의 외손으로 老論의 領袖였고 벼슬은 左議政에 이르렀으며, 李敏輔는 吏曹參判 喜朝의 손자로서 공조판서·형조판서 등을 거쳐 輔國崇祿大夫에 이르고, 老論에 속했으며, 東西分黨 이후 노론의처지에서 당쟁을 논한 『忠逆辨』이란 저서도 남졌다. 본서는 숙종·영조 연간의 당쟁으로 빛어진 일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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