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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622~5
서명 / 저자 : 新增東國輿地勝覽/ 李荇(朝鮮) 等受命編
개인저자 : 이행 (조선), 1478-1534
판사항 : 木版本
발행사항 : [ ]: [ ], 光海君 3(1611)
형태사항 : 線裝, 本集 55卷, 目錄 1卷, 合 25冊: 地圖, 四周雙邊, 半郭 26.1 × 16.7cm, 有界, 半葉 8行 16字, 註中小字雙行, 內向三葉花紋魚尾; 35.4 × 21.8cm
일반주기 : 奉章閣本內腸記 : 萬歷三十九(1611)年 八月日太白山上 紙質 : 楮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宣賜之記, 茂朱赤裳山史庫所藏 … 本,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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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부가정보

地理類-總志類-新增東國輿地勝覽
우리나라의 地理書의 嚆矢는 三國史記와 高麗史에 수록된 것을 꼽겠으나 이것들은 간략한 內容의 歷史地志로서 州郡縣의 所屬 및 變遷 관계를 기록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 世代에 全國土內의 實態를 파악하기 위하여 擧國的으로 地志의 編纂을 도모한 것으로 말한다면 根朝鮮前期의 문예부흥기라 할 수 있는 世宗 때로부터이다. 현존하는 慶尙道地理志勝本 같은 것은 世宗6년 各道에 통첩된 規格, 즉 각 읍의 沿革·山川·經歷·城郭·交通·牧場·土産物·古跡·民俗 등을 記載原則으로하여 제1차로 編輯된 全國地志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제2차로는 世宗 14년(1432)에 尹淮·申檣 등에게 命하여 編纂된 「八道地理志」인데 이것은 뒷날 「世宗實錄」의 地理志로 收錄되었고, 다음으로는 世祖初年에 梁誠之에게 八道地志 및 地圖를 편찬하게 命한 것인데 이것이 완성을 보게 된 것은 成宗 9년(1478)이며, 이 때는 徐巨正 등이 梁誠之 등과 함께 王命으로 편찬한 「東文選」이 完成되는 해이기도 하다.
梁誠之는 「八道地志」이외에도 우리나라의 山川形勝과 州郡縣의 沿革등을 收錄한 「東國勝覽」을 著述했는데 이것이 바로 「東國輿地勝覽」의 기본서가 되었다.
같은 해에 成宗은 盧思愼·姜希孟·徐居正·成任·梁誠之 등을 總裁로하여 규모가 더욱 넓혀진 「東國輿地勝覽」의 纂修를 命했는데 이 作業은 바로 梁誠之의 「地理志」를 토대로 하여 修補를 加했는데 그 體裁는 宋의 祝穆이 지은 「方輿勝覽」을 模倣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제1차적으로 「東國輿地勝覽」50卷이 이루어진 것이 成宗12년(1481)이었으나 이것이 印刷되지 못하였고, 4년 뒤인 성종16년에 또다시 金宗直등이 이 印刷되지 못한 稿本에 修正을 加하여 동왕 17년에 완성을 보았으니 이것이 제2차 수정본인「東國輿地勝覽」이다. 이 수정본은 또 明의 「一統志」를 模倣한 것으로서 제1차의 50卷에 5卷이 더해진 55卷이다. 이 책은 王命으로 印出되었으며, 이 初刊本이 傳來되는 것으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37, 38권으로 현재 金斗鐘氏의 所藏으로 알고 있으며 이 책은 端宗3년의 乙亥字의 活字本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또 연산군3년(1497)에 成俔·任士洪등을 시켜 상기 「勝覽」의 印本 중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0x6781>校하고, 또 다소 보충까지 하였으나 본래의 55권에는 변동이 없었으며, 이것이 연산군 5년(1499)에 印出되었으나 국내에는 남겨 있지 못하고 일본 경도 대학에 55권 중 28권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中宗23년(1528)에 李荇단·洪彦弼 등에게 命하여 「勝覽」을 다시 校誤·增補케 하여 동왕 25년에 완성되었는데 卷帙에는 역시 변동이 없고 단지 增補된 곳에는 新增 두 글자로 표시하였으며, 따라서 책명도 「新增東國輿地勝覽」으로 하였다. 이 新增本은 같은 해에 癸丑字(성종 23년 주조)로 印刷한 活字本인데 現存하는 것으로는 그 중에 1冊(권53 권54)이 역시 김두종씨의 집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와 같이 3차로 인출된 「輿地勝覽」은 원래 그 수효가 적었고, 또 임진왜란을 겪은 뒤로는 더욱 희귀하여 光海君 3년에 中宗때의 新增本을 복간 했고, 仁祖 末年경에도 이를 重刊하는 등 여러 차례의 重印이 있었으며, 肅宗 5년·25년과 영조 33년에는 增補改版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中宗때의 新增 이후로는 다시 증보되지 못했으며, 인쇄된 것도 대개 木版에 불과하였다. 현재 傳來되는 古本 「勝覽」은 대부분이 光海 이후의 復刊木版本이며, 그나마 온전한 卷帙은 역시 稀貴한 實態이다.
기타 別本으로는 舊韓末頃에 字劃이 不完한 臺本에 의거하여 日人이 活字로 再印한 「新增東國輿地勝覽」共3冊이 있으나 이용가치는 없으며, 일제 때에 역시 일인들이 간행한 朝鮮史學會本 共4冊이 있고, 근자에 서울대학 도서관 소장본을 저본으로 한 東國文化史의 景印本 全 1冊이 있으며, 서울대학본과 기타본에 의거하여 民族文化推進會에서 國譯한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共7冊이 있다.
이 책의 構成은 아래와 같다.
<目次>
八道總圖
進新增東國輿地勝覽箋
進東國輿地勝覽箋
東國輿地勝覽序
卷之一:京都上
卷之二:京都下
卷之三:漢城府
卷之四:開城府上
卷之五:開城府下
卷之六:(京畿)京畿地圖 廣州
卷之七:驪州牧
卷之八:利川都護府 砥平縣 陰竹縣 陽智縣 果川縣 竹山縣 楊根郡
卷之九:水源都護府 富平都護府 南陽都護府 仁川都護府 安山郡
卷之十:安城郡 振威縣 陽川縣 龍仁縣 金浦縣 衿川縣 陽城縣 通津縣
卷之十一:楊州牧 坡州牧 高陽郡 永平縣 拘川縣 積城縣 交河縣 加平縣
卷之十二:長湍都護府 江華都護府
卷之十三:豊德郡 朔寧郡 麻田郡 漣川縣 喬桐縣
卷之十四:(忠淸道)忠淸地圖 忠州牧 淸風郡 丹陽郡 槐山郡 延豊縣 陰城縣 永春縣 堤川縣
卷之十五:淸州牧 天安郡 沃川郡 文義縣
卷之十六:稷山縣 木州縣 懷仁縣 淸安縣 鎭川縣 報恩縣 永同縣 黃澗縣 靑山絃
卷之十七:公州牧 林川郡 韓山郡
卷之十八:全議縣 定山縣 恩津縣 懷德縣 鎭岺縣 連山縣 尼川縣 扶餘縣 石城縣 燕岐縣
卷之十九:洪州牧 舒川郡 瑞山郡 泰安郡 沔川郡 溫陽郡 平澤縣 鴻山縣 德山縣 靑陽縣
卷之二十:大興縣 <자0x6F5F>仁縣 籃浦縣 結城縣 保寧縣 牙山縣 新昌縣 禮山縣 海美縣 唐津縣
卷之二十一:(慶尙道)慶尙地圖 慶州府
卷之二十二:蔚山郡 梁山郡 永川郡 興海郡
卷之二十三:東萊縣 淸河縣 迎日縣 長<기0x59AD>縣 機張縣 彦陽縣
卷之二十四:安東大都護府 寧海都護府 靑松都護府 醴川郡
卷之二十五:榮川郡 豊基郡 義城縣 盈德縣 奉化縣 眞寶縣 軍威縣 比安縣 禮安縣 龍宮縣
卷之二十六:大兵都護府 密陽都護府 淸道郡
卷之二十七:慶山縣 河陽縣 仁同縣 玄風縣 義興縣 新寧縣 靈山縣 昌寧縣
卷之二十八:尙州牧 星州牧
卷之二十九:善山都護府 金山郡 開寧縣 知禮縣 高靈縣 咸昌縣 聞慶縣
卷之三十:晋州牧 陜川郡 草溪郡
卷之三十一:咸陽郡 昆陽郡 南海縣 居昌郡 泗川縣 三嘉縣 宣寧縣 河東縣 山陰縣 安陰縣 丹城縣
卷之三十二:金海都護府 昌原都護府 咸安郡 巨濟縣 固城縣 漆原縣 鎭海縣 熊川縣
卷之三十三:(全羅道) 全羅地圖 全州府 益山郡 金堤郡 古阜郡 錦山郡 珍山郡
卷之三十四:礪山郡 萬頃縣 臨陂縣 金溝縣 井邑縣 興德縣 扶安縣 沃溝縣 龍安縣 咸悅
縣 高山縣 泰仁縣
卷之三十五:羅州牧 光山縣 寧巖郡
卷之三十六:靈光郡 咸平縣 高敞縣 長城縣 珍原縣 茂長縣 南平縣 務安縣
卷之三十七:長興都護府 珍島郡 唐津縣 海南縣
卷之三十八:濟州牧 旌義縣 大靜縣
卷之三十九:南原都護府 潭陽都護府 渟昌郡 龍潭縣 昌平縣 任實縣 茂州縣 谷城縣 鎭安縣 玉果縣 雲峰縣 長水縣
卷之四十:順天都護府 樂安郡 寶城縣 綾城縣 光陽縣 求禮縣 輿陽縣 同福縣 和順縣
卷之四十一:(黃海道) 黃海道지도 黃州牧 平山都護府 瑞興都護府 鳳山郡
卷之四十二:安岳郡 載寧郡 遂安郡 谷山郡 信川郡 新溪縣 牛峰縣 文化縣 兎山縣 長連縣
卷之四十三:海州牧 廷安都護府 豊川都護府 白川郡 甕津縣 松禾縣 殷栗縣 江陰縣 康翎縣 長淵縣
卷之四十四:(江原道) 江原地圖 江陵大都護府 三陟都護府 襄陽都護府
卷之四十五:平海郡 杆城郡 高城郡 通川郡 蔚珍縣 <흡0x7D61>谷縣
卷之四十六:原州牧 春川都護府 旌善郡 寧越郡 平昌郡 麟蹄縣 橫城縣 洪川縣
卷之四十七:淮陽都護府 鐵原都護府 金城縣 楊口縣 狼川縣 伊川縣 平康縣 金化縣 安峽縣
卷之四十八:(咸鏡道) 咸鏡地圖 咸興府 永興大都護府 定平都護府 高原郡
卷之四十九:安邊都護府 德原都護府 文川郡 北靑都護府 瑞川郡 利城縣 洪原縣 甲山都護府 三水郡
卷之五十:鏡城都護府 吉城縣 明川縣 慶原都護府 會寧都護府 鍾城都護府 穩城都護府 慶興都護府 富寧都護府
卷之五十一:(平安道) 平安地圖 平壤府
卷之五十二:中和郡 龍江縣 三和縣 咸從縣 甑山縣 順安縣 江西縣 安州牧 定州牧 肅川都護府 嘉山郡 永柔縣
卷之五十三:義州牧 鐵山郡 龍川郡 昌城都護府 朔州都護府 龜城都護府 宣川郡 郭山郡
卷之五十四:寧邊大都護府 雲山郡 熙川郡 博川郡 泰川縣 城川都護府 德川郡 价川郡 慈山郡
卷之五十五:順天郡 祥原郡 三登縣 陽德縣 孟山縣 江東縣 殷山縣 江界都護府 渭原郡 理山郡 碧潼郡 寧遠郡
跋文三篇 :洪彦弼,任士洪,金宗直)
<內 容>
1.八道總圖
第2冊의 첫째 張으로 半郭 20.435.4cm, 圖面 16.627.2cm의 兩面 8道地圖이며, 版心題는 東覽圖이다. 作圖의 상태는 우선 道界도 없는 8道의 이름이 配列되어 있고, 지도의 전체구성은 外形이 實地와는 매우 다르고, 板刻의 솜씨가 졸열한 古地圖이다. 各道에는 한 두 개의 江과 山 혹은 津이 있고, 일정한 府牧郡縣의 地名은 없으나 原則이 없는 地名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서 全羅道의 海南은 南海로 誤刻된 채로 나타나 있다. 島嶼로는 西海에 江華·喬桐·群山島·黑山島·珍島가, 東海에 于山島·鬱陵島가, 南海에는 巨濟·南海 그리고對馬島가 그려져 있다.
2.京都上·下, 漢城府, 開城府上·下
京都上은 「勝覽」의 卷之一에 記載된 부분으로 古朝鮮 馬韓의 地域이다를 緖頭로 하여 地勢의 雄壯함과, 李太祖가 처음으로 都邑을 정한 原文이 있고, 新增의 國都欄은 註釋형태로 記述되어 있는데, 명나라 董越朝鮮賦의 引用을 筆頭로 雜多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城郭欄에는 太祖 5년에 石築한 것을 世宗 4년에 改修했으며, 둘레는 9,975步, 높이는 40尺2寸이고, 8곳에 문을 세웠는데 正南엔 崇禮, 正北엔 肅淸, 正東엔 興仁, 正西엔 敦義, 東北엔 惠化, 西北엔 彰義, 東南엔 光熙, 西南은 昭德이라는 기록이 그 主要內容이다. 宮城에서는 光化, 神武, 建春, 迎秋의 네 門에 대한 來歷 등이, 宮殿欄에서는 景福宮을 爲始하여 35개처의 宮·殿·閣·樓와 堂·亭에 대한 記錄이 있고, 壇廟欄에는 社稷壇을 위시하여 9壇, 1廟, 3殿, 3廟의 기록이 있고, 苑<유0x6D80>에서는 景福·昌德 두 宮의 後苑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상 城郭, 宮城, 宮殿, 壇廟, 苑<유0x6D80>에 대한 記錄들은 著者別로 大略 分類해 보면 初期의 殿·門等의 題名에는 主로 鄭道傳(?∼1398)이, 碑銘·鐘銘에는 卞季良(1369∼1430)이, 記文에는 河崙(1347∼1416)·金墩(1358∼1440)이, 題詠에는 尹淮(1380∼1436)의 글이 많고, 조금 뒤에 建立된 建物이나 壇苑에 대한 記·序文에는 鄭招(?∼1488)·崔恒(1409∼1479)·徐居正(1420∼1488)·金宗直(1431∼1492)의 것이 주축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京都下는 「勝覽」의 卷之二에 記載된 中央의 文武公職署에 대한 기록인데 文職公署로서는 宗親府를 위시해서 議政府·忠勳府·儀賓府·敦寧府·忠翊府·義禁府·六曹·司憲府·承政院·掌<례0x5DE5>院·司課院·弘文館·成均館·尙瑞院·春秋館·藝文館·通禮院·奉常寺·宗簿寺·校書館·司饔院·內醫院·尙衣院·司僕寺·軍器寺·內資寺·內瞻寺·司導寺·禮賓寺·司瞻寺·軍資監·濟用監·繕工監·司宰監·掌藥院·觀象監·典醫監·司譯院·世子侍講院·宗學·修城禁火司·典設司·豊儲倉·廣興倉·典艦司·典涓司·內需司·昭格署·社稷署·宗廟署·平市署·義盈庫·長興庫·氷庫·掌苑署·司圃署·養賢庫·典牲暑·司畜署·造紙署·惠民署·圖書署·典獄署·活人署·瓦署·歸厚署·中學·南學·西學·東學·中部·東部·南部·西部·北部·內侍府·內班院·武職公署로서는 中樞府·五衛都總府 ·義興衛·龍<양0x69D0>衛·虎賁衛·忠佐衛·忠武衛·宣傳官·內禁衛·訓鍊院·世子翊衛可·定虜衛의 業務와, 定員 및 品階, 各部署에 따른 題名記 ·詩·序文 등이 記錄되어 있다. 漢城府에는 府의 建置沿革·郡名·姓氏·風俗·形勝·烽燧·宮室·樓亭·驛院·橋梁·市街·佛宇·祠廟·古跡·名宦·人物·孝子·忠義·烈女·題詠등의 記錄이 있고, 開城府上에도 漢城府와 같은 題目下에 그에 따른 기록이 있으며, 단지 인물·효자·충의·열여·제영의 欄이 없는 대신 城郭·學校·部 坊·公<해0x7A58>등의 欄이 더 있을 뿐이다. 開城府下에는 산천·형승·풍속등의 소개가 없는 대산 陵寢·前八景·後八景등의 欄이 첨가되어 있다.
3.8 道郡縣
4各道의 앞 張에는 모두 그 道의 地圖가 부착되어 있다. 이 지도의 作圖規格은 八道總圖와 같으며, 四方外面에는 接境이 소개되어 있고(例 京畿道:東北抵江原道界, 東南抵忠淸道界,西抵大海…),郡縣 및 山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나, 江津은 확실하게 기록되지 못했다.
8道에 대한 기록으로는 「勝覽」卷之六∼卷之十三의 京畿道를 爲始하여 卷之十四∼卷之十六 忠淸道의 順序로 平安道의 寧遠郡이 卷之五十五의 末尾를 이루고 있다. 記錄의 體裁를 京畿道에서 살펴보면 우선 道 자체의 地域考가 설명되어 있고(例:古馬韓之域 高句麗 百濟 分據基地 後皆爲新羅所幷……), 官員欄에는 『觀祭使 1人 從2品, 兵馬節度使 1人 從2品 觀祭使兼, 水軍節度使 1人 正3品 觀祭使兼, 都事 1人 從5品, 審藥 1人 從9品, 檢律 1人 從9品 己上各品 諸道同』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道에서도 大同小異하다. 郡縣에 대한 內容을 역시 京畿의 廣州牧에서 살펴보면 그 題下에 小註雙行으로 里程이 記錄되어 있으며(例:東至楊根郡界二十五里 驪州界 七十五里……) 그 다음 建置沿革을 緖頭로 하여, 鎭管, 官負, 郡名,姓氏, 風俗, 形勝, 山川, 土産, 烽燧,樓亭, 學校, 驛院, 陵墓, 古跡, 名宦, 人物, 寓居, 孝子, 烈女, 題詠, 辨誤 등의 順으로 該當題目에 대한 說明이 記錄되어 있다. 餘他의 郡縣에서도 한 둘의 題目이 增減되는 경우가 있을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다를 바가 없다.
4.跋文
跋文은 모두 3편인데 그 時期와 內容은 아래와 같다.
洪彦弼의 跋文:嘉靖 10年(朝鮮中宗26,1531)6月 7日에 作成된 것인데 主要內容은 中宗이 戊子年(1528)의 가을에 左議政인 이 荇에게 燕山君 때의 官制를 更新하고, 郡縣의 移動과 分割을 아직 改定하여 記錄하지 못했으니, 그 동안에 생긴 孝子·烈女 및 佳作時文을 다시 選拔하여 增補하라는 命을 내리게 되자 外校書館에 局을 마련하여 庚寅年(1530) 가을에 編輯을 완료, 모두 5卷의 책을 만들어서 이미 만들어진 50卷에 첨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任士洪의 跋文:弘治 12年(朝鮮, 燕山君 5, 1499)에 지어진 것이며, 主要內容은 「勝覽」55卷에 路程의 里數가 실지와 다른 게 많고 題目과 史跡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 燕山君이 成俔·李德崇·任士洪에게 命하여 山川·史跡 등에는 누락을 보충하고 題詠·篇章 등에도 지리한 것에는 삭제를 가하여 精을 보이게 했는 바, 景福宮의 敎書館에 局을 개설하여 2년이 지나서야 作業을 마치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金宗直의 跋文:成化 21年(朝鮮, 成宗 16, 1485) 12월에 작성된 跋文이다. 內容은 成宗이 成俔·蔡壽·金宗直에게 盧思愼 등이 編輯한 50卷의 「東國輿地勝覽」을 보이면서 이 책은 祝穆의 책을 모방하여 記錄한 유일한 문헌이나 山川·古跡 등에 누락이 있고, 詩文에도 혼잡함이 없지 않으니 校正과 修正에 精密을 다하도록 힘쓰고, 凡例는 모두 「大明一統志」를 法하라하였다. 에 景福宮의 弘文館에 局을 開設하여 李昌臣·申從護·金孟性 등이 1次로 열람하고, 2次로 兪好仁·崔溥·李宜茂 등이 합세하여 各分野에 添削을 加하여 8개월만에 개정된 55卷이 完成을 보게되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부가정보

地理類-總志類-新增東國輿地勝覽
우리나라의 地理書의 嚆矢는 三國史記와 高麗史에 수록된 것을 꼽겠으나 이것들은 간략한 內容의 歷史地志로서 州郡縣의 所屬 및 變遷 관계를 기록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 世代에 全國土內의 實態를 파악하기 위하여 擧國的으로 地志의 編纂을 도모한 것으로 말한다면 根朝鮮前期의 문예부흥기라 할 수 있는 世宗 때로부터이다. 현존하는 慶尙道地理志勝本 같은 것은 世宗6년 各道에 통첩된 規格, 즉 각 읍의 沿革·山川·經歷·城郭·交通·牧場·土産物·古跡·民俗 등을 記載原則으로하여 제1차로 編輯된 全國地志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제2차로는 世宗 14년(1432)에 尹淮·申檣 등에게 命하여 編纂된 「八道地理志」인데 이것은 뒷날 「世宗實錄」의 地理志로 收錄되었고, 다음으로는 世祖初年에 梁誠之에게 八道地志 및 地圖를 편찬하게 命한 것인데 이것이 완성을 보게 된 것은 成宗 9년(1478)이며, 이 때는 徐巨正 등이 梁誠之 등과 함께 王命으로 편찬한 「東文選」이 完成되는 해이기도 하다.
梁誠之는 「八道地志」이외에도 우리나라의 山川形勝과 州郡縣의 沿革등을 收錄한 「東國勝覽」을 著述했는데 이것이 바로 「東國輿地勝覽」의 기본서가 되었다.
같은 해에 成宗은 盧思愼·姜希孟·徐居正·成任·梁誠之 등을 總裁로하여 규모가 더욱 넓혀진 「東國輿地勝覽」의 纂修를 命했는데 이 作業은 바로 梁誠之의 「地理志」를 토대로 하여 修補를 加했는데 그 體裁는 宋의 祝穆이 지은 「方輿勝覽」을 模倣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제1차적으로 「東國輿地勝覽」50卷이 이루어진 것이 成宗12년(1481)이었으나 이것이 印刷되지 못하였고, 4년 뒤인 성종16년에 또다시 金宗直등이 이 印刷되지 못한 稿本에 修正을 加하여 동왕 17년에 완성을 보았으니 이것이 제2차 수정본인「東國輿地勝覽」이다. 이 수정본은 또 明의 「一統志」를 模倣한 것으로서 제1차의 50卷에 5卷이 더해진 55卷이다. 이 책은 王命으로 印出되었으며, 이 初刊本이 傳來되는 것으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37, 38권으로 현재 金斗鐘氏의 所藏으로 알고 있으며 이 책은 端宗3년의 乙亥字의 活字本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또 연산군3년(1497)에 成俔·任士洪등을 시켜 상기 「勝覽」의 印本 중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0x6781>校하고, 또 다소 보충까지 하였으나 본래의 55권에는 변동이 없었으며, 이것이 연산군 5년(1499)에 印出되었으나 국내에는 남겨 있지 못하고 일본 경도 대학에 55권 중 28권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中宗23년(1528)에 李荇단·洪彦弼 등에게 命하여 「勝覽」을 다시 校誤·增補케 하여 동왕 25년에 완성되었는데 卷帙에는 역시 변동이 없고 단지 增補된 곳에는 新增 두 글자로 표시하였으며, 따라서 책명도 「新增東國輿地勝覽」으로 하였다. 이 新增本은 같은 해에 癸丑字(성종 23년 주조)로 印刷한 活字本인데 現存하는 것으로는 그 중에 1冊(권53 권54)이 역시 김두종씨의 집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와 같이 3차로 인출된 「輿地勝覽」은 원래 그 수효가 적었고, 또 임진왜란을 겪은 뒤로는 더욱 희귀하여 光海君 3년에 中宗때의 新增本을 복간 했고, 仁祖 末年경에도 이를 重刊하는 등 여러 차례의 重印이 있었으며, 肅宗 5년·25년과 영조 33년에는 增補改版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中宗때의 新增 이후로는 다시 증보되지 못했으며, 인쇄된 것도 대개 木版에 불과하였다. 현재 傳來되는 古本 「勝覽」은 대부분이 光海 이후의 復刊木版本이며, 그나마 온전한 卷帙은 역시 稀貴한 實態이다.
기타 別本으로는 舊韓末頃에 字劃이 不完한 臺本에 의거하여 日人이 活字로 再印한 「新增東國輿地勝覽」共3冊이 있으나 이용가치는 없으며, 일제 때에 역시 일인들이 간행한 朝鮮史學會本 共4冊이 있고, 근자에 서울대학 도서관 소장본을 저본으로 한 東國文化史의 景印本 全 1冊이 있으며, 서울대학본과 기타본에 의거하여 民族文化推進會에서 國譯한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共7冊이 있다.
이 책의 構成은 아래와 같다.
<目次>
八道總圖
進新增東國輿地勝覽箋
進東國輿地勝覽箋
東國輿地勝覽序
卷之一:京都上
卷之二:京都下
卷之三:漢城府
卷之四:開城府上
卷之五:開城府下
卷之六:(京畿)京畿地圖 廣州
卷之七:驪州牧
卷之八:利川都護府 砥平縣 陰竹縣 陽智縣 果川縣 竹山縣 楊根郡
卷之九:水源都護府 富平都護府 南陽都護府 仁川都護府 安山郡
卷之十:安城郡 振威縣 陽川縣 龍仁縣 金浦縣 衿川縣 陽城縣 通津縣
卷之十一:楊州牧 坡州牧 高陽郡 永平縣 拘川縣 積城縣 交河縣 加平縣
卷之十二:長湍都護府 江華都護府
卷之十三:豊德郡 朔寧郡 麻田郡 漣川縣 喬桐縣
卷之十四:(忠淸道)忠淸地圖 忠州牧 淸風郡 丹陽郡 槐山郡 延豊縣 陰城縣 永春縣 堤川縣
卷之十五:淸州牧 天安郡 沃川郡 文義縣
卷之十六:稷山縣 木州縣 懷仁縣 淸安縣 鎭川縣 報恩縣 永同縣 黃澗縣 靑山絃
卷之十七:公州牧 林川郡 韓山郡
卷之十八:全議縣 定山縣 恩津縣 懷德縣 鎭岺縣 連山縣 尼川縣 扶餘縣 石城縣 燕岐縣
卷之十九:洪州牧 舒川郡 瑞山郡 泰安郡 沔川郡 溫陽郡 平澤縣 鴻山縣 德山縣 靑陽縣
卷之二十:大興縣 <자0x6F5F>仁縣 籃浦縣 結城縣 保寧縣 牙山縣 新昌縣 禮山縣 海美縣 唐津縣
卷之二十一:(慶尙道)慶尙地圖 慶州府
卷之二十二:蔚山郡 梁山郡 永川郡 興海郡
卷之二十三:東萊縣 淸河縣 迎日縣 長<기0x59AD>縣 機張縣 彦陽縣
卷之二十四:安東大都護府 寧海都護府 靑松都護府 醴川郡
卷之二十五:榮川郡 豊基郡 義城縣 盈德縣 奉化縣 眞寶縣 軍威縣 比安縣 禮安縣 龍宮縣
卷之二十六:大兵都護府 密陽都護府 淸道郡
卷之二十七:慶山縣 河陽縣 仁同縣 玄風縣 義興縣 新寧縣 靈山縣 昌寧縣
卷之二十八:尙州牧 星州牧
卷之二十九:善山都護府 金山郡 開寧縣 知禮縣 高靈縣 咸昌縣 聞慶縣
卷之三十:晋州牧 陜川郡 草溪郡
卷之三十一:咸陽郡 昆陽郡 南海縣 居昌郡 泗川縣 三嘉縣 宣寧縣 河東縣 山陰縣 安陰縣 丹城縣
卷之三十二:金海都護府 昌原都護府 咸安郡 巨濟縣 固城縣 漆原縣 鎭海縣 熊川縣
卷之三十三:(全羅道) 全羅地圖 全州府 益山郡 金堤郡 古阜郡 錦山郡 珍山郡
卷之三十四:礪山郡 萬頃縣 臨陂縣 金溝縣 井邑縣 興德縣 扶安縣 沃溝縣 龍安縣 咸悅
縣 高山縣 泰仁縣
卷之三十五:羅州牧 光山縣 寧巖郡
卷之三十六:靈光郡 咸平縣 高敞縣 長城縣 珍原縣 茂長縣 南平縣 務安縣
卷之三十七:長興都護府 珍島郡 唐津縣 海南縣
卷之三十八:濟州牧 旌義縣 大靜縣
卷之三十九:南原都護府 潭陽都護府 渟昌郡 龍潭縣 昌平縣 任實縣 茂州縣 谷城縣 鎭安縣 玉果縣 雲峰縣 長水縣
卷之四十:順天都護府 樂安郡 寶城縣 綾城縣 光陽縣 求禮縣 輿陽縣 同福縣 和順縣
卷之四十一:(黃海道) 黃海道지도 黃州牧 平山都護府 瑞興都護府 鳳山郡
卷之四十二:安岳郡 載寧郡 遂安郡 谷山郡 信川郡 新溪縣 牛峰縣 文化縣 兎山縣 長連縣
卷之四十三:海州牧 廷安都護府 豊川都護府 白川郡 甕津縣 松禾縣 殷栗縣 江陰縣 康翎縣 長淵縣
卷之四十四:(江原道) 江原地圖 江陵大都護府 三陟都護府 襄陽都護府
卷之四十五:平海郡 杆城郡 高城郡 通川郡 蔚珍縣 <흡0x7D61>谷縣
卷之四十六:原州牧 春川都護府 旌善郡 寧越郡 平昌郡 麟蹄縣 橫城縣 洪川縣
卷之四十七:淮陽都護府 鐵原都護府 金城縣 楊口縣 狼川縣 伊川縣 平康縣 金化縣 安峽縣
卷之四十八:(咸鏡道) 咸鏡地圖 咸興府 永興大都護府 定平都護府 高原郡
卷之四十九:安邊都護府 德原都護府 文川郡 北靑都護府 瑞川郡 利城縣 洪原縣 甲山都護府 三水郡
卷之五十:鏡城都護府 吉城縣 明川縣 慶原都護府 會寧都護府 鍾城都護府 穩城都護府 慶興都護府 富寧都護府
卷之五十一:(平安道) 平安地圖 平壤府
卷之五十二:中和郡 龍江縣 三和縣 咸從縣 甑山縣 順安縣 江西縣 安州牧 定州牧 肅川都護府 嘉山郡 永柔縣
卷之五十三:義州牧 鐵山郡 龍川郡 昌城都護府 朔州都護府 龜城都護府 宣川郡 郭山郡
卷之五十四:寧邊大都護府 雲山郡 熙川郡 博川郡 泰川縣 城川都護府 德川郡 价川郡 慈山郡
卷之五十五:順天郡 祥原郡 三登縣 陽德縣 孟山縣 江東縣 殷山縣 江界都護府 渭原郡 理山郡 碧潼郡 寧遠郡
跋文三篇 :洪彦弼,任士洪,金宗直)
<內 容>
1.八道總圖
第2冊의 첫째 張으로 半郭 20.435.4cm, 圖面 16.627.2cm의 兩面 8道地圖이며, 版心題는 東覽圖이다. 作圖의 상태는 우선 道界도 없는 8道의 이름이 配列되어 있고, 지도의 전체구성은 外形이 實地와는 매우 다르고, 板刻의 솜씨가 졸열한 古地圖이다. 各道에는 한 두 개의 江과 山 혹은 津이 있고, 일정한 府牧郡縣의 地名은 없으나 原則이 없는 地名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서 全羅道의 海南은 南海로 誤刻된 채로 나타나 있다. 島嶼로는 西海에 江華·喬桐·群山島·黑山島·珍島가, 東海에 于山島·鬱陵島가, 南海에는 巨濟·南海 그리고對馬島가 그려져 있다.
2.京都上·下, 漢城府, 開城府上·下
京都上은 「勝覽」의 卷之一에 記載된 부분으로 古朝鮮 馬韓의 地域이다를 緖頭로 하여 地勢의 雄壯함과, 李太祖가 처음으로 都邑을 정한 原文이 있고, 新增의 國都欄은 註釋형태로 記述되어 있는데, 명나라 董越朝鮮賦의 引用을 筆頭로 雜多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城郭欄에는 太祖 5년에 石築한 것을 世宗 4년에 改修했으며, 둘레는 9,975步, 높이는 40尺2寸이고, 8곳에 문을 세웠는데 正南엔 崇禮, 正北엔 肅淸, 正東엔 興仁, 正西엔 敦義, 東北엔 惠化, 西北엔 彰義, 東南엔 光熙, 西南은 昭德이라는 기록이 그 主要內容이다. 宮城에서는 光化, 神武, 建春, 迎秋의 네 門에 대한 來歷 등이, 宮殿欄에서는 景福宮을 爲始하여 35개처의 宮·殿·閣·樓와 堂·亭에 대한 記錄이 있고, 壇廟欄에는 社稷壇을 위시하여 9壇, 1廟, 3殿, 3廟의 기록이 있고, 苑<유0x6D80>에서는 景福·昌德 두 宮의 後苑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상 城郭, 宮城, 宮殿, 壇廟, 苑<유0x6D80>에 대한 記錄들은 著者別로 大略 分類해 보면 初期의 殿·門等의 題名에는 主로 鄭道傳(?∼1398)이, 碑銘·鐘銘에는 卞季良(1369∼1430)이, 記文에는 河崙(1347∼1416)·金墩(1358∼1440)이, 題詠에는 尹淮(1380∼1436)의 글이 많고, 조금 뒤에 建立된 建物이나 壇苑에 대한 記·序文에는 鄭招(?∼1488)·崔恒(1409∼1479)·徐居正(1420∼1488)·金宗直(1431∼1492)의 것이 주축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京都下는 「勝覽」의 卷之二에 記載된 中央의 文武公職署에 대한 기록인데 文職公署로서는 宗親府를 위시해서 議政府·忠勳府·儀賓府·敦寧府·忠翊府·義禁府·六曹·司憲府·承政院·掌<례0x5DE5>院·司課院·弘文館·成均館·尙瑞院·春秋館·藝文館·通禮院·奉常寺·宗簿寺·校書館·司饔院·內醫院·尙衣院·司僕寺·軍器寺·內資寺·內瞻寺·司導寺·禮賓寺·司瞻寺·軍資監·濟用監·繕工監·司宰監·掌藥院·觀象監·典醫監·司譯院·世子侍講院·宗學·修城禁火司·典設司·豊儲倉·廣興倉·典艦司·典涓司·內需司·昭格署·社稷署·宗廟署·平市署·義盈庫·長興庫·氷庫·掌苑署·司圃署·養賢庫·典牲暑·司畜署·造紙署·惠民署·圖書署·典獄署·活人署·瓦署·歸厚署·中學·南學·西學·東學·中部·東部·南部·西部·北部·內侍府·內班院·武職公署로서는 中樞府·五衛都總府 ·義興衛·龍<양0x69D0>衛·虎賁衛·忠佐衛·忠武衛·宣傳官·內禁衛·訓鍊院·世子翊衛可·定虜衛의 業務와, 定員 및 品階, 各部署에 따른 題名記 ·詩·序文 등이 記錄되어 있다. 漢城府에는 府의 建置沿革·郡名·姓氏·風俗·形勝·烽燧·宮室·樓亭·驛院·橋梁·市街·佛宇·祠廟·古跡·名宦·人物·孝子·忠義·烈女·題詠등의 記錄이 있고, 開城府上에도 漢城府와 같은 題目下에 그에 따른 기록이 있으며, 단지 인물·효자·충의·열여·제영의 欄이 없는 대신 城郭·學校·部 坊·公<해0x7A58>등의 欄이 더 있을 뿐이다. 開城府下에는 산천·형승·풍속등의 소개가 없는 대산 陵寢·前八景·後八景등의 欄이 첨가되어 있다.
3.8 道郡縣
4各道의 앞 張에는 모두 그 道의 地圖가 부착되어 있다. 이 지도의 作圖規格은 八道總圖와 같으며, 四方外面에는 接境이 소개되어 있고(例 京畿道:東北抵江原道界, 東南抵忠淸道界,西抵大海…),郡縣 및 山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나, 江津은 확실하게 기록되지 못했다.
8道에 대한 기록으로는 「勝覽」卷之六∼卷之十三의 京畿道를 爲始하여 卷之十四∼卷之十六 忠淸道의 順序로 平安道의 寧遠郡이 卷之五十五의 末尾를 이루고 있다. 記錄의 體裁를 京畿道에서 살펴보면 우선 道 자체의 地域考가 설명되어 있고(例:古馬韓之域 高句麗 百濟 分據基地 後皆爲新羅所幷……), 官員欄에는 『觀祭使 1人 從2品, 兵馬節度使 1人 從2品 觀祭使兼, 水軍節度使 1人 正3品 觀祭使兼, 都事 1人 從5品, 審藥 1人 從9品, 檢律 1人 從9品 己上各品 諸道同』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道에서도 大同小異하다. 郡縣에 대한 內容을 역시 京畿의 廣州牧에서 살펴보면 그 題下에 小註雙行으로 里程이 記錄되어 있으며(例:東至楊根郡界二十五里 驪州界 七十五里……) 그 다음 建置沿革을 緖頭로 하여, 鎭管, 官負, 郡名,姓氏, 風俗, 形勝, 山川, 土産, 烽燧,樓亭, 學校, 驛院, 陵墓, 古跡, 名宦, 人物, 寓居, 孝子, 烈女, 題詠, 辨誤 등의 順으로 該當題目에 대한 說明이 記錄되어 있다. 餘他의 郡縣에서도 한 둘의 題目이 增減되는 경우가 있을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다를 바가 없다.
4.跋文
跋文은 모두 3편인데 그 時期와 內容은 아래와 같다.
洪彦弼의 跋文:嘉靖 10年(朝鮮中宗26,1531)6月 7日에 作成된 것인데 主要內容은 中宗이 戊子年(1528)의 가을에 左議政인 이 荇에게 燕山君 때의 官制를 更新하고, 郡縣의 移動과 分割을 아직 改定하여 記錄하지 못했으니, 그 동안에 생긴 孝子·烈女 및 佳作時文을 다시 選拔하여 增補하라는 命을 내리게 되자 外校書館에 局을 마련하여 庚寅年(1530) 가을에 編輯을 완료, 모두 5卷의 책을 만들어서 이미 만들어진 50卷에 첨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任士洪의 跋文:弘治 12年(朝鮮, 燕山君 5, 1499)에 지어진 것이며, 主要內容은 「勝覽」55卷에 路程의 里數가 실지와 다른 게 많고 題目과 史跡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 燕山君이 成俔·李德崇·任士洪에게 命하여 山川·史跡 등에는 누락을 보충하고 題詠·篇章 등에도 지리한 것에는 삭제를 가하여 精을 보이게 했는 바, 景福宮의 敎書館에 局을 개설하여 2년이 지나서야 作業을 마치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金宗直의 跋文:成化 21年(朝鮮, 成宗 16, 1485) 12월에 작성된 跋文이다. 內容은 成宗이 成俔·蔡壽·金宗直에게 盧思愼 등이 編輯한 50卷의 「東國輿地勝覽」을 보이면서 이 책은 祝穆의 책을 모방하여 記錄한 유일한 문헌이나 山川·古跡 등에 누락이 있고, 詩文에도 혼잡함이 없지 않으니 校正과 修正에 精密을 다하도록 힘쓰고, 凡例는 모두 「大明一統志」를 法하라하였다. 에 景福宮의 弘文館에 局을 開設하여 李昌臣·申從護·金孟性 등이 1次로 열람하고, 2次로 兪好仁·崔溥·李宜茂 등이 합세하여 各分野에 添削을 加하여 8개월만에 개정된 55卷이 完成을 보게되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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