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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419
서명 / 저자 : 海東歌謠 / 金壽長(朝鮮) 編
개인저자 : 김수장 (조선), 1690-?
단체저자 : 장서각
판사항 : 新鉛活字版
발행사항 : 京城 : [ ], 1930
형태사항 : 線裝 1冊(55 張) ; 23.3 × 16.3 cm
일반주기 : 刊記 : 昭和五年(1930)三月二十五日發行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藏書閣印
청구기호 : K4-6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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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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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 24-1152
해동가요 (海東歌謠) 1755년(영조 31)에 김수장(金壽長)이 편찬한 시조집. 이본으로 일석본(一石本)·주씨본(周氏本, 일명 崔南善本)·박씨본(朴氏本)의 3종이 있다. 일석본의 명칭은 <<해동풍아 海東風雅>>이다. 일석본과 주씨본은 6·25 때 소실되고, 일석본의 전사본(轉寫本)으로 조윤제(趙潤濟)와 이재수(李在秀)의 두 전사완본(傳寫完本)과 정병욱(鄭炳昱)과 김근수(金根洙)가 각각 무명씨를 전사한 것이 전한다. 박씨본의 발견으로 <<해동가요>>의 편찬 경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책에 의하면 편찬자가 1754년에 가집 편찬을 거의 완료하고 자신의 서문을 썼고, 그 다음해에 장복소(張福紹)와 자신의 발문을 첨가하여 편찬을 완결하였다. 이 초찬본을 을해본(乙亥本)이라 하나 전하지 않는다. 이 본을 수정, 보완하여 1763년에 개찬하였으며 이를 계미본(癸未本)이라고 한다. 김수장은 계미본을 완성한 이후에도 수정과 보완을 계속하여 1767년에 〈봉하친경친잠 奉賀親耕親蠶〉 2수를 지어 본편에 보충하고,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의 명단을 작성하여 책의 끝에 붙이고, ‘청구가요(靑邱歌謠)’라는 부편(附篇)을 엮어 권말에 붙였다. 이러한 보완과 수정의 노력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데, 1769년에 김중열(金重說)과 박문욱(朴文郁)이 <<청구가요>>의 후서에 쓴 ‘가보개수정시(歌譜改修正時)’와 ‘가보중수지제(歌譜重修之際)’라는 말에서 확인된다. 체재는 작자 위주로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누어 작품을 싣고 있다. 여러 이본 중에서 주씨본의 체재를 보면, 권두에 김수장 자신이 쓴 〈해동가요서〉에 이어 〈각조체격 各調體格〉·〈가지풍도형용14조목 歌之風度形容十四條目〉·〈각가체용이별부동지격 各歌體容異別不同之格〉·〈작가제씨 作歌諸氏〉 등을 밝히고, 그 다음에 작품을 수록하였으며, 권말에는 장복소의 발문에 이어서 〈고금창가제씨 古今唱歌諸氏〉의 명단을 열록(列錄)하였다. 작품의 배열을 보면 작가를 위주로 하였기에 곡목의 배열에는 등한하였던 것 같다. 유명씨부에서 보면 박씨본은 본문 처음에 ‘초중대엽(初中大葉)’·‘이중대엽(二中大葉)’·‘삼중대엽(三中大葉)’·‘북전(北殿)’·‘이북전(二北殿)’·‘초수대엽(初數大葉)’ 등 6개의 곡목을 제시하여 각 1수씩의 작품을 들고, 이어서 열성어제(列聖御製)·여말(麗末)·본조(本朝)의 세 부문으로 나누어 작가별로 작품을 배열하고 있다. 일석본과 주씨본은 본문 앞머리에 6개의 곡목을 제시한 것은 박씨본과 같으나, ‘초수대엽’ 다음에 ‘이수대엽(二數大葉)’이라는 곡목을 하나 더 들어 7항목으로 만들고 있다. 주씨본에서는 박씨본과 같이 본문에 열성어제·여말·본조라고 하는 두서가 있는데, 일석본에서는 이러한 표시 없이 작품이 나열되어 있다. 작가 나열은 대체로 시대순이다. 무명씨부의 배열은 곡목별로 하고 있다. 박씨본에는 접소용(接騷聳)·낙시조(樂時調)·만수(蔓數)의 3항목이 보일 뿐인데, 일석본에서는 삼수대엽(三數大葉)·낙시조·편락시조(編樂時調)·소용(騷聳)·편소용(編騷聳)·만수대엽(蔓數大葉)의 6항목으로 늘어나 있다. 수록된 작품수를 보면, 유명씨부에서 박씨본이 311수(곡목으로 제시된 6수를 포함. 다음의 일석본과 주씨본도 이에 따름.)이며, 주씨본은 568수이고, 일석본은 321수(이재수본에 의함.)이다. 작가수는 박씨본이 93명이고, 일석본이 85명(어부가는 실명으로 되어 있으나 이현보로 추정하여 계산함. 주씨본에서도 동일)이며, 주씨본이 100명(전사 때의 누락이 분명한 송인·허정을 작가수에 가산)이다. 일석본과 주씨본의 작가수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일석본의 끝부분이 떨어져 없어졌기 때문인데, 주씨본에 있으면서 일석본에 빠진 작가는 김삼현(金三賢)·김성기(金聖器)·김천택(金天澤)·김수장 등 15명에 이른다. 박씨본과 주씨본의 작가 내용을 검토해보면, 박씨본에 실려 있는 작가 93명 가운데 주씨본에 빠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기에 새로이 이정보(李鼎輔)·조명리(趙明履)등 7명의 작가가 더 보태어져 주씨본에서는 100명이 된다. 그러나 박씨본은 작가수 93명에 작품수 311수인 데 비하여 주씨본은 작가수 100명에 작품수를 보면 568수가 된다. 이는 작가수에는 큰 변동이 없으면서 개별 작가의 작품수에 가감이 많은 데에서 온 결과이다. 작품수의 가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김천택과 김수장을 들 수 있는데, 박씨본에는 김천택 21수, 김수장 21수밖에 실려 있지 않던 것이 주씨본에서는 김천택 57수, 김수장 117수로 늘어나 있다. 무명씨부의 작품수는 박씨본이 202수이며, 일석본은 315수이니 일석본이 113수 더 많다. 결국 일석본은 총 626수를, 박씨본은 총 513수를 각각 수록하고 있다. <<해동가요>>는 <<청구영언>>·<<가곡원류>>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가집(三大歌集)에 속한다. 풍부한 작품의 수록은 물론, <<청구영언>>과 <<가곡원류>>의 교량적 위치에서 후대 가집의 편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였다고 본다. 박씨본은 1979년에 규장문화사(奎章文化社)에서 영인되었다. 이재수의 전사본은 동광문화사(東光文化社)에서 고전문학선에 수록하여 영인되었다. 주씨본은 1930년 경성대학에서 인쇄되었고, 이를 1974년에 아세아문화사가 영인하기도 하였다. 교주본으로는 1950년에 김삼불(金三不)이 일석본의 유명씨부와 주씨본을 교합하여 정음사에서 <<해동가요>>로 출판한 것이 있다. 연구상황은 박씨본의 발견으로 인하여 그 편찬과 개찬과정이 비로소 확실해지고 있으며, 영인과 주석에 의하여 원전비평이 이제 본궤도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작품론이나 체계적인 가집의 연구는 아직 미진한 상태이다. 특히, 현존하는 이본들 모두가 초찬본이나 개찬본이 아니고, 그로부터 파생된 이본들이라는 점에서 원전의 출현을 기대하는 실정이다.<참고문헌> 校注本 海東歌謠(金三不, 正音社, 1950), 一石本 海東歌謠(李在秀編, 東光文化社, 1974), 時調의文獻的硏究(沈載完, 世宗文化社, 1972), 古時調論(崔東元, 三英社, 1980), 金壽長硏究(權斗煥, 國文學硏究 20, 1973). 〈崔東元〉


부가정보

~ 24-1152
해동가요 (海東歌謠) 1755년(영조 31)에 김수장(金壽長)이 편찬한 시조집. 이본으로 일석본(一石本)·주씨본(周氏本, 일명 崔南善本)·박씨본(朴氏本)의 3종이 있다. 일석본의 명칭은 <<해동풍아 海東風雅>>이다. 일석본과 주씨본은 6·25 때 소실되고, 일석본의 전사본(轉寫本)으로 조윤제(趙潤濟)와 이재수(李在秀)의 두 전사완본(傳寫完本)과 정병욱(鄭炳昱)과 김근수(金根洙)가 각각 무명씨를 전사한 것이 전한다. 박씨본의 발견으로 <<해동가요>>의 편찬 경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책에 의하면 편찬자가 1754년에 가집 편찬을 거의 완료하고 자신의 서문을 썼고, 그 다음해에 장복소(張福紹)와 자신의 발문을 첨가하여 편찬을 완결하였다. 이 초찬본을 을해본(乙亥本)이라 하나 전하지 않는다. 이 본을 수정, 보완하여 1763년에 개찬하였으며 이를 계미본(癸未本)이라고 한다. 김수장은 계미본을 완성한 이후에도 수정과 보완을 계속하여 1767년에 〈봉하친경친잠 奉賀親耕親蠶〉 2수를 지어 본편에 보충하고,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의 명단을 작성하여 책의 끝에 붙이고, ‘청구가요(靑邱歌謠)’라는 부편(附篇)을 엮어 권말에 붙였다. 이러한 보완과 수정의 노력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데, 1769년에 김중열(金重說)과 박문욱(朴文郁)이 <<청구가요>>의 후서에 쓴 ‘가보개수정시(歌譜改修正時)’와 ‘가보중수지제(歌譜重修之際)’라는 말에서 확인된다. 체재는 작자 위주로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누어 작품을 싣고 있다. 여러 이본 중에서 주씨본의 체재를 보면, 권두에 김수장 자신이 쓴 〈해동가요서〉에 이어 〈각조체격 各調體格〉·〈가지풍도형용14조목 歌之風度形容十四條目〉·〈각가체용이별부동지격 各歌體容異別不同之格〉·〈작가제씨 作歌諸氏〉 등을 밝히고, 그 다음에 작품을 수록하였으며, 권말에는 장복소의 발문에 이어서 〈고금창가제씨 古今唱歌諸氏〉의 명단을 열록(列錄)하였다. 작품의 배열을 보면 작가를 위주로 하였기에 곡목의 배열에는 등한하였던 것 같다. 유명씨부에서 보면 박씨본은 본문 처음에 ‘초중대엽(初中大葉)’·‘이중대엽(二中大葉)’·‘삼중대엽(三中大葉)’·‘북전(北殿)’·‘이북전(二北殿)’·‘초수대엽(初數大葉)’ 등 6개의 곡목을 제시하여 각 1수씩의 작품을 들고, 이어서 열성어제(列聖御製)·여말(麗末)·본조(本朝)의 세 부문으로 나누어 작가별로 작품을 배열하고 있다. 일석본과 주씨본은 본문 앞머리에 6개의 곡목을 제시한 것은 박씨본과 같으나, ‘초수대엽’ 다음에 ‘이수대엽(二數大葉)’이라는 곡목을 하나 더 들어 7항목으로 만들고 있다. 주씨본에서는 박씨본과 같이 본문에 열성어제·여말·본조라고 하는 두서가 있는데, 일석본에서는 이러한 표시 없이 작품이 나열되어 있다. 작가 나열은 대체로 시대순이다. 무명씨부의 배열은 곡목별로 하고 있다. 박씨본에는 접소용(接騷聳)·낙시조(樂時調)·만수(蔓數)의 3항목이 보일 뿐인데, 일석본에서는 삼수대엽(三數大葉)·낙시조·편락시조(編樂時調)·소용(騷聳)·편소용(編騷聳)·만수대엽(蔓數大葉)의 6항목으로 늘어나 있다. 수록된 작품수를 보면, 유명씨부에서 박씨본이 311수(곡목으로 제시된 6수를 포함. 다음의 일석본과 주씨본도 이에 따름.)이며, 주씨본은 568수이고, 일석본은 321수(이재수본에 의함.)이다. 작가수는 박씨본이 93명이고, 일석본이 85명(어부가는 실명으로 되어 있으나 이현보로 추정하여 계산함. 주씨본에서도 동일)이며, 주씨본이 100명(전사 때의 누락이 분명한 송인·허정을 작가수에 가산)이다. 일석본과 주씨본의 작가수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일석본의 끝부분이 떨어져 없어졌기 때문인데, 주씨본에 있으면서 일석본에 빠진 작가는 김삼현(金三賢)·김성기(金聖器)·김천택(金天澤)·김수장 등 15명에 이른다. 박씨본과 주씨본의 작가 내용을 검토해보면, 박씨본에 실려 있는 작가 93명 가운데 주씨본에 빠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기에 새로이 이정보(李鼎輔)·조명리(趙明履)등 7명의 작가가 더 보태어져 주씨본에서는 100명이 된다. 그러나 박씨본은 작가수 93명에 작품수 311수인 데 비하여 주씨본은 작가수 100명에 작품수를 보면 568수가 된다. 이는 작가수에는 큰 변동이 없으면서 개별 작가의 작품수에 가감이 많은 데에서 온 결과이다. 작품수의 가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김천택과 김수장을 들 수 있는데, 박씨본에는 김천택 21수, 김수장 21수밖에 실려 있지 않던 것이 주씨본에서는 김천택 57수, 김수장 117수로 늘어나 있다. 무명씨부의 작품수는 박씨본이 202수이며, 일석본은 315수이니 일석본이 113수 더 많다. 결국 일석본은 총 626수를, 박씨본은 총 513수를 각각 수록하고 있다. <<해동가요>>는 <<청구영언>>·<<가곡원류>>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가집(三大歌集)에 속한다. 풍부한 작품의 수록은 물론, <<청구영언>>과 <<가곡원류>>의 교량적 위치에서 후대 가집의 편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였다고 본다. 박씨본은 1979년에 규장문화사(奎章文化社)에서 영인되었다. 이재수의 전사본은 동광문화사(東光文化社)에서 고전문학선에 수록하여 영인되었다. 주씨본은 1930년 경성대학에서 인쇄되었고, 이를 1974년에 아세아문화사가 영인하기도 하였다. 교주본으로는 1950년에 김삼불(金三不)이 일석본의 유명씨부와 주씨본을 교합하여 정음사에서 <<해동가요>>로 출판한 것이 있다. 연구상황은 박씨본의 발견으로 인하여 그 편찬과 개찬과정이 비로소 확실해지고 있으며, 영인과 주석에 의하여 원전비평이 이제 본궤도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작품론이나 체계적인 가집의 연구는 아직 미진한 상태이다. 특히, 현존하는 이본들 모두가 초찬본이나 개찬본이 아니고, 그로부터 파생된 이본들이라는 점에서 원전의 출현을 기대하는 실정이다.<참고문헌> 校注本 海東歌謠(金三不, 正音社, 1950), 一石本 海東歌謠(李在秀編, 東光文化社, 1974), 時調의文獻的硏究(沈載完, 世宗文化社, 1972), 古時調論(崔東元, 三英社, 1980), 金壽長硏究(權斗煥, 國文學硏究 20, 1973). 〈崔東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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