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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249
서명 / 저자 : 大韓明成皇后洪陵誌/ 高宗(朝鮮) 御製; 閔泳韶(朝鮮) 續撰. 合編
개인저자 : 고종, 조선, (1852-1919)
민영소, 속찬
판사항 : 原本
발행사항 : [ ]: [ ], 光武 1(1897) 寫
형태사항 : 線裝, 1冊(23張): 四周單邊, 半郭 22.3 × 18cm, 朱絲欄, 半葉 8行 18字(18段), 無版心; 34.3 × 19.6cm
일반주기 : 서제: 表題 : 明成皇后洪陵誌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高宗御製明成皇后行狀과 閔泳韶撰洪陵誌文連書合編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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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大韓明成皇后洪陵誌(2-4422)
高宗(朝鮮, 1852-1919)御製, 閔泳韶(朝鮮, 1852∼?)續撰, 合編. 原本. 光武 1(1897)寫. 1冊(23張). 四周單邊. 半郭, 22.3×18cm. 朱絲欄, 半葉. 8行18字(18段). 無版心. 34.3×19.6cm, 線裝.
表題 : 明成皇后洪陵誌.
紙質 : 楮紙
*그림p. 184
高宗의 皇后인 明成皇后에 대한 高宗御製인 陵誌와 皇太子(純宗)의 行錄과 閔泳韶의 附記를 尹容善(1829-1904)이 連書하여 合編한 洪陵誌이다.
明成皇后(1851-1895)는 朝鮮朝 제26代 王인 高宗의 妃(閔妃)이며, 本貫은 驪興, 驪城附院君 閔致祿의 딸이다. 여덟살에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자랐으나 퍽 총명하여 興宣大院君의 부인인 府大夫人閔氏의 천거로 王妃로 간택되어 1866년(고종 3) 한 살 아래인 고종의 비로 入宮하였다.
수완이 능란하여 곧 당시 실권자인 시아버지 興宣大院君과 政治的對立의 양상을 보였고, 끝내는 大院君을 실각케 하였으며, 근대 일본과의 江華島條約을 맺어 開化施策을 도모하였고, 壬午軍亂에는 淸國의 개입을 주선하여 親淸策을 강행하였으며, 甲申政變(1884)에서도 淸國의 도움으로 開化派에 빼앗겼던 政權을 다시 장악하는 등 王宮에서 外交的인 국면에 매우 민첩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1894년 東學農民運動으로 정국이 얽혔을 때 조선에 침략공세를 펴게 된 일본이 甲午更張에 간여하면서 민비의 세력을 거세하려고 공작하자 이런 야심을 看破한 민비는 일본이 후원하는 開化勢力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淸日戰爭에 승리한 일본이 한반도에 진주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조선정계에 압력을 가하자 사세가 불리한 민비는 친러정책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일본세력에 대항하였다. 드디어 일본공사 미우라(三浦梧樓)는 일본의 한반도침략정책에 정면대결하는 閔妃와 그 戚族 및 친러세력을 일소할 계획을 세워 조선의 일부 親日政客과 손을 잡고 1895년 4월에 일본군대와 政治浪人들을 보내어 王宮을 습격, 민비를 시해하고 政權을 탈취하는 乙未事變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민비는 35세의 나이로 일본인의 손에 살해되어 시체가 불살라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이 때의 朝鮮政府는 親日政策에 치중, 廢妃詔勅까지 내렸으나 곧 復位되어 國葬하였고, 陵號 를 肅陵으로 정하였다. 2년 뒤에 大韓帝國으로 國號가 바뀌게 되자 王妃閔氏는 明成皇后로 追冊되고, 10월에 다시 청량리 洪陵으로 이장되었다. 1919년 高宗이 죽자 다시 楊州郡의 洪陵으로 移葬되었다.
이 陵誌는 國號가 大韓帝國으로 바뀌고 閔妃가 皇后로 追冊되면서 御製로 쓰여진 誌文이다. 誌文의 內容에는 閔妃의 世譜와 入宮事實이 적혀 있고 乙未事變에 대한 내용에는 4賊으로 金弘集(1842∼1896), 兪吉濬(1856-1914), 趙義淵(1856-1915), 鄭秉夏(?∼1896) 등이 밝혀져 있다.
이 誌文에는 卜兆于楊州天藏山下艮坐之原 將以光武元年丁酉十月二十八日…葬焉…虛右之制朕志有在矣로 쓰여져 있다. 이 뜻은 葬地를 楊州에 정하고 光武元年(1897) 10월 28일에 葬禮를 치를 것이며, 오른편을 비운 것은 뜻한 바가 있다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당시 실제로 閔妃의 葬禮는 청량리 洪陵에 쓰여진 점으로 감안한다면 이 때의 결정은 다시 또 어떤 사정으로 변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行錄과 附記는 誌文의 內容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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