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가 작동하지 않으면 사이트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체

  • 홈
  • slash
  • 소장자료검색
  • slash
  • 전체
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09
서명 / 저자 : 講書院日錄/ 朴聖源(朝鮮) 編
개인저자 : 박성원 (조선)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 英祖 35 - 37(1759 - 1761) 寫
형태사항 : 線裝, 不分卷 4冊: 四周雙邊, 半郭 20.3 × 13.5cm, 烏絲欄, 半葉 10行 20字, 註雙行, 上黑魚尾; 30.6 × 20cm
총서사항 : 內容 : 正祖潛邸(王世孫)時의 講義를 日記體로 收錄한 책임
일반주기 : 서제: 表題 : 朴諭善講義
卷首 : 己卯(1759)八月 … 朴聖源(1697 - 1800)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正祖潛邸(王世孫)時의 講義를 日記體로 收錄한 책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3-1
 

태그

입력된 태그 정보가 없습니다. 태그추가

소장자료

서가에없는도서신청서가에없는도서신청 예약예약 희망도서신청희망도서신청 소장위치출력출력

부가정보

講書院 日錄 (正祖大王 王世孫時)
全承吉
朴聖源(1967∼1782) 等撰. 寫本 英祖 37(1761) 頃 寫. 4卷4冊. 半葉10行20字, 註雙行. 30.5×20.3cm. 線裝 印 : 李王家圖書之章.
紙寶 : 楮紙.
이 臺本은 朝鮮王朝의 歷代王 中에서 學問이 가장 卓越顯著한 正祖大王이 王世孫으로 沖年時 八歲 ∼ 十歲 卽 英祖三十五年(1759) 八月부터 同 三十七年(1761) 十二月까지 約 二年半동안 講書院(謹獨閣)에 臨講하신 日錄으로서 侍講을 受命한 講官은 左諭善(從二品∼正三品) 一人 徐志修, 右諭善(從二品) 一人 金陽澤, 兼右翊善(從四品) 一人 沈履之, 左翊善(從四品 )二人 朴聖源, 李仁培, 右贊讀(從六品) 三人 李<미0x6147>, 金普淳, 金鍾正, 左從史(從七品) 五人 宋翼彦, 李元佯, 金仁大, 李瀚, 尹得毅, 右從史(從七品) 四人 徐命瑞, 洪樂仁, 李得水, 李復氷, 左長史(從六品) 二人 趙載翰, 洪應辰, 右長史(從六品) 二人 吳載純, 金履復 등 21人의 講官中 左翊善 朴聖源은 常任이고 其他는 交番하여 侍講하였으며, 이 職制는 英祖朝에서 特히 王世孫의 교육을 爲하여 新設한 制度이었다.
그리하여 敬虔하고 溫恭한 雰圍氣 속에서 講官의 態度가 鄭重하고 王世係의 姿勢도 眞摯하게 臨講하여 講官各自가 지닌 모든 學識과 精誠을 다하여 敎導함으로 그에서 이루어지는 人格의 陶治와 學識의 硏磨와 問答의 用語 禮節등 學習의 여러 모습을 230餘年이 지난 오늘의
우리들이 엿볼 수 있어 感銘깊게 받아 드릴 點과 改善해야 할 바가 많아 좋은 參考資料가 될까하여 다음과 같이 그 實例의 若干을 把出하여 解釋해 본다.
例1, 元講 小學外篇, 溫講 小學內篇(元講은 講習進行에 따른 順次講이고, 溫講은 復習 質疑應答을 하는 것임)
己卯(英祖 35, 1759) 八月初九日 朴聖源이 左翊善의 職責으로 右從史 徐命瑞와 함께 처음 王世係을 引見하고 謹獨閣에서 講學을 하였음. 命珤가 白(사뢰움)하기를 이 翊善은 평소부터 經學에 밝아 今番에 大朝(王世子가 攝政中의 王을 말함이니 英祖를 指稱함)의 特命으로 進講을 久任하게 되온 말씀 詳聽하셨을 줄로 아뢰옵니다.
世孫이 小學의 前日에 受音(音만을 배운 것)한 것을 桶한 다음 聖源이 새로 受音을 읽고, 世孫이 또 聖源의 句節마다의 解釋을 들은 다음에 聖源이 묻기를 閣下(王世孫을 敬稱함) 잘 記憶하십니까 「敎小兒」 아래에 무엇이라 말하였읍니까 하니, 世係이 答曰 「先要安詳恭敬」이라 하셨고 또 묻기를 「今世 學不講」 아래에 무슨 말이 있읍니까 하니, 答曰 「男女從幼便驕惰」라 하시니, 聖源이 사뢰기를 반드시 兒時부터 恭敬에 行習된 然後에 可히 驕惰의 患이 없을 것이니 이 어찌 閣下가 可히 힘쓸 바
*그림 4
가 아니리까, 閭巷의 小兒도 부모가 사랑하면 騈伶한 마음이 생기기 쉽거든 하물며 帝王家의 尊貴가 己極하시니 더욱 이러한 患이 있기 쉬운지라 自身을 낮추고 他人을 높이며, 저 사람을 멸시하고 自己를 뒤에 한다는 이러한 句語는 더욱 着念하심이 마땅합니다... 또 사뢰기를 小人(聖源의 自稱)이 講席에 新入하여 閣下의 前日受音하신 것을 講讀無疑하시고 文義에도 大體로 不誤하시므로 牲으로 通告합니다. (前日에 受音한 것을 通過한다는 말임) 그러나 讀書한 法이 文義를 主로 하기 때문에 만일 그것이 明曉치 않으면 誦은 비록 完熟하니라
도 將進에 無益합니다. 仰問할 즈음에 卽答을 하지 못하고 艱澁함이 많은 것은 洞然曉解하지 못한 所致이니, 此後에 만약 다시 이러하시면 無理하게 굳이 通姓을 드리지 않기로 敢히 預白합니다. 또 사뢰기를 閭巷(士庶人의 집을 말함)에서 小兒를 가르치는 法은 반드시 곁에
앉아서 자주 일러주며 通曉한 뒤에 그치는 것인데, 이제 閣下는 그렇지 못하여 三日에 一次씩 講을 하기 때문에
今日 小人等이 비록 이렇게 文義를 詳陳하나 閣下가 入內하신 後 安保하시어 그것을 持守하여 不忘하시겠읍니까, 만약 疑晦하신 것이 있으시거든 반드시 때때로 召見하여 俯詢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答曰 唯(應答하는소리).
例2, 同月二十三日 別召見(前日에 사뢰운 바에 좇아서 부르시었음).
聖源의 獨入하니 世係이 下言하시기를 前日에 受音한 文義를 다시 詳聞코자 하노라 하시므로 聖源이 「節孝」本文에서부터 다시 逐句解釋을 사뢰고, 또 사뢰기를 節孝의 目標를 訓學하는 者들이 말하기를 父母가 하고자 하는 바를 잘 奉養하고, 그 地方사람들에게 熒譽롭게 할 따름이라 하였으나 閣下의 處位에서는 大小朝(王, 王世子를 幷稱)께서 閣下에 期望하심이 어떠하겠읍니까, 閣下가 君子가 되시면 一國의 億兆臣民의 榮幸과 慶<변0x629F>이 比할 바 없을 것이니 鄕人을 滎譽롭게 할 뿐이겠읍니까, 그러하오니 閣下가 어찌 可히 君子가 되고자 하시지 않겠읍니까, 君子가 되는 道理는 아래의 本文에 말한 바에 不過함이니 그 善한 바를 말하며, 그 善한 바를 行하고 善한 바를 생각함으로써 所謂 善이라는 것은 可히 他에서 求할 것이 아니라 단지 今日 읽으신 「小學一書」에 있으니 小學에 있는 말을 말하며 行하여 생각하면 可히 君子가 되실 것입니다. 이것은 甚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胡文定의 戒子書」에 반드시 明道 希文을 말한 것은 明道는 반드시 聖人을 배우고자 함이오, 希文은 天下로써 自己의 任務로 함이니 그 뜻이 큰지라. 尋常의 四庶도 오히려 이러한 立志를 하는데, 하물며 帝土의 學을 어찌 聖人으로 써 天下爲任을 自期하지 않으시겠읍니까. 立志를 더욱 마땅히 이와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人子가 그 어버이에 孝하고자하는 마음은 사람마다 같으며 古今이 다르지 않읍니다. 子夏(孔子弟子)가 말하기를 父母를 섬기는데 그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니 子路(孔子의 弟子)의 負米는 힘을 다하여 괴로움을 잊어버리고 한 것이라. 誠孝가 至穰하지 않으면 能히 이와 같이 하리까. 黃香의 扇枕한 일 같은 것은 진실로 사람마다 可히 행할 수 있는 것이며, 負米같은것은 비록 尊富한 사람은 반드시 본떠서 할 바는 아니나. 진실로 人子가 事親하는 精誠이 마땅히 이와 같으면 미루어他事에도 또한 可히 써 至極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飮食供奉은 孝道의 末節이나 위의 「父母欲之」一句로 써 그것을 反復하여 仰白하였읍니다. 父母의 하고자 하는 바에 어기지 않는 것이 孝의 大者입니다. 閣下는 반드시 大小朝의 마음으로 써 마음을 삼으시어 或 謹身을 잘 하시지 못하여 疾.患을 이루시거나 或 讀書를 게을리 하여 근심을 끼치거나 이러한 일을 念念不忘하시고 謹身 勤讀하시면 閣下가 오늘의 하실 孝道의 큼이 이보다 더함이 없을 것입니다. 答曰 唯
例3. 左諭善 徐志修 右從司 徐命瑞와 더불어 八見하여 새로 受音을 小學의 「汝勉之哉」에서부터 「右廣立救」까지 하고 逐句解稗을 마치고, 志修가 「貧窮患難」句로써 生民艱苦의 狀況을 備陳하고, 聖源이 말하기를 人慾이 飮食과 男女關係보다 큼이 없기 때문에 비록 禹湯의 聖으로도 반드시 이에 삼가하였는데 하물며 聖人만 못한 者이리오. 閣下는 바야흐로 沖年(어린 나이)에 있으므로 男女의 慾은 아직 可히 말하지 않으나 마땅히 삼가 할 바는 飮食이라, 飮食을 不節하면 가장 病이 나기 쉽고 또 嗜慾이 날로 자라면 그 害가 酒池肉林에 이를 것이니 可히 두렵지 않읍니까, 飮食이 비록 적은 일이나 삼가 하면 禹湯같은 聖人이 될 것이오, 삼가 하지 않으면 桀, 紂와 같은 惡이 되는 것이니 그 기틀이 이와 같으므로 이것이 그 所謂 疎忽히 하지 못함이라. 閣下가 飮食에 對하여 工力을 加하고자 하시면 「小學敬身篇」에 이미 備言하였으니 잘 記得하심이 가하니 世孫日 「飮食의 節」을 밝힌지라, 聖源이 對曰 그렇읍니다. 敬身篇中에 不食의 모든 不字가 「母放飯」의 諸母 (無) 字이라 다 이 禁戒와 뜻이오니 매양 飮食을 當하여 반드시 이런 말을 생각하시어 경계하시면 이것이 正히 切要한 工夫입니다.
또 사뢰기를 古靈의 敎民之言이 人倫은 男女有別아님이 없고, 또 「明倫篇夫婦條」에 鏞言하였읍니다만은 <충0x76D3>年의 男女有別之意는 또 「小學立敎篇」첫머리 內則에 있는 것을 閣下는 能히 記得하십니까 世係曰 「七年男女 不同席 不共食」이라 하시니, 聖源이 對曰 옳읍니다. 이것이 바로 閣下가 이와 같이 用工하실 때 입니다. 小學의 敎는 豫備로 써 爲主함으로 비록 男女로 써 말하되 情慾이 未生之前이므로 반드시 有別로 써 가르침이라. 子弟가 배움이 있다함은 그 배움이 별난 일이 아니라 小學에서 말한 바로써 몸에 行하면 이것이 배움이 되는 것이라, 陳先生이 庶民子弟를 가르침에도 이러한 말로 하였읍니다. 하물며 帝王家의 子弟는 責任이 至大한지라, 不學하고서 能히 사람이 사람되며 나라가 나라되겠읍니까,... 聖源이 사뢰기를 陳先生의 許多한 말이 다 이 몸소 實行하는 것이기 때문에 백성을 가르쳐서 백성이 좇았으나 만약에 躬行의 實이 없이 徒然히 말로써만 가르치면 백성이 반드시 좇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로써 말하면 一國의 백성을 가르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스스로 力行해야 할 것
이니 此意도 또한 可히 알지 아니치 못할 것입니다 하니 아울러 答曰 唯하다.
例4. 九月初二日 別召見(二日마다 -次는 定式入見이고, 그밖에 臨時召見을 말함).
처음 右從史 徐命瑞와 同入...聖源이 前日에 受音한 것을 다시 逐句釋白하고 또 말하기를 비록 嘗暳(舜의 아버지 頑冥한 사람)도 本性은 善하나 그 後妻에 蠱惑되어서 舜을 죽이고자 한 것은 物慾에 가리워서 그 常性을 失함이라, 그 本性이 善하기 때문에 舜의 至誠으로 섬기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으니 이로 써 말하면 天下에 어찌 慈愛하지 않는 父母가 있으리오, 父母로 하여금 慈愛하지 않는 것은 子息이 그 孝道를 다하지 못함이라 만약 舜으로 하여금 끝까지 臀暇의 기뻐함을 이루지 못하였으면 舜도 또한 大孝를 얻지 못하였을 것이며 어찌 써 大聖이라 이르리오. ...또 사뢰기를 事親과 奉祭를 어찌 可히 사람을 시켜서 하리까, 閣下가 이미 첫卷의 明倫篇을 읽으셨읍니다. 「鷄初鳴 咸盟嗽」로부터 그 아래로 여러 가지 事親의 節과 祭祀時의 致齋 散齋와 「思其居處, 思其笑語」와 「見乎其位 聞乎容聲」等의 語句는 다 自身이 할 일이오, 他人으로 써 代行할 것이 아니라 무릇 아들이 어버이를 섬김에 마땅히 그 職分을 다하여 비록 勞苦로운 일이라도 스스로가 괴로워하지 않고 비록 아랫사람이 많더라도 代行하지 않는 것은 무슨 理由인가, 이와 같이 아니하면 스스로가 그 誠孝를 이룸이 없기 때문이라, 祭祀같은 일은 산 사람에게 酒食을 갖추어놓고 講해와서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 祭祀받을 분이 와서 계시는 것 같은 精誠을 다해서 祖考의 歆享을 이루는 것이니 이것은 더욱이 어찌 다른 사람으로 代行할 수 있으리까, 孔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直接 祭祀하지 않으면 祭祀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셨읍니다 所謂報本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말씀드리면, 내 몸은 卽 父母가 生育하였고, 父母는 租父母에서 낳았고, 祖父母는 祖祖父母에서 낳았으므로 차례차례로 거슬러 올라가 始祖에 이르기 때문에 聖人이 祭祀를 制定하여 써 先祖에 미치니 이를 報本이라 이르는 것이다. 士大夫家에서 或 三代 或 四代를 祭祀하고 墓에는 비록 代가 멀어도 歲祭를 하고 國家에서는 代數와 더불어 豊殺하게 함이 또한 私家와 不同하나 다 써 報本하는 바라, 講을 그치고 仰問하기를 夜讀을 하십니까 하니, 잠깐있다가 答하시기를 不讀이라 하시니, 聖源이 말하기를 讀하시면 讀, 不讀하시면 不讀이라 하심이 正直한 道理입니다. 閣下가 不讀이라 答하신것은 그 欺瞞하기 않음을 可히 나타내시니 진실로 좋으십니다. 그러나 昨日에 講官이 夜讀하시기를 講하여 閣下가 許諾하셨는데 어찌하여 不讀하셨읍니까, 밤이 점차 길어가니 지금부터 始作하여 비록 조금씩이라도 읽으심이 긴 밤에 全廢하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하니 答曰依, 또 묻기를 讀後에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하니 寫字하신다 함으로 寫字를 아니할 때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하니 答曰 遊라 하심으로 聖源曰 讀書하시다 싫으면 寫字하고, 寫字하다가 싫으면 讀書하여 浪遊함이 없으면 진실로 좋으나, 비록 遊時가 있더라도 書冊가운데에서 놀도록 하여 雜된 일은 하지 마시오하니 答曰 唯,
例5, +-日 左從史 宋翼彦과 더불어 入見하고 前日에 受音한 「宋廬陵王」으로부터 「習以爲前悲夫」에 이르러, 聖源이 말하기를 漢昌邑土 以下로 湖南楚王에 이르기까지 그 居喪한 동안에 肉食을 하여 누구나 敗俗埈禮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그 中에서도 隋煬帝같은 사람은 肉食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게 하기爲하여 더욱 巧惡한 方法으로 고기를 竹筒에 넣고 密蠟으로 때워서 들여갔으니 自己는 이렇게 秘密히 하여 아무도 알지 못하려니 하였으나 至今에 書冊에 기록되어 萬古에 傅해 오는지라, 모든 不善한 일이 始初에는 사람의 눈을 가리우나 終末에는 반드시 그 事實이 綻落되니 甚히 두려운지라, 또 煬帝의 心術이 이같이 巧惡했기 때문에 畢竟에는 아비를 죽이는 大逆이 되었으니 더욱 어찌 크게 두렵지 않으리까, 또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別見時는 小學內篇 首章부터 다시 溫講하겠읍니다. 緊要한 文義가 이에 많이 있으니 자주 召問하심을 願하오며 반드시 二日-次를 定式으로 하지 않음이 좋겠습니다 하니 答曰 唯.
위의 例는 正祖大王이 八歲되시는 己卯八月부터 講習한 小學中의 一部를 拓庶出 解說하였고 다음은 九歲(庚辰年)六月二十五日부터 大學에 진학하시었으므로 다음에 繼續하기로 한다.
例6, 庚辰年六月二十五日 左從史 李瀚과 함께 入講하여 小學의 前出受音한 것의 文義를 仰問한 마음 「大學序」의 大「學之書」로부터 「所由設也」까지 講하고 먼저 「大學章句序」의 議를 사뢰기를 中庸과 大學은 禮記中에 있는 文字를 統一한 것으로 程子가 처음 分章柝句하여 中庸은 二十三章, 大學은 十一 章으로 하고 章內의 一文을 一句로 하였고, 序는 朱子가 大學을 가르치는 法과 程子의 次序 簡編한것과 自己가, 註解한 意義를 두루 陳述한 것이니 「小學에 書題」가 있는 것과 같읍니다. 또 사뢰기를 大朝께서 解釋과 註를 除하라 命하셨고, 또 이 序欠에 諺釋이 없으므로 小人이 字字마다 旨義를 명확히 알 것입니다 하니, 答曰 唯. 또 大義로 써 사뢰기를 天이 주신 性稟이 古今이나 智愚의 區別없이 다 같고, 같지 않
은 것은 氣質이오, 氣質은 可히 써 變化하여 愚者로 하여금 可히 智者가 되게 하며 不肖者로 하여금 可히 賢者가 되게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하늘이 仁義禮智의 性을 주었으나 直接으로 가르치지는 못하기 때문에 聖人으로 써 君師를 삼아서 가르치시고 한사람이 能히 天下를
두루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에 官制를 設하여 써 가르치니 「大學의 敎人」하는 그 大意가 이와 같으며 天이 반드시 命한다는 것은 天이 言語로 命함이 아니라, 聖人이 있으면 스스로 君師의 責任이 있게되니 이러함이 天이 命하는 것입니다.
또 사뢰기를 上古聖人은 반드시 君師가 되기 때문에 伏羲 神農 黃帝 堯舜온 다 聖으로 써 聖에 傳하였으나 後世에는 그렇지 아니하여 天下를 子孫에 傳하니 어찌 반드시 다 聖賢일 수 있겠읍니까, 오직 聖賢의 君이라야 可히 써 敎人할 것이나 君이 聖賢이 아니면 敎道가 廢하는지라. 將次 어찌하리오, 그 將次 내가 聖賢이 아니면 어찌 써 君師의 責任을 다하여 群下人의 그 性을 失한 者를 越視할 수 있으리오. 이러한 곳을 마땅히 深思할 것입니다. 閣下의 自念에 어찌하시면 처음에는 비록 聖賢이 아니라도 마침내 可히 聖賢이 되어 君師의 責任을 不失하겠읍니까 하니, 答曰 善을 하면 可히 그리되리라 하시니, 사뢰기를 진실로 善입니다. 그 善의 工夫가 學問에 있으니 學問을 하시면 能히 나의 氣質을 變化하여 그 本性에 復歸케 됨으로써 敎人함에도 또한 하여금 變化하여 그 性을 回復시키게 되는 것이라, 이것이 「大學中의 最大義理」이니 明知하심을 願합니다하니 答曰 唯. 또 사뢰기를 古者에는 八歲에 小學에 들어가서 十五歲에 大學에 들어가는 것은 대개 그 동안에 小學의 道를 다 行하여 聖人氣質을 己成하고자 함이라, 만약에 단지 읽기만 한다면 小學-部를 어찌 이같이 오랫동안 읽겠읍니까, 이제 閣下의 나이 十歲에 미치지 많아 겨우 小學을 畢하시고 곧 이어 大學을 하심은 古昔의 敎法과 다른지라 그렇기 때문에 元講은 비록 大學으로 써 하나 間間히 小學으로 써 溫繹함은 聖敦가 極히 小學에 講習을 더하여서 聖人氣質을 이루도록하라 하심입니다 하니 答日 唯.
例7, 七月初五日 右長史 洪應辰과 더불어 入講 前日에 受音한 「目是以來」 로 부터 「壞亂極矣」에 止하고 逐字하여 文義릍 仰問하고 다시 사뢰기를 마치고, 새로 受音을 「天連」으로부터 「朱喜序」에 止하고 反復하여 解釋하여 사뢰고, 또 말하기를 이 序는 비록 길고 많으나 그 中의 大旨는 天이 仁義禮智의 性으로 써 사람에 주었으나 氣稟이 같지 않아 그 本性을 잃은 者가 있기 때문에 在上者가 가르쳐서 그 性을 回復시킬 따름이라, 또 말하기를 三代以上은 聖人이 君師의 位에 있었기 때문에 가르치는 道를 다하였고, 三代以下는 聖人이 君師의 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르치는 道를 다하지 못한지라, 그러나 聖人이 내가 君師가 아니니 어찌 敎人을 일삼으랴 하시지 않고 반드시 先王의 法으로 써 사람들에 誦傳하여써 萬世를 가르치시니 이는 聖人의 至公至仁한 마음이라, 또 말하기를 大學一書의 窮極이 治國平天下에 이르므로 在下人民들은 關與할 바가 없을 것 같으나 人君이 獨自로는 治干하지 못하고 반드시 賢臣을 얻어서 함께 하는 것이니 선비가 平素에 大學을 講習하여 治平의 道를 알지 못하면 一朝에 職位를 얻게되면 어찌 써 治平의 大業을 贊成하리오. 그렇기 때문에 이 序文끝에 「國家의 化民成俗」의 意와 學者의 「修己治人」하는 方法의 두 句語로 써 幷立하여 結論을 지은 것이라.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或 大學으로 써 단지 王이나 배울 일이지 學者는 關與할 것이 아니라 할 것이라. 그래서 王者는 반드시 먼저 躬行心得함으로 써 天下를 敎化하여 後世의 天下人이 다 그 敎를 좇는 것이니, 그 根本은 都是 君上에 있는지라, 또 말하기를 大學의 傳함이 孟子가 汾한 後 千有餘年 위에 비로소 程子를 얻어서 表 章發明하였고 또 朱子의 註釋을 거쳐서 이제 이와 같이 難解함이 없으나 오히려 모르는 者가 있는 것은 充分히 읽지 않기 때문이니 어찌 慨然하지 않으리까, 마땅히 警勉하소셔 하니, 答曰 唯.
例8, 初七日 左論善, 徐志修, 左從史 李瀚과 함께 入講...... 又曰 「明明德 新民 止於至善」 三者는 大學의 「綱領」이 되니 序文에서 이르는바 規模의 大가 이것이라 「格物」以下의 八은 大學의 條目이 되는 것이니 이르는 바 節目의 詳細하다 함이 이것이라, 又曰 「明德 新民」의 아래 반드시 「止至善」 一語를 添入한 것은 明德하여 至善에 止하지 않으면 明德이 아니오. 新民하여 至善에 止하지 않으면 新民이 아니라 그러므로 <병0x62C4>列하여 「三綱領」을 삼
은 것이라.
紙面關係로 大學講義의 例는 若干만 <척0x74F8>示하였고 世孫이 九歲되는 庚辰(1760)年 八月까지 大學을 畢하고 同年九月부터 論語를 始講하였으므로 論語의 例를 若干 <척0x74F8>示하고자 한다.
例 9, 元講論語, 溫講小學
庚辰八月三十日 左長史 洪應辰과 함께 入見하고 大學의 前日受音한 文義를 反復하여 仰問을 마치고 사뢰기를 大學은 己畢하였읍니다. 全篇이 어느 것이 至極한 말이 아니겠읍니까마는 그中에도 가장 緊切한것은 「第五, 第
六傳」이라, 무릇 學의 道는 知 行 二者일 따름이니 눈으로 보고 발로 行함과 같아서 「格物致知」는 아는 일이요, 誠意는 行하는 일이라 行은 홀로 誠意뿐이 아니고, 반드시 誠,意로 써 爲先함이니 意가 誠하면 심정과 身修가 스스로 馴致하기 때문에 그 意를 誠함은 自修의 첫 머리오, 格物致知에는 讀書만 한 것이 없는지라, 閣下가 오늘 可勉바는 이 일이라 이미 글을 읽어야 함을 알면 반드시 誠으로써 함이 좋고 또 단지 讀書만을 하지 않고 모든 善의 可好한 것은 心誠으로 좋아하여 必得하고 惡의 미워할 것은 心誠으로 미워하여 決然히 버리면 이것이 誠意인 것이라 반드시 이렇게 用工한 然後에야 바야흐로 大學을 읽은 效果가 있읍니다 하니, 答曰 唯.
또 사뢰기를 元講 大學은 今丘로 舊冊을 畢하고, 來日은 新冊을 繼維하는지라 一日의 進退가 큰 關係가 없는 것 같으나 凡事에 一日을 나아가면 一日의 益이 있고,一日을 退步하면 一日의 害가 있는지라 閣下가 이런 뜻을 잘 理解하여 반드시 이 마음을 미루어 每양 이와 같이 하십시오 하니, 答曰 唯
다음 論語를 講함. 子曰 學而時習으로부터 爲仁之本까지 文義를 釋白하고 또 말하기를 孔子는 大聖人이라, 「論語一書」가 다 聖人의 至論大訓을 기록한 것으로서 첫머리에 學字로써 한 것은 學의 至大하고 要緊함을 이에서 可히 알 수 있는지라, 사람이 生而知之가 아니면 반드시 先覺者에서 배우는 것은 學이 아니면 무엇으로 知識을 얻으리오, 그러나 이 「學字」는 致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力行을 兼하여 말함이오. 「時習」이라는 것은 지금 讀書하는 것으로 써 말하면 講한 後에 講한 바의 書를 읽고, 또 읽고 끊임없이 하는 것이 時習이라 讀書를 하여 完熟하면 自然히 滋味가 있으므로 기쁘다고 이르는 바라 이와 같이 하면 비록 讀書를 하지 않으려 하나 自然히 읽지 아니할 수 없게 되는지라. 閣下가 試驗하시면 스스로 可히 아실 것입니다. 헛되이 읽지 않으면 일마다 다 當然함을 自得할지라··· 凡事가 처음할 때는 괴롭고 어려운 것 같아서 마음이 快活치 않으나 漸漸 學習이 旣熟하여지면 괴로운 것이 편안하게 되고 어려운 것이 쉬워져서 마음이 스스로 喜悅한지라. 또 말하기를「論語」中에 或 弟子의 말을 記錄한것이 있으나 이 章에「子曰」이 그것이라, 그러나 孔門弟子들이 배운 바가 다 孔子이니 이것도 또한 孔子의 말씀이라, 聖人의 말씀이 다 「孝와 悌」로 써 첫머리를 삼았으니 閣下가 읽으신 小學 大學을 보아도 어찌 孝 悌를 말하지 않은 것이 있읍니까, 이로써 人道의 孝 悌를 急先務로 함을 可히 알 것이라. 나무는 반드시 뿌리가 있은 뒤에 枝葉이 生하나니 「孝悌」는 곧 나무의 뿌리와 같은 것이고 「仁民愛物」 함은 그 枝葉이라, 물은 반드시 第一의 웅덩이에 찬 뒤에 흘러서 第二의 웅덩이에 차고 다시 흘러서 第三 웅덩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孝悌는 곧 물의 第一웅덩이고, 仁民은 第二 웅덩이오, 愛物은 第三 웅덩이라 이렇게 비유하면 甚히 明白합니다. 또 말하기를 論語 首章의 緊要한 것이 「學而時習」 四字에 있고 第二章의 緊要點은「孝悌」 ニ字에 있으니 願하옵건대 이 六個字로 써 着念하소셔, 答曰 唯. 또 사뢰기를 論語大文은 적고 註가 많으니 註를 읽지 않으면 大文의 뜻을 詳明치 못하실 것이니 講規에는 비록 註를 除하기로 되어있으나 願하옵건대 時時로 讀覽하시고 또 閣下의 文理識解가 前日보아 漸長하시었으니 그 文義에 반드시 詳問深究하시어 精孰하시기를 힘쓰십시오 하니, 答曰 唯.
結論
위의 例示에서 본바와 같이 옛날의 敎育은 1. 人生天然의 性稟은 善하다 하여 그 性善說을 基底로 한 儒敎的倫理道德을 善導敎養하여 愚鈍 不宵人이라도 그 氣質을 變化시켜 몸에 習得 躬行함으로서 聖君 賢臣 忠孝節士의 人格을 培養하는데 主眼을 두었고,
2. 그 進學의 次序를 小學은 幼時부터 將來의 豫備敎育을 主로 한 孝悌忠信을 바탕으로 하여 그 意義와 實行方法등 이론과 실제를 盡善盡美의 極致로 昭詳히 講論解釋하여 쉬웁게 理解習得하도록 하였고,
3. 大學은 自身을 바르게 修養함으로 써 家庭과 나라와 天下를 다스릴 수 있는 人格을 躬行心得하도록 되어있고,
4. 論語는 배우는 사람이 聖人의 行實을 實踐하여 後世에 傳한 孔子의 言行을 본받고자 學習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5. 現代의 敎育方法과 制度를 比較하여 取捨選擇의 資料가 되겠고,
6. 筆者의 所見으로는 그 當時의 敎育이 精神面의 黨育에만 置重하고, 體育에는 疏忽히 한 점을 엿볼 수 있으니, 그 理由로서 正祖大王이 父王인 壯獻王 (思悼世子)의 死因에 對한 # 積한 心的痛恨도 있겠으나 49歲(1752∼1800)의 길지 못한 壽限도 體育未備에 연유한 것이 아닌가 推究할 수 있는 資料가 될 수 있고,
7. 이 臺本은 精熟한 筆致의 寫本으로 되어있어 影印本으로 出刊할 價値가 있는 良書라고 생각한다.
〈藏書閣 古書硏究員>

서평

등록된 서평이 없습니다. 첫 서평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