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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419
서명 / 저자 : 東人詩話/ 徐居正(朝鮮) 編
개인저자 : 서거정 (조선), 420-1488
강희맹, 1424 - 1483
최숙정, 1433 - 1480
김수온, 1409 - 1481
이필영, 1573 - ?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慶州府: [ ], [寫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 2卷 1冊: 四周單邊, 半郭18.7 × 11.8 cm, 烏絲欄, 半葉 10行 20字, 內向二葉花紋魚尾; 22.5 × 14.8 cm
일반주기 : 序 : 歲秋八月 上澣晋山 姜希孟 (1424 - 1483) 景醇序, 序 : 丁酉 (1477) 四月中澣通訓大夫行 藝文館副應敎知製敎兼經筵侍講官春秋館 編修官 崔淑精 (1433 - 1480) 國華序, 序 : 成化紀元之十一年 蒼龍乙未 (1475) 暮春下浣乖崖老人 金守溫(1409 - 1481) 文良序 行狀 : 歲在靑鼠 (甲子, 1444) 建虎之月 上旬黑牛夜錦南書粧于警橋 跋 : 崇禎己卯(1639) 陽月下澣廣陵後人 李必榮 (1573 - ? ) 識 紙質 : 楮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4-6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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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東人詩話』 解題
張鴻在
徐居正(朝鮮, 1420∼1488)編. 寫本. 慶州府. [寫年未詳].
2卷 1冊. 四周單邊, 半郭 18.7×11.8㎝, 烏絲欄. 半葉 10行 20字. 內向二葉花紋魚尾. 22.5×14.8㎝. 總裝.
刊記:甲辰(1664) 六月日慶州府重刊.
印:藏書閣圖書印.
紙質:楮紙.
(一)序言
『東人詩話』는 李朝초기의 문신·학자인 四佳 徐居正(1420∼1488)이 撰한 우리 나라 최초의 순수 詩話集이다. 高麗 때, 李仁老의 『破閑集』, 崔滋의 『補閑集』, 李奎報의 『白雲小說』, 李齊賢의 『<력0x5D61>翁稗設』 같은 것은 詩話만이 아닌 文談·筆談·野談·史話·時事 등 雜錄이 많으나 『東人詩話』는 그러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高麗人들의 저서는 崔淑精의 말대로 <소0x66E3>略·細<쇄0x671F>한 것이었다.
皆有衰集之勤 不無<소0x66E3>略細<쇄0x671F>之病(東人詩話後序)
그러나, 徐居正의 『東人詩話』는 그러한 폐단을 탈피하였다.
間取古今詞人墨客之所述 有全篇之粹然者 有一字一句而警策者 與夫意雖正 而辭或#駁 言雖切 而旨或賤俚 其間相去 不能以寸 而公則議論之精細於毫釐 陞黜之威嚴於袞鉞(書東人詩話候)
라 한 金守溫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하여간, 『東人詩話』를 전후하여 많은 詩話類가 쏟아져 나왔으나, 雜錄 가운데의 일부든지, 아니면 엉성하거나 단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詩話集은 못되었다. 이러한 산발적이고 단편적인 詩話들을 총집성한 洪萬宗의 『詩話叢林』이 나온 것은, 『東人詩話』가 나온 이후 200년이 넘는다. 또 『東人詩話』 이후 본격적·체계적인 詩話集이라 할 수 있는 『小華詩評』이 洪萬宗의 손에 이루어졌고, 그 사이에는 공백에 가까운 실정이었다.
이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東人詩話』의 가치는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림1
(二)筆者
『東人詩話』의 저자 徐居正은 朝鮮朝 世宗 2년(1420)에 태어나 成宗 19년(1488) 죽을 때까지 70평생 지극히 평탄한 생애였다. 官運도 매우 좋아서 세종·文宗·端宗·世祖·睿宗·成宗의 6왕을 섬기며 45년간이나 조정에 몽을 담고 있었다. 그의 동료들이, 死六臣으로 목숨을 바치고, 生六臣으로 세상을 피해도 一貫 벼슬자리를 지키며 政事와 학문에 전심하였다. 의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 더 큰 經綸을 위하여 살아야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퍽 고심도 했으리라. 그러나, 徐居正은 학문과 政事에의 남다른 포부가 있었기에 단연 후자를 택한 것이다.
徐居正의 字는 剛中, 號는 四佳亭, 諡號는 文忠. 本貫은 達城. 牧使彌性의 아들이며 陽村 權近의 外孫이다.
25세 때(世宗 26년, 1444)에 문과에 급제, 계속 벼슬이 累進하여 六曹의 判書를 두루 지냈으며, 大司憲·大提學·都摠官을 거쳐 右贊成에 이르렀다. 世祖 6년(1460) 謝恩使로 明나라에 가서 그곳 文士들과 時文을 논하여 奇才라고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문필에 두루 능하였다. 왕명으로, 『經國大典』·『東國通鑑』·『東國輿地勝覽』·『東文選』의 편찬을 주도하였으며, 또한 王命으로 『鄕藥集成方』을 諺解하여 매우 큰 공적을 남겼다.
저서로는 『東人詩話』·『筆苑雜記』·『太平閑話滑稽傳』·『歷代年表』가 전해지며, 문집으로 『四佳亭集』이 있다. 글씨로는 충주의 「花山君權近神道碑」에 그 자취를 남겼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 문화에 크게 기여하고, 우리 나라 漢文學을 대성할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부귀가 내려졌다.
(三)解題
『東人詩話』는 상·下 2冊, 본문은 모두 143篇으로 分章할 수 있다. 또한 姜希孟·崔淑精·金守溫의 세 序文과 李必榮의 跋文이 곁들여 있다.
대부분 우리 나라 詩와 詩人을 주축으로 하여 엮어졌는데, 中國의 詩가 많이 거론된 것은, 원래 彼土에서 移植된 문학인 데다 비교평론을 하다보니 불가피한 일이다.
이 詩話에서는 新羅 崔致遠 때로부터 朝鮮朝 초기 徐居正 당시까지 人口에 널리 膾灸된 詩는 거의 議論의 대상으로 삼았다.
徐居正은 이 詩話에서 어느 作者의 詩를 가장 많이 거론하였을까? 거론된 回數가 많은 순서대로 나열해 본다면, 우리 나라의 李穡·李奎報·崔瀣·李齊賢·李崇仁·李仁老, 中國의 杜甫·蘇軾·李白·王安石인데, 이들의 詩句는 무려 5회 이상 거론되었다. 물론, 鄭知常·金久<경0x553D>·鄭以吾·吳洵·金之岱·陣<화0x7BCD>·鄭<포0x791D>·權近·崔恒·林椿·鄭夢周·李存吾·卞季良 및 彼土의 趙孟<부0x63A1>·韓駒·韓愈 등 높은 비중으로 다룬 作者가 없지 않고, 또 한번 다루어도 중요하게 다룬 것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徐居正은 어느 시인의 어떤 시를 중요시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제, 『東人詩話』에 나타난 徐居正의 시론을 더듬어 보겠다.
①批評眼
徐居正은 뚜렷한 批評眼을 가지고 날카롭게 독자적인 시론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는 비평의 어려움을 강조하였다.
作詩非難 而知詩爲尤難 李文順#상評古人詩 以梅聖兪爲不佳 池塘生春草 爲非警語 而徐凝瀑布詩爲妙 然東坡稱徐爲惡 歐陽子以梅爲工 春草之句 古今絶唱 而李之評品如是 知詩豈不爲難乎(東人詩話 上58)
이와 같이 詩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自古詩人好尙不同 宋治平中 沈括呂惠卿王存李常同在館下評詩 沈曰退之之詩 乃押韻之文 格不近詩 呂曰詩正當如是 我謂詩人以來 未有如退之者 王存是沈 李常是呂 四人相詰不決 居正常在<란0x5CCF>坡 以黃文獻公潛胡祭酒儼 二詩示金乖崖守溫曰孰優 金曰胡優 又以益齋春亭二詩示曰孰優 又以牧隱雙梅二詩 示曰孰優 金曰雙梅優 每間皆逆吾心 吾笑曰胡之於黃 猶宋詩之於唐也(東人詩話 下57)
뿐만 아니라, 시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文章所尙隨時不同 古今詩人推李杜爲首 然宋初楊大年以杜爲村夫子 酷愛李長吉詩 時人效之 自歐文士專尙東坡 每及第榜出 則人曰三十三東坡出矣(東人詩話 上47)
그러니, 비평의 어려움은 不問可知다. 사람의 기호에 따라, 시대의 思潮에 따라 시에 대한 평가는 아주 다르다. 이런 가운데에서 날카로운 批評眼을 기지지 않고는 올바른 비평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徐居正은 털끝보다도 치밀하고 예리한 批評眼(金守溫의 序文참조)을 가졌으므로, 그의 시론은 조금도 갈팡질팡하지 않았다.
그는 李奎報와 李穡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들의 短處를 서슴지 않고 지적하였다.
文順援筆步韻 韻愈强而思愈健 浩汗奔放 雖風檣陣馬未易擬其速 東方詩豪一人而已 古人詩集中 無律詩三百韻者 雖歲鍛月鍊尙不得成 <황0x7C2F>一瞥之間操紙立成乎(東人詩話 上13)
라 하여 李奎報를 극찬하였고,
牧隱吳中八景一絶云……其曠漠<충0x76D3>融之氣 雖不及老杜徑庭 豈足多讓於前數聯哉(東人詩話 上53)
라 하여 李穡을 두둔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短處는 여러 곳에서 지적한 것이다. 白雲·牧隱의 長短을 아울러 평한 詩話 한 대목을 소개하겠다.
予#상讀李相國長篇 豪健峻壯凌<려0x5D32>振<탁0x77BD> 如以赤手搏虎

豹拏龍蛇 可怪可愕 然有#추猛處 牧隱長篇 變化闔闢縱橫古今 如江漢滔滔波<활0x7C27> 奇怪畢呈 然喜用俗語 學詩者 學牧隱不得其失也流於鄙野 學相國不得其失也如捕風繫影 無著落處(東人詩話 下60)
그들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들의 短處를 명백히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의 시평은 무엇보다도 객관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金守溫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於是 觀公之所貶駁 則必有以知詩道之不可如是 見公之所褒美者 則必有以知詩道之決不可不如是 卽所謂不可繩墨 而方圓自正者也(書東人詩話後)
그에게는 이와 같이 맹백한 비평기준이 있었다.
金學士黃元 登浮碧樓 見古今題詠 不滿其意 旋焚其版 終日憑<란0x5CD0>苦吟 只得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之句 意<학0x79C3>痛哭而去 昔賈浪仙三年吟得一句云 獨行潭底影 數息樹邊身 不覺垂淚 予觀浪仙之詩 寒瘦澁<벽0x6287>何至垂淚 黃元之句 老儒常談 何痛哭自苦如是(東人詩話 上6)
여기서, 徐居正은 널리 膾炙되는 두 시를 〈老儒常談〉·〈寒瘦澁<벽0x6287>〉하다고 貶論하였다.
또, 그의 비평기준은 철저한 儒家的인 면에 입각한 것이다. 孔子의 〈思無邪〉에 의한 시론을 펼쳤다. 佛家語를 많이 쓴 詩, 승려의 詩를 누차 언급한 것은 그 기상을 높이 샀기 때문이지 결코 佛家的인 방면에 서서 시론을 편 것은 아니다. 위에서, 李奎報·李穡의 시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속어를 많이 쓴다고 지적한 것은 모두 그의 儒家的인 비평기준이 아닐 수 없다.
詩者小技 然或有關於世敎 君子宜有所取之(東人詩話 下45)
이것도 儒家的인 자리에서 世敎를 위한 詩의 功效性을 말한 것이다.
予#상讀羅隱詩……語雖工 非仁人君子之言 文順賦<벽0x6297>寒犀云……豈不有關於治敎乎(東人詩話 上17)
詩語조차 철저히 儒家的인 면에서 평하는 徐居正. 그는 儒家的인 교육과 정치의 功效性으로 시를 보았다.
古之詩人立語措詞 雖不同 要皆各臻其極 歸之於正而已(東人詩話 下49)
저마다 표현하는 형식은 달지만, 궁극의 목표는 〈思無邪〉의 正導로 향하는 것이다.
②比較論
徐居正의 東人詩話는 一見해서 比較詩話라 할만큼 대부분 각 分章마다 둘 이상의 詩와 詩, 詩人과 詩人을 대비시키고 있다.
蘇軾과 李穡의 詩禍, 杜甫와 李齊賢의 忠憤을 대비시켜 中國과 우리 나라 시인의 공통점을 비교한 것이 있는가 하면,
金文烈富軾 鄭諫議知常 以詩齊名一詩 文烈結綺宮詩……詞意嚴正典實 直有德者之言也 鄭詩 語韻淸華句格毫逸 深得晩唐法 尤長於拗體……等句 出口警人膾炙當世 可以一洗空<군0x584B>矣 二家氣象不<모0x607F>(東人詩話 上4)
같은 것은, 우리 나라 詩 둘의 기상을 비교한 것이 있고,
太白<심0x687A>陽感秋詩 何處聞秋聲 簫簫北窓竹 東坡瀨玉亭詩 高<암0x690D>下赤日 深谷來悲風 能寫卽境語 印學士<빈0x648F>秋夜詩……其淸新雅絶 不讓二老(東人詩話 下7)
같은 것은 中國詩와 우리 나라 詩의 詩想을 비교하고 있다.
徐居正은 이 比較詩話를 시도하여, 크게는 우리 나라 詩도 中國詩에 못지 않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위의 예만 해도 印<빈0x648F>이 李白이나 蘇軾에 못지 않음을 보여 주지 않았는가? 『東人詩話』 첫머리에서부터 대뜸 宋太祖와 李太祖의 詩를 동일궤도에 놓고 제왕과 일반 사람의 文章氣象을 云謂하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민족의식을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鄭郊隱守一善郡 春日西郊詩……雅麗淸使 雖置之唐詩 亦無愧(東人詩話 下46)
은 결국, 우리 나라 詩도 唐詩에 겨루어 손색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는 또 女性詩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中國에는 蔡琰·班<첩0x7583>予 같은 여류시인이 속출하였으나 우리 나라에는 거의 없음을 말하고, 이를 변명하는 것이었다.
<구0x57E7>有所敎 詞藻之美 豈止是也(東人詩話 下53)
가르치기만 했다면, 우수한 女流詩는 中國에 못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徐居正의 比較詩話에서 作者 이외에 詩의 양적 배치 면에서 보아, 氣象·詩語(주로 點化·用事)·意態의 順으로 되어 있다.
위에 든 비교 이외에 비교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되는 詩話 몇을 圖示해 보겠다.
*<표 1>3
번호 作者 제목 또는 작품의 첫 句 비교사항 평가 출전
①金黃元 長城一面 苦吟 浪仙之詩寒瘦澁<벽0x6287> 黃元之句老儒常談 上⑥
賈島 獨行潭底影
②李奎報 「送春詩」 意態 老健奇絶 上(22)
趙云<흘0x7D4E> 「送春詩」
③鄭知常 「西都詩」 詞語 淸新美麗 下③
陳<화0x7BCD> 「松都詩」
④李奎報 輕衫小<점0x713D> 品藻 韻格 淸新幻妙 閑遠有味 下④
陳<화0x7BCD> 小梅零落
⑤李公遂 「下第」 氣象 氣象大不同 下⑧
林椿 「下第」
⑥蘇軾 「前後赤壁賦」 詩意 前後赤壁賦爲一洗萬古則非後人所可議擬也 下?
李穡 「觀魚臺賦」
⑦韓宗愈 十里平湖 風致 淸絶可愛 雖曰 詩中有畵亦可也 下?
李<암0x690D> 浮世功名
⑧李堅幹 旅館挑殘 詩語 皆淸絶 李尤高妙 下⑭
尹汝衡 乾坤蕩蕩
崔元祐 揖送吾師
曺係芳 敲門宿客
③氣象論
詩에 있어서 氣象을 중요시한 것은 評詩者들의 공통된 議論이겠지만, 徐居正은 특히 여러 차례 氣象에 대하여 云謂했다.
詩當先氣節 而後文藻(東人詩話 上7)
이라 하여 氣節이 文藻에 先行되어야 함을 보여 주었으니, 氣象을 중요시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東人詩話』 첫머리부터 氣象論을 전개하고 있다.
凡帝王文章氣象 必有大異於人者……其弘量大度 不可以言語形容(東人詩話 上1)
제왕이기에 詩의 氣象도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제왕에겐 제왕의, 평민에겐 평민의 기상이 있을 것은 사실이다. 지위·신분·性情·意趣가 다 詩에 나타나니, 詩로써 그 詩의 作者의 기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鄭谷登第後 宿平康里有詩云 春來無處不閑行 此地相看別有情 好是五更殘酒醒 耳邊聞喚狀元聲 有自誇狀元氣象(東人詩話 上62)
崔猊山瀣 才奇志高放蕩不<군0x584B>……又#상有詩云 我衣縕袍人輕<구0x5804> 人居華屋我圭竇 天工賦與本不齊 我不嫌人人我<후0x7CD1> 讀其詩可見因頓氣象(東人詩話 上19)
李侍中公遂下第詩曰 白日明金殿 靑雲起草廬 那知廣寒桂 尙有一枝餘 林西河椿下第詩 科第未收羅隱恨離騷空寄屈平哀 又斡科第由來收俊傑 公卿誰肯薦非才其氣象大不同 李終得大魁入台衡 林竟不第不霑一命詩出肺腑 或者天其先誘乎(東人詩話 下8)
趙文忠公浚 相業經綸 若不經意於詩 爲詩橫放傑出有大人君子之氣象……大明奉使祝孟獻次韻曰……盖反趙意 有抑東方之氣象(東人詩話 下44)
詩를 통하여 그 시인의 氣象과 現況을 알 수 있다. 度量이라든가 抱負를 한눈으로 읽을 수 있다고 보았다.
李正言存吾 平生慷慨不<군0x584B> 其論逆旽一疏 文章氣節 直與日月爭光 爲詩亦豪邁絶倫……讀其詩 其氣象可知(東人詩話 下27)
이것은 慷慨한 성격이 반영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武人의 시에는 武人다운 기상이 나타남을 보여 주었다.
金政堂得培 題金海客館云……田政堂祿生 題合浦云……兩公皆文章鉅手 兼總戎兵 其橫<삭0x650D><아0x689E>詩 氣象大異於雕篆酸寒者之所爲也(東人詩話 下67)
徐居正은 또 窮人의 詩에는 困窮한 氣象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自古窮人之語 皆枯寒瘦淡 林西河詩 恒飢窮子美 非病老維摩 盧先輩永綏詩……李遁村集詩……柳泰齊方善詩 腹中#추飯何曾飽 身上單衣苦不溫等句 可見惟悴困<북0x63A8>氣象(東人詩話 下9)
古之詩人類 皆窮苦 如孟郊賈島 以寒瘦枯淡之詞 爲奇警 有上舍李吉祥屢擧稱屈 #상作詩曰……此正自家實錄 而自然有不遇<감0x53CB>軻之氣象 眞郊島之流乎(東人詩話 下16)
窮人이기 때문에 憔悴困氣象·不遇<감0x53CB>軻之氣象이 나타난다고 했다. 詩語조차 寒瘦枯淡한 말을 애용하고, 생각조차 稱屈로 일관하는 窮人의 모습을 보았다.
徐居正은 한걸음 더 나아가 詩를 통하여 그 시인의 장래까지 점칠 수 있다고 보았다.
宋王沂公曾微時 以所業贄呂文穆公 有旱梅詩 雪中未知和羹事 且向百花頭上開 呂曰 此生此第安排 當作大魁登廓 後果然 金學士黃元 作詩好使夕陽字 金學士富儀以爲晩登要路之讖 李陶隱登崧山詩 有飛上危<전0x70B9>一瞬間之句 論者以謂有躁進之氣 果不大施 益齋登鵠嶺詩 徐行終亦到山頭 論者以謂從容寬緩有遠大氣象 果能年踰八衰 輔相五朝 功名富貴終始雙全 詩者 心之發氣之忠 古人以謂讀其詩 可以知其人 信哉(東人詩話 下36)
徐居正은 결론적으로 詩는 결국 자신의 표현이므로, 詩를 통하여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貴賤窮達의 氣象이 모두 詩에 나타난다는 것이 徐居正의 일관된 생각이다. 우리는 여기서 徐居正이 얼마나 氣象을 중요시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그는 斯文의 대가이면서, 또 斯文 중심의 詩論을 전개하면서도 佛家語를 써서 氣象을 돕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古人詩多用佛家語 以騁奇氣(東人詩話 上65)
여기서 氣는 본성에 앞서 氣象이라고 보아 무방하다.
어떠한 論詩者도 기상을 도외시할 수 없겠지만, 徐居正은 기상을 중점적으로 논급한 데에 특성이 있다.
④語意論
위에서 徐居正은 儒家的인 면에 입각하여 時論을 전개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詩語와 詩意를 논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詩意에서, 詩는 형식적인 것, 意는 내용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東人詩話』를 수박 겉 핥기식으로 본다면 외형적인 字·句·韻·格 등 詩語 중심의 時論인 것 같으나 세밀히 분석해 본다면 그렇지 않다. 그것도 그럴 것이 儒敎的인 요소를 충분히 담는 詩라면 아무래도 語보다는 意가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是不可以辭害意(東人詩話 上7)
이것을 바꾸어 말한다면 辭(詩語)에 너무 집착하다가 意를 해칠 수 없다는 뜻이다.
詩當先氣節 而後文藻(東人詩話 上9)
라 한 것도 意와 직결되는 氣節을 앞으로 하고 형식적인 기교 곧 文藻를 뒤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詩可以工拙論乎哉(東人詩話 上64)
역시 형식(기교)보다는 내용(意)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말이라 하겠다.
그러나, 내용(意)을 표현하는 도구는 형식(語)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語가 아니면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意를 중요시한 徐居正이었지만 기교 면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崔舍人斯立天壽寺詩……白贊成元恒祖江詩……白詩意好 然造次立語曲盡情狀 渾然無跡 非崔之比(東人詩話 上15)
詩貴含蓄不露 然微詞隱語不明白痛快 亦詩之大病(東人詩話 上21)
같은 것은 詩意와 아울러 詩語에 대해서도 논급했다. 그러나 詩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詩를 짓는 도구라 할 수 있는 詩語를 다루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된다. 따라서 意를 중요시하는 徐居正도 대부분 詩語에 치중한 詩話를 엮을 수밖에 없었다.
古人詩 鍊格鍊句鍊字 又就師友 求其疵而去之(東人詩話 上50)
詩를 더 빛내기 위해서는 鍊琢이 필요하다. 한 字를 鍊琢함으로써 詩 전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그래서,
凡詩妙在一字 古人李一字爲師(東人詩話 上30)
作詩非難 能造情境摸寫形容一言而盡 此古人所難(東人詩話 下10)
이라 했다. 그리하여 徐居正은 詩語가 <淸新美麗>(下3)·<玲瓏圓轉>(上31)·<豪宕俊逸>(下30)하기를 바랐고, 중복을 피해야 한다(下33)고 했다.
古人云 句法不當重疊 如進海小詞 杜鵑聲裡斜陽暮蘇東坡曰 此詞高妙 但旣云斜陽 又云暮 李大諫題漁陽詩云 槿花低映碧山峯……此詩亦好 但旣曰碧山 而又曰峯 亦未免重疊之病(東人詩話 上62)
에서 중첩의 병폐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細復細>·<開未開>·<古非古>·<知不知> 등의 高麗人 愛用詩語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上18)
古人詩不厭改(東人詩話 上48)
라고 하고, 杜甫의 詩도 여러 차례 刪改했다고 하였다.
詩語를 다루는 항목에서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폄0x78E0>論에 걸린 詩를 변호하는 徐居正의 태도이다. 그는 그 변호에서 古人의 詩를 하나하나 예를 들고 있다. 陳<화0x7BCD>의 <碧<체0x75B2>落花深一寸>에 대한 변호(上7)와 李奎報의 重疊押韻에 대한 변호(上14)가 그것이다.
⑤點化論
A.點化
點化란 前人의 詩의 격식을 취하여 보다 새로운 기축을 열어서 더 훌륭한 詩를 만드는 일이다. 이 點化가 제대로 못되면 답습한 병폐를 모면할 수 없고 표절의 불명예를 지니게 된다.
徐居正은, 古人의 詩를 모방한 작품을 논할 때도 點化만 잘 되면 높이 평한 것이다. 곧 모방하되, 완전히 새로운 기축을 열어서 훌륭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詩忌蹈襲 古人曰 文章 當出機<저0x704E>成一家風骨 何能共人生活耶 唐宋人多有此病(東人詩話 上44)
라 하여, 원칙적으로 답습을 큰 병폐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詩不踏襲 古人所難(東人詩話 上20)
이라 하여, 답습하지 않기는 어렵다고 했다.
답습은 피해야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따른 문제가 點化이다. 답습을 하려면 點化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답습은 했지만 점화만 잘 되면 오히려 <狐白<구0x5804>를 훔쳐온 솜씨>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點化自佳>·<點化自妙>·<粧點自妙>·<粧點亦妙>라는 말을 여러 차례 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點化가 잘못되고, 답습이 너무 심히 노출되면 <屋上架屋>·<屋下架屋>이 된다고 논하였다. 徐居正은 點化가 제대로 안된 것은 그대로 <模擬大過>로 그 병폐를 지적하는 것이다. 點化 없는 답습을 徐居正은 배척한 셈이지만, 古人도 어려워한 답습을 點化論으로 徐居正은 변호하였다. 한편, 點化論에 신중할 것을 徐居正은 잊지 않았다.
然古人詩 有偶同者 有因點化 而尤工者 或讀古人詩已熟 往往恰得認爲己有者 此詩家常事 猊山豈竊人詩者哉(東人詩話 下13)
같은 詩를 우연히 點化했다고, 경솔히 평함을 경계하는가 하면, 點化로 인하여 더욱 세련된 경우가 있으므로 點化論을 가볍게 다루지 아니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어서 古人의 詩를 熟讀하다 보면, 古人의 詩인 데도 자기가 지은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詩家의 常事이므로 쉽게 표절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답습·點化를 다룬 부분을 가려내어 圖示해 보겠다.
<표 2>6
번호 二作者 답습·점화한 詩 一作者 祖詩 評語 출전
① 金克己 釣必連海上之六鰲 杜甫 射人先射馬 雖用二家詞意 渾然無斧#痕 眞竊狐白<구0x5804>手 上⑧
射必落日中之九烏 擒賦先擒王
六鰲動兮魚龍震<탕0x7804> 黃庭堅 酌君以蒲城桑落之酒
男兒要自立奇節 泛君以湘<류0x5ED0>秋菊之英
弱羽纖鱗安足誅 菊制短世之頹齡
② 鄭知常 三丁燭盡天將曉 韋永貽 三條燭盡鐘初動 鄭詩亦大踏襲 上⑨
八角章成桂已香 九轉丹成鼎未開
落月半庭人擾擾 明月漸低人擾擾
不知誰是壯元郞 不知誰是謫仙才
③ 李仁老 雲間<염0x6AB5><염0x6AB5>黃金餠 蘇舜欽 雲頭題題開金餠 點化自佳 上⑪
霜後溶溶碧玉濤 水面沈沈臥綵虹
欲識夜深風露重
倚船漁父一肩高
④ 李混 永明寺中僧不見 李白 鳳凰臺上鳳凰遊 句句皆有來處 粧點自妙格律自然森嚴 上?
永明寺前江自流 鳳去臺空江自流
山空孤塔立庭際 韋應物 野渡無人舟自橫
人斷小舟橫渡頭
長天去鳥欲何向 陳后山 度鳥欲何向
大野東風吹不休 奔雲亦自閑
往事微茫問無處 李白 摠爲浮雲蔽白日
淡烟斜日使人愁 長安不見使人愁
⑤ 李奎報 黃稻日肥鷄<골0x5666>喜 杜甫 江稻喙餘鸚鵡粒 以李高才尙如是 上?
碧梧秋老鳳凰愁 碧梧棲老鳳凰枝
李奎報 洞府徵歌調玉案 李白 選妓隨雕輩
敎坊選妓醉仙桃 徵歌出洞房
李奎報 春暖鳥聲碎 唐人 風暖鳥聲碎
日斜人影長 日高花影重
⑥ 崔瀣 漢用奇謀立帝功 趙孟<부0x63A1> 白髮商君四老翁 雖詞意不同 而末句如出一手 拙老入元朝中制科 與趙同時 其或有所摸擬 但以拙老之<굴0x5857>强 豈效#一時 <제0x71B5>輩之所作乎 上(23)
指揮豪傑似兒童 紫芝歌罷聽松風
可憐皓首商山老 平生不與人間事
亦#留候計術中 亦#留候計術中
번호 二作者 답습·점화한 詩 一作者 祖詩 評語 출전
⑦ 洪子藩 愧將林下轉經手 杜牧 <추0x7663><창0x74A5>江湖釣竿手 皆不免相襲之病 上(24)
遮却斜陽向帝京 却遮西日向長安 後人祖其語 致此屋 下架屋也
韓宗愈 却將殷鼎調羹手
還把漁竿下晩沙
權近 却將潤色絲綸手
能倒山林麥酒盃
李崇仁 如何釣竿手
策馬向京都
⑧ 兪升旦 晦朔潮爲歷 陶元亮 雖無紀曆誌 四詩自成歲 兪之粧點自妙 上(47)
寒暄草記辰 唐人 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地秋
⑨ 鄭<포0x791D> 金銀佛寺側城<인0x6F2F> 祝簡 寒鷄縮頭未鳴晨 鄭詩摹擬大過 上(66)
夜夜鳴鐘不失晨 已聽春容入夢頻
誰道令人發深省 未必佛徒能警悟
<지0x737D>能喚起利名人 <지0x737D>能喚起利名人
⑩ 崔瀣 漏雲殘照雨絲絲 李仁老 簿雲漏日雨中明 猊山詩未必非點化也 下⑬
⑪ 鄭公權 由來哲婦敗嘉謨 唐人 地下若逢陳后主 點化自妙 眞得換骨法 下(23)
<참0x7494><섭0x667A>無言踐丈夫 不宜中問後庭花
地下若逢韋處士
帝心還愧點籌無
⑫ 金久<경0x5538> 道已雙支遁 杜甫 侍臣雙宋玉 摹擬大過 眞所謂屋上架屋也 下(24)
詩能兩善權 戰策兩穰<저0x7065> 以一對雙亦奇 何害其用古意也
李穡 處身雙墨老
短命一彭<상0x6575>
⑬ 李奎報 披襟快得風來北 韓駒 朝辭杞國風微北 李詩使字與子蒼甚相似 雖謂之暗合可也 謂之點化亦可也 下(40)
隱<궤0x588E>從敎日向西 夜<백0x6255>寧陵月正南
⑭ 柳方善 南來日月同春夢 李崇仁 北望山川阻 未必不爲陶隱點化也 下(51)
北望山川隔暮烟 南來日月多
⑮ 正伯 村家昨夜雨<몽0x60C3><몽0x60C3> 蘇軾 人老簪花不自羞 此老粧點亦妙 下(52)
竹外桃花忽放紅
醉裏不知雙<빈0x6497>雪
折簪繁#악立東風
? 趙須 日斜雲影移高閣 宋僧 雲影亂<포0x7917>地 趙詩其祖宋僧乎 下(61)
風動潮聲在半岡 濤聲寒在空
趙須 磨鎌似新月 韓愈 新月似磨鎌 語予曰……吾用此語而反其意 此謂飜案法 學詩者不可不知已
이 도표로써 徐居正의 點化論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그의 時論의 一端을 엿볼 수 있다.
B.用事
다음에는, 點化論과는 좀 다른 각도로 쓰인 用事論
이 『東人詩話』에서는 비교적 광범위하게 다루어져 있다. 用事란 故事 인용을 뜻한다.
古人作詩 無一句無來處(東人詩話 上19)
라 한 徐居正은 用事, 곧 故事 인용 때도 반드시 [由]來處가 있을 것을 요구한다.
凡詩用事 當有來處 <구0x57E7>出己意 語雖工夫免<폄0x78E0>者之譏 高麗忠宣王入元朝 開萬卷堂 學士閻復姚燧趙子昻 皆遊王門 一日王點一聯云 鷄聲恰似門前柳 諸學士問用事來處 王默然 益齋李文忠公從傍卽解曰 吾東人詩 有屋頭初日金鷄唱 恰似垂楊<뇨0x5A63>長 以鷄聲之軟 比柳條之輕纖 我殿下之句 用是意也 且韓退之琴詩曰 浮雲柳絮無根帶 則古人之於聲音 亦有以柳絮比之者矣 滿座稱嘆 忠宣詩<구0x57E7>無益老之救 則幾窘於<폄0x78E0>者之鋒矣(東人詩話 上67)
이 인용에서 보는 바대로 소리를 물체의 움직임에 비할 故事의 內處를 밝히어, 忠宣王의 시구를 옹호한 것이다. 故事를 인용하는 데에는, 內處가 명백해야 하는데, 內處가 없는 故事를 쓴다면 그것이 상상에서 나온 것이라도 불가하다는 것이다.
牧隱詩……又如歸來書甲子 憔悴降庚寅 子雲殊寂寞伯始自中庸 憂詩如杞國 請始自燕臺 江山徵媚<무0x60E9> 風月愈<소0x66E3>狂等語 用事精切(東人詩話 下30)
用事는 內處가 있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데, 用事는 精切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하면, 徐居正은 詩作에 있어서 반드시 用事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이 생각되지만, 『東人詩話』 전체를 훑어보면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부득이 용사를 할 때는 內處가 있어야 하고, 그 用事는 精切해야 한다는 것이다.
……以一對雙亦奇 何害其用古意也(東人詩話 下24)
一과 雙을 對로 삼은 것이 기이하므로, 古意를 써도 해롭지 않다는 것이다. 곧 用事를 해도 그 詩가 뛰어나기를 바란 것이다.
일찌기.
余自少放蕩無檢 讀書不甚精 雖六經子史之文 涉獵而已 不知窮源 <황0x7C2F>諸家章句之文哉 旣不熟其文 其可效其體 盜其語乎(白雲小說)
라 하여, 用事도 답습·點化도 꾀하지 못하고 新語를 창안한 詩豪 李奎報를 찬양한 徐居正이었다.
그러나, 詩를 지을 때는 用事가 필요할 때가 없을 수 없으므로, 徐居正은 用事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古人用事 有直用其事 有反其意而用之者 直用其事人皆能之 反其意而用之 非材料卓越者 自不能到 崔拙翁太公釣周詩……盖發明釣周非太公之本心 能反古人意 自出機軸 格高 律新(東人詩話 下50)
用事에는 直用法과 反意法의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후자를 더 가치 익게 보았다. 이 用事法이야말로 徐居正의 뛰어난 기교론의 하나라 하겠다.
(四)結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東人詩話』는 우리 나라 최초의 순수 詩話集으로, 高麗를 중심으로 하고, 그 전후의 수많은 詩 가운데에서 오랜 세월을 두고 논의의 대상이 되어 온 名詩를 거의 빠짐 없이 거론하였다 해도 좋을 정도로, 그 후의 詩家들의 큰 寶典이 되었다.
徐居正의 『東人詩話』는 유교 崇奉의 사회적 사상적 배경하에서, 유교중심의 詩論을 전개하고 <思無邪>의 뜻에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었다.
上不乖夫子之意 下以倣諸家之範 能以己志迎取作者之意 有所發明而不<불0x63E7>乎(東人詩話序)
그의 詩觀도 유교적인 위치에서 世敎를 위한 詩의 功效性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詩의 氣象을 위해서는, 한거음 더 나아가 시를 위해서는, 불교의 정신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불사하였다. 徐居正 자신이 斯文에 속해 있으면서도 詩를 위해서는 승려·부녀자를 가리지 아니하고, 俚雅를 不問하기도 했다.
不唯先賢本集 與夫傳記所載 而見聞可及 無問俚雅隨卽擧筆雜以閑言調笑之設 讀之愈多 愈覺其新 而不知倦 比之於規規<철0x754B>拾腐紙唇吻於糟粕 而無所發明者爲有間矣(書東人詩話後)
이런 가운데에서도 徐居正은 그 나름대로의 비평세계를 창조하면서 유가적인 비평기준을 견지하였고, 끝내 그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문헌
○木板本『東人詩話』(朝鮮朝 顯宗 5년(1664) 重刊本)
○筆寫本『東人詩話』(藏書閣本)
○活字本『東人詩話』(合綴:朝鮮古書刊行會,1911)
○활자본『東人詩話』(合綴:『日本詩話叢書』中第 5卷, 1920-1922)
※연구논문
○尹元鎬「東人詩話에 나타난 徐居正의 詩歌觀(서울대학교대학원석사논문,1958)
○趙種業「東人詩話硏究」(成大, 大東文化硏究 2집 1966)
○朴種均「東人詩話에 나타난 徐居正의 비평연구」(경희대학교대학원석사논문,1968)
○張百靈「韓國古典詩論에 관한 고찰」(경희대학교대학원석사논문,1977)
<경희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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