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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 고서(한국본)
소장분관 : 도서관
기타분류기호 : 史部 / 正史類
서명 / 저자 : 史記英選 / 司馬遷(漢, [BC145-BC86]) 著 ; 正祖(朝鮮, 1752-1800) 編
개인저자 : 사마천 한 [BC145-BC86]
정조 조선 1752-1800
판사항 : 金屬活字本(丁酉字)
발행사항 : 漢城 : 內閣, 1796(正祖20)
형태사항 : 6卷3冊 : 四周單邊 半郭 25.0 × 17.0 cm, 有界, 10行18字, 上下向二葉花紋魚尾 ; 36.8 × 23.2 cm
일반주기 : 表題面: 御定史記英選/丙辰(1796)內閣活印
卷末(鑄字事實): 世宗朝甲寅(1434)以爲善陰騭字爲本命金墩等範銅爲字俗稱衛夫人字是也我殿下在春邸命官僚校正鑄十五萬字藏于芸閣印經書正文啓蒙集箋是爲壬辰字元年(1777)又命關西道臣加鑄十五萬字藏于內閣是爲丁酉字皆以甲寅字爲本辛丑(1781)之八子百選癸丑之三經四書大全甲寅(1794)之朱書百選丙辰(1796)之史記英選並用此字印行而昔我太宗三年(1403)設鑄字所世宗二年(1420)置集賢殿藏書印書各得其所今之內閣亦有鑄字所盖由於述事之聖意每印一書以鑄字事實載于卷端
總冊: 共三
冊次: 一二三
裝幀: 線裝, 五針眼, 朱絲
紙質: 壯紙
紋樣: 黃紙斜格萬字紋
白籤: 赤
내용주기 : 表題面, 史記英選目錄 -- 卷1. 項羽本紀, 蕭相國世家, 留侯世家 -- 卷2. 伯夷傳, 管仲晏嬰傳, 伍子胥傳, 蘇奏傳, 孟嘗君傳, 平原君傳 -- 卷3. 信陵君傳, 范雎傳, 樂毅傳, 屈原傳, 張耳陳餘傳 -- 卷4. 淮陰侯傳, 酈生陸賈傳, 袁盎傳, 五王濞傳 -- 卷5. 魏其侯武安侯灌夫傳, 汲黯傳, 李將軍傳, 刺客傳, 游俠傳 -- 卷6. 滑稽傳, 貨殖傳, 太史公自序 -- [鑄字事實]
복제주기 : MF35-1645
언어주기 : 漢文
소장본주기 : 印記 : 奎章之寶(朱文方形), 茂朱赤裳山史庫所藏朝鮮總督府寄贈本(朱文直形), 史館藏(朱文直形), 李王家圖書之章(朱文方形)
內賜記: 赤裳山城
청구기호 : K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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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정보

~ 10-1439
* 사기영선 (史記英選) 조선 후기의 정조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史記>>와 반고(班固)의 <<한서 漢書>>에서 중요부분을 뽑아 엮은 책. 6권 3책이나 8권 5책의 활자본 또는 목판본으로서, 여러 판본이 전한다. 정조가 추진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1796년(정조 20) 조선 초기에 있었던 주자소를 복설하여 정유자(丁酉字)로 간행하였으며, 태백산·오대산·적상산의 사고(史庫)에 보관하고, 영남·호남·관서의 감영에 명하여 번각하여 바치게 하였다.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 弘齋全書>>의 〈군서표기群書標記〉에 본서가 6권으로 이루어졌다고 한 사실이나 그 내용으로 보아, 원래 6권으로 간행된 뒤 정조 자신이나 신하들이 내용을 추가하여 8권으로 늘어나게 된듯하다. 어떤 판보에는 범례가 들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구에 대한 약간의 주가 난외에 기록된 것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부수 기록이 없이 본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6은 <<사기>>에서 뽑은 26편을 싣고 있는데 대부분이 열전이다. 권7·8에 있는 9편은 〈흉노전 匈奴傳〉을 제외하고는 <<한서>>에서 뽑은 것인데 모두 열전이다. 고전의 내용을 아무런 수정이나 해석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이므로 사료적 가치는 크지 않으나, 정조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추진한 문화정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의 권7·8의 부분은 따로 <<사기영선초 史記英選抄>>라는 제목으로 제책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弘齋全書. 〈吳洙彰〉



부가정보

~ 10-1439
* 사기영선 (史記英選) 조선 후기의 정조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史記>>와 반고(班固)의 <<한서 漢書>>에서 중요부분을 뽑아 엮은 책. 6권 3책이나 8권 5책의 활자본 또는 목판본으로서, 여러 판본이 전한다. 정조가 추진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1796년(정조 20) 조선 초기에 있었던 주자소를 복설하여 정유자(丁酉字)로 간행하였으며, 태백산·오대산·적상산의 사고(史庫)에 보관하고, 영남·호남·관서의 감영에 명하여 번각하여 바치게 하였다.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 弘齋全書>>의 〈군서표기群書標記〉에 본서가 6권으로 이루어졌다고 한 사실이나 그 내용으로 보아, 원래 6권으로 간행된 뒤 정조 자신이나 신하들이 내용을 추가하여 8권으로 늘어나게 된듯하다. 어떤 판보에는 범례가 들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구에 대한 약간의 주가 난외에 기록된 것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부수 기록이 없이 본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6은 <<사기>>에서 뽑은 26편을 싣고 있는데 대부분이 열전이다. 권7·8에 있는 9편은 〈흉노전 匈奴傳〉을 제외하고는 <<한서>>에서 뽑은 것인데 모두 열전이다. 고전의 내용을 아무런 수정이나 해석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이므로 사료적 가치는 크지 않으나, 정조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추진한 문화정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의 권7·8의 부분은 따로 <<사기영선초 史記英選抄>>라는 제목으로 제책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弘齋全書. 〈吳洙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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