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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631
서명 / 저자 : 牧民心書 / 丁若鏞(朝鮮) 編
개인저자 : 정약용 (조선), 1762-1836
판사항 : 寫本
발행사항 : [ ] : [ ], [寫年未詳]
형태사항 : 線裝24卷 8冊 : 四周雙邊, 半郭 18.6 × 12.5cm, 烏絲欄, 半葉 10行 22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 23 × 17cm
일반주기 : 서제: 紙質 : 楮紙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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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목민심서 (牧民心書)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정약용(丁若鏞)의 저서. 48권 16책. 필사본. 부임(赴任)·율기(律己)·봉공(奉公)·(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진황(賑荒)·해관(解官)의 12편으로 나누고,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편제되어 있다. 부패의 극에 달한 조선 후기 지방의 사회상태와 정치의 실제를 민생문제 및 수령의 본무(本務)와 결부시켜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명저이다. 이 책은 정약용이 57세 되던 해에 저술한 책으로서 그가 신유사옥으로 전라도 강진에서 19년간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중 해배(解配)되던 해인1818년(순조 18)에 완성된 것으로, 이는 저자가 학문적으로 가장 원숙해가던 때에 이루어진 저술로 민생과 관련된 그의 많은 저서 중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그의 저작연표(著作年表)에 의하면, 그가 현실적인 문제에 마지막 정열을 기울인 것은 강진 유배생활 19년간의의 전부를 경전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가 연만(年晩)한 때에 얻은 학문적 이해와 경험을 경주여 해배 전년에 <<경세유표 經世遺表>>, 해배되던 해에 <<목민심서>>, 해배 다음해에 <<흠흠신서 欽欽新書>>를 계속 펴낸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해배 후에는 저작활동이 부진하여<<경세유표>>는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 천관편(天官篇)의 수령고적(守令考績) 9강(綱) 54조는 책의 기본골격을 이루고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정약용의 목민에 대한 구상과 계획은 오래 전부터 싹트고 있었다. 는16세부터 31세까지 부친이 현감·군수·부사·목사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고 있을 때 임지에 따라가서 견문을 넓힌 일이 있었고, 자신도 33세 때 경기도에 암행어사로 나아가 지방행정의 문란과 부패로 인한 민생의 궁핍상을 생생히 목도한 데다가 직접 찰방(察訪)부사 등의 목민관을 지내면서 지방행정에 대한 산 체험을 경험하였다. 수령은 모름지기 <<학 大學>>에서 이르는 바 수기치인지학(修己治人之學)을 배우는 데 힘써 수령의 본분이 무가를 직시하고 치민(治民)하는 것이 곧 목민하는 것이라는, 간단한 것 같지만 여기에 심오한 미를 내포하고 있는 점을 잘 인식할 적에 근민관(近民官)으로서의 수령의 임무가 얼마나 어가를 알리기 위하여 이 책을 저술하는 것이라 하고, 이 책에서 심서(心書)라고 한 뜻은 목민할 마음은 있었지만 몸소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 (下民)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까지 들어 진 구렁 속에 줄을 이어 그득한데도, 그들을 다스리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슬프지 아니한가”라고 개탄하고, 특히 수령칠사(守令七事)의 하나인 간활식 (奸猾息)에서 수령과 아전의 간활을 배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의 <<목민심감 牧民心鑑>>, 후기의 <<거관요람 居官要覽>>·<<거관대요 居官大要>>·<<임관정요 臨官政要>> 등 여러 목민의 서가 지향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목민관의 정기(正己)와 청백사상이 전편에 걸쳐 강하게 흐르고 있는 점이다. 또한 청렴은 수령의 본무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 능히 수령노릇 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목민심감>>이 <<거관요람>>·<<임관정요>>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또 이 책은 안정복(安福)의 <<임관정요>>를 여러 곳에서 인용함으로써 그의 목민관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목민심감>>·<<임관정요>>가 이 책의 선하(先河)가 되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 책의 편목은 광문사(廣文社)간 <<목민심서>>를 토대로 한 것으로, 이를 분석하여 정약용이 의도하고 있는 수령의 실천윤리를 보면, 먼저 제1편의 부임은 제배(除拜)·(治裝)·사조(辭朝)·계행(啓行)·상관(上官)·이사(<리0x5F60>事)의 6조로, 제2편의 율기는 칙궁(飭躬)·청심(淸心)·제가(齊家)·병객(屛客)·절용(節用)·낙시(樂施)의 6조로, 제3편의 봉공은 첨하(瞻賀)·수법(守法)·예제(禮際)·보문(報聞)·공납(貢納)·왕역(往役)의 6조로, 제4편의 애민은 양로(養老)·자유(慈幼)·진궁(振窮)·애상(哀喪)·관질(寬疾)·구재(救災)의 6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네 편은 목민관의 기본자세에 대하여 상세하게 논설하고 있는데, 첫째 목민관선임의 중요성, 둘째 청렴·절검(節儉)의 생활신조, 셋째 민중본위의 봉사정신 등을 들고 다. 수령은 근민(近民)의 직으로서 다른 관직보다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반드시 덕행·신망·이 있는 적임자를 선택하여 임명해야 하며, 수령은 언제나 청렴과 절검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재리(財利)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절대로 받지 말아야 하며, 수령의 본무는 민중에 대한 봉신을 기본으로 하여 국가의 정령(政令)을 빠짐없이 두루 알리고 민의(民意)의 소재를 상부에 잘 전달하고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하여 민중을 보호해야 하는데, 민중을 사랑하는 바 애휼정치(愛恤政治)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음 제5편의 이전은 속(吏)·어중(馭衆)·용인(用人)·거현(擧賢)·찰물(察物)·고공(考功)의 6조로, 제6편의 호전은 전정(田政)·세법(稅法)·곡부(穀簿)·호적(戶籍)·평부(平賦)·권농(勸農)의 6조로, 제7편의 예전은 제사(祭祀)·빈객(賓客)·교민(民·흥학(興學)·변등(辨等)·과예(課藝)의 6조로, 제8편의 병전은 첨정(簽丁)·연졸(練卒)·수병(修兵)·권무(勸武)·응변(應變)·어구(禦寇)의 6조로, 제9편의 형전은 청송(聽訟)·단옥(斷獄)·신형(愼刑)·휼수(恤囚)·금폭(禁暴)·제해(除害)의 6조로, 제10편의 공전은 산림(山林)·천택(澤)·선해(繕<해0x7A58>)·수성(修城)·도로(道路)·장작(匠作)의 6조로 이루어져 있다. 위의 여섯 편은<<경국대전>>의 6전에 준거(準據)하여 목민관의 실천정책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즉 전은 관기숙정(官紀肅正)을 큰 전제로 하여 아전(衙前)·군교(軍校)·문졸(門卒)의 단속을 히 하고 수령의 보좌관인 좌수(座首)와 별감(別監)의 임용을 신중히 하되, 현인(賢人)의 천거는 수령의 중요한 직무이므로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호전은 농촌진흥과 민생안정을 큰 전제로 내세워 전정·세법을 공평하게 운용하고 호적의 정비와 부역의 균등을 잘 조절하고 권농·흥산(興産)의 부국책(富國策)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것을 내세우고 다. 전정의 문란, 세정의 비리, 호적의 부정, 환자(還上)의 폐단, 부역의 불공정은 탐관오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만큼 수령은 이를 민생안정의 차원에서 척결(剔抉)하고, 나아가 활기찬 흥농(興農)의 실을 거두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예전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예법과 교화·흥학의 이정표를 잘 세울 것을 권유하고 있다. 병전은 연병·어구의 국방책을 말한 것으로, 특히 당시 민폐가 가장 심하였던 첨정·수포의 법을 폐지하고 군안(軍案)을 다시 정리하고 수령은 앞장서서 평소부터 군졸을 훈련시킬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형전은 청송·형옥의 신중책을 제시한 것으로, 특히 수령은 먼저 교도(敎導)하고 다음에 형벌 한다는 신조를 굳게 가져야 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공전은 산림·산택·영전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주로 산업개발의 행정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황(賑荒)·해관의 두 편은 수령의 실무에 속하는 빈민구제의 진황정책과 수령이 임기가 차서 교체되는 과정을 적은 것으로서, 벼슬길에서의 선종(善終)을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황의 항목은 비자(備資)분(勸分)·규모(規謨)·설시(設施)·보력(補力)·준사(竣事)의 6조로, 해관은 체대(遞代)·귀(裝)·원류(願留)·걸유(乞宥)·은졸(隱卒)·유애(遺愛)의 6조로 이루어지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저자의 지방행정의 원리는 관(官)의 입장에 서서 논한 것이 라, 민(民)의 편에 서서 관의 횡포와 부정부패를 폭로·고발·탄핵·경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1901년에 광문사에서 인간(印刊)한 바 있으며, 1969년에 민족문화추진회와 1977년에 대양서적(大洋書籍), 1981년에 다산연구회(茶山硏究會)에서 국역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牧民心書硏究(李載浩, 人文科學 3·4, 文敎部, 1973), 丁茶山의 地方行政硏究-특히 牧民心書를 中心으로-(李戴浩, 文理科大學論文集 14, 釜山大學校, 1975), 朝鮮守令七事와 牧民心鑑(金成俊, 民族文化硏究 21,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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