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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염상섭의 「만세전」
작성자문헌정보팀
등록일2017/12/11 16:38:21 조회수1302

 염상섭 『만세전』

「만세전」은 「삼대」와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횡보 염상섭(1897~1963)의 대표작이다. 그는 1897년 작가 중에 드물게 서울에서 태어나 1963년 타계하기까지 약 16편의 장편소설과 160여 편에 이르는 중·단편소설들을 발표했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만세전」, 「해바라기」, 「견우화」 등의 초판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은 염상섭이 19247~8월에 걸쳐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출간된 작품들이다.

특히 「만세전」은 식민지 시대 빼어난 문학작품의 하나로
, 작가로서 염상섭의 위치를 굳혀준 작품이다. 그리고 한국 현대소설사상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의 걸작 「삼대」(1931)의 준비 과정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리얼리즘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염상섭은 「만세전」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암담한 현실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

 
「만세전」은 3·1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1918년의 겨울, 동경에서 서울, 서울에서 동경으로 가는 여로형의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 표출, 내면을 가차 없이 속속들이 살펴본다는 점인데 내용으로 보면 일본 유학중인 평범한 조선 학생 이인화를 통해 식민지 지식인의 관점으로 비참한 조국의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은 일본인이 조선인을 대하는 현실에 대한 혐오감, 억압에 대한 불쾌감과 불안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인칭 주인공 이인화의 시점에서 새로운 장소로 이동할 때 마다 사건이 이루어지는 전개로 주인공인 를 통해 식민지 현실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준다.

찻간 안으로 들어오며, ‘무덤이다! 구덱이가 끓는 무덤이다!’ 라고 나는 지긋지긋한 듯이 입술을 악물어보았다. (중간 생략) ‘공동묘지다! 구더기가 우글우글하는 공동묘지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방 안부터 여부없는 공동묘지다. 공동묘지에 있으니까 공동묘지에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구더기가 득시글득시글하는 무덤 속이다. 모두가 구더기다. 너도 구더기, 나도 구더기다. 그 속에서도 진화론적 모든 조건은 한 초 동안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겠지! 생존 경쟁이 있고 자연도태가 있고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하고 으르렁댈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 구더기의 낱낱이 해체가 되어서 원소가 되고 흑이 되어서 내 입으로 들어가고 네 코로 들어갔다가, 네나 내나 거꾸러지면 미구에 또 구더기가 되어서 원소가 되거나 흙이 될 것이다. 에잇! 뒈져라! 움도 싹도 없어져버려라! 망할 대로 망해버려라! 사태가 나든지 망해버리든지 양단간에 끝장이 나고 보면 그중에서 혹은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나은 놈이 생길지도 모를 것이다.’


위의 글을 보듯 주인공은 식민지 조선의 실상을 보면서 이것은 무덤이다라고 외친다. 이 외침은 3·1 운동 직전의 조선 사회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암담하고 절망적인 현실에 대응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연민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 삶의 생기를 잃어버리고 굴복하는 조선인의 일제 강점하의 노예적 삶과 그러한 현실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처참한 의식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 바로 무덤인 것이다. 조선의 현실에 울분하며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비참한 생활을 인식하지만 주인공 이인화는 끝내 당대 지식인의 무능함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듯 조선을 떠나 동경으로 돌아가는 현실회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원제는 묘지이다. 원제와 의미가 상통하는 무덤은 당시 조선의 참담한 현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만세전」 판본

「만세전」은 폐간에 따른 연재 중단으로 총 4개의 판본이 존재한다. 최초의 판본은 19227월부터 2개월간 「묘지」라는 제목으로 『신생활』에 연재되다가 3회분이 압수당해 연재가 중단되었다. 『신생활』을 발행한 신생활사는 1922115일 박희도와 이승준 등의 발기로 신생활사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주목할 점은 신생활사 이사진들이 황해도 출신이 압도적이라는 점, 민족운동 관련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2명의 외국인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주체 조직의 성격이 사회주의라는 점과 서양인이 발행인인 경우 잡지의 허가와 운영이 용이했던 점이 관련된다. 신생활사는 이사진이 경영과 재정을 담당하고, 내용과 편집은 전적으로 기자진이 담당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는데 염상섭은 지속적으로 게재한 외부필자로써 3회에 걸쳐 「묘지」를 연재하고 2편의 비평도 객원으로 활동하면서 게재하였다.
 


(신생활지 연재, 1922)

 

두 번째 판본은 『신생활』이 폐간되자 이후 19244월 「만세전」(1924.4.6.~6.4.)이라는 제목으로 『시대일보』에 총 59회 연재되기에 이른다. 주목할 점은 『신생활』의 「묘지」 뒤를 연재한 것이 아니라 「만세전」이란 타이틀로 처음부터 다시 연재하기 시작했다는 점인데, 이것은 1922년 「묘지」 3회가 압수된 경험, 즉 일제의 검열을 의식한 결과일까? 이런 판단에 기대어 염상섭은 최남선이 주간하던 『시대일보』를 통해 『신생활』과의 연관성을 버리고 재출간 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대일보 연재, 1924)

 

그 해 3월 「만세전」은 고려공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는데 박현수 논문을 정리하면 『신생활』 에 연재된 「묘지」와 공려공사 판본의 「만세전」의 차이를 어휘의 대치나 문맥적인 맥락의 정돈 정도에 국한되어 있는 점, 몇 군데 조사나 자구의 수정이 엿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인명부분에서 「묘지」의 인명은 영어 이니셜로 되어있는데 반해, 만세전에는 이름이 부여되어 있고, 「묘지」에서 보여줬던 문어체 문장을 자연스럽게 고치고 일본식 한자 표기를 당시 쓰이던 용어로 바꾼 것이라 했다.


 
(고려공사 초판본 표지, 1924)

 


(고려공사 초판본 서문)


끝으로 염상섭의 심경이 나타나있는 고려공사 판본의 서문 「序를 대신하야」(1923.9)를 살펴보자.

내가 왜 이것을 썼느냐는 것을 잘 되었든 못 되었든 이 作 자신이 나를 대신하여 제군에게 말할 것이다.
이 作에 얼마한 생명과 가치가 있겠느냐는 것은
, 좋든 글튼 제군이 作을 대신하야 말할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믿으므로
, 또 다시 입을 벌리려고는 아니한다.

癸亥 九月 作者


염상섭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서문이다. 특히 자전적 경험이 투영된 일본 유학생 이인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조선의 현실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주인공 이인화가 열 다섯살에 일본유학을 간 것과 동일한 점을 들 수 있다. 자서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식민지 지식인 염상섭은 주인공 이인화를 대변하여 식민지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910년 한일합방을 맞으며 일제는 신문지법, 출판법 공포로 애국 계몽적 서적들을 모두 압수하거나 발매금지 시켰다. 「만세전」 또한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끝까지 우리 곁에 남아 역사적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920년대가 되면 신식교육을 받거나 신문예를 선언하는 근대 지식인 즉 식민지 지식인이 등장하게 된다. 횡보 염상섭은 그들의 내면 풍경과 불안한 자화상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참고문헌
1)  박종린, 「1920년대 초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신생활」 『사림』49호, 수선화학회, 2014

2)
 박현수, 「「묘지」에서 「만세전」으로의 개작과 그 의미」 『상허학보』19호, 상허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