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가 작동하지 않으면 사이트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체

  • 홈
  • slash
  • 소장자료검색
  • slash
  • 전체
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419
서명 / 저자 : 花 史/ 林 悌(朝鮮) 著
개인저자 : 임 제 (조선), 1549-1587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辛丑(?) 寫]
형태사항 : 線裝 1冊(28張): 四周單邊, 烏絲欄, 16.1 × 10.6 cm, 半葉 9行 17字, 註雙行, 上黑魚尾; 22 × 14.3 cm
일반주기 : 卷末 : 辛丑(1606?) 初二畢 紙質 : 楮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4-6889
 

태그

입력된 태그 정보가 없습니다. 태그추가

소장자료

서가에없는도서신청서가에없는도서신청 예약예약 희망도서신청희망도서신청 소장위치출력출력

부가정보

花史
[作者未詳〕 寫本〔寫年未詳〕
單冊(元子虛傳과 合綴). 有廓. 有絲欄. 半葉 9行. 每行16字. 無魚尾. 縱 22血×橫 14.5㎝. 線裝. 23張本.
表題 : 花史 全.
印:李王家圖書之章.
紙質:楮紙.
1. 머 리 말
花史는 梅花·牧丹·芙蓉을 陶·夏·唐의 왕으로 삼고, 한편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花草와 草木을 각각의 나라의 신하 및 백성으로 의인화함으로써 국가의 治亂興亡의 역사를 풍자한 작품이다.
花史의 作家는 이제껏 白湖 林悌로 인정되어 왔다. 가람 이병기 선생에 의해 이설이 제기된 이래로, 이가원·김광순님 등의 이 방면에 대한 연구가 있으나 결정적인 문헌―花史의 작가가 盧兢·南聖重임을 밝혀줄 ?과 방증이 없어 추론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한편 花史에 대한 연구는 비교문학적인 방법위에서도 이루어졌다. 그것은 薛聰의「花王戒」·李碩淳의「花王傳」과의 관계, 明人 袁石公甁仲尊의「花史」및 中國 筆記小說과의 영향 유무관계를 밝히는 작업으로 始終하였다.
여기에 소개하는 花史는 元子虛傳(곧 元生夢遊錄)과 合綴되어 있는 藏書閣 所藏本으로서 漢文으로 表記되어 있으며 그 분량은 23장에 이르는 寫本이다. 매수의 제한으로 인해 발생할 소략한 논의의 위험을 안고있는 이상, 이 글을 통해서는 단지 花史의 梗槪및 作品속에 투영된 작가정신의 실체를 규명하며 아울러 현존하는 異本群들 가운데서 藏書閣本이 점유하는 위치및 그 이본상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는데 그치려 한다.
2. 花史의 粳槪
「陶·東陶·夏·唐의 순으로 전개되는 화사의 작품적 특색의 하나로 각 편마다의 끝에 자신을 서술자로 동원하여 각 편에 대한 나름의 主見을 제시하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편년체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이에 그
그림 14
경개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陶》
陶나라 列王-古公檀와 武陵 桃氏女를 부모로 한 ?은 이름이 梅華이며 그 자는 先春이었다. 그는 <生之曰,有異香 經月不敢>하는 神異한 조짐 속에 탄생하였고, 그후 만인들에 의해 그 높은 덕이 칭송되다가 膝六(곧雪)의 난을 보다 못한 孤竹君 烏筠(곧 黑竹)과 大夫 秦封(곧松)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근면 성실한 桂氏를

왕비로 맞아 王의 德化에 큰 도움이 되었고, 한편으로 列王은 鳥筠과 秦封·栢直·杜<충0x76D3>·董栢·山梔·棕櫚·蘇鐵등의 賢臣·名將을 얻어 <등0x5C87>六의 난을 다스려 나라를 흥성하게 한 동시에 아우 藥·<악0x68CB>·英 및 조카 芳等에게 직첩을 내려 同姓의 은혜를 갚으니 이 모든 것은 德治(家庭·社會·國家 全般에 對한)와 公正한 人材登用의 適切함에 기인한 것이다. 그 實例를 本文에서 이끌어 보이면,
『國家之興喪 浩端乎夫婦』
『方其遭逢也 若川之作舟 猶魚之得水 用之勿而 任之勿疑 然後 上責補弼之效 下盡忠貞之節 國事成而王業昌矣』『五胡 列王之德 其盛矣(本文:美)哉 <득0x5C7C>賢相而定字內任良將而制<곤0x564F>外 無爲而化 不戰而勝 封同姓 而長其恩愛
褒忠節 而樹其風聲……』과 같다.
《東陶》
烏筠의 추대로 王位에 오르게 된 列王의 아우 <악0x68CB><=楊州公>은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東原으로 천도하여 사이가 서먹해진다. 이후 오균을 내쫒아 승상위에 오른 이옥형(=李花)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를 참소하여 황강으로 귀양보내도록 英王을 부추긴다. 한편 그의 妹氏인 이씨 부인은 失寵을 두려워하다가 得病하여 죽게 된다. 이 뒤를 이어 양비(=楊柳)가 왕비로, 또 비연도 왕의 사랑을 받는 처지에 놓인다. 이와 같이 충신을 멀리하고 간신을 가까이하는 가운데 黃范번의 난·두견의 稱帝·姚黃(=牧丹)의 建國 등과 백봉거(=큰나비)의 宮內姦通 등과 같은 잇따른 내우외환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어서 사촌동생인 양비의 권세를 믿고 恣行하던 금성태수 양서(=버들꽃)는 밀당의 적(곧 꿀벌)을 물리친 후 不服하는 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다가 石尤로 하여금 왕을 강성에게 살해하는데 성공했으나, 그 또한 石尤에 의해 내쫒겨지게 되었다. 이에 陶는 개국 11년만에 멸망을 고하였다. 석우(=삭풍)는 묘황을 임금으로 세우니 이가 곧 하의 문왕이었다. 도의 길다고 할 수 없는 역사를 통해 治道의 성패원인과 그 결과를 史臣이라는 간접화된 존재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작가의 의도는 아래와 같은 본문에서 익히 살필 수 있다.
『侈心生則小人進 忠言亦則君子退 焉爲人<벽0x6297>者 可不敢戒哉』
『王性儉素 初政淸明 自玉衡爲相 楊妃專寵以來 上意稍解……(中略)……徒都之初 土<계0x558D>茅宮 及是 珠玉臺<계0x558C>(珠臺玉<계0x558D>의 誤記인듯)窮極侈麗 於是 上下成風 爭尙蕃華 內外擁蔽 眉惑筌聽 中和之精(政?)衰矣』
《夏》
東陶年末의 社會的 사치풍조에도 휩쓸리지 않고 <獨含光 自晦>하던 姚黃은 石尤 등의 추대를 받아 낙양을 도읍으로 夏國을 이룩했다. 그는 처음에 筆管·荊楚·戚蜀·衛足等의 人材를 그 지닌 바 능력에 따라서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善政을 하였으나, 이후 王 自身의 偏黨과벽도, 백설향, 유등의 分派에 따라, 또한 石尤――풍백――의 거듭된 入朝(回를 거듭할 때마다 왕의 은혜는 융숭해지는)와 풍백의 딸을 宮女로 삼은 후로부터는 政事를 태만히 하고 사치만을 일삼게 되었다. 후에 忠諫者 형초를 죽여 충신을 더욱 멀리하고, 緣林賊의 亂等에
도 불구하고 宮女의 美色에만 거듭 沈惑하던 왕은 그녀가 독약에 의해 죽음을 당하니 이에 夏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한편 金帶圍(=芍藥)·위족 등은 풍백을 물리치기 위해 거병했다가 도리어 敗死하게 되니, 이에 풍백은 제주백(文王의 弟)을 왕으로 맞이하였고, 또한 水中君(=蓮花)은 南唐을 錢唐에서 세웠다. 朋黨의 폐해와 美色에 貪匿한 왕의 그릇된 판결로 인한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잘 드러내고 있는 본 편은 특히 아래와 같은 본문에서 그 효과――啓導를 꾀하는――를 극대화하고 있다.
『風之所加 安由不偃之艸乎』
『心矣 尤物之害人也 在心則心蠱 在身卽身死 在家卽彖색 在國卽國亡 窮奢縱欲之心 由此而生 怠惰燕安之習 由此而成 好諂惡直之意 由此而長 貪在虐民之政 由此而興可不愼乎 可不愼乎 文王而英明之主 末乃如此者 無非尤物之害……』
《唐》
풍백은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金」이라 칭했으며, 한편, 杜若·白<예0x6B2A>등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明王은 두약을 승상으로 하여 천연적인 지형과 善政을 통해 태평성대를 謳歌한다. 이런 중 緣林賊의 侵境을 보고 받은 왕은 白<여0x6A45>·鯉로 하여금 그에 대적토록 하여 승리를 하게 되니, 이후 더욱 국방에 힘을 쏟게 되었다. 그러다가 왕이 도인이 말만 듣고 아침 저녁으로 說經만 하고 政事를 폐하는 지경에 이르르니, 文藻가 이를 보다못해서 諫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왕은 게다가 반첩여의 美色에 惑하게 되고 또 방술사 두생의 권유대로 백로를 마셨다가 不歸의 客이 되고 만다. 金人(곧 가을의 의인)들에 의한 끈질긴 공격으로 唐은 5년만에 망하게 되었다. 본 편은 불교의 해독이 국가흥망의 일에 크게 관계하고 있음과 아첨의 극대적인 과장을 통해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을 회화하고 있는데 그 양상은 아래 글에서 잘

드러난다.
『背理邪說 惑世誣民 帝王之道 守經常 何必以祗園爲福田 貝葉爲眞經耶.......(중략).....因果之法 豈可信聽乎』
『使行其上曰 步步生蓮花 號六娘 人有<녕0x5A1F>子曰 人謂六娘似蓮花 臣以爲連花似六娘 王設』
3. 創作意圖 一瞥
앞에서 이미 작가에 대한 이설을 제기한 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간략히 밝힌 바 있다. 또 하나의 이유를(그 주장을 액면 그대로 인정할 수 없는) 굳이 둔다면 가람선생 소장의 「花史」를 제외하고는 수다한 異本들 가운데 南聖重의 總論을 지닌 本이 出現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인데, 보편성의 원리에 따라 생각해 볼 때(勿論 가람선생 본의 이본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通說인 林悌所作說에 좌단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을 먼저 염두에 두면서 그 창작 의도을 살펴보자. 앞서 花史가 지닌 구성체계의 특질로 史臣을 서술자로 동원한 것을 든 바 있다. 총 11개처에 걸쳐 「史臣曰」이란 형태의 평이 존재하는데, 이 부분에 작가의 창작의도가 응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편.花史는 陶―理想的 世界로 그려진―와 東陶·夏·唐―奸臣·侈心·美色·黨派·佛敎·道敎등의 폐단에 의해 멸망하는 지경에 달하는―의 2원적 대치관계의 예시로 형성되었다. 알레고리의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곧이는 『後世人<벽0x6297> 不任其賢 慾治其國者 何異於緣木而求魚也』(3장 뒷면, 1∼3행)란 대목에서 그 성립의 계기를 이룬다. <遠君子近小人>의 직접적인 양상이 東陶·夏·唐에 나타나며, 그것은 美色에 경도된 王 自身의 暗政과더불어 當時의 爲政者들에 대한 充分할 정도의 戒世的성격을 지닌다. 이것은 陶의 政治에 대한 史臣의 아래와 같은 評 즉―『<득0x5C7C>賢相而定宇內 任良將而制<곤0x564F>外 無爲而化 不戰而勝 封同姓 以長其恩愛 褒忠節 以樹其風 雖昔殷周之治 以加焉』―과는 완전히 배치됨을 볼 수 있다.
東陶의 英王은 陶의 烈王(곧 實兄인)의 뒤를 이어 王位에 오르게 된다. 이에는 忠臣 烏筠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다. 천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그들간의 관계는 이옥형(곧 이화)의 출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화한다. 이에 덧붙여 왕 자신의 侈心과 美色에의 경도는 나라의 기틀을 위험하게 한 원초적 動因이라고 할 수 있다. 楊絮(곧 楊妃의 사촌오빠)를 등장시켜 陶의 멸망의 주체로 삼은 것은 美色에 대한 경고의 확산된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또한 작자가 이 편을 『異哉 英王之世 興昔唐玄宗之時 酷似也.……(중략)……興後之見者 必謂當時撰史者 依樣盡胡虜 古書此以俟知者』(12장 앞면 8行∼뒷면 7行)과 같이 假託하여 그 확산된 표현이 빚을지도 모르는 오해를 없애고자 관습적인 방법에 의존했다고 하는 사실에서 역설적으로 증명된다고 본다.
夏國을 통하여 作者는 當時의 가열된 당파싸움을 풍자·비판하고 있다. 이것은『謂之黨禍酷於逆亂則可 謂之破黨難於制賊 豈其可也. 夏文有一補佐之賢 猶能調制一世以致和平 而況明君御世 先平以王者乎』(17장 앞면,1∼4행)에서 드러난 人材登用의 虛實과 暗君의 行勢로 연결
된다. 특히 김대위(곧 작약)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왕은 더욱더 정사를 멀리하고 사치를 숭상하니 이것은 모두美色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울러 그리도 美色을 탐하던 왕 자신이 美色에 의해 祭物로 化한다고 하는 사실은 공명 지향적이고 外顯的인 人間群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로 보인다. 또 작가가 김대위 족―忠諫者인―에게 忠諫에만 머물도록 하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력을 부여한 것. 실패하여 패사토록 한 점 등은 당대사회의 고착성을 강하게 인정한 데에서 나온 타협안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하겠다.
當國에서 작자는 불도의 폐혜를 학사 문조의 입을 통해 설하하고 있는데, 이것은 제왕의 상도에서 벗어나 사설에 혹한 당시의 집정자들에게 유교의 도를 바르게 준수·실행하게 되면 도와 같은 이상세계를 확립할 수 있다는 계시적 기능과 풍자적 기능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당 또한 신하의 忠諫을 받아들이지 않아 멸망한 것으로 그럼으로써 花史는 仁·信·公의 유교이념이 그 호소력을 잃은 당대사회를 花草에 依據·假託하여 治者가 지녀야 할 道理와 모든 人間群像들의 『有一藝之能 一分之才者 必欲誇矜一世 流田百代 施爲於爭功 代(文宗·伐)錄魚簡編 而花卽不然』(23장,뒷면,1∼3行)과 같은 태도를 계시하고 풍자하기 위해 산출된 작품으로 이해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한편 하의 은거처사 <의0x6E71>蘭(곧 난초)과 唐의 黃花(곧 국화)와 같은 예지자적 성격을 띤 존재에 대해작가 자신이 그들에게 활동성보다는 소극성을 부여한 점은 花史가 지닌 작품적 한계인 동시에 林悌 자신의 사상·철학적인 한계로 지적될 수 있을 듯하다.
4. 異本의 문제
지금까지 하계에 보고된 花史의 異本은 대충 헤아려보아도 20여종을 넘어선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인체 소설로 보이는 이가원 교수 소장의 「오화서」(五花書?,한글,寫本)와 花史의 관계를 살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가람본·정병욱본(完全한 同一本으로 보임),나손
김동욱본(以下-김①)·김기동본(이하 김-②)·장서각본·문선규본 등에 국한하여 각 이본간의 동이(同異) 및
장서각본의 이본적 위치를 살피는 것으로 그칠까 한다.
1. 작자를 명기하고 있는 본: 가람본, 정병욱본, 김동욱본, 장서각본, 문선규본/김기동본은 표시 없음.
2. 合綴되어 있는 본: 국립중앙도서관본·장서각본(以上 元子虛傳과)/나머지 본들은 독립형태로 존재.
장서각본은 어떤 본의 臨寫本인 듯하다. 그것은 작품의 곳곳에서 誤字는 물론 語順의 도치 및 문장 자체의 누락이 발견된다고 하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것을 몇 개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避居闔廬→避去蓋廬」로, 「偃蹇長身一偃盖長身」으로 誤記된 점, 또 英王을 소개할 때 타이본들과는 달리 「英王名嶽字<위0x6D71>古公弟二子也」의 방점 부분이 삽입된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문장 자체의 탈락이 몇 곳에 걸쳐 나타난다고 하는 점은 장서각본의 이본상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좋은 재료가 된다. 문본과는 달리 김―①,②本, 尊本·장서각본 모두 「恢夢草以思之」와 「梅妃廢死春草宮」사이에 文本에 출현하는 「채勢擬之國忠」과 「王性檢素」사이에 文本에 출현하는 「五月, 故丞相烏筠, 卒於貶所. 時 秦封百直等己限 陶之舊臣 <령0x5DD5>落將盡. 史臣曰」의 部分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 점 또 「四年 蜜人黃范」과 「者匈奴之別種」 사이에 문본은 「聚衆作亂, 黃范」의 구가 있는 반면에 여타 이본의 경우 그 구가 탈락된 점, 또 「公綱打盡誅之」와 「夏四月」 사이에 문본만이 「三月 丞相玉衡, 有罪廢死. 玉衡自夫人死後 楊妃專寵 頗失柵勢 快快怨望 王知之 命奪基位 射自盡」의 句를 지니고 있다는 점, 또 「朱芝友善」과 「每一室」사이에 문본만이 「芝字獵之 號三秀先生」의 구를 지닌 점, 또「大夏亡」과 「風伯旣剪夏」 사이에 문본만이 「金帶圍興衛足等起兵 討風伯不克 死之」의 대문을 지닌 점, 또 「行錢弊」와 「李杜若爲相」사이에 문본만이 「是歲 風百基君桂州伯而自立 國號金 井有西北 緣林賊亦聽命」의 대문을 지닌 점등으로 미루어 볼 때 문본과 장서각계열의 異本上의 두 흐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계열은 확연히 구분될 성질의 이본은 아니다. 이것은 장서각본의 경우 「作離騷而自怨」과 「王不勝憤<에0x6A30>」사이에 여타 이본들이 모두 지니고 있는 (문본까지도 포함해서)「五年 王用方士杜生之言」의 문장 자체가 누락된 사실이 그것을 말해주며, 이 현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장서각본이 자이본들의 임사본이라고 하는 추측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한편 金―①本은 金―②本, 尊本, 장서각 本系列에 놓이는 異本으로 보여진다. 심한 축약을 지니고 있는 부분을 引視하는 것으로 그 이본상의 성격의 일단을 제시한다. 곧 「初王欲禪位於東籬處士黃華……(중략)……「기不悲哉 기不惜哉」(22장, 앞면 6行∼뒷면 7行)이 그것인 바, 이본 역시 후마본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尊本은 장서각본과 같은 계열이면서도 체재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본이다. 가람선생본 이외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 序와 南聖重論과 金良輔書를 尊本은 지니고 있다(완전한 동일형이라는 점에서 一異本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문선규님의 주장대로 林悌의 作에 後人 南聖重의 論을 덧붙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南聖重을 花史의 작가로 미의할 수는 없다고 본다.
5, 맺 음 말
해제이니만치 별다른 결론이 있을 수는 없다. 花史는 仁·信·公의 구현을 陶를 통해 제시하며 不人·不信·不公의 폐해를 東陶·夏·唐에서 보인 작품으로 花草에 그 모든 양상을 假託하여 作者의 理想(儒敎社會의 諸德目으로 점철된)을 표현했다고 하는 점에서 花史의 문학사적 위치는 파악되어야 한다. 한편 장서각본은 문선규 본보다는 김―①,②본, 尊本에 가까운 이본으로 보여지며 김―①본과 함께 후대의 臨寫本일 가능성이 높다.
*本文 引用時 장서각본을 주 자료로 하고 분명한 오류의 경우는 제이본들을 참조하여 고쳐놓았음을 덧붙인다.

서평

등록된 서평이 없습니다. 첫 서평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