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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546
서명 / 저자 : 親耕儀軌/ 禮曹(朝鮮) 編
단체저자 : 조선. 예조
판사항 : 原本
발행사항 : [ ]: [ ], 英祖 43(1767) 寫
형태사항 : 線裝 1冊(70張): 四周雙邊, 半郭 34.2 × 26cm, 烏絲欄, 半葉 12行 24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 44.8 × 32.6cm
일반주기 : 紙質 : 楮紙
해제사항 : 英祖 43年의 親耕儀軌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禮曹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 本,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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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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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부가정보

친경의궤

최길성

乾降三十二年丁亥(1767) 二月日 禮曹(朝鮮) 編.
原本. 英祖 43(1767). 1冊(70張). 四周單邊, 半郭 34.3 × 26.1cm.
烏絲欄·半葉
線裝.
卷末:"堂上資憲대大夫禮智判書兼知經筵事同知戌均館事世孫左副賓客臣中(手決)."
印: 禮曹之印, 李王家圖書之草, 茂朱赤裳山史車所藏
◇本
紙質: 楮紙

李朝時代의 宮中의 대표적인 祈農을 위한 농경의식으로 假農作(內農作)과 親耕禮가 있어 농경민족의 특색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가농작은 假說農作 假作農家之事의 縮略으로 內農作이라고도 하는데, 內農作이란 궁내 후원에서 행하던 데서 생겨진 것 같다. 가농작은 上元에 궁내 후원에서 모의적으로 행하는 데 반하여 親耕籍田禮는 궁외 선농단에서 正二月중에 택일하여 왕이 직접 밭을 가는 의식이다. 전자가 주로 의례적인 祈農의 성격이 큰데 비해 후자는 의식적인 권농행사의 성격이 크다.
親耕禮는 이미 주례에 보이는 것으로 天子가 親耕하던 것을 우리 나라에서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처음 고려사에

春正月辛未 王祈穀于圓丘 配以太祖
乙亥躬耕籍田 祀神農 配以后稷 祈穀籍田之禮始也
(高麗史 世家三, 成宗 二年(983))

라 하여 태도시부터 기곡적전지례를 行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行事는 農本政策을 중요한 국시의 하나로 삼은 李朝時代에도 계속되었음은 勿論이거니와 너무 盛하여 弊가 되어 行하지 않은 때도 있으나 대체로 李朝末까기 계속되었던 것이다. 中宗은

親耕之擧 雲集京師내 親耕則旣 命停矣
(中宗 卷十, 五年 二月 甲辰)

라 停止할 겻을 命했는네, 이때부터 中宗 12년까지 行하지 않았던 것은 李<자0x6F78>가 親耕禮는 勸農의 뜻이 있다고 주장한 데서 알 수 있다.

李<자0x6F78>曰今者民生困悴而民不力農 地多迎利須爲軫念行親耕親蠶之擧以勸之也
上曰親耕雖似文具 以至誠爲之 示民以先之可也
(中宗 卷三十一, 12년 閏 12월 庚辰)

다시 中宗 13年에 奇遵이 親耕不可廢하라고 주장했다.

檢討官奇遵曰大抵后妃親耕蠶 天子親耕上爲孝祀 下以示民以農桑爲本之意也 白癸酉以後不復親耕 民皆捨本而逐末矣 若能以身先之則下或感化矣 親祭社稷之命 此誠美事也 然親耕事 亦不可廢也 (中宗三十一, 十三年 正月 壬子)

여기서 癸酉(1513年) 正月에 親耕을 하고는 계속하지 않았음을 들어가면서 親耕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다시 親耕을 하게 되었는데 中宗 19年에는 親耕時歌謠結綵 등의 弊가 생기어 다시 停止할 것을 政院에 傳言한 바 있다.

仲于政院日今 日 亭諫言 西北有卞 人馬及將士多傷 所當惻川之時 親耕箱田 雖不可廢 其歌謠陳賀等事未穩 此論甚7古 但 行親耕則歌謠等事 雖或可廢 翌日勞酒宴及凡文具 不可盡廢 且此近太未行之 盛禮文具亦不可不擧뿌欲停親耕矣 迎<래0x5D0B>賀禮亦不可不受雖停親耕而別試則己諭 中外儒生 必己<분0x63AB>集京師不當中止(中宗 卷五十, 十九年 正月 癸未)

歌謠結綵 等의 弊가 생기어 주의시킨 기록이 계속 보인다.

下禮曹公事 曰親耕時 歌謠結綵等事 深爲有幣 故前者亦令不行矣 今年正月亦欲親行先農祭 凡事皆恭酌磨鍊而卒不行之也 今者一依去正月例爲之 (中宗 卷六十四, 二十三年 十一月 乙卯)

이렇게 친경례가 行해져 오던 親耕의 儀節을 모아 英祖때 親耕儀軌를 만들었는데 英祖 15年(1739)과 同 45年(1767)에 각가 一冊씩으로 作戊된 것이 傳한다. 여기에 英祖 43년(乾降32년)에 作成된 藏吉閣所藏의 「親耕儀軌」의 內容을 紹介하면

傅敎
啓辭
移文
來關
甘結
儀註
藏種
受繭
傳敎
儀註

傅敎, 啓辭를 모아서 자료로 삼아 參考하여 儀註를 짰다. 친경과 친잠을 일시에 거행하되 '依禮文' 遵禮文하라고 했으며, 전하가 五推를 宗室宰臣이 七推를 判害臺諫 等이 九推를 하던 것을 上曰宗宰以下皆以九推磨鍊可也라 하여 대체로 儀式을 統一하여 簡素化 시키되 위엄을 갖추게 하였다.
다음은 丁亥 二月 初 九日 禮曹單子에는 出還宮時와 親耕時 殿下, 王世孫, 宗親, 文武百官 등의 服飾이 定해져 있으며, 黍 稷 稻 梁 % 大豆 小豆 大麥 小麥 등의 九穀種을 마련하고 靑彩未% 靑綿 靑牛 등 거의 靑色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農耕을 위한 儀式이기 때문에 植物의 色을 象徵하는 것 같다. 이외의 出還宮時와 親耕과 勞酒宴에 따르는 여러가지의 節次와 設備·準備物 등을 자세히 記錄했다. 대체로 내용과 형식은 甲申(1764)年 例를 참고 하였다.
來關秩에는 親耕時 所用되는 靑箱子를 만들 匠人七名을 潭陽府로부터 올라오게 하며, 所用되는 器·物을 마련할 구체적인 名稱과 數가 밝혀져 있다. 耕牛를 各地域에서 몇 頭씩 올리게 되어 있으니 地方別로 頭數를 보면 楊根 8, 抱川 6, 永平 6, 朔寧 4, 加平 4, 砥平 4, 積城 4, 長端 4, 麻田 4, 坡州 4, 漣川 4, 水原 4, 安城 5, 陽城 4, 竹山 4, 南陽 4이다. 그리고 禮儀使禮曹判書 申晦 등 30여명의 部署를 밝히고 있다.
儀註秩에는 親耕時出還官儀, 親耕時王世孫隨駕儀, 親耕儀, 親耕時王世係侍耕儀 親耕後勞酒儀, 親耕後勞酒時 王世孫侍座儀와 王妃獻種儀, 親受刈穀儀, 王妃藏種儀가 있는데, 임금이 出宮 - 親耕 - 還宮의 儀節을 자세히 記錄했다. 이런 기록 가운데는 乙良 旦齊 등의 吏讀가 나오고 있어 吏讀硏究에도 자료가 된다.
이 책은 궁중 농경의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사료된다. 친경의궤는 영조 15년과 43년에 각각 1책씩 작성된 것이 전하고 있다. 본서는 영조 43년에 작성된 것으로 규장각에도 1책이 보존되고 있으며 영조 15년본은 규장각에만 전한다.<文化財委員會 專門委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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