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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의귀 강명화실기(女의 鬼 康明花實記)』 上
작성자문헌정보팀
등록일2016/12/07 20:04:27 조회수1503

 

『여의귀 강명화실기(女의鬼 康明花實記)』

 

일제강점기에 크게 유행했던 『여의귀 강명화실기(女의鬼 康明花實記)』는 평양기생 강명화와 대구 부호의 아들 장병천의 비극적인 情死를 다룬 딱지본 소설이다.

신소설 작가 이해조는 1925년 이해관이란 필명으로『여의귀 강명화전(女의鬼 康明花傳, 1925)』과 『여의귀 강명화실기(女의鬼 康明花實記, 1925) 하편』을 발표한다. 두 책 모두 회동서관 발행이며, 서두가 내용상 이어지기 때문에 그 동안 상, 하편으로 알려져 왔다. 이것은 『여의귀 강명화실기(女의鬼 康明花實記, 1924) 상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판본 검증을 통해 상편이 우리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때 도서관 소장본인 강명화실기 상편은 희귀본으로 근대문학자료유산의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 장에서는 이해조의 저작인 강명화소설의 내력과 간행 양상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강명화의 애환 ‘꽃 같은 몸이 생명을 끊기까지’

‘꽃 같은 몸이 생명을 끊기까지 그녀의 생활에는 어떤 비밀이 있었던가..’  평양기생 강명화가 자살한 사연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이다.



(동아일보, 1923. 6. 16.)  )

     

      
동아일보 광고
(19231117)


평양 출신 기생 강명화는 대구 출신 부호 장길상의 아들 장병천과 사랑을 하였다. 장씨 집안과 주변의 반대로 온갖 고통을 겪었음에도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가락을 자르는 등 단호함을 보이며 가산을 털어 일본유학까지 감행했으나 결국 그 사랑은 강명화의 자살로 끝을 맺었다.

이처럼 1920~1930년대 연애 지상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강명화의 情死 사건으로 강명화 신드롬은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강명화 자살에 이은 장병천의 자살은 비극적인 효과를 확대시켰고, 더욱더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강명화의 죽음을 다룬 소설이 종로 야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이후 “강명화를 따라간다”며 情死한 연인들이 줄을 이었다.

강명화와 장병천의 사랑은 신문·잡지·소설을 통해 윤색을 거듭하면서 『여의귀 강명화실기』(1924), 『여의귀 강명화전』(1925), 『강명화의 설움』(1925), 『절세미인 강명화전』(1935), 『강명화의 애사』(1936), 『강명화의 죽음』(1964)등 딱지본 소설들이 줄을 이어 간행되었고, 연극과 영화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여의귀 강명화실기(女의鬼 康明花實記) 上』의 판본

딱지본인 『강명화실기』는 세로쓰기 배열로 사각괘선을 두르고 그 안으로 내려쓰기를 하고 있어 고급스러운 느낌인 반면에 『강명화전』의 표지는 딱지본의 형태를 그대로 들어나 주고 있다. 화려한 표지에 강명화의 사진이 중앙에 실려 있으며, 꽃 장식의 액자와 강명화의 흑백 사진이 대비되어, 기생 강명화의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과 그녀의 기구한 삶을 암묵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이 회동서관에서 발행된 강명화 소설의 딱지본의 표지는 여성 독자층를 의식한 새로운 감각의 표지화가 그려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하편 표지에는 기생이야기 『강춘홍소전(康春紅小傳)』, 『이화연소전(李花蓮小傳)』등 2편이 함께 부록으로 게재되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본원 소장 초판본, 1924)     


(동덕여대 소장, 재판본1926 ;초판1925)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재판본1927 ;초판1925) 


(여의귀 강명화실기 상, 1924)  


(여의귀 강명화실기 하, 재판본 1926)


(여의귀 강명화전, 1927)


『강명화실기』가 발행된 시점의 회동서관은 1926년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 이광수의 소설 『재생』과 양백화의 소설 『빨래하는 처녀』등을 마지막으로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종국 논문)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강명화실기』가 간행되던 시기는 회동서관이 실질적인 영업활동이 중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판권지로 알 수 있듯이 1927년에 발행된 재판본 『여의귀 강명화전』의 판권은 이해조에서 회동서관의 사주 고유상에게로 넘어가는 것으로 확인된다. 일제강점기 출판사를 소유하고 있던 사주가 저작자 겸 발행자로 등장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지만, 1927년의 『강명화전』이 이해조에서 고유상으로 판권이 이전된 것으로 보아 이 판권을 소유한 사람은 고유상으로 보여진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1925년 발행된 『강명화전』을 확인하기 위하여 국립중앙도서관과 아단문고, 서울역사박물관본을 확인한 결과 모두 1927년 발행본으로 초판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았던 구활자본 즉 딱지본 소설은 질적인 측면이나 연구 가치가 현저히 낮게 취급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국가적으로 수행되는 근대문학자료의 가치와 보존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추세이다. 여의귀 강명화실기 상 또한 희귀본으로 현재 알려진 바로는 우리도서관이 유일하다.  


<참고문헌> 
이영미 외, 『딱지본 대중소설의 발견』, 민속원, 2009.
이종국, 「개화기 출판 활동의 한 징험-회동서관의 출판문화사적 의의를 중심으로」, 『한국출판학연구』 제49호, 한국출판학회, 2005.
최주한, 「女의 鬼 康明花實記 下』(1925) 부록 「妓生의 小傳」 연구」, 『근대서지』 6호 , 근대서지학회, 2012.
서유리, 「딱지본 소설책의 표지 디자인 연구」, 『한국근현대미술사학』제20집 ,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9.