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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16-312
서명 / 저자 : 杞人閒商量/ [著者未詳]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寫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 1冊(19張)左右雙邊: 半郭 21.4 × 15cm, 烏絲欄, 半葉 10行 20字, 上黑口, 上黑魚尾; 28.7 × 19.3cm
일반주기 : 異書名 : 修誌策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東國與地勝覽의編撰沿革과 地圖作成의 必要性을 論한 책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16 mm
소장본주기 : 印 :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4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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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부가정보

地理類-總志類-杞人閒商量
朝鮮朝 成宗 10年(戊戌, 1478)에 南原君 梁誠之가 「八道地誌」를 올리고, 宣城府院君 盧思愼이 「東文選」을 撰進함을 계기로 하여, 盧思愼과 徐巨正 등에게 「東國輿地勝覽」을 纂修하게 命한지 꼭 6回甲(360年)이 지난 憲宗 4년(1838)에 東國의 輿誌類가 계속하여 發展纂修되지 못한 것을 憂歎하는 한 篤志家에 依하여 編修된 筆寫本이다.
于先 이 책의 表題를 「杞人閒商量」이라고 命名한 裏面에는 당시 學士大夫와 迂儒俗吏들의 輿地에 對한 沒知覺으로 筆者 혼자만 不必要한 걱정에 얽매인 듯한 杞憂閒談의 쓸쓸한 背景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內張에서 「修誌策」이라 쓴 異名은 筆者 自身이 命名의 연유를 策文의 末尾에서 밝히고 있는 바 修誌는 속음의 休紙와 通하는 어음이니 覆<부0x637A>糊窓에나 알맞기 때문이다 고 피력한 대목에서는 당시 地誌에 관심을 쏟는 필자의 위치가 얼마나 백안시 되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의 構成은 序文과 策文으로 區分되어 있다.
序文에서는 輿地의 必要性을 論하고, 成宗 10年에 「輿地勝覽」이 纂修되는 동기와 그 沿革이 說明되고 있다. 이 「輿地勝覽」은 宋의 「方輿勝覽」, 明의 「一統志」와 흡사하게 만들어졌으며, 그 沿革, 名號, 風俗, 形勝으로부터 廟社, 陵園, 宮室, 壇<유0x6D82>, 墓祠, 寺觀, 樓亭, 院驛, 倉烽, 貢産등과 名宦, 政續, 人物, 孝烈, 題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천년의 信史이며 無比의 國乘이니 夏의 「禹貢」, 周의 「職方」보다 못할 게 없다고 극찬하고 있다. 또 成宗 16년(1485)에 다시 雙校, 括刪한 것과, 燕山君 4년(1498)의 刪補 및 中宗 23년(1528)의 「新增東國輿地勝覽」등은 廟堂에서 輿地에 대한 인식이 계속 鼓躁되어 왔으나 그 이후로는 수백년에 이르도록 그 많은 山川의 變改, 州縣의 興廢에도 勝覽의 書冊類는 한 번도 다듬어지지 못한 점을 개탄하고 있다.
특히 正廟 末年(1799)에는 勝覽을 繼修하고자 內閣諸臣에게 特命으로 各都邑誌를 收聚케 하고 博識能文의 선비들을 선발, 山川樓臺의 諸條를 分擔시켜서 攷證彙編을撰進케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임금의 죽음으로 그 成就를 보지 못했다는 등의 輿地에 對한 沿革攷가 잘 설명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誌書作成의 甚難함을 記述하고 있는데 이른바
誌書는 無訛를 爲主로 해야 하고, 無訛코자 하려면 博攷據貫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몸소 坊曲을 遍搜해야 한다. 그리고 東國은 言文이 종류가 많고, 音義도 다양하다. 예컨대 乶·(芿+돌叱)·乫·串 등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발음하고 있으며, 豆滿江·白頭山은 淸國의 「盛京烏喇吉林全圖」를 열람해보면 頭滿은 土門으로, 白頭는 長白으로 記載되어 있다. 中國땅은 偏方의 小邑이라도 圖誌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蒐集해서 成冊하기에 힘들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三國이후로 朝廷에도 簡籍이 부족한 실정인데 하물며 郡邑에 있어서랴! 때문에 어떤 사람이 몸소 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核實을 얻을 수 없다. 「文獻備考」의 集冊도 단지 勝覽諸誌를 근거로 한 것이기에 병폐가 없지 않고, 正廟時에 收集한 邑誌역시 실은 煩衍함을 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序文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느낌이 서술되고 있는데 나는 失學無成 하나 西方으로 떠돌기를 좋아하는 流癖이 있다. 邦內의 땅을 太半歷覽하면서 항상 輿地의 作成에 杞憂가 간절하였는데 마침 成宗朝의 그 戊戌年이 6回甲을 맞게 되니 감개가 없지 않아 輿誌의 興廢를 歷敍함과 동시에 평소의 見聞을 記述하거니와 어쩌면 他日의 採擇이 있을지도 몰라서 方策 몇 가지를 적는다는 策文의 記述동기가 동시에 서술되어 있다.
策文에서는 지금이라도 만약 옛날의 例에 의하여 輿誌를 작성하려고 한다면 여러 곳의 邑誌를 收集하여 京城 한 곳에서 기술하면 시간과 경비만 낭비되고 그 成就는 어려움을 말하면서 成功方法을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
1) 得人 : 적당한 사람을 찾는 데는 鴻匠巨儒 보다는 博覽强記·善於攷證하는 사람으로 遊賞을 좋아하고 經歷이 많은 자를 선발하되 기한을 충분하게 부여하고 專任시키되 是非를 따져서 撓奪하지 말 것.
2) 周行遍踏 : 이미 사람을 얻어 專任시켰으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8道의 山海를 行踏케 하여 躬探目擊한 實證으로 首尾를 照應하여 成書에 임하게 할 것.
3) 修誌官의 差遣方法
() 各道의 都事를 임시로 修誌都事의 명함을 주어서 郡縣을 巡行하게 하되, 官方의 變通으로 浪費의 폐단을 없앨 것.
() 軍職에 當付하되 蔭啣을 借用하여 修誌官이라 稱하게 하고, 郡邑에서는 客官으로 대우하고, 行動에는 구애됨이 없게 하면 ()의 낭비의 폐단을 염려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 修誌를 施行하는 道마다 監營의 幕<과0x56AD>를 이용하여 列邑을 往來케 하되 그 行事를 公的으로 취급하게 한다.
4) 道伯이라면 當世의 雅望이겠으나 存拔增刪의 경우는 모두 稟質에 依하여 결정해야 하고 마음대로 權勢를 행하게 해서는 안 된다.
5) 처음부터 盡善盡美를 원한다면 먼저 地理를 전확하게 밝혀야 하고, <군0x584B>書를 攷證해야 固陋하다는 비평을 벗어날 수 있다. 攷證書로서 빠질 수 없는 것으로는 三國·高麗諸史, 國乘·野史·文獻備考, 輿地勝覽 等書이며, 程式을 본뜬 것으로는 明의 「一統志」와 淸의 「一統志」·「方輿勝覽」, 通志類, 名山記 등이다.
6) 山川의 異名은 兩存시켜서 分別케 하고, 樓亭·寺刹의 興廢年條도 詳考해서 기록하고, 倉庫, 土産, 貢獻物種, 人物의 原籍居生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기록한다.
이상 6條項을 方策으로 列擧한 뒤에 末尾의 尾附一事라는 題下에 輿誌와 表裏가 되는 것은 各道·各邑의 事例 및 邑總인데 이것이 邑마다 동일하지 못해서 準則이 될 만한 것이 없고, 各道의 監兵·水營도 마찬가지이기에 道伯이라해도 監營의 事例만 알 뿐 外邑의 事例는 알지 못한 실정이니, 例는 곧 法이고, 法은 一國의 公共을 뜻할진대 어떻게 邑마다 임의로 例가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修誌作業이 행해진다면 이 事例 등도 同時에 동일하게 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附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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