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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237
서명 / 저자 : 博綜誌/ [撰者未詳]
개인저자 : 윤치희 1797 - 1866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哲宗年間(1850 - 1863) 寫]
형태사항 : 線裝, 1冊(89張): 無郭, 無絲欄, 半葉 10行 25字, 無版心; 33 × 21.7cm
일반주기 : 卷首識 : 余於古得卜居 說惜遺 佚謀移寫 後觀東寓志未知誰所作而皆其卷中語曰卜 居總論地理生理人心山水 海山嶺東四郡江居溪居四民八道凡 十一條蓋博洽文字然論人心一款恐涉偏孫觀者會之錦帆(尹致羲, 1797 - 1866)識 紙質 : 楮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南陽世家, 謹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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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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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부가정보

地理類-總志類-博綜誌
이 책은 李重煥(1690∼1753)이 지은 인문지리서인 「擇里志」를 錦帆 尹致羲가 옮겨쓰면서 간추린 것이다. 原本인 「擇里志」는 朝鮮朝末까지 印刷되어 出版된 적은 없으나 여러 가지 이름으로 筆寫되어 전해오고 있으며, 그 명칭만도 博綜誌ㆍ八域誌ㆍ可居誌ㆍ八域可居地ㆍ山水錄ㆍ東國山水錄ㆍ震維勝覽ㆍ總貨ㆍ東國總貨ㆍ八域可居處ㆍ士大夫可居處ㆍ吉地總論ㆍ東嶽小管ㆍ八域紀聞ㆍ形家要覽ㆍ靑華山人八域志抄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藏書閣所藏으로 이 博綜誌 외에 總貨(2∼4189)ㆍ擇里志(2∼4190)ㆍ擇里志(2∼4191) 등이 있다.
著者인 李重煥의 字는 輝組, 號는 淸潭ㆍ靑華山人, 本貫은 驪州, 參判 震休의 아들로 1690년(肅宗 16)에 태어났으며, 星湖 李瀷(1681∼1763)의 三從孫이다.
저자는 24세 되던 해(1713)에 增廣試의 병과에 급제하여 兵曹正郞의 官職에까지 이르렀으나 37세 때인 1726(英祖 2)에 睦虎龍의 上變事件에 관련된 혐의를 입어 絶島에 流配되었다가 1727년에 풀려났다. 이후로 벼슬을 한 흔적은 나타나지 않으나, 全羅ㆍ平安 양도를 제외한 全國을 떠돌면서 각지의 人心과 風俗 및 物貨의 生産地ㆍ集産地 등을 파악하여 記錄하였는데, 記錄할 당시에는 책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던 것을 뒤에 李肯翊(1736∼1806)이 八域卜居志라고 命名한 것이 생략되어 八域志란 이름이 생겼고, 餘他의 異名도 後人들이 筆寫하는 過程에서 나름대로 붙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 장서각에 소장된 「總貨」 1冊(43張), 「擇里志」 2冊, 「擇里志」 1冊(61張) 등도 編次가 다르거나 收錄되지 않은 조목이 있거나, 혹은 필사과정에서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다르게 필사된 부분도 보이지만 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첫머리에는 筆寫者인 錦帆이 識의 형식으로 東寓志(擇里志의 異名)의 내용이 卜居總論, 地理, 生理, 人心, 山水, 海山, 嶺東, 四郡, 江居, 溪居, 四民, 八道 등 12條가 收錄되어 있음을 피력하면서 단지 人心 1條는 偏見이라는 見解를 아울러 밝혔다.
卜居總論에서는 사람이 살만한 곳의 입지조건으로서 地理, 生理, 人心, 山水의 네 가지가 함께 갖추어져야됨이 밝혀져 있다.
地理부분에서는 지리를 관찰할 때는 水口, 野勢, 山形, 土色, 水理, 朝山朝水 등 여섯가지를 아울러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生理에서는 인간이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경제적인 부분이 道德仁義를 座談하기 보다 앞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土沃과 貿遷을 重視하여 生業이 적당한 곳인가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各地의 水田 1斗落당 소출과 木綿의 栽培地, 특산물 생산, 貿易, 交易의 방도, 主要 交易地, 水道와 船利의 大略 등이 各地域을 例示하면서 설명되어 있다.
人心부분은 餘他의 책과는 달리 맨 마지막에 적었는데 八道中 平安道의 人心이 醇厚하기로는 제일이고, 다음으론 慶尙道가 風俗이 質實하고, 咸鏡道는 勁悍하고, 黃海道는 獰暴, 江原道는 氓蠢, 全羅道는 狡險, 京<근0x5905>의 野邑은 民物이 凋弊, 忠淸道는 專趨勢利하다는 논평이 있고, 특히 士大夫間에 발생한 黨派에 대하여는 所屬黨名 및 人名까지 列擧하면서 그 起源ㆍ發展ㆍ弊端 등이 言及되어 있다. 심지어는 士大夫가 없는 곳을 선택하여 杜門息交하고 獨善其身하면서 農商에 從事하면 樂在其中이라는 말까지 곁들여서 官爵을 輕視하기도 했다.
山水의 부분에서는 各地方의 유명한 山水ㆍ名刹을 소상하게 소개하였고, 사람이 살기에 이상적인 곳으로는 沃土廣地에 交易의 不便함이 없고, 10里안밖에 名山佳水가 있어서 때때로 吟風弄月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제일 좋다고 덧붙였다.
海山에서는 濟州의 漢拏山과 歲貢으로 定해진 土産良馬가 소개되고, 南海의 錦山에는 崔孤雲이 쓴 錦山洞天이란 壁上大書가 있고 康津海中의 莞島에는 新羅의 張保皐가 살았고, 全羅海中의 群山島에는 春夏魚採期에 商船이 雲集, 海上販賣가 잘 이루어져서 居民의 衣食이 陸民보다 豪侈한 점이 강조되었고, 忠淸瑞山海中의 積德道에는 唐나라 蘇定方이 百濟를 칠 때에 군사를 주둔했고, 江原三陟府海中의 鬱陵島는 肅宗朝 때에 三陟營將 張漢相이 명령을 받고 咸鏡道安邊府에서 發船하여 東南風을 타고 2일만에 처음으로 도착, 海中에 石山이 聳立한 것을 발견했으며, 사람은 살고 있지 않았으나 古人의 유지가 있으니, 아마도 옛 于山國이 아닌가 싶다는 기록이 소개되어 있다.
嶺東부분에서는 嶺東의 名勝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8道에는 湖水가 없는게 특징인데 嶺東만은 高城의 三日浦를 위시하여 江陵의 鏡捕, <흡0x7D61>谷의 侍中湖, <간0x536E>城의 花潭ㆍ永朗湖, 襄陽의 淸草湖 등 6湖가 있으며, 通川의 叢石亭도 名勝地로는 빼놓을 수 없음을 지적하고 그 名勝地의 風光及由來와 歷代名人들의 所詠ㆍ所居도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西郡에는 永春ㆍ丹陽ㆍ淸風ㆍ堤川이 忠淸道땅으로 漢江上流에 根據되어 있음과, 四郡 중에 丹陽의 佳景이 으뜸임이 강조되어 있다. 특히 邑東의 雲岩 石壁上에 자리잡은 西崖의 옛 亭址에 얽힌 故事를 慨嘆하면서, 嶺東과 丹陽은 地僻하고 險阻해서 可居之地로는 不適하다는 지적이 곁들여 있다.
江居부분에는 高山急水와 險峽驚湍이 한 때의 賞玩處로는 적절하겠으나 永居世傳의 터전으로는 不適하다는 序言이 있고, 江居의 最適地로서는 平壤外城을 8道에서 第一로 잡으면서 그 風光이 記述되어 있으며, 箕子時로부터 지금까지 盛衰가 없었던 것을 그 證據로 삼고 있다. 단지 平壤의 地理는 行舟形態이기 때문에 샘을 파는 것을 禁忌로 되어 있어서 公私間의 用水는 모두 강물을 급수하여 사용해야 하는 점과 땔나무가 極貴한 점이 所欠이라는 말도 곁들여져 있다. 다음 可居적지로서는 春川昭陽江上의 牛頭村과 呂州邑, 忠州의 金遷, 木浦, 扶餘, 恩津 등이 나열되어 있는데 선발된 지역들은 山水之秀麗보다는 舟楫漁鹽之利, 즉 衣食之利가 重視되어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溪居에서는 海居不如江居요 江居不如溪居라는 事由說明이 돋보이는데 海上에는 바람이 많아서 人面이 쉽게 타고, 脚氣ㆍ水腫等의 病症도 多發하며 土質도 척박하여 農耕에 不利하고, 我國의 地勢는 東高西低하여 江들이 거개가 峽谷에서 起源되었기에 悠遠平穩함이 적고 倒捲急瀉가 많아서 江에 臨하여 亨屋을 構築하면 언제나 興亡이 無常하거니와 溪居는 安穩之美와 瀟酒之致가 있고 灌漑耕耘의 樂이 더욱 멋이 있다고 記述되어 있다. 溪居處로서는 嶺南의 陶山ㆍ河回가 으뜸이고, 其外 安東의 東南쪽 漢水를 낀 靑松邑, 북쪽의 奈城村ㆍ春陽村, 順興府안에 있는 竹溪邊에 明廟時에 周世鵬이 我國의 書院으로는 처음으로 <창0x74A1>建한 白雲洞書院 등은 溪山의 物色이나 土地ㆍ生理 등에 溪居處로는 손꼽을 수 있음이 적혀 있다.
四民에서는 我國 士大夫의 由來와 姓氏의 發生과 더불어 尊卑貴賤의 限界가 隨伴되었다는 來歷과, 尊貴의 대상인 士大夫는 당연히 修身ㆍ修業ㆍ行義함으로써 農工賈의 사람들이 羨望하고 尊敬하게되어 그 位相이 자연 定立될 것이며, 만일 偏論과 偏黨으로 서로 猜忌하고 殺傷을 일삼으면 마침내 용서될 사람이 없게 되어 士大夫들 자신 뿐만 아니라 農工商 역시 可居處를 喪失하게 된다는 警覺조의 글이 먼저 記述되어 있고, 다음으로 士農工商의 本分을 말하면서도 역시 士大夫를 중심으로 說明되어 있다.
八道에서는 우선 우리나라의 白頭山(山海經所謂不咸山)이 崑崙山의 一枝가 遼東의 大野를 건너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하고, 다음으로는 朝鮮 8道의 古根據地를 설명했는데, 즉 慶尙道는 古 卞韓ㆍ辰韓의 땅이며, 忠淸ㆍ全羅는 古 馬韓ㆍ百濟, 咸鏡ㆍ平安ㆍ黃海는 古 朝鮮ㆍ高句麗, 江原은 濊貊이라고 記述했고, 또 다음에는 옛 周邊國에 대한 설명, 檀君과 箕子의 由來, 三韓의 根據 및 新羅三姓이 更迭爲王한 사실 등이 記錄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我國의 建置沿革이 大略 記載되어 있다. 즉 朱蒙은 말갈에서 와서 平壤을 거점으로 高句麗를 세웠고, 朱蒙의 次子인 溫祚는 漢水의 남쪽을 分據하여 馬韓을 滅하고 百濟를, 高句麗ㆍ百濟 두 나라는 모두 羅末時 弓裔ㆍ甄萱에게 分割되었다가 高麗에 의해 一統되었다는 記錄 등이 八道部의 앞에 序言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8道가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는 부분에서는 各道別로 平ㆍ咸ㆍ黃ㆍ江ㆍ慶ㆍ全ㆍ忠ㆍ圻의 글자를 꼬리표에 써서 該當부분의 上端 갈피에 附着해 두었다.
平安道의 境界 설명에서는 鴨綠南 浿水北 爲箕子所封이라 했고, 원래 舊界는 踰鴨綠 至靑石嶺인데 이 곳은 安市城ㆍ白岩도 그 속에 있다는 唐史의 記錄도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箕子의 井田遺址 및 箕子墓에 대한 설명과 名勝地ㆍ樓臺마다에 淸兵ㆍ胡人들 간에 얽힌 故事와 我國의 歷代 朝臣들이 往來하면서 遊觀吟詠한 事實들이 明記되어 있다.
나머지 道인 咸鏡ㆍ黃海ㆍ江原ㆍ慶尙ㆍ全羅ㆍ忠淸ㆍ京畿 등에서도 그 境界의 설명을 위시해서 道內各郡에 대한 沿革, 里程, 名勝地의 風光과 傳說, 樓臺, 土産物 及特産物, 各朝의 朝臣들의 赴臨來歷, 人傑往來에 얽힌 故事 등이 비슷한 方法으로 記述되어 있다.
李重煥이 이 책을 著述하던 때는 朝鮮時代 중에서 政治的으로 비교적 平穩하고, 文化的으로도 각종 문물이 발달한 機運이 보이기 시작한 英祖朝(18세기)때이었다. 그러나 政治의 비호 아래 朱子學은 오히려 배타적인 폐단과 완고를 일삼는 경향이 있는 데다가 또 李朝의 고질적인 당파 싸움과 임진왜란이 끼친 영향이 첨가되어 백성들의 심리에는 무기력과 권태가 팽배해 있을 시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사회적 풍조가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반성의 요청이 수반되기 마련이어서, 朱子學에 대한 회의 내지는 반동적 경향으로 淸朝에서 考證學이 수입되고, 한편으로 서양의 과학적 思考도 影響을 주게되어 實用ㆍ實正ㆍ實證의 이른바 實學의 풍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실학자들은 과거의 학문ㆍ정치ㆍ경제ㆍ사회 등을 비판하면서 현실 사회의 저반 문제의 해결에 힘쓰는 한편 自我의 인식을 주장하며, 우리 나라의 歷史地理 등을 硏究하고, 우리 나라 본래의 文化의 究明ㆍ考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주제가 되는 可居處(살만한 곳)는 맹목적인 五行 風水說이 아닌, 즉 자연환경을 인문환경과 관련시킨 현대 地理學의 중심사상에 접근되고 있음이 주목할 만하다.

부가정보

地理類-總志類-博綜誌
이 책은 李重煥(1690∼1753)이 지은 인문지리서인 「擇里志」를 錦帆 尹致羲가 옮겨쓰면서 간추린 것이다. 原本인 「擇里志」는 朝鮮朝末까지 印刷되어 出版된 적은 없으나 여러 가지 이름으로 筆寫되어 전해오고 있으며, 그 명칭만도 博綜誌ㆍ八域誌ㆍ可居誌ㆍ八域可居地ㆍ山水錄ㆍ東國山水錄ㆍ震維勝覽ㆍ總貨ㆍ東國總貨ㆍ八域可居處ㆍ士大夫可居處ㆍ吉地總論ㆍ東嶽小管ㆍ八域紀聞ㆍ形家要覽ㆍ靑華山人八域志抄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藏書閣所藏으로 이 博綜誌 외에 總貨(2∼4189)ㆍ擇里志(2∼4190)ㆍ擇里志(2∼4191) 등이 있다.
著者인 李重煥의 字는 輝組, 號는 淸潭ㆍ靑華山人, 本貫은 驪州, 參判 震休의 아들로 1690년(肅宗 16)에 태어났으며, 星湖 李瀷(1681∼1763)의 三從孫이다.
저자는 24세 되던 해(1713)에 增廣試의 병과에 급제하여 兵曹正郞의 官職에까지 이르렀으나 37세 때인 1726(英祖 2)에 睦虎龍의 上變事件에 관련된 혐의를 입어 絶島에 流配되었다가 1727년에 풀려났다. 이후로 벼슬을 한 흔적은 나타나지 않으나, 全羅ㆍ平安 양도를 제외한 全國을 떠돌면서 각지의 人心과 風俗 및 物貨의 生産地ㆍ集産地 등을 파악하여 記錄하였는데, 記錄할 당시에는 책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던 것을 뒤에 李肯翊(1736∼1806)이 八域卜居志라고 命名한 것이 생략되어 八域志란 이름이 생겼고, 餘他의 異名도 後人들이 筆寫하는 過程에서 나름대로 붙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 장서각에 소장된 「總貨」 1冊(43張), 「擇里志」 2冊, 「擇里志」 1冊(61張) 등도 編次가 다르거나 收錄되지 않은 조목이 있거나, 혹은 필사과정에서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다르게 필사된 부분도 보이지만 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첫머리에는 筆寫者인 錦帆이 識의 형식으로 東寓志(擇里志의 異名)의 내용이 卜居總論, 地理, 生理, 人心, 山水, 海山, 嶺東, 四郡, 江居, 溪居, 四民, 八道 등 12條가 收錄되어 있음을 피력하면서 단지 人心 1條는 偏見이라는 見解를 아울러 밝혔다.
卜居總論에서는 사람이 살만한 곳의 입지조건으로서 地理, 生理, 人心, 山水의 네 가지가 함께 갖추어져야됨이 밝혀져 있다.
地理부분에서는 지리를 관찰할 때는 水口, 野勢, 山形, 土色, 水理, 朝山朝水 등 여섯가지를 아울러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生理에서는 인간이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경제적인 부분이 道德仁義를 座談하기 보다 앞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土沃과 貿遷을 重視하여 生業이 적당한 곳인가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各地의 水田 1斗落당 소출과 木綿의 栽培地, 특산물 생산, 貿易, 交易의 방도, 主要 交易地, 水道와 船利의 大略 등이 各地域을 例示하면서 설명되어 있다.
人心부분은 餘他의 책과는 달리 맨 마지막에 적었는데 八道中 平安道의 人心이 醇厚하기로는 제일이고, 다음으론 慶尙道가 風俗이 質實하고, 咸鏡道는 勁悍하고, 黃海道는 獰暴, 江原道는 氓蠢, 全羅道는 狡險, 京<근0x5905>의 野邑은 民物이 凋弊, 忠淸道는 專趨勢利하다는 논평이 있고, 특히 士大夫間에 발생한 黨派에 대하여는 所屬黨名 및 人名까지 列擧하면서 그 起源ㆍ發展ㆍ弊端 등이 言及되어 있다. 심지어는 士大夫가 없는 곳을 선택하여 杜門息交하고 獨善其身하면서 農商에 從事하면 樂在其中이라는 말까지 곁들여서 官爵을 輕視하기도 했다.
山水의 부분에서는 各地方의 유명한 山水ㆍ名刹을 소상하게 소개하였고, 사람이 살기에 이상적인 곳으로는 沃土廣地에 交易의 不便함이 없고, 10里안밖에 名山佳水가 있어서 때때로 吟風弄月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제일 좋다고 덧붙였다.
海山에서는 濟州의 漢拏山과 歲貢으로 定해진 土産良馬가 소개되고, 南海의 錦山에는 崔孤雲이 쓴 錦山洞天이란 壁上大書가 있고 康津海中의 莞島에는 新羅의 張保皐가 살았고, 全羅海中의 群山島에는 春夏魚採期에 商船이 雲集, 海上販賣가 잘 이루어져서 居民의 衣食이 陸民보다 豪侈한 점이 강조되었고, 忠淸瑞山海中의 積德道에는 唐나라 蘇定方이 百濟를 칠 때에 군사를 주둔했고, 江原三陟府海中의 鬱陵島는 肅宗朝 때에 三陟營將 張漢相이 명령을 받고 咸鏡道安邊府에서 發船하여 東南風을 타고 2일만에 처음으로 도착, 海中에 石山이 聳立한 것을 발견했으며, 사람은 살고 있지 않았으나 古人의 유지가 있으니, 아마도 옛 于山國이 아닌가 싶다는 기록이 소개되어 있다.
嶺東부분에서는 嶺東의 名勝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8道에는 湖水가 없는게 특징인데 嶺東만은 高城의 三日浦를 위시하여 江陵의 鏡捕, <흡0x7D61>谷의 侍中湖, <간0x536E>城의 花潭ㆍ永朗湖, 襄陽의 淸草湖 등 6湖가 있으며, 通川의 叢石亭도 名勝地로는 빼놓을 수 없음을 지적하고 그 名勝地의 風光及由來와 歷代名人들의 所詠ㆍ所居도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西郡에는 永春ㆍ丹陽ㆍ淸風ㆍ堤川이 忠淸道땅으로 漢江上流에 根據되어 있음과, 四郡 중에 丹陽의 佳景이 으뜸임이 강조되어 있다. 특히 邑東의 雲岩 石壁上에 자리잡은 西崖의 옛 亭址에 얽힌 故事를 慨嘆하면서, 嶺東과 丹陽은 地僻하고 險阻해서 可居之地로는 不適하다는 지적이 곁들여 있다.
江居부분에는 高山急水와 險峽驚湍이 한 때의 賞玩處로는 적절하겠으나 永居世傳의 터전으로는 不適하다는 序言이 있고, 江居의 最適地로서는 平壤外城을 8道에서 第一로 잡으면서 그 風光이 記述되어 있으며, 箕子時로부터 지금까지 盛衰가 없었던 것을 그 證據로 삼고 있다. 단지 平壤의 地理는 行舟形態이기 때문에 샘을 파는 것을 禁忌로 되어 있어서 公私間의 用水는 모두 강물을 급수하여 사용해야 하는 점과 땔나무가 極貴한 점이 所欠이라는 말도 곁들여져 있다. 다음 可居적지로서는 春川昭陽江上의 牛頭村과 呂州邑, 忠州의 金遷, 木浦, 扶餘, 恩津 등이 나열되어 있는데 선발된 지역들은 山水之秀麗보다는 舟楫漁鹽之利, 즉 衣食之利가 重視되어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溪居에서는 海居不如江居요 江居不如溪居라는 事由說明이 돋보이는데 海上에는 바람이 많아서 人面이 쉽게 타고, 脚氣ㆍ水腫等의 病症도 多發하며 土質도 척박하여 農耕에 不利하고, 我國의 地勢는 東高西低하여 江들이 거개가 峽谷에서 起源되었기에 悠遠平穩함이 적고 倒捲急瀉가 많아서 江에 臨하여 亨屋을 構築하면 언제나 興亡이 無常하거니와 溪居는 安穩之美와 瀟酒之致가 있고 灌漑耕耘의 樂이 더욱 멋이 있다고 記述되어 있다. 溪居處로서는 嶺南의 陶山ㆍ河回가 으뜸이고, 其外 安東의 東南쪽 漢水를 낀 靑松邑, 북쪽의 奈城村ㆍ春陽村, 順興府안에 있는 竹溪邊에 明廟時에 周世鵬이 我國의 書院으로는 처음으로 <창0x74A1>建한 白雲洞書院 등은 溪山의 物色이나 土地ㆍ生理 등에 溪居處로는 손꼽을 수 있음이 적혀 있다.
四民에서는 我國 士大夫의 由來와 姓氏의 發生과 더불어 尊卑貴賤의 限界가 隨伴되었다는 來歷과, 尊貴의 대상인 士大夫는 당연히 修身ㆍ修業ㆍ行義함으로써 農工賈의 사람들이 羨望하고 尊敬하게되어 그 位相이 자연 定立될 것이며, 만일 偏論과 偏黨으로 서로 猜忌하고 殺傷을 일삼으면 마침내 용서될 사람이 없게 되어 士大夫들 자신 뿐만 아니라 農工商 역시 可居處를 喪失하게 된다는 警覺조의 글이 먼저 記述되어 있고, 다음으로 士農工商의 本分을 말하면서도 역시 士大夫를 중심으로 說明되어 있다.
八道에서는 우선 우리나라의 白頭山(山海經所謂不咸山)이 崑崙山의 一枝가 遼東의 大野를 건너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하고, 다음으로는 朝鮮 8道의 古根據地를 설명했는데, 즉 慶尙道는 古 卞韓ㆍ辰韓의 땅이며, 忠淸ㆍ全羅는 古 馬韓ㆍ百濟, 咸鏡ㆍ平安ㆍ黃海는 古 朝鮮ㆍ高句麗, 江原은 濊貊이라고 記述했고, 또 다음에는 옛 周邊國에 대한 설명, 檀君과 箕子의 由來, 三韓의 根據 및 新羅三姓이 更迭爲王한 사실 등이 記錄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我國의 建置沿革이 大略 記載되어 있다. 즉 朱蒙은 말갈에서 와서 平壤을 거점으로 高句麗를 세웠고, 朱蒙의 次子인 溫祚는 漢水의 남쪽을 分據하여 馬韓을 滅하고 百濟를, 高句麗ㆍ百濟 두 나라는 모두 羅末時 弓裔ㆍ甄萱에게 分割되었다가 高麗에 의해 一統되었다는 記錄 등이 八道部의 앞에 序言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8道가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는 부분에서는 各道別로 平ㆍ咸ㆍ黃ㆍ江ㆍ慶ㆍ全ㆍ忠ㆍ圻의 글자를 꼬리표에 써서 該當부분의 上端 갈피에 附着해 두었다.
平安道의 境界 설명에서는 鴨綠南 浿水北 爲箕子所封이라 했고, 원래 舊界는 踰鴨綠 至靑石嶺인데 이 곳은 安市城ㆍ白岩도 그 속에 있다는 唐史의 記錄도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箕子의 井田遺址 및 箕子墓에 대한 설명과 名勝地ㆍ樓臺마다에 淸兵ㆍ胡人들 간에 얽힌 故事와 我國의 歷代 朝臣들이 往來하면서 遊觀吟詠한 事實들이 明記되어 있다.
나머지 道인 咸鏡ㆍ黃海ㆍ江原ㆍ慶尙ㆍ全羅ㆍ忠淸ㆍ京畿 등에서도 그 境界의 설명을 위시해서 道內各郡에 대한 沿革, 里程, 名勝地의 風光과 傳說, 樓臺, 土産物 及特産物, 各朝의 朝臣들의 赴臨來歷, 人傑往來에 얽힌 故事 등이 비슷한 方法으로 記述되어 있다.
李重煥이 이 책을 著述하던 때는 朝鮮時代 중에서 政治的으로 비교적 平穩하고, 文化的으로도 각종 문물이 발달한 機運이 보이기 시작한 英祖朝(18세기)때이었다. 그러나 政治의 비호 아래 朱子學은 오히려 배타적인 폐단과 완고를 일삼는 경향이 있는 데다가 또 李朝의 고질적인 당파 싸움과 임진왜란이 끼친 영향이 첨가되어 백성들의 심리에는 무기력과 권태가 팽배해 있을 시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사회적 풍조가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반성의 요청이 수반되기 마련이어서, 朱子學에 대한 회의 내지는 반동적 경향으로 淸朝에서 考證學이 수입되고, 한편으로 서양의 과학적 思考도 影響을 주게되어 實用ㆍ實正ㆍ實證의 이른바 實學의 풍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실학자들은 과거의 학문ㆍ정치ㆍ경제ㆍ사회 등을 비판하면서 현실 사회의 저반 문제의 해결에 힘쓰는 한편 自我의 인식을 주장하며, 우리 나라의 歷史地理 등을 硏究하고, 우리 나라 본래의 文化의 究明ㆍ考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주제가 되는 可居處(살만한 곳)는 맹목적인 五行 風水說이 아닌, 즉 자연환경을 인문환경과 관련시킨 현대 地理學의 중심사상에 접근되고 있음이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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