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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205
서명 / 저자 : 選諺編/ [編者未詳]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肅宗 19(1693)(1650) 以後 寫]
형태사항 : 線裝1冊(57張): 無郭, 無絲欄, 半葉 16行 20字; 21.2 × 26.5cm
일반주기 : 表紙裏面識記 : 癸酉(1693)四月日書 紙質 : 楮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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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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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選諺編
崔康賢
〔編者未詳〕. 寫本. [純祖 13(1813)寫〕.
1冊(57張)無郭.無絲欄. 牛茨 16付 20字. 21.2×26.5㎝ 線裝.
表紙裏面識記:發西(1813) 四月 日書.
印:李王家圖書之章.
紙質:楮紙.
1.. 머리에
이 책은 책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諺”을 가려 뽑아 모은 것이다.
諺이라면 우리 국어사전에 는 그 語意가 소개되지 않고 있으나 漢字로서의 字義를 살피면 ① 伍言의 뜻, ②俚俗으로 불리워지는 雜歌,③口語의 뜻 등 몇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伍言의 뜻으로 보는 것이 가장 的當할듯이 생각된다.
이 傳言은 곧 口傳되어 云해오는 이야기이므로 이는 마땅히 口碑文學의 領域으로 歸虜되어야 한다.
이제 筆者는 간략하게나마 “選諺篇을 解題하여 口碑文字硏究者들에게 하나의 資料로 바치고자 한다.
2.著者 및 年代
이 책에는 어디에도 編著者의 이름이나 字<호0x7B43> 어느 것도 明示된 것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다만 실려진 이야기들의 內容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상당한 벼슬살이를 하고 隱退한 退任官員의 男子가 아닐까 類推된다는 点과 그 編述年代가 毓佯宮의 이야기와 正租 云云의 紀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純租代에 틀림없음을 確認할 수가 있을 뿐이다. 그 구체적인 根據로는이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人物들 중에서 姓名 三字가 다 記栽된 사람은 거의가 著名人士로 대부분 그 生沒年代까지도 알 수가 있다. 生卒年代를 알 수 있는 50여명의 人上中 最近世에 沒한 이는 科擧前의 夢兆로 大科에 及第했다는 이야기의 主人公인 抱川人 尹參利弼秉公으로 이는 1730년(영조 6)에 출생하여 1765년(영조 41)의 司馬試를 거쳐 1767년(영조 43)에 庭試文科를 乙科로 及第하여 江原道觀察使, 同知中柩府事를 역임하고 1810년(순조 10)에 卒하였다.
* 그림 18
여기에다 이 冊의 表紙裏面에 記錄된“酉西四月 日書라는 年記와 純租 以後의 事曳이 內容으로 실려 있지 않는 점 등으로 推察할 때 이 冊의 編著作의 年代는 모름지기 1813년(순조 13)이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藏書閣編截書閣囚書 韓國板總目錄에는 肅宗 19(1639)(1650) 以後寫라고 되어 있음〕
또 編著者도 비록 姓名은 잃었지만 身分에 대하여는致仕한 老人으로 英, 正祖時代에서 純租代까지 生存했던男子인 것이 거듭 確實하다. 그리고 좀 억지이기는 하지만 編者의 姓만이라도 더 推察해 본다면 이 冊에 記錄된 많은 人名中 謚<호0x7B43>만을 두개의 話題에서 共通되케 記錄하고 있는 “張武爭公”과 編著者와는 어떤 持別한 開係가 있는 것이나 아닌지 疑問이 가기도 한다.
張武肅公은 張鵬翼(? ∼1735)이니 1699년(숙종25에 武科를 及第한 武臣으로서 刑曺判書까지를 역임한 사람이다. 옛날 우리 先人들이 自己의 生考租의 諱字를 부르지 않은 사실과 결부해서 생각할 때 혹 이 冊의 編者는 張氏
가 아닐까 臆度해 보기도 한다.
3. 內容
이 冊에는 目次도 小題目도 없다.
이야기마다 새로 줄을 시작하여 別行으로 記錄한 이외에는 아무 區別이 없으므로 筆者는 收載된 이야기 전부를 紹介할 수도 없고 하여 그 主題 또는 素材를 中心으로 간략히 類別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予言卜術:李土亭之函, 失名商人과 李鼎輔, 金緻(南谷)등 3篇.
② 人押交情 : 淸白柯, 定州牧使李慶流 등 4 篇
③ 戚臣과 <당0x5B39>論 : 英租外徒가 顯隆外家 및 李台重과 朴文秀의 論戰 등 2 篇.
④ 權勢의 濫杵 : 李秉晋과 副提學.⑤ 相思解願 : 李秉常을 사모한 老婆, 趙判書의 아들 등
2 篇.
⑥ 精沖豪氣 : 金若魯, 張武角과 命拓基둥 2 篇.
⑦ 忠逆分別 : 張武角
⑧ 科拳와夢兆 :李德重, 尹弼秉 등 2 篇
⑨ 妓助의 功 : 朴文秀와 童妓, 沈喜壽과 錦山紅 등 2 篇.
⑩ 妓女奪取 : 尹游
⑪ 雪克 朴文秀, 湖中士人, 등 2篇
⑫ 婚姻과 夢兆 : 鄭秀俊의 婚事와 端宗
⑬ 肢女出身貞夫人 : 李坤裨, 禹夏亨, 慮玉溪등 3篇
⑭ 人物選材 : 中汝哲과 李浣, 朴鐸과 李浣, 賦魁와 李浣 등 3篇.
⑮ 勤儉 : 許弘
? 忠婢解寃 : 鄭桐後
? 賤妾의 腎明 : 楊士彦, 安東崔進士 등2篇
? 臺臣의 疏·金鎔
? 詩渦 : 前彦吉
? 孝節:李遇芳, 英租, 金和順 湖中人之妻 등 4篇
1 滑宦 : 尹汲
2 爭力 : 李源
3 績善餘慶 : 柳鎭恒, 李光庭, 慶州鄭生 등 3 篇
4 奇人異事 : 禹之不, 柳西涯의 痴叔, 李如松을 訓誡한 老人, 金千鎰之夫人, 明遺民禪僧, 洪宇遠 둥 6篇
5 內侍妻의 性行 : 趙生과 內侍모두 51篇이 收錄되이 있는데 이 중에 제일 많은 것은 異人奇事의 6篇이다. 이 책중에서 한편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金鎔이라는 이는 英祖때 坮臣이다. 너무 성격이 곧아서 사람들이 鐵公이라고 불렀다. 宋淳明이 箕伯에 除授되어 辭朝하고 南門밖으로 나가는데 饑別者가 대단히 많았다. 때마침 金鎔도 그 자리에서 같이 술을 마시고있었는데 床이 나온지 얼마 안되어 宋이 자리의 客에게 내 고모댁이 이 근처에 있으니 잠깐 다녀오겠노라’하고 갔다가 곧 돌아와서는 떠나고자 하므로 客이 모두 作別하는데 金만은 正色하여 말하기를 令監은 떠나지 못합니다. 조금 천천히 떠나시오.하니 宋이 무슨 연고요?’하니 金이 令監은 主人인데 座上의 客을 살피지 않고出門하였으니 이는 賓主의 <체0x759C>禮에 큰 失禮요. 飮食을 내어 下隸들에게도 먹을 여유를 주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은 것은 곧 不連下情이니 어떻게 方伯으로서 백성을 사랑으로 다스리겠소? 내 疏를 올려 다스리도록 하겠소 ’하니 宋은 戱言인 줄 알고 그냥 길을 떠났다. 金은 집으로 돌아와서 곧 글을 닦아 疏를 올리되 ‘臣이 이번 새 箕伯을 私席에서 한 두 가지 처사를 보오니 크게 體例를 잃을 뿐 아니라 不通下情하오니 가히 그 임무를 맡길만 하지 못한가 합니다 ’하였다. 이에 임금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批答을 내리시니 宋은 겨우 高陽에 다달았다가 파면되어 돌아왔다. 옛날의 官箴은 이와 같았다"로 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의 敎訓과 反省의 的을 發見하게 된다.
먼저 長點으로 繼承承發展시켜야 할 것은 임금님의 눈이요, 귀요, 입이었던 臺諫官의 銳利한 洞察力과 그 上疏를 그대로 받아들여 批答한 國王의 處事 또한 오늘날의 代議 民主社會에서 본받을 바 많지 않나 싶은 데서 훌륭한 敎訓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是正되어야 할 反省의 標的은 罷淸職의 소리 그것이다. 앞에 든 이야기 중에서 宋淳明이 任地로 떠나기 위하여 南門外로 나왔는데 餞別客이 많이 나왔다. 그것은 宋의 厚德의 象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술대접을 하다가 私私로운 일로 자리를 좀 떴기로소니, 또 下隸들에게 欽食을 먹고 쉴 수 있는 配廬를 좀 못했기로소니 王命을 받들고 任地로 發程하는 新箕伯을 適材가 못된다고 上疏하여 卽刻으로 遞任시킨 臺官의 處事야말로 秋霜같은 臺官의 權勢를 百分 發揮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 淸職의 權勢에서 오는 幣害를 일찌기 茶山丁若鏞은 그의 “職官論”에서 “天下를 惡平治오? 去館閣臺諫之官이면 而天下治矣라 百姓을 惡乎安고? 去館閣臺諫之官이면 而百姓安矣리라. 君德을 惡乎正하여 百官을 惡乎率職하여 紀綱을 惡乎立하여 風俗을 惡乎敦하리오? 去館閣臺諫之官하면 而君德이 正하고 百官이 率職
하고 紀綱이 立하여 而風俗이 敦牟리라 "고 力說한 바 있다. 아마도 이 冊의 編著者는 丁茶山과 同時代에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같은 空氣와 음식에 의해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時代의 淸職를이 얼마나 否定的이고 踏步的이었는가 미루어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오늘날에 와서 돌이켜 보더라도 역시 그렇게 高談埈論만 일삼는 非實踐的 批評者는 社會發展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反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옛날 官箴으로서 특히 方伯으로 나갈 때에는 그適材與否를 여러 側面에서 살피어 選材를 했지만 實際治績을 보면 善政을 해서 下愛浚民하는 경우보다 苛斂誅求하여 烝民하는 守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念頭에 두고서 살피자는 것이다. 곧 다시 말해서 金鎔과 같은 臺官이 있으므로 해서 茶山과 같은 館閣臺諫들을 罷하자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라는 點에서 이 책에 실린 여러 內容들은 오늘날의 眼目으로 보면 새롭게 評價되어야 할 일들 많이 있다.
4. 價値
이 책에 실린 여러 內容들이 그렇게 時問的으로 오래된 것들은 아니나 어떤 意味로이든 일종의 敎育性을 지니고 있다. 가벼운 이야기로서 口傳되어 온 野談的 사실들을 모아놓은 이 책은 分明히 오늘날의 한 隨筆集이요 小說集이면서도 藝術을 위하여 創作된 文學이 아닌 口碑文學으로서의 實料的價値가 우선 제일 크다고 하겠다.
그밖에도 여기에 소개된 人物들 중에 새로운 號가 알려진 例도 있다. 金緻라는 이는 號를 南峰, 深谷이라고 하면서 慶尙道觀察使까지 지낸 이로 天文에 밝아서 深谷秘訣’이라는 著書까지 남진 文臣이다. 1577년(선조20)∼1625(인조3)간에 생존했었던 이 분은 이 책에 의하면南谷이라는 또 다른 號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 여기 실린 이야기에 담긴 그 時代의 民俗을 알 수도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文獻的 價値가 있다. 그 例로 指摘할수 있는 하나는 西浦 金萬重의 九雲夢’에서는 楊少游카 二妻六妾을 거느리고 幸福하게 살았다고 되어있는데 우리 나라에서 그린 例가 實際로 있었는지가 疑問이었는데 이 책에 있는 安東地方의 權進士는 性情이 嚴格하였는데 그 아들이 悖子였으며 그 며느리 또한 性格이 暴虐하여 奴婢를 罰할 때면 반드시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정도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權進士의 아들에게 小妾이 생겨 이를 嚴父께 承認받고자 小妾이 슬기를 내어 嚴父의 承諾을 얻었다. 嚴父는 또 그대로 智棋를 내어 며느리의 妬忌 않을 誓約을 文書로 단단히 받고 난 뒤 小妾도 正室의 며느리로 맞아들여 결국 權少年의 立場에서 볼 때는 正妻카 두 사람이 되었다는 內容이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의 許弘이라는 이의 勤儉節財 이야기는 곧 오늘날의 우리가 全國的으로 실시하고 있는‘새마을 운동’의 精神과 相通하는 바 小說創作의 素材로도 대단히 좋을 것으로 思料되어 ♀리 古典文學꽈 現代文學과의 傳統的 脈絡을 이어나가는데 훌륭한 賚料的 文歡이된다는 點에 큰 價値를 認定해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이 책에 대하여는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刊 ‘韓國圖書解題'에도 간략하게 解題된 바 있으나 藏書閣臟本의 이 책이 唯一本이라는 點을 생각할 때 우리 나라 口碑文學硏究의 資料文獻으로는 貴轝本이라는 사실을 確認해 보았다.
前逑한 論旨를 다시 要約해 보면 編著者는 姓各未詳 이기는 하나 英組∼純粗 年間에 生存쨌던 致仕의 退官老人이었을 可能性을 類推해 보았으며, 編著年代는 어쩌면 純祖 13年(1813)일 듯함을 證明해 보았다. 그 收錄內容은 51篇의 이야기에 文宗主妃인 顯德王后와 端宗의 母子가 가장 오래된 實在 人物이고 그 나머지 人物들은 대개가 英·正祖時代 人物이며 그 마음은 宣祖·仁祖· 孝宗代의 人物들로 거의가 奢名人士이며 50여명에 達한다. 主題와 素材는 現代小說로 繼承發展시킬 수 있는 좋은 資料가 많아서 文獻的 價値가 있으며, 이는 口碑文學硏究資料로도 훌륭한 價値를 지니고 있음을 確認하였다.
끝으로 一言을 더 添加한다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隨筆과 小說的인 것이 함께 실려 있으나 그 量的인 면에서 볼 때에는 역시 隨筆集으로 봄이 妥當하리라고 思料 된다는 點을 밝혀 둔다.
<弘益大學校 敎授>

부가정보

選諺編
崔康賢
〔編者未詳〕. 寫本. [純祖 13(1813)寫〕.
1冊(57張)無郭.無絲欄. 牛茨 16付 20字. 21.2×26.5㎝ 線裝.
表紙裏面識記:發西(1813) 四月 日書.
印:李王家圖書之章.
紙質:楮紙.
1.. 머리에
이 책은 책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諺”을 가려 뽑아 모은 것이다.
諺이라면 우리 국어사전에 는 그 語意가 소개되지 않고 있으나 漢字로서의 字義를 살피면 ① 伍言의 뜻, ②俚俗으로 불리워지는 雜歌,③口語의 뜻 등 몇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伍言의 뜻으로 보는 것이 가장 的當할듯이 생각된다.
이 傳言은 곧 口傳되어 云해오는 이야기이므로 이는 마땅히 口碑文學의 領域으로 歸虜되어야 한다.
이제 筆者는 간략하게나마 “選諺篇을 解題하여 口碑文字硏究者들에게 하나의 資料로 바치고자 한다.
2.著者 및 年代
이 책에는 어디에도 編著者의 이름이나 字<호0x7B43> 어느 것도 明示된 것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다만 실려진 이야기들의 內容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상당한 벼슬살이를 하고 隱退한 退任官員의 男子가 아닐까 類推된다는 点과 그 編述年代가 毓佯宮의 이야기와 正租 云云의 紀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純租代에 틀림없음을 確認할 수가 있을 뿐이다. 그 구체적인 根據로는이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人物들 중에서 姓名 三字가 다 記栽된 사람은 거의가 著名人士로 대부분 그 生沒年代까지도 알 수가 있다. 生卒年代를 알 수 있는 50여명의 人上中 最近世에 沒한 이는 科擧前의 夢兆로 大科에 及第했다는 이야기의 主人公인 抱川人 尹參利弼秉公으로 이는 1730년(영조 6)에 출생하여 1765년(영조 41)의 司馬試를 거쳐 1767년(영조 43)에 庭試文科를 乙科로 及第하여 江原道觀察使, 同知中柩府事를 역임하고 1810년(순조 10)에 卒하였다.
* 그림 18
여기에다 이 冊의 表紙裏面에 記錄된“酉西四月 日書라는 年記와 純租 以後의 事曳이 內容으로 실려 있지 않는 점 등으로 推察할 때 이 冊의 編著作의 年代는 모름지기 1813년(순조 13)이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藏書閣編截書閣囚書 韓國板總目錄에는 肅宗 19(1639)(1650) 以後寫라고 되어 있음〕
또 編著者도 비록 姓名은 잃었지만 身分에 대하여는致仕한 老人으로 英, 正祖時代에서 純租代까지 生存했던男子인 것이 거듭 確實하다. 그리고 좀 억지이기는 하지만 編者의 姓만이라도 더 推察해 본다면 이 冊에 記錄된 많은 人名中 謚<호0x7B43>만을 두개의 話題에서 共通되케 記錄하고 있는 “張武爭公”과 編著者와는 어떤 持別한 開係가 있는 것이나 아닌지 疑問이 가기도 한다.
張武肅公은 張鵬翼(? ∼1735)이니 1699년(숙종25에 武科를 及第한 武臣으로서 刑曺判書까지를 역임한 사람이다. 옛날 우리 先人들이 自己의 生考租의 諱字를 부르지 않은 사실과 결부해서 생각할 때 혹 이 冊의 編者는 張氏
가 아닐까 臆度해 보기도 한다.
3. 內容
이 冊에는 目次도 小題目도 없다.
이야기마다 새로 줄을 시작하여 別行으로 記錄한 이외에는 아무 區別이 없으므로 筆者는 收載된 이야기 전부를 紹介할 수도 없고 하여 그 主題 또는 素材를 中心으로 간략히 類別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予言卜術:李土亭之函, 失名商人과 李鼎輔, 金緻(南谷)등 3篇.
② 人押交情 : 淸白柯, 定州牧使李慶流 등 4 篇
③ 戚臣과 <당0x5B39>論 : 英租外徒가 顯隆外家 및 李台重과 朴文秀의 論戰 등 2 篇.
④ 權勢의 濫杵 : 李秉晋과 副提學.⑤ 相思解願 : 李秉常을 사모한 老婆, 趙判書의 아들 등
2 篇.
⑥ 精沖豪氣 : 金若魯, 張武角과 命拓基둥 2 篇.
⑦ 忠逆分別 : 張武角
⑧ 科拳와夢兆 :李德重, 尹弼秉 등 2 篇
⑨ 妓助의 功 : 朴文秀와 童妓, 沈喜壽과 錦山紅 등 2 篇.
⑩ 妓女奪取 : 尹游
⑪ 雪克 朴文秀, 湖中士人, 등 2篇
⑫ 婚姻과 夢兆 : 鄭秀俊의 婚事와 端宗
⑬ 肢女出身貞夫人 : 李坤裨, 禹夏亨, 慮玉溪등 3篇
⑭ 人物選材 : 中汝哲과 李浣, 朴鐸과 李浣, 賦魁와 李浣 등 3篇.
⑮ 勤儉 : 許弘
? 忠婢解寃 : 鄭桐後
? 賤妾의 腎明 : 楊士彦, 安東崔進士 등2篇
? 臺臣의 疏·金鎔
? 詩渦 : 前彦吉
? 孝節:李遇芳, 英租, 金和順 湖中人之妻 등 4篇
1 滑宦 : 尹汲
2 爭力 : 李源
3 績善餘慶 : 柳鎭恒, 李光庭, 慶州鄭生 등 3 篇
4 奇人異事 : 禹之不, 柳西涯의 痴叔, 李如松을 訓誡한 老人, 金千鎰之夫人, 明遺民禪僧, 洪宇遠 둥 6篇
5 內侍妻의 性行 : 趙生과 內侍모두 51篇이 收錄되이 있는데 이 중에 제일 많은 것은 異人奇事의 6篇이다. 이 책중에서 한편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金鎔이라는 이는 英祖때 坮臣이다. 너무 성격이 곧아서 사람들이 鐵公이라고 불렀다. 宋淳明이 箕伯에 除授되어 辭朝하고 南門밖으로 나가는데 饑別者가 대단히 많았다. 때마침 金鎔도 그 자리에서 같이 술을 마시고있었는데 床이 나온지 얼마 안되어 宋이 자리의 客에게 내 고모댁이 이 근처에 있으니 잠깐 다녀오겠노라’하고 갔다가 곧 돌아와서는 떠나고자 하므로 客이 모두 作別하는데 金만은 正色하여 말하기를 令監은 떠나지 못합니다. 조금 천천히 떠나시오.하니 宋이 무슨 연고요?’하니 金이 令監은 主人인데 座上의 客을 살피지 않고出門하였으니 이는 賓主의 <체0x759C>禮에 큰 失禮요. 飮食을 내어 下隸들에게도 먹을 여유를 주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은 것은 곧 不連下情이니 어떻게 方伯으로서 백성을 사랑으로 다스리겠소? 내 疏를 올려 다스리도록 하겠소 ’하니 宋은 戱言인 줄 알고 그냥 길을 떠났다. 金은 집으로 돌아와서 곧 글을 닦아 疏를 올리되 ‘臣이 이번 새 箕伯을 私席에서 한 두 가지 처사를 보오니 크게 體例를 잃을 뿐 아니라 不通下情하오니 가히 그 임무를 맡길만 하지 못한가 합니다 ’하였다. 이에 임금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批答을 내리시니 宋은 겨우 高陽에 다달았다가 파면되어 돌아왔다. 옛날의 官箴은 이와 같았다"로 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의 敎訓과 反省의 的을 發見하게 된다.
먼저 長點으로 繼承承發展시켜야 할 것은 임금님의 눈이요, 귀요, 입이었던 臺諫官의 銳利한 洞察力과 그 上疏를 그대로 받아들여 批答한 國王의 處事 또한 오늘날의 代議 民主社會에서 본받을 바 많지 않나 싶은 데서 훌륭한 敎訓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是正되어야 할 反省의 標的은 罷淸職의 소리 그것이다. 앞에 든 이야기 중에서 宋淳明이 任地로 떠나기 위하여 南門外로 나왔는데 餞別客이 많이 나왔다. 그것은 宋의 厚德의 象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술대접을 하다가 私私로운 일로 자리를 좀 떴기로소니, 또 下隸들에게 欽食을 먹고 쉴 수 있는 配廬를 좀 못했기로소니 王命을 받들고 任地로 發程하는 新箕伯을 適材가 못된다고 上疏하여 卽刻으로 遞任시킨 臺官의 處事야말로 秋霜같은 臺官의 權勢를 百分 發揮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 淸職의 權勢에서 오는 幣害를 일찌기 茶山丁若鏞은 그의 “職官論”에서 “天下를 惡平治오? 去館閣臺諫之官이면 而天下治矣라 百姓을 惡乎安고? 去館閣臺諫之官이면 而百姓安矣리라. 君德을 惡乎正하여 百官을 惡乎率職하여 紀綱을 惡乎立하여 風俗을 惡乎敦하리오? 去館閣臺諫之官하면 而君德이 正하고 百官이 率職
하고 紀綱이 立하여 而風俗이 敦牟리라 "고 力說한 바 있다. 아마도 이 冊의 編著者는 丁茶山과 同時代에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같은 空氣와 음식에 의해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時代의 淸職를이 얼마나 否定的이고 踏步的이었는가 미루어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오늘날에 와서 돌이켜 보더라도 역시 그렇게 高談埈論만 일삼는 非實踐的 批評者는 社會發展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反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옛날 官箴으로서 특히 方伯으로 나갈 때에는 그適材與否를 여러 側面에서 살피어 選材를 했지만 實際治績을 보면 善政을 해서 下愛浚民하는 경우보다 苛斂誅求하여 烝民하는 守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念頭에 두고서 살피자는 것이다. 곧 다시 말해서 金鎔과 같은 臺官이 있으므로 해서 茶山과 같은 館閣臺諫들을 罷하자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라는 點에서 이 책에 실린 여러 內容들은 오늘날의 眼目으로 보면 새롭게 評價되어야 할 일들 많이 있다.
4. 價値
이 책에 실린 여러 內容들이 그렇게 時問的으로 오래된 것들은 아니나 어떤 意味로이든 일종의 敎育性을 지니고 있다. 가벼운 이야기로서 口傳되어 온 野談的 사실들을 모아놓은 이 책은 分明히 오늘날의 한 隨筆集이요 小說集이면서도 藝術을 위하여 創作된 文學이 아닌 口碑文學으로서의 實料的價値가 우선 제일 크다고 하겠다.
그밖에도 여기에 소개된 人物들 중에 새로운 號가 알려진 例도 있다. 金緻라는 이는 號를 南峰, 深谷이라고 하면서 慶尙道觀察使까지 지낸 이로 天文에 밝아서 深谷秘訣’이라는 著書까지 남진 文臣이다. 1577년(선조20)∼1625(인조3)간에 생존했었던 이 분은 이 책에 의하면南谷이라는 또 다른 號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 여기 실린 이야기에 담긴 그 時代의 民俗을 알 수도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文獻的 價値가 있다. 그 例로 指摘할수 있는 하나는 西浦 金萬重의 九雲夢’에서는 楊少游카 二妻六妾을 거느리고 幸福하게 살았다고 되어있는데 우리 나라에서 그린 例가 實際로 있었는지가 疑問이었는데 이 책에 있는 安東地方의 權進士는 性情이 嚴格하였는데 그 아들이 悖子였으며 그 며느리 또한 性格이 暴虐하여 奴婢를 罰할 때면 반드시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정도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權進士의 아들에게 小妾이 생겨 이를 嚴父께 承認받고자 小妾이 슬기를 내어 嚴父의 承諾을 얻었다. 嚴父는 또 그대로 智棋를 내어 며느리의 妬忌 않을 誓約을 文書로 단단히 받고 난 뒤 小妾도 正室의 며느리로 맞아들여 결국 權少年의 立場에서 볼 때는 正妻카 두 사람이 되었다는 內容이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의 許弘이라는 이의 勤儉節財 이야기는 곧 오늘날의 우리가 全國的으로 실시하고 있는‘새마을 운동’의 精神과 相通하는 바 小說創作의 素材로도 대단히 좋을 것으로 思料되어 ♀리 古典文學꽈 現代文學과의 傳統的 脈絡을 이어나가는데 훌륭한 賚料的 文歡이된다는 點에 큰 價値를 認定해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이 책에 대하여는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刊 ‘韓國圖書解題'에도 간략하게 解題된 바 있으나 藏書閣臟本의 이 책이 唯一本이라는 點을 생각할 때 우리 나라 口碑文學硏究의 資料文獻으로는 貴轝本이라는 사실을 確認해 보았다.
前逑한 論旨를 다시 要約해 보면 編著者는 姓各未詳 이기는 하나 英組∼純粗 年間에 生存쨌던 致仕의 退官老人이었을 可能性을 類推해 보았으며, 編著年代는 어쩌면 純祖 13年(1813)일 듯함을 證明해 보았다. 그 收錄內容은 51篇의 이야기에 文宗主妃인 顯德王后와 端宗의 母子가 가장 오래된 實在 人物이고 그 나머지 人物들은 대개가 英·正祖時代 人物이며 그 마음은 宣祖·仁祖· 孝宗代의 人物들로 거의가 奢名人士이며 50여명에 達한다. 主題와 素材는 現代小說로 繼承發展시킬 수 있는 좋은 資料가 많아서 文獻的 價値가 있으며, 이는 口碑文學硏究資料로도 훌륭한 價値를 지니고 있음을 確認하였다.
끝으로 一言을 더 添加한다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隨筆과 小說的인 것이 함께 실려 있으나 그 量的인 면에서 볼 때에는 역시 隨筆集으로 봄이 妥當하리라고 思料 된다는 點을 밝혀 둔다.
<弘益大學校 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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