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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
서명 / 저자 : 남졍긔/ 金萬重(朝鮮) 撰
개인저자 : 김만중 (조선), 1637-1692
단체저자 : 장서각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寫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 3卷3冊: 無郭, 無絲欄, 半葉 10行 24字
일반주기 : 서제: 表題 : 南征記
紙質 : 楮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藏書閣印
청구기호 : K4-6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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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南征記
金美蘭
〔金寓重著〕 寫本〔寫年未詳〕
1卷1冊 無廓 無絲欄 半葉 11行25字 無魚尾. 31.
3㎝×19㎝ 線裝.
表題 : 南征記
印 : 李王家圖書之章
紙質 : 楮紙
一. 序言
南征記는 九雲夢과 함깨 西浦 金萬重의 代表的 作品으로 한국의 封建家族制度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妻妾간의 갈등을 素材로 한 소설이다. 이것은 당시 누구에게나 호소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문제이었기 때문에 많은 禮者를 확보했으리라고 보며 따라서 現傳하는 南征記의 異本도 한글본, 漢女本을 합해서 상당히 많아 여기에 소개하려는 藏書閣本南征記는 漢文本으로서 이 글에서는 南征記의 작가와 창작 배경을 먼저 살펴보고藏書閣本의 위치를 他異本들과 비교 검토해 보려 한다.
二. 作家 金萬重과 創作變機
金萬重(1637-1692)은 字는 重叔, 號는 西浦이며 光山 金氏의 旦族으로 沙溪 長生의 曾孫이다. 그의 부친인 忠烈公 金益謙은 丙子胡亂 때 金尙容과 같이 節死하였으며 그 兄은 瑞石 萬基이다. 그는 遺腹者로 태어나서 그 부친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을 平生의 恨으로
생각했고 그 母親인 海平 尹氏가 혼자 몸으로서 두 아들을 정성껏 가르쳐 古今에 드문 賢母로 칭송을 받고 있다.
이렇게 賢母의 엄격하고도 자애로운 가르침을 받고 자란 西浦는 그 爲人이 淸修蘊藉하고 孝友甚篤하였다 한다1)그가 태어난 1637년(丁丑)은 丙子年 다음 해로1) 前判書金萬重, 卒於南海謫所, 年五十六, 萬重字重叔,萬基之弟也,爲人淸修蘭籍,孝友甚篤,立朝言議侃侃,消長之際,尤著鱇直,廉介紹人,位至崇品,寒素如儒生.(肅宗實錄 卷二十四, 十八年 壬申 五月 己酉條)그가 성장하고 활동하던 시대는 丙子胡亂이 朝鮮을 휩쓸고 지나간 후라 國家 多事하고 世道가 紛耘하며 黨派의 軋轢이 심각하여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그는 顧宗朝이 登科하여 벼슬이 大提學, 兵曹判書에 이르렀는데 肅宗代에 한참 激化된 黨派 싸움이 西人의 重鎖으로 指目되어 寶宗 13년(1687)에 言事의 罪로 宣川에 귀양갔다가 翌年이 돌아왔고 2년 후에는 仁顯主后 閔氏를 내쫓고 張禳嬪을 王妃로 冊封하는데 반대하다가 南海로 귀양 가서 4년만에 譎所에서 56세를 一期로 눈을 감았다.2)
2) 註 1 참조.
그의 정치적 생활은 風雲과 波瀾의 연속이었고, 이러한 쓰라린 경험은 文學家로서의 그에게 많은 創作의 원동력이 되어 寓意와 諷剌를 가지고 당시의 黨爭과 權力싸움을 바라보게 하였다 비록 그의 학문적 造詣가 그다지 깊지 못하다고 하는 言平도 있으나3) 九流의 諸方技에 능통하여 算數, 音樂, 天文, 地理등의 학문에까지 통할 뿐 아니라 佛·道敎에 정동하고 稗官小說까지도 貫穿한 博學者이었다.4)그는 문학적 소양에 대단하였고 특히 소설에 대해 탁월한 견해를 가져서 西浦漫筆에
「東坡志林日 塗巷中小兒薄劣, 其家所厭苦, 輒與鐵,令聚坐,聽說古話,至說三國事,聞劉玄德敗,嚬禮有出涕者,聞曹操敗,叩喜唱快,此其羅氏演義之權輿手,今以陳壽史傳,溫公通鑑,衆聚講說,人未必有出涕者, 此通俗小說之作也 」
라 하여 종래 儒學者들과는 달리 文藝의 가치와 그 대중적 효과를 명백히 밝혔으며 또한 국민문학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어 「西浦漫筆」에
「我國詩文,捨其言而學他國之言,設令十分相似,只是鸚鵡之人言,而閭巷間樵童汲婦,呻啞而相和者,雖日鄙俚,若論其眞廣則固不可與學士大夫,所謂詩賦者, 同日而論, 況此三別曲者, 有天機之自 然而無夷俗之鄙俚, 自古左海眞文章, 只此三篇.」
이라 하였으니 그 민족의 문자로서 문학작품을 써야 된다는 국어존중론을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西浦의 文學觀은 더욱 높이 평가될 수 있다. 西浦의 이런 면모는 그의 從孫 春澤의 「北軒集雜說」에
「西浦多以俗諺爲小說 其中所謂南征記者 有非等閑之比 予故翩以文字 」
란 기록이 있어 더욱 뒷받침해 주고 있는데 이것이 南征記에 대한 최초의 문헌상 기록으로 보여진다. 또 다른 南征記에 대한 기록은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에 나타나는데 卷 7. 小說辨證說에「南征記,北軒爲肅廟仁顯主后閔氏巽位,欲悟擧心 而製者 」라 하여 南征記의 작가에 대해 혼란을 가져오게 하나
3) …人以其天資近道, 而未能用工學問爲恨.(肅宗實錄 同年月 日條)
4) 至九流諸方技, 算數律呂, 象緯奧地之禮, 覽卽洞解其節寂,而精而竺聃同異之際,出有人無,粗而稗官小說之叢,談天彫寵,禮不歷歷貫穿.(三淵金昌翕,西浦集序)
이 문제에 대해서 南征記는 西浦의 한글소설이고 金春澤은 그것을 漢譯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定說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李圭景의 「欲悟聖而製者」리는 기록인데 이것이 바로 南征記의 창작 동기를 말해주는 것이다.
즉 西浦는 無辜하게 閔妃를 廢黜하는 肅宗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는 것인데 이 당시의 궁중의 상황을 槪略해 보면 다음과 같다. 肅宗의 妃인 仁敬王后가 昇遐하때 그 繼妃로서 兵曹判書 閔維重의 따님인 仁顯王后가 冊封되었는데 閔后는 天生聖姿와 聖德을 갖춘 분이었지만 불행히도 王子를 낳지 못하였다. 그래서 閔后는 王을 권하여 淑儀 金氏를 뽑아 後宮에 들이기로 하였는데 그때 宮人 張氏가 侍婢로서 後宮에 있었다. 張氏는 퍽 慧點하여 王의 마음을 잘 맞추었고 더구나 왕의 寵愛를 받아 景宗을 낳았으며 이어서 禧嬪이 되었다. 이 때부터 張禧嬪은 권세를 누리며 王妃의 자리를 탐내 여러 가지로 閔后를 모함하여 廢位케 하고 자기가 王妃가 되었다. 따라서 閔后는 6년 동안이나 궁 밖에 있다가 張禧嬪의 죄가 드러나고 禮宗이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친 후 復位가 되었으나 얼마 안 있어 三五세로 昇遐하였다.
이 때 閔后의 廢黜을 극력 반대하다가 귀양가서 거기에서 죽은 西浦이니 만큼 그가 聖心의 悔悟를 목적으로 썼다는 것은 매우 일러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南征記의 내용도 당시 궁중에서 벌어졌던 상황과 부합되는 바가 많은데, 다음에는 南征記의 내용을 살펴 어떤 점이 史實과 서로 통하는지 비교해 보자.
三. 甫征杞의 槪要
大明 嘉靖末 北京 順天府이 劉焦라는 宰相이 있었는데 誠意伯 劉基의 後禮로서 당시 名臣인 嚴崇파 의견이 맞지 않아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와 평화롭게 살았다. 그에게는 일찍 과부가 된 누이 牡夫人과 늦게 얻은 아들 延禮가 있었는데 부인은 延壽가 아직 강보가 쌓여 있을 때 棄世하였다. 延壽는 성장함에 따라 才質이 뛰어나 l5세에 과거에 일등을 하여 翰林編修官을 제수받았으나 年少함을 이유로 10년 동안 독서할 여가를 얻었다.
劉少師(裸)는 모든 媒婆를 불러 翰林의 婚處를 부탁하는데 杜夫人과 의논하여 女僧 妙姬의 도움으로 才德을 겸비한 謝貞玉을 翰林의 配匹로 맞아들인다. 그 후 劉少師도 得病棄世하고 유한림과 사씨는 아무런 부족 없이 琴瑟좋케 지냈는데 膝下이 자녀가 없음을 걱정하여 사씨는 喬氏라는 여자를 小室로 맞아들이게 한다. 喬氏는 掌珠라는 아들을 낳고 곧 이어 사씨도 또한 아들을 낳으니 이때 보러 시기 많고 奸妖안 喬氏는 謝氏를 모함하여 결국 門客 董淸과 짜고 翰林의 마음을 움직여 사씨를 내쫓는다. 그 후 사씨는 勇姑의 墓下에서 지내다가 꿈에 나타난 劉少師의 지시를 받고 교씨와 董淸의 무리로부터 몸을 피한다. 그리하여 南으로 향하여 정처없이 방황하다가 아황과 여잉 二妃의 現身을 보고 그들의 위로를 받은 후 계속 苦楚를 겪다가 女僧妙姬의 도움을 받아 水月庵이 留하게 된다.
한편 劉翰林은 謝氏를 내쫓은 후 喬氏를 正室로 삼았는데 喬氏는 家內를 獨占하여 선량한 侍婢를 학대하는가 하면 門客인 董淸과 私通하고 마침내는 그와 結托하여 유한림마저 해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유한림은 董淸과 奸臣인 嚴丞相 무리의 讒訴로 인하여 幸州로 유배를 당하고 董淸은 그의 代價로 陳留縣令을 거쳐 桂林太守가 되어 喬氏와 유한림의 재산을 가지고 부임하였는데 그 지방 사람들을 착취하여 百姓의 怨禮이 높았다 또한 교씨는 董淸의 門客인 冷震과 다시 私通하고 재물을 갖고 도망하나 중간에서 도둑맞고 빈털털이가 되어 妓生이 된다.
한편 유한림은 配所에서 신기한 샘물로 눈을 씻고 그 때까지 昏迷했던 精神이 맑아졌으며 特赦를 받아 석방되어 오던 중 喬氏의 侍女 雪梅를 만나 그간의 일을 낱낱이 듣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유한림은 고향으로 오던 중 다서 董淸 무리의 추격을 받으나 謝氏를 만나 九死一生으로 危機를 모면하고 謝氏와 재회한다.
그 후 天子는 유한림의 無罪를 알고 그에게 侍郞을 제수함과 동시에 董淸의 무리를 처벌한다. 유한림은 다시 禮部尙書가 되어 丞相까지 된 후 妓生이 된 喬氏를 불러 罪를 묻고 죽인다. 謝氏는 南方를 徨할 때 도움을 받았던 林氏를 불러 그 여자가 데리고 있던 사내아이가 잃어 버렸던 謝氏의 아들임을 알고 기적적으로 母子가 만났으며 林氏가 덕이 있음을 알고 그를 한림의 소실로 권한다. 그러하여 사씨는 四子를 낳고 林氏는 三子를 낳았으며 子孫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고 일가가 화목하게 살았으며 사씨는 女訓과 列女傳을 지어 후세 閨法의 귀감이 되게 되었다.
이상이 南征記의 줄거리인데 유한림은 禮宗과 설정이 비슷하고 謝氏와 喬氏는 仁顯王后와 張禧嬪의 관계와 비슷하다. 또한正室의無子, 小室의 得男 그리고 小室의 正室에 대한 모함 등이 史實과 소실의 내용이 서로 부합된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 廢妃 사건과 南征記 創作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四. 異 本
南征記에는 한글본과 漢文本이 있는데 한글본은 坊刻本, 筆寫本, 活版本으로 나눌 수 있고 漢文本은 筆寫本만이 전해진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南征記는 상당히 널리 읽혀졌기 때문에 現傳하는 筆寫本도 많은 편인데 여기서는 본 解題本인 藏書閣本과 羅孫書室本 三種, 그리고 坊刻本을 중심으로 비교 고찰해 보려한다.
1. 漢 文 本
1) 藏書閣本(筆寫年度 未詳) 64장반
2) 羅孫書室所藏本(乙卯 元月 筆寫, 즉 1915년으로 推定)
3) 上同(乙未 十一月 筆寫, 乙未年은 1895년과 1835년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표지뒷장이 「聖上耶位之元年」이란 귀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35년(憲宗 元年)이 더 가능성이 많지 않나 생각된다 )
2. 한 글 본
1) 羅孫書室本(융희경술 筆寫, 즉 1910년 上·下卷.)
2) 坊刻本(辛亥年板, 즉 1911년이나 1851년. 그런데 Courant의 「韓國書誌」에 이 本에 대해 언급되어 있으므로 1851년일 것임. 국내에는 下卷하나만 있고 5) 파리 東洋語學校에 上·中·下(21장·19장·23장) 1질과 上·下(32장·34장)
1질 모두 2질이 소장되어 있다. 6)이상의 것을 중심으로 藏書閣本을 한글 坊刻本파 비교하고 다음 같은 한문본인 羅孫書室所藏의 乙卯本(以下 乙卯本으로 稱함)과 비교하고 다음에는 한글 筆寫本인 羅孫書室所藏 庚戍本(以下 庚戍本)과 비교하여 각 異本간의 관계를 살펴 보려한다. 여기서 漢文本으로 乙未本과 乙卯本중 乙卯本을 텍스트로 삼은 것은 乙未本의 筆寫年度가 오래되진 했으나 그 縮約어 심해 분량도 적고 곳이 따라서는 文法的으로 맞지 않는 곳이 있어 오히려 乙卯本이 리 정확하기 때문이고 또 坊刻本의 텍스트는 2종의 내용이 거의 같아 어느 것을 택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본다
5) 金東旭 編著, 景印坊刻本小說全集一卷,1973年. 羅孫書屋 참조
6) 金東旭, W.E. Sklllend, D. Bouchez 共編, 同 全集 四卷.1975년 참조.
우선 藏書閣本과 한글 坊刻本과 비교해 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表題의 相異함이다 극 한글 방각본에는「샤시남졍긔」라고 되어 있는 반면 장서각본에는 「南征記」로 되어 있다 그런데 羅孫書室에 있는 다른 漢文本에는 南征記라 되어 있고 비교적 최근이 筆寫된 乙卯本과 한글 筆寫本이- 庚戍本에만 謝氏南征記라 되어 있다 여기에 南征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南征記」라 되어 있는 것을 참고한다면 먼저 「南征記」로 불리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女主人公의 友生인 謝氏가 앞에 첨가되어 「謝氏南征記」로 불리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에 두 本의 차에는 장서각본이 回章體로서 回章의 제목이 있는데 반해 坊刻本에는 回章으로 나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言及했던 作家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여 생각한다면 西浦는 回章없이 그대로 한글소설을 창작했고 金春澤이 한문으로 번역할 때 중국소설을 모방하여 回章으로 나누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용면에 있어서 坊刻本의 분량은 장서각본이 비해 약 1/3이 되므로 자연 축약된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杜夫人에 대해서 장서각본에는
只有一妹爲鴻驢少卿杜强之妻 少師愍其寡居 尤愛甚重.
이라 되어 있는데 비해 坊刻本에는
소의누의한히이스니일즉과거여스그경샹을 궁측이녀겨우지극더라
라 하여 간략하게 되어 있고 마지막 부분에 翰林이 喬女를 벌주는 장면이 있는데 장서각본에는
尙書 日 爾有十二大罪聽之 始夫人戒以勿爲淫樂此好意 爾爲人危之言讒於我一也(中略) 長沙路上送盜害我十二也 淫婦有此大罪 豈可得生耶.
라되어 있어 喬女의 罪狀을 낱낱이 열거하고 있는데 坊刻本에는상셰진목질왈네죄를아다교녀고두왈
로 상당히 축약되어 있고, 이 밖에도 주인공이 쓴 詩나 書簡등의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다음 장서각본과 乙卯本을 비교해 보면 우선 回章으로 나뉘어진 것은 같다. 그러나 두 本의 回章 제목이 약간씩 다를 뿐 아니라 장서각본은 回章이 7회까지 나가다가 8회 부터는 回章 제목이 보이지 않고 그대로 계속된다 이것은 다론 한문본에서는 볼 수 없은 것으로서 筆寫者의 故意인지도 알 수 없으나 7회까지 分簞되다가 중단된 것을 보면 筆寫者의 실수 쪽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장서각본의 回章 제목을 살펴 보면
1. 淑女撰白衣像 良媒結赤繩緣
2. 詩詠關雎機木 琴奏霓裳羽衣
3. 妾欺丈夫讒正室 多謀門客穹愛姬
4. 謝孝女言告言歸 喬淫婦爲鬼爲喊
5. 寬易君子信黨言 奸婢惡人狀殺子
6. 結髮夫婦拜下堂 隔陽奧姑感中夢
7. 懷沙亭寫柱記笏 黃陵廟拜謁二妃
이고 여기서 그쳐 있다. 乙卯本은 조금 달라서 3회 妾欺丈夫讒正室 대신 正寢夢態로, 多謀門客窈愛妾 대신 門客切妾으로 되어 있고 6회는 櫓禮下堂, 變姑感夢으로 되어 있다. 다음 8회부터 乙卯本으로 回章 舞目을 보층해 본다면
8. 夫人依止空門 群小構成詩案
9. 大船調琵琶 甘露洗禮黨
10. 使君變妖妾 實客逢故人
11. 奸人惡稔身斃 天道否極泰半
12. 母子重會 逆婦就戮
과 같이 된다.
내용면에서 보면 1회부터 7회까지는 장서각본과 乙卯本이 本文의 대용이나 분량이 거의 같은데 6회부터는 乙卯本의 분량이 조금씩 많아져 11회의 경우는 乙卯本이 장서각본이 비해 2배가 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8회에 유한림이 謝夫人 쫓은 일을 후회하
고 있을 때 고모인 杜夫人한테서 편지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장서각본에는
會有人從成都來 傳杜夫人禮猶未知謝氏之去勉戒云
云 意盖栽懇翰林執其書再三披閱語頗有理.
라 하여 杜夫人의 訓戒에 대해 「勉戒云云」이라고 간략하게 되어 있는데 반해 乙卯本에는
其書日 老叔母寄賚姪延禮 與君相別 今幾日月 僻土遼貧 京路渺茫 只有夢想而已 意爲人臣而欲禮君 則禮其忠節而已(中略) 賢姪承祖宗之緖 變望賚之禮 不待老身之戒 嗚呼謝氏之賚德 先兄知之 而君獨不知 (中略) 使謝氏全其淸節 保其性命 以副先兄平日眷숍之至意 是所望也 便忙草草.
라고 하여 杜夫人 편지의 내용을 상세히 기술했고 董淸이 翰林을 모함할 수 있게 된 결정적 증거가 되는 한 점의 시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도 장서각본은
淸偶於案上 得一紙 乃翰林之詩也 再三看過 喜色滿顔.
이라 되어 있는데 乙卯本에서는그詩가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어
偶於案上休紙得一小紙 却翰林所製詩也 其詩曰 古人誇證後堪哈 監戒丁寧君念哉 天上書因明主降 水中盃爲俟臣來 朝無正土治還亂 政拂鼻/喘亦丈 惟願至尊調玉燭 燼敎民物上春臺.
라 하였으며 喬女를 벌하여 죽인 후 劉翰林과 謝氏와 그 후 맞아들인 小室林氏의 행적에 대해 장서각본에는
林氏連三子熊兒駿兒變兒 皆有父兄之風 劉尙書於穆宗朝爲丞相 佐天子致大平 皇帝皇后聞夫人賢德 數召引見六官皆師事 四子皆及第名顯於朝廷矣로 끝맷고 있는데 乙卯本에는丞相與夫人偕老 年至八十無疾而終 其後麟爲兵部尙書 熊爲吏部侍郞 駿爲戶部尙書 禮爲大常卿 林氏亦享
無彊之福 謝夫人著女訓十二章及續列女傳三卷 行于世且訓 四婦王氏楊氏杜氏李氏皆爲賢婦人以續尊姑之懿策 自古閨法之正 無出謝夫人右者 於禮賢哉
라 하여 주인공의 末年의 行蹟까지 상세히 기술하였다 .이 부분은 다른 漢文本이나 한글 坊刻本, 筆寫本에까지 모두 붙어 있는데 유일하게 장서각본에만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장서각본과 乙卯本을 비교해 보면 장서각본 은 8회 이후 乙卯本에 비해 분량이 떨어져 乙卯本이 소설 구성에 있어서 클라이막스와 대단원의 부분이 상당히 부연되고 있고 장서각본은 간략하게 되어 있는 느낌이다.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글 筆寫本인 庚戍本과 비교해 보면 庚戊本은 한글로 되어 있지만 漢文本처럼 回章이나누어져있다. 즉 1. 숙녀논찬빅의상양믹는결젹승연 2. 시령콴져교목금듀비상우의 3. 문긱니결헙 졍실의몽비라 4. 효녀언고언귀 음부위귀위력 5. 군적신참안흉인쟝익즈 6. 됴장호당구고강몽 7. 회스경호텬항능묘부임 8. 부인의지공문 군소구셩시안 9. 별션의 비파를안고단이실의명을옷다 l0. 군은 죠흔 켸덥을 실고 도라오는숀은고인을 만나다. 11. 쇼인은약흔이러만호면몸니둑고 텬도난막힌거시극딘호면우쥬가통타. 12. 모조는도시모히고 력녀난둑는더다.
로 되어 있어 漢文本 중에서도 장서각본 보다는 乙卯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준다. 또 庚戍本이 한글 坊刻本과 다른 점을 보여 주는 것은 謝貞玉이 觀音讚을 지은 장면에서 한글로 音만 달았을 뿐 漢文文章이다 즉
오문더스난 고지승예라 상상지덕호니 여츙님라관져갈담은부인지人라 中略 아작찬문니 유루십지로다
라 하여 漢文本 系列임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곳에 따라서는 相異한 부분이 보이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던 董淸이 劉翰林의 詩를 발전하는 장면에서
동촁이칙상위의셔한당죠회를으더보니니난한님의글지은거시라두셰번보회거날
로 되어 乙卯本과 같이 詩가 상세히 나와있지는 않다. 결국 庚戍本은 한글이키만 坊刻本과는 그 계열이 다르고 오히려 漢文本과 같은 계열인 듯 하니 극 漢文本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五. 結 言
이상 앞에서 언급한 것을 종합해 보면 장서각본 南征記는 한글 坡刻本과는 매우 다르고 乙卯本과는 비슷하나 그 디테일에 있어서는 또 다른 면이 있다. 더구나 장서각본은 回章이 7회까지 전개되다가 중단되었고 8회 이후에는 乙卯本에서 보에는 것과 같이 부연됨이 없이 상당히 간략하게 되어 있으며 맨 끝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점이 이 본의 특징이다 이것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특징 외에도 이 본은 정확하게 25자×11行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별 다른 筆體의 흔들림이 없이 깨끗하고 단아하게 筆寫되어 있어 筆寫者의 身分이나 性格을 어렴풋이 나마 느끼게 해 준다.
〈延世大學校 講師〉

부가정보

南征記
金美蘭
〔金寓重著〕 寫本〔寫年未詳〕
1卷1冊 無廓 無絲欄 半葉 11行25字 無魚尾. 31.
3㎝×19㎝ 線裝.
表題 : 南征記
印 : 李王家圖書之章
紙質 : 楮紙
一. 序言
南征記는 九雲夢과 함깨 西浦 金萬重의 代表的 作品으로 한국의 封建家族制度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妻妾간의 갈등을 素材로 한 소설이다. 이것은 당시 누구에게나 호소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문제이었기 때문에 많은 禮者를 확보했으리라고 보며 따라서 現傳하는 南征記의 異本도 한글본, 漢女本을 합해서 상당히 많아 여기에 소개하려는 藏書閣本南征記는 漢文本으로서 이 글에서는 南征記의 작가와 창작 배경을 먼저 살펴보고藏書閣本의 위치를 他異本들과 비교 검토해 보려 한다.
二. 作家 金萬重과 創作變機
金萬重(1637-1692)은 字는 重叔, 號는 西浦이며 光山 金氏의 旦族으로 沙溪 長生의 曾孫이다. 그의 부친인 忠烈公 金益謙은 丙子胡亂 때 金尙容과 같이 節死하였으며 그 兄은 瑞石 萬基이다. 그는 遺腹者로 태어나서 그 부친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을 平生의 恨으로
생각했고 그 母親인 海平 尹氏가 혼자 몸으로서 두 아들을 정성껏 가르쳐 古今에 드문 賢母로 칭송을 받고 있다.
이렇게 賢母의 엄격하고도 자애로운 가르침을 받고 자란 西浦는 그 爲人이 淸修蘊藉하고 孝友甚篤하였다 한다1)그가 태어난 1637년(丁丑)은 丙子年 다음 해로1) 前判書金萬重, 卒於南海謫所, 年五十六, 萬重字重叔,萬基之弟也,爲人淸修蘭籍,孝友甚篤,立朝言議侃侃,消長之際,尤著鱇直,廉介紹人,位至崇品,寒素如儒生.(肅宗實錄 卷二十四, 十八年 壬申 五月 己酉條)그가 성장하고 활동하던 시대는 丙子胡亂이 朝鮮을 휩쓸고 지나간 후라 國家 多事하고 世道가 紛耘하며 黨派의 軋轢이 심각하여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그는 顧宗朝이 登科하여 벼슬이 大提學, 兵曹判書에 이르렀는데 肅宗代에 한참 激化된 黨派 싸움이 西人의 重鎖으로 指目되어 寶宗 13년(1687)에 言事의 罪로 宣川에 귀양갔다가 翌年이 돌아왔고 2년 후에는 仁顯主后 閔氏를 내쫓고 張禳嬪을 王妃로 冊封하는데 반대하다가 南海로 귀양 가서 4년만에 譎所에서 56세를 一期로 눈을 감았다.2)
2) 註 1 참조.
그의 정치적 생활은 風雲과 波瀾의 연속이었고, 이러한 쓰라린 경험은 文學家로서의 그에게 많은 創作의 원동력이 되어 寓意와 諷剌를 가지고 당시의 黨爭과 權力싸움을 바라보게 하였다 비록 그의 학문적 造詣가 그다지 깊지 못하다고 하는 言平도 있으나3) 九流의 諸方技에 능통하여 算數, 音樂, 天文, 地理등의 학문에까지 통할 뿐 아니라 佛·道敎에 정동하고 稗官小說까지도 貫穿한 博學者이었다.4)그는 문학적 소양에 대단하였고 특히 소설에 대해 탁월한 견해를 가져서 西浦漫筆에
「東坡志林日 塗巷中小兒薄劣, 其家所厭苦, 輒與鐵,令聚坐,聽說古話,至說三國事,聞劉玄德敗,嚬禮有出涕者,聞曹操敗,叩喜唱快,此其羅氏演義之權輿手,今以陳壽史傳,溫公通鑑,衆聚講說,人未必有出涕者, 此通俗小說之作也 」
라 하여 종래 儒學者들과는 달리 文藝의 가치와 그 대중적 효과를 명백히 밝혔으며 또한 국민문학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어 「西浦漫筆」에
「我國詩文,捨其言而學他國之言,設令十分相似,只是鸚鵡之人言,而閭巷間樵童汲婦,呻啞而相和者,雖日鄙俚,若論其眞廣則固不可與學士大夫,所謂詩賦者, 同日而論, 況此三別曲者, 有天機之自 然而無夷俗之鄙俚, 自古左海眞文章, 只此三篇.」
이라 하였으니 그 민족의 문자로서 문학작품을 써야 된다는 국어존중론을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西浦의 文學觀은 더욱 높이 평가될 수 있다. 西浦의 이런 면모는 그의 從孫 春澤의 「北軒集雜說」에
「西浦多以俗諺爲小說 其中所謂南征記者 有非等閑之比 予故翩以文字 」
란 기록이 있어 더욱 뒷받침해 주고 있는데 이것이 南征記에 대한 최초의 문헌상 기록으로 보여진다. 또 다른 南征記에 대한 기록은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에 나타나는데 卷 7. 小說辨證說에「南征記,北軒爲肅廟仁顯主后閔氏巽位,欲悟擧心 而製者 」라 하여 南征記의 작가에 대해 혼란을 가져오게 하나
3) …人以其天資近道, 而未能用工學問爲恨.(肅宗實錄 同年月 日條)
4) 至九流諸方技, 算數律呂, 象緯奧地之禮, 覽卽洞解其節寂,而精而竺聃同異之際,出有人無,粗而稗官小說之叢,談天彫寵,禮不歷歷貫穿.(三淵金昌翕,西浦集序)
이 문제에 대해서 南征記는 西浦의 한글소설이고 金春澤은 그것을 漢譯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定說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李圭景의 「欲悟聖而製者」리는 기록인데 이것이 바로 南征記의 창작 동기를 말해주는 것이다.
즉 西浦는 無辜하게 閔妃를 廢黜하는 肅宗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는 것인데 이 당시의 궁중의 상황을 槪略해 보면 다음과 같다. 肅宗의 妃인 仁敬王后가 昇遐하때 그 繼妃로서 兵曹判書 閔維重의 따님인 仁顯王后가 冊封되었는데 閔后는 天生聖姿와 聖德을 갖춘 분이었지만 불행히도 王子를 낳지 못하였다. 그래서 閔后는 王을 권하여 淑儀 金氏를 뽑아 後宮에 들이기로 하였는데 그때 宮人 張氏가 侍婢로서 後宮에 있었다. 張氏는 퍽 慧點하여 王의 마음을 잘 맞추었고 더구나 왕의 寵愛를 받아 景宗을 낳았으며 이어서 禧嬪이 되었다. 이 때부터 張禧嬪은 권세를 누리며 王妃의 자리를 탐내 여러 가지로 閔后를 모함하여 廢位케 하고 자기가 王妃가 되었다. 따라서 閔后는 6년 동안이나 궁 밖에 있다가 張禧嬪의 죄가 드러나고 禮宗이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친 후 復位가 되었으나 얼마 안 있어 三五세로 昇遐하였다.
이 때 閔后의 廢黜을 극력 반대하다가 귀양가서 거기에서 죽은 西浦이니 만큼 그가 聖心의 悔悟를 목적으로 썼다는 것은 매우 일러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南征記의 내용도 당시 궁중에서 벌어졌던 상황과 부합되는 바가 많은데, 다음에는 南征記의 내용을 살펴 어떤 점이 史實과 서로 통하는지 비교해 보자.
三. 甫征杞의 槪要
大明 嘉靖末 北京 順天府이 劉焦라는 宰相이 있었는데 誠意伯 劉基의 後禮로서 당시 名臣인 嚴崇파 의견이 맞지 않아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와 평화롭게 살았다. 그에게는 일찍 과부가 된 누이 牡夫人과 늦게 얻은 아들 延禮가 있었는데 부인은 延壽가 아직 강보가 쌓여 있을 때 棄世하였다. 延壽는 성장함에 따라 才質이 뛰어나 l5세에 과거에 일등을 하여 翰林編修官을 제수받았으나 年少함을 이유로 10년 동안 독서할 여가를 얻었다.
劉少師(裸)는 모든 媒婆를 불러 翰林의 婚處를 부탁하는데 杜夫人과 의논하여 女僧 妙姬의 도움으로 才德을 겸비한 謝貞玉을 翰林의 配匹로 맞아들인다. 그 후 劉少師도 得病棄世하고 유한림과 사씨는 아무런 부족 없이 琴瑟좋케 지냈는데 膝下이 자녀가 없음을 걱정하여 사씨는 喬氏라는 여자를 小室로 맞아들이게 한다. 喬氏는 掌珠라는 아들을 낳고 곧 이어 사씨도 또한 아들을 낳으니 이때 보러 시기 많고 奸妖안 喬氏는 謝氏를 모함하여 결국 門客 董淸과 짜고 翰林의 마음을 움직여 사씨를 내쫓는다. 그 후 사씨는 勇姑의 墓下에서 지내다가 꿈에 나타난 劉少師의 지시를 받고 교씨와 董淸의 무리로부터 몸을 피한다. 그리하여 南으로 향하여 정처없이 방황하다가 아황과 여잉 二妃의 現身을 보고 그들의 위로를 받은 후 계속 苦楚를 겪다가 女僧妙姬의 도움을 받아 水月庵이 留하게 된다.
한편 劉翰林은 謝氏를 내쫓은 후 喬氏를 正室로 삼았는데 喬氏는 家內를 獨占하여 선량한 侍婢를 학대하는가 하면 門客인 董淸과 私通하고 마침내는 그와 結托하여 유한림마저 해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유한림은 董淸과 奸臣인 嚴丞相 무리의 讒訴로 인하여 幸州로 유배를 당하고 董淸은 그의 代價로 陳留縣令을 거쳐 桂林太守가 되어 喬氏와 유한림의 재산을 가지고 부임하였는데 그 지방 사람들을 착취하여 百姓의 怨禮이 높았다 또한 교씨는 董淸의 門客인 冷震과 다시 私通하고 재물을 갖고 도망하나 중간에서 도둑맞고 빈털털이가 되어 妓生이 된다.
한편 유한림은 配所에서 신기한 샘물로 눈을 씻고 그 때까지 昏迷했던 精神이 맑아졌으며 特赦를 받아 석방되어 오던 중 喬氏의 侍女 雪梅를 만나 그간의 일을 낱낱이 듣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유한림은 고향으로 오던 중 다서 董淸 무리의 추격을 받으나 謝氏를 만나 九死一生으로 危機를 모면하고 謝氏와 재회한다.
그 후 天子는 유한림의 無罪를 알고 그에게 侍郞을 제수함과 동시에 董淸의 무리를 처벌한다. 유한림은 다시 禮部尙書가 되어 丞相까지 된 후 妓生이 된 喬氏를 불러 罪를 묻고 죽인다. 謝氏는 南方를 徨할 때 도움을 받았던 林氏를 불러 그 여자가 데리고 있던 사내아이가 잃어 버렸던 謝氏의 아들임을 알고 기적적으로 母子가 만났으며 林氏가 덕이 있음을 알고 그를 한림의 소실로 권한다. 그러하여 사씨는 四子를 낳고 林氏는 三子를 낳았으며 子孫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고 일가가 화목하게 살았으며 사씨는 女訓과 列女傳을 지어 후세 閨法의 귀감이 되게 되었다.
이상이 南征記의 줄거리인데 유한림은 禮宗과 설정이 비슷하고 謝氏와 喬氏는 仁顯王后와 張禧嬪의 관계와 비슷하다. 또한正室의無子, 小室의 得男 그리고 小室의 正室에 대한 모함 등이 史實과 소실의 내용이 서로 부합된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 廢妃 사건과 南征記 創作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四. 異 本
南征記에는 한글본과 漢文本이 있는데 한글본은 坊刻本, 筆寫本, 活版本으로 나눌 수 있고 漢文本은 筆寫本만이 전해진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南征記는 상당히 널리 읽혀졌기 때문에 現傳하는 筆寫本도 많은 편인데 여기서는 본 解題本인 藏書閣本과 羅孫書室本 三種, 그리고 坊刻本을 중심으로 비교 고찰해 보려한다.
1. 漢 文 本
1) 藏書閣本(筆寫年度 未詳) 64장반
2) 羅孫書室所藏本(乙卯 元月 筆寫, 즉 1915년으로 推定)
3) 上同(乙未 十一月 筆寫, 乙未年은 1895년과 1835년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표지뒷장이 「聖上耶位之元年」이란 귀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35년(憲宗 元年)이 더 가능성이 많지 않나 생각된다 )
2. 한 글 본
1) 羅孫書室本(융희경술 筆寫, 즉 1910년 上·下卷.)
2) 坊刻本(辛亥年板, 즉 1911년이나 1851년. 그런데 Courant의 「韓國書誌」에 이 本에 대해 언급되어 있으므로 1851년일 것임. 국내에는 下卷하나만 있고 5) 파리 東洋語學校에 上·中·下(21장·19장·23장) 1질과 上·下(32장·34장)
1질 모두 2질이 소장되어 있다. 6)이상의 것을 중심으로 藏書閣本을 한글 坊刻本파 비교하고 다음 같은 한문본인 羅孫書室所藏의 乙卯本(以下 乙卯本으로 稱함)과 비교하고 다음에는 한글 筆寫本인 羅孫書室所藏 庚戍本(以下 庚戍本)과 비교하여 각 異本간의 관계를 살펴 보려한다. 여기서 漢文本으로 乙未本과 乙卯本중 乙卯本을 텍스트로 삼은 것은 乙未本의 筆寫年度가 오래되진 했으나 그 縮約어 심해 분량도 적고 곳이 따라서는 文法的으로 맞지 않는 곳이 있어 오히려 乙卯本이 리 정확하기 때문이고 또 坊刻本의 텍스트는 2종의 내용이 거의 같아 어느 것을 택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본다
5) 金東旭 編著, 景印坊刻本小說全集一卷,1973年. 羅孫書屋 참조
6) 金東旭, W.E. Sklllend, D. Bouchez 共編, 同 全集 四卷.1975년 참조.
우선 藏書閣本과 한글 坊刻本과 비교해 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表題의 相異함이다 극 한글 방각본에는「샤시남졍긔」라고 되어 있는 반면 장서각본에는 「南征記」로 되어 있다 그런데 羅孫書室에 있는 다른 漢文本에는 南征記라 되어 있고 비교적 최근이 筆寫된 乙卯本과 한글 筆寫本이- 庚戍本에만 謝氏南征記라 되어 있다 여기에 南征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南征記」라 되어 있는 것을 참고한다면 먼저 「南征記」로 불리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女主人公의 友生인 謝氏가 앞에 첨가되어 「謝氏南征記」로 불리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에 두 本의 차에는 장서각본이 回章體로서 回章의 제목이 있는데 반해 坊刻本에는 回章으로 나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言及했던 作家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여 생각한다면 西浦는 回章없이 그대로 한글소설을 창작했고 金春澤이 한문으로 번역할 때 중국소설을 모방하여 回章으로 나누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용면에 있어서 坊刻本의 분량은 장서각본이 비해 약 1/3이 되므로 자연 축약된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杜夫人에 대해서 장서각본에는
只有一妹爲鴻驢少卿杜强之妻 少師愍其寡居 尤愛甚重.
이라 되어 있는데 비해 坊刻本에는
소의누의한히이스니일즉과거여스그경샹을 궁측이녀겨우지극더라
라 하여 간략하게 되어 있고 마지막 부분에 翰林이 喬女를 벌주는 장면이 있는데 장서각본에는
尙書 日 爾有十二大罪聽之 始夫人戒以勿爲淫樂此好意 爾爲人危之言讒於我一也(中略) 長沙路上送盜害我十二也 淫婦有此大罪 豈可得生耶.
라되어 있어 喬女의 罪狀을 낱낱이 열거하고 있는데 坊刻本에는상셰진목질왈네죄를아다교녀고두왈
로 상당히 축약되어 있고, 이 밖에도 주인공이 쓴 詩나 書簡등의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다음 장서각본과 乙卯本을 비교해 보면 우선 回章으로 나뉘어진 것은 같다. 그러나 두 本의 回章 제목이 약간씩 다를 뿐 아니라 장서각본은 回章이 7회까지 나가다가 8회 부터는 回章 제목이 보이지 않고 그대로 계속된다 이것은 다론 한문본에서는 볼 수 없은 것으로서 筆寫者의 故意인지도 알 수 없으나 7회까지 分簞되다가 중단된 것을 보면 筆寫者의 실수 쪽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장서각본의 回章 제목을 살펴 보면
1. 淑女撰白衣像 良媒結赤繩緣
2. 詩詠關雎機木 琴奏霓裳羽衣
3. 妾欺丈夫讒正室 多謀門客穹愛姬
4. 謝孝女言告言歸 喬淫婦爲鬼爲喊
5. 寬易君子信黨言 奸婢惡人狀殺子
6. 結髮夫婦拜下堂 隔陽奧姑感中夢
7. 懷沙亭寫柱記笏 黃陵廟拜謁二妃
이고 여기서 그쳐 있다. 乙卯本은 조금 달라서 3회 妾欺丈夫讒正室 대신 正寢夢態로, 多謀門客窈愛妾 대신 門客切妾으로 되어 있고 6회는 櫓禮下堂, 變姑感夢으로 되어 있다. 다음 8회부터 乙卯本으로 回章 舞目을 보층해 본다면
8. 夫人依止空門 群小構成詩案
9. 大船調琵琶 甘露洗禮黨
10. 使君變妖妾 實客逢故人
11. 奸人惡稔身斃 天道否極泰半
12. 母子重會 逆婦就戮
과 같이 된다.
내용면에서 보면 1회부터 7회까지는 장서각본과 乙卯本이 本文의 대용이나 분량이 거의 같은데 6회부터는 乙卯本의 분량이 조금씩 많아져 11회의 경우는 乙卯本이 장서각본이 비해 2배가 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8회에 유한림이 謝夫人 쫓은 일을 후회하
고 있을 때 고모인 杜夫人한테서 편지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장서각본에는
會有人從成都來 傳杜夫人禮猶未知謝氏之去勉戒云
云 意盖栽懇翰林執其書再三披閱語頗有理.
라 하여 杜夫人의 訓戒에 대해 「勉戒云云」이라고 간략하게 되어 있는데 반해 乙卯本에는
其書日 老叔母寄賚姪延禮 與君相別 今幾日月 僻土遼貧 京路渺茫 只有夢想而已 意爲人臣而欲禮君 則禮其忠節而已(中略) 賢姪承祖宗之緖 變望賚之禮 不待老身之戒 嗚呼謝氏之賚德 先兄知之 而君獨不知 (中略) 使謝氏全其淸節 保其性命 以副先兄平日眷숍之至意 是所望也 便忙草草.
라고 하여 杜夫人 편지의 내용을 상세히 기술했고 董淸이 翰林을 모함할 수 있게 된 결정적 증거가 되는 한 점의 시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도 장서각본은
淸偶於案上 得一紙 乃翰林之詩也 再三看過 喜色滿顔.
이라 되어 있는데 乙卯本에서는그詩가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어
偶於案上休紙得一小紙 却翰林所製詩也 其詩曰 古人誇證後堪哈 監戒丁寧君念哉 天上書因明主降 水中盃爲俟臣來 朝無正土治還亂 政拂鼻/喘亦丈 惟願至尊調玉燭 燼敎民物上春臺.
라 하였으며 喬女를 벌하여 죽인 후 劉翰林과 謝氏와 그 후 맞아들인 小室林氏의 행적에 대해 장서각본에는
林氏連三子熊兒駿兒變兒 皆有父兄之風 劉尙書於穆宗朝爲丞相 佐天子致大平 皇帝皇后聞夫人賢德 數召引見六官皆師事 四子皆及第名顯於朝廷矣로 끝맷고 있는데 乙卯本에는丞相與夫人偕老 年至八十無疾而終 其後麟爲兵部尙書 熊爲吏部侍郞 駿爲戶部尙書 禮爲大常卿 林氏亦享
無彊之福 謝夫人著女訓十二章及續列女傳三卷 行于世且訓 四婦王氏楊氏杜氏李氏皆爲賢婦人以續尊姑之懿策 自古閨法之正 無出謝夫人右者 於禮賢哉
라 하여 주인공의 末年의 行蹟까지 상세히 기술하였다 .이 부분은 다른 漢文本이나 한글 坊刻本, 筆寫本에까지 모두 붙어 있는데 유일하게 장서각본에만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장서각본과 乙卯本을 비교해 보면 장서각본 은 8회 이후 乙卯本에 비해 분량이 떨어져 乙卯本이 소설 구성에 있어서 클라이막스와 대단원의 부분이 상당히 부연되고 있고 장서각본은 간략하게 되어 있는 느낌이다.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글 筆寫本인 庚戍本과 비교해 보면 庚戊本은 한글로 되어 있지만 漢文本처럼 回章이나누어져있다. 즉 1. 숙녀논찬빅의상양믹는결젹승연 2. 시령콴져교목금듀비상우의 3. 문긱니결헙 졍실의몽비라 4. 효녀언고언귀 음부위귀위력 5. 군적신참안흉인쟝익즈 6. 됴장호당구고강몽 7. 회스경호텬항능묘부임 8. 부인의지공문 군소구셩시안 9. 별션의 비파를안고단이실의명을옷다 l0. 군은 죠흔 켸덥을 실고 도라오는숀은고인을 만나다. 11. 쇼인은약흔이러만호면몸니둑고 텬도난막힌거시극딘호면우쥬가통타. 12. 모조는도시모히고 력녀난둑는더다.
로 되어 있어 漢文本 중에서도 장서각본 보다는 乙卯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준다. 또 庚戍本이 한글 坊刻本과 다른 점을 보여 주는 것은 謝貞玉이 觀音讚을 지은 장면에서 한글로 音만 달았을 뿐 漢文文章이다 즉
오문더스난 고지승예라 상상지덕호니 여츙님라관져갈담은부인지人라 中略 아작찬문니 유루십지로다
라 하여 漢文本 系列임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곳에 따라서는 相異한 부분이 보이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던 董淸이 劉翰林의 詩를 발전하는 장면에서
동촁이칙상위의셔한당죠회를으더보니니난한님의글지은거시라두셰번보회거날
로 되어 乙卯本과 같이 詩가 상세히 나와있지는 않다. 결국 庚戍本은 한글이키만 坊刻本과는 그 계열이 다르고 오히려 漢文本과 같은 계열인 듯 하니 극 漢文本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五. 結 言
이상 앞에서 언급한 것을 종합해 보면 장서각본 南征記는 한글 坡刻本과는 매우 다르고 乙卯本과는 비슷하나 그 디테일에 있어서는 또 다른 면이 있다. 더구나 장서각본은 回章이 7회까지 전개되다가 중단되었고 8회 이후에는 乙卯本에서 보에는 것과 같이 부연됨이 없이 상당히 간략하게 되어 있으며 맨 끝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점이 이 본의 특징이다 이것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특징 외에도 이 본은 정확하게 25자×11行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별 다른 筆體의 흔들림이 없이 깨끗하고 단아하게 筆寫되어 있어 筆寫者의 身分이나 性格을 어렴풋이 나마 느끼게 해 준다.
〈延世大學校 講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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