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가 작동하지 않으면 사이트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체

  • 홈
  • slash
  • 소장자료검색
  • slash
  • 전체
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417
서명 / 저자 : 九 雲 夢/ 金萬重(朝鮮) 著
개인저자 : 김만중 (조선), 1637-1690
단체저자 : 장서각
판사항 : 木版
발행사항 : [ ]: [ ], 純祖3(1803)
형태사항 : 線裝 6卷 3冊: 四周單邊, 半郭 有界 18.6 × 15 cm, 半葉 10行 20字, 內向下向混入花紋魚尾: 27.5 × 17.7 cm
일반주기 : 卷末 : 崇禎後三癸亥(1803)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中國의 地理風俗을 想像하여 架空的으로 編撰한 小說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藏書閣印
청구기호 : K4-6878
 

태그

입력된 태그 정보가 없습니다. 태그추가

소장자료

서가에없는도서신청서가에없는도서신청 예약예약 희망도서신청희망도서신청 소장위치출력출력

부가정보

구운몽

이가원

金萬重(朝鮮, 1637∼1692)著. 木版, 純祖 3(1803) 6卷 3冊,
四周單邊, 반곽 18.6×15cm, 有界 半葉 10行20字.
內向, 下向混入花紋魚尾, 27.5×17.7cm, 線裝
卷末: 崇禎後三癸亥(1803)
印: 藏書閣印
紙質:楮紙

九雲夢의 著者 西浦 金萬重은 李朝 仁祖 때로 부터 肅宗 때까지 56세(1637∼1692)를 일기로 한 양반관료였으며 대문학가였다. 그는 光山金氏 거족인 生員 益兼의 아들이요 光城府院君 萬基의 아우요, 肅宗王妃 仁敬王后의 숙부이다.
그는 일찌기 進士 文科를 거쳐 벼슬이 兵曹判書에 이르렀으며 숙종 13년(1687) 宣川으로 귀양살이를 갔다가 다음 해에 풀렸었다. 그는 또 그 다음 해에 南海로 귀양살이를 갔다가 2년만에 그곳에서 한많은 일생을 끝마쳤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당시 여당 老論 중에서 하나의 大家였고 그의 사상적인 면을 살펴보면 상당히 모순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애당초부터 儒學 가정의 출신이었으나 그는 儒佛道의 혼선적인 사상을 지녔으므로 순수한 性理學派의 이단시를 초래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상을 지닌 西浦는 그 사상을 赤裸裸하게 묘현한 것이 곧 이 名著 「九雲夢」을 낳게 된 것이다.
그는 일찌기 遺腹童이라는 불우한 환경에 대어났으므로 그 아버지의 얼굴을 알지 못한 것을 평생의 邇艮으로 생각하여 어머니 尹氏에게 지극한 효도를 바쳤고 윤씨 역시 고금에 드문 어진 어머니였다.
그는 일찌기 부귀와 영화로써 어머니의 은혜를 갚으려 하였던 것이 정치파동에 의하여 西流, 南竄을 거듭하게 되었고 또 그 형 만기의 요절을 당한 늙은 어머니의 情景을 위안하기 위하여 이 한 편의 소설 즉 「九雲夢」을 귀양살이 하는 그 당시에 지었던 만큼 이는 실로 多情多恨의 피눈물을 겪으면서 쓴 작품이다. 이제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남방에 자리잡은 衡山의 명승지 晋의 仙女魏夫人이 上帝의 명령을 받들어 仙工, 玉女를 거느리고 그곳을 지켰었다. 唐의 때에 이르러 印度로부터 온 고승 六觀大師가 연화봉에 풀집을 짓고 제자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어느 남 洞庭의 龍王이 白衣老人으로 화신하여 聽淸을 하고 돌아갔으므로 육관대사는 그의 제자 성진을 동정의 水府로 보내어 용왕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때마침 위부인은 또 그의 제자 팔선녀를 육관대사에게 보내어 花菓를 드리었다. 이제 성진과 팔선녀는 각기 그의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서로 돌다리 위에서 만나서 시로 柔軟한 정을 통하고 돌아와서 각기 그의 仙·佛世界의 淸淨·枯淡에 대하여 懷疑的인 態度를 갖고 儒家的인 부귀와 공명을 연모하였다. 이러한 정상이 탄로되자 육관대사는 크게 노하여 성진과 팔선녀를 地府로 押送하였던 바 閻羅王이 특히 그들을 어여삐 여겨서 인간의 苦海로 추방하여 그들 아홉 사람을 모두 인간에 幻生시켰다. 성진은 희남楊處士 집에서 呱呱의 소리를 내자 才情이 渙發한 楊少游가 되어 가는 곳마다 花柳를 희롱하여 八仙女의 後身으로서 인간 각지에 흩어져 난 黃州의 규수 秦彩鳳 洛陽의 이름높은 기생 桂蟾月 河北의 名妓 狄驚鴻 長安의 규수 鄭瓊貝. 정경패의 몸종인 賈春雲, 황제의 누이인 蘭陽公主 李蕭和, 吐蕃의 刺客인 심요연, 동정의 龍女인 白俊波 등에게 순서로 장가를 들었다. 양소유는 소년 급제로 立身揚名의 길에 올라 河北의 三鎭과 吐蕃의 난리를 평정한 공로로 황제가 丞相 魏國公에 봉하고 駙, 馬를 삼아 버술이 太師에 이르렀다. 그는 국가적으로는 人臣의 최고 목적인 忠義를 다하고 가정적으로는 어머니에게 효도가 극진하였으며, 여덟 부인으로 더불어 여섯 아들과 두 딸을 낳아 일생에 영화를 누리다가 말년에 이르러 어느 날 아홉 사람이 한 곳에 모여 三敎의 眞諦를 논하며 인생의 무상함을슬퍼하되 불교와 前緣이 깊었음을 自認하였다. 때마침 한 胡僧이 곧 육판대사를 만나 問答을 전개하는 도중에 양소유는 꿈을 깨어 前身의 성진으로 환원하는 동시에 여덟 부인도 얻굴의 짙은 연지를 씻고 머리칼을 깎고 八仙女의 전신을 찾아 胡僧의 설법을 듣고 여덟 보살 할머니는 모두 본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뒤 흐승은 衣鉢을 성진에게 전하고 西天으로 향한 뒤 여덟 보살 할머니는성진을 스승으로 섬겨서 함께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九雲夢 중 아홉의 數字는 남자 주인공 양소유와 여주인공 여덟을 합한 것이요, 구름은 달밤의 微雲이 搖夏하여 萬象이 朦朧한 幻想的인 세계를 이름이었고 꿈은 대체로 부귀와 공명은 한 바탕의 봄꿈과 다름이 없음을 의미한 것이다. 그는 비단 이 직품에서만 구름과 꿈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西浦文集」중에서도 구름과 꿈"이 많아서 혹은 "구름"과 "꿈"을 따로 서술한 곳도 있고 또는 구름"과 "꿈"을 함께 읊은 것도 많은 것을 보아서 그의 詩境에도 "구름"과 꿈으로 장식하였음도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儒家思想에 의하여 오로지 부귀와 꽁명이 최고의 목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서 부귀와 공명을 한 바탕의 봄꿈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한 것은 그의 한 가문이 부귀와 공명의 붙다는 욕망에서 탈락되었음을 스스로 슬퍼하는 한편 어머니의 슬픔을 위안하기 위하여 하나의 가공적인인 진실을 꾸며내었음에 불과한 것이다.
혹은 이 작품의 바깥에 흐르는 정서가 儒家의 부귀와 공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불교의 沾淨寂滅의 세계를 연모하는 것을 보고는 가벼이 서포의 문학 사상이 오로지 불교에 있다고 단정하는 이가 없지 않으나 이는 그릇된 판정이다.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구운몽」은 에당초에는 한글로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유행되는 여러 가지의 本은 모두 한문으로 되었던 것을 한글로 옮긴 듯싶다.
이는 章回로 된 소설로서 제1회 「蓮花峯大開法宇」 「眞上人幻生楊家」로 부터 「揚丞相登高望遠」, 「眞上人返本還元」에 이르기까지 모두 16희로 되었다.
그 저작의 年代는 여러 문헌을 고증한 결과 숙종 14년(1688)의 4월 이전에 이룩된 것으로 推定된다. 이 작품과 관련성이 있는 작품이나 저서를 말한다면 「謝氏南征記」, 「西沛漫筆」, 「西浦文集」 등이 있으나 특히 소설로서는 「사씨남정기」와 쌍벽적인 존재였으며 그 중에서 또 이 작품이 白眉的인 존재였다.
이 구운몽이 외국문학과의 관련성을 논한다면 이는 주로 중국문학에서 받은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다만 「구운몽」에 그칠 문제가 아니겠지마는「九雲夢」은 특히 이에서 대표적인 존재일 것이다.
이에서는 증국을 배경으로 하엿고 중국을 무대로 하여 샅샅이 증국 문학작품에서 禪受한 흔적이 역력히 엿보인다. 또 역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나 모든 방면으로 연구하여 보아서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 「九雲夢」 이전에는 우리 나라에서는 夢字 소설이 나타나지 않았고 다만 중국에 있어서는 唐 于<업0x6A2D>의 「揚州夢」, 明 葉小紈 「鴛鴦夢」, 趙進美의 「瑤立夢」, 淸나라 逸名氏의 「三春夢」, 嚴鑄演의 「蝴蝶夢」 등이 있었고, 그 당시의 夢字 소설로서는 龍燮의 「瓊花夢」, 石龐의 「因緣夢」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하여 이 「구운몽」은 우리 나라 夢字 소설의 嚆矢이다. 이 이전에 있어서는 元昊의 「몽유록」과 逸名氏의 「江都夢游錄」, 「壽聖宮夢游錄」 등이 있었으나 그것은 「구운몽」의 夢字 소설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혹은 이 「구운몽」이 「謫降七仙林虎隱傳」 등 우리 나라 고대소설에서 出藍된 것이라 하였으나 이 두 작품을 반드시 「九雲夢」 이전의 작품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구운몽」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夢字 소설로서는 逸名氏외 「玉麟夢」, 南永老의 「玉蓮夢」, 逸名氏의 「玉樓夢」 등이 있고, 그 밖의 소설에도 끼쳐 준 영항이 극히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한 實例를 들면 「春香傳」은 하나의 寫實的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이 「九雲夢」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춘향전 중에도 육관대사, 성진, 팔선녀 등과 영양공주, 난양공주, 진채봉, 계섬월, 백능파, 적경홍, 심요연, 가춘운, 양소유 등의 이름을 이끌어 쓴 것을 보아서 짐작할 것이었다.
이제 우리 小說史상에서 「九雲夢」을 본다면 우리의 문헌에서 최초로 나다난 "小說의 두 글자는 고려 李奎報의 「白雲小說」일 것이다. 그러나 「백운소설」의 내용은 소설이기보다는 詩話, 猥談, 野說 등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삼국시대의 전설 설화집인 「新羅殊異傳」, 「三國逍事」 등의 영역에서 볏어나지 못하엿고 「백운소설」의 뒤를 이어서, 李仁老의 「破閑集」이나 李齊賢의 「裸翁稗說」도 그러하였거니와, 이조의 초기에 들어와서 徐居正의 「太平閑話滑稽傳」이나 姜希孟의「村談解額」 등의 수많은 작품이 있었으나 傳奇小說의 白眉인 「金鰲新話」에서 집대성을 보았고 宣·仁 兩代를 걸쳐 雨後의 竹筍처럼 빼어난 소설류는 거의 軍談, 隨筆, 個人傳記 등이었으나 狹邪小說로서 일세를 풍미시키던 許均의 「洪吉童傳」에 이르러서 크게 발전을 보았다.
「금오신화」는 애초부터 傳奇體로 유명한 「<전0x70F3>燈新話」를 모방하였다 하나 그 사상적인 면에서는 전기체에서 탈피하여 하나의 사회소설을 이룩하엿고 「흥길동전」은 뚜렷한 革命小說에 틀림이 없으며 그 다음에는 朴趾源의 「燕巖小說」과 「春香傳」이 寫實派의 主流的 작품임에 비하여 이 「九雲夢」은 어디까지나 양반관료의 浪漫的인 작품임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九雲夢」 중에 흐르는 사상은 다시 양반관료에 의한 一夫多妻主義를 공공연하게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그는 儒家의 입신양명의 經世慾과 불교, 도교적인 염세주의가 혼합된 교차에서 빚어진 사상은 종말에 이르러서는 양소유와 팔선녀는 비록 낱낱의 肉慾的인 만족에 오랫동안 耽溺生活을 하다가 하루 저녁에 짙은 꿈을 깨자 萬種의 번뇌는 재연되어 결국에는 淸淨寂滅의 경지를 동경하여 돌아가는 길이 바빴던 것이다.
그러면 이 「九雲夢」은 실로 우리 고전소실의 주류인「금오신화」, 「홍길동전」, 「연암소설」, 「춘향전」 등에 비하여서는 커다란 반동적인 작품임은 명확한 것이다. 그러나 구성의 치밀함과 묘사의 교묘함은 「금오신화」나 「홍길동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훨씬 뒷 시대의 작품인 춘향전에 비하여서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수할는지도 모르겠다. 이에서 「구운몽」의 가치는 결코 무시못할 만큼 컸던 것이었다. 異本으로는 목판본으로서 경판본, 2권 2책으로 된 완판본이 있고 한글 필사본으로는 이가원 소장본, 강윤호 소장본, 정규복 소장본 시울대학교 장본, 이화대학교 징본, 장서각본 등이 있다. <延世大學校 敎授>

부가정보

구운몽

이가원

金萬重(朝鮮, 1637∼1692)著. 木版, 純祖 3(1803) 6卷 3冊,
四周單邊, 반곽 18.6×15cm, 有界 半葉 10行20字.
內向, 下向混入花紋魚尾, 27.5×17.7cm, 線裝
卷末: 崇禎後三癸亥(1803)
印: 藏書閣印
紙質:楮紙

九雲夢의 著者 西浦 金萬重은 李朝 仁祖 때로 부터 肅宗 때까지 56세(1637∼1692)를 일기로 한 양반관료였으며 대문학가였다. 그는 光山金氏 거족인 生員 益兼의 아들이요 光城府院君 萬基의 아우요, 肅宗王妃 仁敬王后의 숙부이다.
그는 일찌기 進士 文科를 거쳐 벼슬이 兵曹判書에 이르렀으며 숙종 13년(1687) 宣川으로 귀양살이를 갔다가 다음 해에 풀렸었다. 그는 또 그 다음 해에 南海로 귀양살이를 갔다가 2년만에 그곳에서 한많은 일생을 끝마쳤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당시 여당 老論 중에서 하나의 大家였고 그의 사상적인 면을 살펴보면 상당히 모순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애당초부터 儒學 가정의 출신이었으나 그는 儒佛道의 혼선적인 사상을 지녔으므로 순수한 性理學派의 이단시를 초래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상을 지닌 西浦는 그 사상을 赤裸裸하게 묘현한 것이 곧 이 名著 「九雲夢」을 낳게 된 것이다.
그는 일찌기 遺腹童이라는 불우한 환경에 대어났으므로 그 아버지의 얼굴을 알지 못한 것을 평생의 邇艮으로 생각하여 어머니 尹氏에게 지극한 효도를 바쳤고 윤씨 역시 고금에 드문 어진 어머니였다.
그는 일찌기 부귀와 영화로써 어머니의 은혜를 갚으려 하였던 것이 정치파동에 의하여 西流, 南竄을 거듭하게 되었고 또 그 형 만기의 요절을 당한 늙은 어머니의 情景을 위안하기 위하여 이 한 편의 소설 즉 「九雲夢」을 귀양살이 하는 그 당시에 지었던 만큼 이는 실로 多情多恨의 피눈물을 겪으면서 쓴 작품이다. 이제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남방에 자리잡은 衡山의 명승지 晋의 仙女魏夫人이 上帝의 명령을 받들어 仙工, 玉女를 거느리고 그곳을 지켰었다. 唐의 때에 이르러 印度로부터 온 고승 六觀大師가 연화봉에 풀집을 짓고 제자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어느 남 洞庭의 龍王이 白衣老人으로 화신하여 聽淸을 하고 돌아갔으므로 육관대사는 그의 제자 성진을 동정의 水府로 보내어 용왕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때마침 위부인은 또 그의 제자 팔선녀를 육관대사에게 보내어 花菓를 드리었다. 이제 성진과 팔선녀는 각기 그의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서로 돌다리 위에서 만나서 시로 柔軟한 정을 통하고 돌아와서 각기 그의 仙·佛世界의 淸淨·枯淡에 대하여 懷疑的인 態度를 갖고 儒家的인 부귀와 공명을 연모하였다. 이러한 정상이 탄로되자 육관대사는 크게 노하여 성진과 팔선녀를 地府로 押送하였던 바 閻羅王이 특히 그들을 어여삐 여겨서 인간의 苦海로 추방하여 그들 아홉 사람을 모두 인간에 幻生시켰다. 성진은 희남楊處士 집에서 呱呱의 소리를 내자 才情이 渙發한 楊少游가 되어 가는 곳마다 花柳를 희롱하여 八仙女의 後身으로서 인간 각지에 흩어져 난 黃州의 규수 秦彩鳳 洛陽의 이름높은 기생 桂蟾月 河北의 名妓 狄驚鴻 長安의 규수 鄭瓊貝. 정경패의 몸종인 賈春雲, 황제의 누이인 蘭陽公主 李蕭和, 吐蕃의 刺客인 심요연, 동정의 龍女인 白俊波 등에게 순서로 장가를 들었다. 양소유는 소년 급제로 立身揚名의 길에 올라 河北의 三鎭과 吐蕃의 난리를 평정한 공로로 황제가 丞相 魏國公에 봉하고 駙, 馬를 삼아 버술이 太師에 이르렀다. 그는 국가적으로는 人臣의 최고 목적인 忠義를 다하고 가정적으로는 어머니에게 효도가 극진하였으며, 여덟 부인으로 더불어 여섯 아들과 두 딸을 낳아 일생에 영화를 누리다가 말년에 이르러 어느 날 아홉 사람이 한 곳에 모여 三敎의 眞諦를 논하며 인생의 무상함을슬퍼하되 불교와 前緣이 깊었음을 自認하였다. 때마침 한 胡僧이 곧 육판대사를 만나 問答을 전개하는 도중에 양소유는 꿈을 깨어 前身의 성진으로 환원하는 동시에 여덟 부인도 얻굴의 짙은 연지를 씻고 머리칼을 깎고 八仙女의 전신을 찾아 胡僧의 설법을 듣고 여덟 보살 할머니는 모두 본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뒤 흐승은 衣鉢을 성진에게 전하고 西天으로 향한 뒤 여덟 보살 할머니는성진을 스승으로 섬겨서 함께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九雲夢 중 아홉의 數字는 남자 주인공 양소유와 여주인공 여덟을 합한 것이요, 구름은 달밤의 微雲이 搖夏하여 萬象이 朦朧한 幻想的인 세계를 이름이었고 꿈은 대체로 부귀와 공명은 한 바탕의 봄꿈과 다름이 없음을 의미한 것이다. 그는 비단 이 직품에서만 구름과 꿈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西浦文集」중에서도 구름과 꿈"이 많아서 혹은 "구름"과 "꿈"을 따로 서술한 곳도 있고 또는 구름"과 "꿈"을 함께 읊은 것도 많은 것을 보아서 그의 詩境에도 "구름"과 꿈으로 장식하였음도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儒家思想에 의하여 오로지 부귀와 꽁명이 최고의 목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서 부귀와 공명을 한 바탕의 봄꿈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한 것은 그의 한 가문이 부귀와 공명의 붙다는 욕망에서 탈락되었음을 스스로 슬퍼하는 한편 어머니의 슬픔을 위안하기 위하여 하나의 가공적인인 진실을 꾸며내었음에 불과한 것이다.
혹은 이 작품의 바깥에 흐르는 정서가 儒家의 부귀와 공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불교의 沾淨寂滅의 세계를 연모하는 것을 보고는 가벼이 서포의 문학 사상이 오로지 불교에 있다고 단정하는 이가 없지 않으나 이는 그릇된 판정이다.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구운몽」은 에당초에는 한글로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유행되는 여러 가지의 本은 모두 한문으로 되었던 것을 한글로 옮긴 듯싶다.
이는 章回로 된 소설로서 제1회 「蓮花峯大開法宇」 「眞上人幻生楊家」로 부터 「揚丞相登高望遠」, 「眞上人返本還元」에 이르기까지 모두 16희로 되었다.
그 저작의 年代는 여러 문헌을 고증한 결과 숙종 14년(1688)의 4월 이전에 이룩된 것으로 推定된다. 이 작품과 관련성이 있는 작품이나 저서를 말한다면 「謝氏南征記」, 「西沛漫筆」, 「西浦文集」 등이 있으나 특히 소설로서는 「사씨남정기」와 쌍벽적인 존재였으며 그 중에서 또 이 작품이 白眉的인 존재였다.
이 구운몽이 외국문학과의 관련성을 논한다면 이는 주로 중국문학에서 받은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다만 「구운몽」에 그칠 문제가 아니겠지마는「九雲夢」은 특히 이에서 대표적인 존재일 것이다.
이에서는 증국을 배경으로 하엿고 중국을 무대로 하여 샅샅이 증국 문학작품에서 禪受한 흔적이 역력히 엿보인다. 또 역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나 모든 방면으로 연구하여 보아서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 「九雲夢」 이전에는 우리 나라에서는 夢字 소설이 나타나지 않았고 다만 중국에 있어서는 唐 于<업0x6A2D>의 「揚州夢」, 明 葉小紈 「鴛鴦夢」, 趙進美의 「瑤立夢」, 淸나라 逸名氏의 「三春夢」, 嚴鑄演의 「蝴蝶夢」 등이 있었고, 그 당시의 夢字 소설로서는 龍燮의 「瓊花夢」, 石龐의 「因緣夢」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하여 이 「구운몽」은 우리 나라 夢字 소설의 嚆矢이다. 이 이전에 있어서는 元昊의 「몽유록」과 逸名氏의 「江都夢游錄」, 「壽聖宮夢游錄」 등이 있었으나 그것은 「구운몽」의 夢字 소설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혹은 이 「구운몽」이 「謫降七仙林虎隱傳」 등 우리 나라 고대소설에서 出藍된 것이라 하였으나 이 두 작품을 반드시 「九雲夢」 이전의 작품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구운몽」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夢字 소설로서는 逸名氏외 「玉麟夢」, 南永老의 「玉蓮夢」, 逸名氏의 「玉樓夢」 등이 있고, 그 밖의 소설에도 끼쳐 준 영항이 극히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한 實例를 들면 「春香傳」은 하나의 寫實的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이 「九雲夢」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춘향전 중에도 육관대사, 성진, 팔선녀 등과 영양공주, 난양공주, 진채봉, 계섬월, 백능파, 적경홍, 심요연, 가춘운, 양소유 등의 이름을 이끌어 쓴 것을 보아서 짐작할 것이었다.
이제 우리 小說史상에서 「九雲夢」을 본다면 우리의 문헌에서 최초로 나다난 "小說의 두 글자는 고려 李奎報의 「白雲小說」일 것이다. 그러나 「백운소설」의 내용은 소설이기보다는 詩話, 猥談, 野說 등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삼국시대의 전설 설화집인 「新羅殊異傳」, 「三國逍事」 등의 영역에서 볏어나지 못하엿고 「백운소설」의 뒤를 이어서, 李仁老의 「破閑集」이나 李齊賢의 「裸翁稗說」도 그러하였거니와, 이조의 초기에 들어와서 徐居正의 「太平閑話滑稽傳」이나 姜希孟의「村談解額」 등의 수많은 작품이 있었으나 傳奇小說의 白眉인 「金鰲新話」에서 집대성을 보았고 宣·仁 兩代를 걸쳐 雨後의 竹筍처럼 빼어난 소설류는 거의 軍談, 隨筆, 個人傳記 등이었으나 狹邪小說로서 일세를 풍미시키던 許均의 「洪吉童傳」에 이르러서 크게 발전을 보았다.
「금오신화」는 애초부터 傳奇體로 유명한 「<전0x70F3>燈新話」를 모방하였다 하나 그 사상적인 면에서는 전기체에서 탈피하여 하나의 사회소설을 이룩하엿고 「흥길동전」은 뚜렷한 革命小說에 틀림이 없으며 그 다음에는 朴趾源의 「燕巖小說」과 「春香傳」이 寫實派의 主流的 작품임에 비하여 이 「九雲夢」은 어디까지나 양반관료의 浪漫的인 작품임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九雲夢」 중에 흐르는 사상은 다시 양반관료에 의한 一夫多妻主義를 공공연하게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그는 儒家의 입신양명의 經世慾과 불교, 도교적인 염세주의가 혼합된 교차에서 빚어진 사상은 종말에 이르러서는 양소유와 팔선녀는 비록 낱낱의 肉慾的인 만족에 오랫동안 耽溺生活을 하다가 하루 저녁에 짙은 꿈을 깨자 萬種의 번뇌는 재연되어 결국에는 淸淨寂滅의 경지를 동경하여 돌아가는 길이 바빴던 것이다.
그러면 이 「九雲夢」은 실로 우리 고전소실의 주류인「금오신화」, 「홍길동전」, 「연암소설」, 「춘향전」 등에 비하여서는 커다란 반동적인 작품임은 명확한 것이다. 그러나 구성의 치밀함과 묘사의 교묘함은 「금오신화」나 「홍길동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훨씬 뒷 시대의 작품인 춘향전에 비하여서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수할는지도 모르겠다. 이에서 「구운몽」의 가치는 결코 무시못할 만큼 컸던 것이었다. 異本으로는 목판본으로서 경판본, 2권 2책으로 된 완판본이 있고 한글 필사본으로는 이가원 소장본, 강윤호 소장본, 정규복 소장본 시울대학교 장본, 이화대학교 징본, 장서각본 등이 있다. <延世大學校 敎授>

서평

등록된 서평이 없습니다. 첫 서평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