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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MF35-1892
서명 / 저자 : 東明事題集註/ 金在韶 葺註; 韓致愈; 洪在朝 編證
개인저자 : 김재소 (조선)
한치유
홍재조
이기홍
고종
동명왕
김재소
판사항 : 木版
발행사항 : [ ]: [ ], 高宗 29(1892)
형태사항 : 線裝1冊(35張): 四周單邊, 半郭 15.9 × 10.8cm, 有界, 半葉 7行 16字, 註雙行, 上黑魚尾; 24 × 15.9cm
일반주기 : 서제: 表題 : 東明事題
서제: 裡題 : 東明事題
卷首 : … 東明故事[金]七輔山人簽. 斗山章, 李基鴻小華生敬稿
요약사항 : 高宗 29年(1892) 王命으로 高句麗始祖東明王陵을 改封, 이 준役에 종사한 金在韶가 國史와 高氏家乘에서 東明王의 史實을 뽑아 七言律詩로 엮고 註를 더하여 編成한 책임
복제주기 :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필름 릴 ; 35 mm
소장본주기 : 印 :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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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 07-0538
동명사제 (東明事題) 1892년(고종 29)에 김재소(金在韶)가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사적을 시로 읊고 주석을 단 책. 1책 35장. 목판본. 한치유(韓致愈)가 교정하고 홍재조(洪在朝)가 편증(編證)하였다. 서문은 민병석(閔丙奭), 발문은 황립(黃<립0x5F9A>)이 썼다. 이 책은 고종 28년 7월, 상원(祥原) 문관이며 헌납(獻納)을 지낸 박종선(朴鍾善)이 소청(疏請)하여 왕명으로 동명왕의 능을 개봉(改封)하였는데, 이 일을 감독한 김재소가 <<삼국사기>>의 동명성 왕본기와 <<고씨가승>> 중에서 동명왕에 대한 사실들을 살펴 칠언율시의 영사체(詠史體)로 엮은 것이다. 모두 31장의 시로 되어 있는데 그 아래에 <<삼국사기>>와 <<고씨가승>>의 기사를 주(註)로 달아 그 뜻을 명확히 하고, 각 시장의 말미에는 지명이나 연대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간단히 덧붙였다. 또한, <<고씨가승>>의 편성과 관련이 있는 동명왕 45대손이라는 고려사람 고기(高基)의 발론(跋論)과 〈산론유서 山論遺書〉의 내용을 덧붙여 동명왕릉이 허장(虛葬)이 아님을 주장하였다. 여기에 인용된 <<고씨가승>>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실
을 알 길이 없으나, 이 책에 따르면 1049년(문종 3) 고구려 왕족의 후손으로 연주(延州) 군수인 고기가 <<삼국사>>와 <<고씨가승>>을 궤에 넣고서 12주갑(周甲) 후 24대손이 을유년에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1825년, 즉 을유년에 24대손 고명강(高明疆)이 <<가승>>을 보게 되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때 고기는 풍수설과 관련된 〈산론유서〉를 지은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1825년 고명강에 전해지고 다시 67년 후 김재소가 이 책을 보게 되어 〈동명사제〉가 편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때의 <<삼국사>>는 고려 초기에 편찬된 소위 <<구삼국사>>를 의미하는듯하나 이규보의 〈동명왕편〉의 내용과 <<가승>>의 내용을 비교하여볼 때 <<구삼국사>>를 참조한 내용이 보이지 않으므로 이 기사의 진실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서문을 쓴 민병석은 당시 평안도관찰사로서 중화(中和)에 세워진 고구려 동명왕릉비의 글씨를 썼으며 그리고 이 책의 맨 앞장에 시를 써넣었고, 또 고구려 동명왕 기적비(紀績碑)를 쓴 이기홍(李基鴻), 그리고 이 책의 찬자인 김재소 등은 모두 1892년 중화 고구려 동명왕릉비를 세우는 데 힘을 합하였으며 개봉의 역사(役事)에 주도적 구실을 담당한 인물들이다.
이 책의 내용은 고구려 동명왕의 영험한 공업(功業)과 안민(安民)의 공을 찬미한 것이다. 제1장은 금와(金蛙)의 탄생을 적고 있으며, 부여는 지금의 영변이라는 자신의 위치 비정을 첨가하였다. 제2장은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과 동명이 하늘의 기운을 받았음을 적고 있으며, 우발수(優渤水)는 지금의 영변강으로 추정하였다. 제3장은 동명성왕의 신이한 탄생과 신비로운 행동을 적고 있다. 제4∼10장은 주몽의 특출한 재능과 이를 시기한 다른 왕자의 모살을 피해 도망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가의 기업을 개창하여 졸본천(卒本川)에 고구려를 건국하게 되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제11∼22장은 동명왕의 치적을 찬양하여 묘사하고 있는데 그 중 제11장은 송양(松壤)을 항복시켜 본격적으로 영토확장에 나섬을 보여주고 있으며, 제12장의 주에서는 <<가승>>의 기사에 따라 <<삼국사기>>에 나오는 동명왕 4년의 운무(雲霧)와 축성(築城) 기사를 동명왕 2년의 사실로 보았다. 또한 제14장의 주에서도 <<가승>>의 북쪽 12국을 친 기사를 적고 <<삼국사기>>의 기사로 보충하였다. 제23∼31장까지는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봉릉(封陵)의 사실과 동명왕의 장지(葬地)를 설명하고 있다. 장서각도서에 있다.<참고문헌> 中和高句麗東明王陵紀績碑, 中和高句麗東明王陵碑, 三國史記, 東明王篇, 朝鮮金石總覽. 〈鄭求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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