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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715.970~971
서명 / 저자 : 무오연행녹(戊午燕行錄)/ 徐有聞(朝鮮) 著
개인저자 : 서유문 (조선), 1762-?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寫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 6卷6冊: 無郭, 無版心, 無絲欄, 半葉 10行23 - 25字, 無魚尾; 31.2 × 21.5cm
일반주기 : 서제: 表題 : 戊午燕行錄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徐有聞이 正祖 二十二年(1798) 書狀官으로 著述한 紀行錄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청구기호 : K2-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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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무오연행록 (戊午燕行錄) 조선 후기의 문인 서유문(徐有聞)의 한글 연행록. 1798년(정조 22) 10월 삼절연공 겸 사은사(三節年貢兼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연행하였던 작자가 다음해 4월 초2일 복명(復命)하기까지 왕복 160여일을 일기로 쓴 기행문이다. 사본으로는 장서각에 6책본이 있고, 필사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이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이 한글 연행록과는 다른 한문본 <<무오연록 戊午燕錄>> 1책이 있다. 이 한문본은 한글본의 초역본(抄譯本)이고 또 내용도 소략하여, 다른 한문본 완본이 발견되지 않는 한 이 한글본의 원전적 가치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지금 전하는 한문본은 여행 당시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뒤에 누군가에 의해서 한글본에서 반역(反譯)된 것으로 보인다. 이 한문본은 한글본의 5, 6분의 1 정도의 분량밖에 안 되는 데다가 필자인 서장관의 이름이 서지수(徐志修)로 되어 있어 그 문헌적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이 한글 연행록은 홍대용(洪大容)의 한글본 <<을병연행록>>보다는 30여년,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보다는 17년 뒤에 나왔으나, 이것이 한글로 된 기행문학작품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일기의 내용과 편차는 다음과 같다. 권1은 무오년 8월 9일부터 서장관에 임명된 뒤의 준비과정과 10월 19일 배표(拜表)하고 길을 떠나 12월 6일 쌍양점(雙陽店)에 이르기까지 약 3개월간의 일기이다. 권2는 12월 7일 쌍양점에 머물고 8일 길을 떠나 19일 북경 (北京)에 들고 22일까지 북경에 머문 일기이며, 권3∼5는 12월 23일부터 기미년 2월 6일까지 북경에 머문 일기이며, 권6은 2월 7일 회정(回程)을 준비하여 2월 8일 북경을 떠나고 국경에 이른 3월 20일까지의 일기 등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북경 체재 일기가 그 중요한 내용을 차지하고 있지만, 홍대용이나 박지원의 연행록보다 그 관찰의 폭이 제한되어 있는 느낌이 적지 않다. 그것은 앞의 군관들처럼 자유스러운 신분이 아니었고, 서장관으로서의 체모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한편, 그때 청나라는 건륭제(乾隆帝)의 상중인 관계로 나들이가 부자연스러웠다는 이유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은 18세기에도 드물게 보이는 한글 기행일기라는 점 이외에도, 작자의 특유한 대청관(對淸觀)·문명관 및 자기비판의 필치가 돋보이는 기행문학이기에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대동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연행록선집>>에 영인사본이 들어 있고, 이를 풀어 역주한 <<무오연행록>>이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간행한 <<국역 연행록선집>>에 들어 있다.<<참고문헌>> 무오연행록 해제(金東旭, 국역 연행록선집 Ⅶ, 민회,1976).〈金泰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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